세계자연유산이 여기 흐른다
내성천은 낙동강 중·상류의 주요 지천이다. 소백산 남사면을 흘러내려 영주분지를 거치고 분지 남쪽을 둘러싼 중·저산성 산지를 빠져나오면서 경북 예천 회룡포에 인근한 삼강나루에서 낙동강 본류로 유입한다. 지형학 관점에서 보면 내성천은 낙동강 전체 유계의 대표적인 토산(土山) 소백산과 가장 규모가 큰 침식분지인 영주분지(봉화·순흥·풍기·영주 일대의 들판과 야산을 포함한 지형 단위)에서 집수된 물이 기복 100~300m 이내의 산지(영주·봉화에서 낙동강 본류에 이르는 구간의 산지) 사이를 수없이 굽이치며 흐르다 낙동강 본류와 만난다.
토산이란 일정 두께 이상의 흙이 덮여 있고, 식생 밀도가 높은 산을 말한다. 내성천은 소백산 같은 거대한 토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이기에 홍수와 가뭄의 피해가 적은 하천이다. 한국에서 넓은 침식분지는 화강암이 7~10m 정도 깊게 풍화된 곳에서 잘 발달한다. 화강암 풍화층은 하천이나 지표수에 의해 쉽게 들판이나 기복과 경사가 완만한 야산으로 조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앞에 들판과 야산이 있고 유정한 토산 소백산이 배후에 있는 영주분지에는 봉화, 순흥, 풍기, 영주 같은 전통 고을이 자리잡고 있다.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모래강
다량의 모래를 공급할 수 있는 화강암이 널리 분포하고 하류까지 산지를 뚫고 나가는 구간이 많은 한국 하천의 지형적 특색을 내성천은 압축해 지니고 있다. 특히 한국 하천의 자랑인 모래톱이 가장 발달한 하천이기에 ‘모래강’이라고도 불린다. 모래톱과 어우러진 산수는 가히 한국의 자랑이자 세계자연유산이라 할 수 있다. 내성천은 지형의 보고이면서 훌륭한 학습장이다.
우리나라 하천은 하류까지 산과 산 사이를 빠져나가는 곳이 많은 산지하천이다. 산지를 뚫고나가는 모습의 하곡은 단층 같은 지각의 단열(斷裂)을 따라 하천이 유도돼 발달한다. 한반도는 다른 나라에 비해 여러 방향의 단열망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단열망 체계를 지녀 하계망이 복잡하게 발달돼 있다. 물길은 자를 대고 그은 듯 직선으로 가다 심하게 방향을 바꿔 굽이치는 곳이 많고, 이 굽이침이 짧은 간격으로 반복되는 곡류 하곡을 이루는 예가 많다.
이와 같은 물길을 따라가면서 암석 풍화가 잘 진전된 곳에서는 넓은 범람원과 단구, 구릉이 발달한 곡저평야나 분지가 펼쳐진다. 유수는 단단한 암석을 직접 침식하지 못해도 풍화물은 쉽게 제거·이동·재배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름 집중호우로 하천의 유량 변동폭이 큰 한국 하천은 암석이 풍화돼 있다면 하천 규모에 비해 너른 들판을 빚어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화강암이 7~10m 정도 깊이 풍화된 곳에서 이것들이 잘 발달돼 있다. 내성천 유계에서 봉화·순흥·풍기 일대의 넓은 하곡이 이에 해당한다. 반면 두꺼운 풍화층이 생성되지 않았거나 풍화에 강한 암석대에서는 하곡이 넓지 않거나 협곡으로 나타난다. 한국 하천은 암석의 풍화 성향과 국지적 풍화 환경에 따라 중·상류는 물론 하류까지 넓은 하곡과 좁은 하곡을 교대해 통과하면서 흐른다.
한국의 강은 한편으론 직선으로 뻗은 하곡을 흐르다 급히 방향을 바꿔 굽이쳐 흘러가기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넓은 곡지와 좁은 곡지를 교대해 빠져나가면서 흐른다. 이런 모습은 한국 하천에서 가장 모식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또한 지구촌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수준으로 모래톱이 잘 발달돼 있다.
하류까지도 넓은 곡저평야나 분지를 통과하고, 산지 사이를 굽이쳐서 휘돌아 나가기를 반복하고, 하곡에 모래톱이 잘 발달해 있는 것은 다른 나라 하천과 차별성을 보이는 한국 하천 지형의 전형적 특색이다. 소백산 남사면에서 발원해 영주분지를 통과하고, 다시 산지 사이를 심하게 굴곡해 흐르며 하곡에는 모래톱이 잘 발달한 내성천은 같은 규모의 어느 지천보다 한국 하천 지형의 주요 특색을 압축한 모습이다. 내성천은 하루이틀 답사로 한국 하천 지형의 특색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한국 하천 지형의 압축파일
오늘날 국가 차원의 명승 또는 세계자연유산으로 가치를 평가할 때 경관이 수려하며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고유성과 희소성이 있는지, 관련 지역의 자연생태계와 인간생활 및 문화와 긍정적으로 연관돼 있는지, 자연 상태가 잘 보존돼 있는지를 중요시한다. 이와 더불어 학술적 가치도 크다면 더할 나위 없다.
내성천 물길이 산과 산 사이를 수없이 휘돌아가는 모습은 경이로운 지형 경관이다. 굽이침은 직선으로 가다 직각 또는 이에 가까운 예각으로 방향을 바꾼다. 굽이친 유로의 평면적 형상은 ‘ㄷ’자와 ‘ㄹ’자 모습이 짧은 간격으로 반복해 드러나는 듯하다. 수도리 무섬마을과 회룡포는 내성천이 ‘ㄷ’자 모양으로 강물이 휘감아도는 대표적인 곳이다. 이런 내성천 하곡을 따라 도처에 강언덕, 휘돌아가는 물길로 둘러싸인 반도 모양 또는 병풍 모양 산줄기가 있다. 이를 감싸듯 휘돌아 흐르는 맑고 푸른 강물과 금·은빛 모래밭이 어우러진 경관은 가는 곳마다 절경이다.
내성천의 절경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지형 요소는 모래톱이다. 모래톱이 잘 발달한 한국 하천 가운데서도 내성천은 모래강의 아름다움과 장점을 가장 유감없이 뽐내는 하천이다. 내성천의 모래톱은 영주분지 화강암 풍화층에서 공급된 중·조립질 모래알로 구성돼 있다. 화강암 지대라고 무조건 많은 모래를 공급하는 건 아니다. 열대지역은 화강암이 가장 깊이 풍화되는 곳인데도 이곳에는 점토 등 미립토가 많이 함유돼 있어 많은 모래를 공급할 수 없다. 온대지역인 유럽에서는 화강암이 한국만큼 깊이 풍화되지 않는다. 세계에서 7~10m 정도 깊이까지 모래질 입자 함량이 높은 화강암 풍화층이 발달할 수 있는 곳은 몬순아시아 온대의 대륙과 대양의 점이지대에 위치한 우리나라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성천 유역의 영주분지는 우리나라에서도 사질 성분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화강암 풍화층이 분포하는 곳이다.
유량 조절자이자 수질 정화 필터
산과 산 사이를 휘돌아 굽이치며 흐르는 내성천 하곡의 산수는 모래톱이 없다 해도 절경이다. 여기에 맑고 푸른 강물과 이것이 잘 씻어준 모래톱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모습은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비경이다. 내성천은 하늘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지구촌 전체에 내린 선물이다.
모래톱은 하천 환경에서 유량 변동의 충격을 완화해주는 조절자와 수질 정화 필터 역할을 가장 잘 수행하는 지형 요소다. 동시에 하천과 유역 생태계에 긍정적 역할을 한다.
모래는 이토·점토보다 유량 변동에 민감하고 빨리 이동해 퇴적된다. 모래의 이동·퇴적 성향 때문에 모래톱이 발달한 하곡에서는 강물이 불 때 하상의 모래가 이동해 통수 단면이 넓어지고, 수위가 낮아지면 하상에 다시 모래가 퇴적돼 통수 단면이 좁아진다. 이로 인해 홍수 때는 강물이 빨리 빠져나가고, 갈수기에는 유출에 의한 수분 손실이 적어진다. 모래톱은 하천의 유량 변동을 완화해주는 우수한 자동 유량 조절자 구실을 한다.
갈수기에 모래톱의 역할은 더욱 빛난다. 모래톱의 다공질 공간은 물 흐름을 느리게 하면서 물을 담아두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저장된 물은 모래톱 표면이 수면 위에 노출돼 있어도 대기로 증발되지 않고 잘 보존된다. 모래알 사이의 공극은 지하수가 지표까지 모세관 압력으로 스며 올라올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공극률 35~50%의 다공질 공간에 저장된 물은 하천 수위와 인근 유역의 지하수면이 급격히 낮아지는 것을 막아주면서 생태계와 인간이 갈수기를 이겨나가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갈수기에 설령 강바닥이 드러나도 그 아래에는 많은 물이 저장돼 있다. 이 물은 증발에 의한 수분 손실이 없는 것이다. 내성천에는 두께 20m 정도의 모래톱이 발달한 곳도 있다고 한다. 이곳에는 수심 6~7m의 물이 저장돼 있다.
모래톱은 하천 환경의 ‘콩팥’이다. 다공질 모래층은 이를 통과하는 물의 혼탁물(미립 점토나 유기물)을 걸러주면서 수질 정화 기능을 수행한다. 두꺼운 모래톱의 여과 작용으로 내성천 강물은 어디 가나 맑고 깨끗하다. 심지어 많은 오염물 유입이 우려되는 봉화읍을 관통하는 곳에서도 은어가 많이 서식할 정도의 1급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내성천은 모래톱의 수질 정화력을 마냥 뽐내는 하천이다.
모래톱은 생명의 강을 유지하고 인근 생태계를 풍요롭게 하는 역할을 한다. 모래톱의 공극은 대기와 소통할 수 있는데다 모래톱이 여울을 이루는 곳에서는 많은 산소가 수중에 공급된다. 이로 인해 수중 모래톱에는 미생물이 살 수 있고 어패류가 서식·산란할 수 있다. 갈수기에 강바닥이 드러나도 아래에서는 이들이 생존할 수 있다. 또한 모래톱에 서식하는 갈대·갯버들·억새 등은 내륙의 육지 생태계와 상호 보완하는 수서성·반수서성 군락을 이룬다. 이로 인해 곤충류와 조류의 종이 다양해진다. 내성천 모래톱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고라니·수달의 발자국은 모래강이 풍요로운 생명의 강임을 입증하는 증표이다.
내성천은 한국 하천 지형의 주요 특색이 압축된 모습을 지니고 있다. 내성천은 한국 하천에 잘 발달한 주요 지형 요소를 종합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지형 보고다. 내성천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모래톱이다. 모래톱은 한국 하천에서 다른 나라 하천과 차별성 있게 발달한 지형 요소다. 내성천의 모래톱 발달은 우리나라에서도 으뜸이다.
수많은 동식물의 생명의 강
해맑은 금·은빛 모래톱과 맑은 강물이 산과 산 사이를 수없이 굽이쳐 펼쳐진 내성천 하곡은 가는 곳마다 절경이다. 모래톱과 어우러진 내성천의 비경은 심미적 관점에서 우리나라의 자랑이자 세계자연유산이다. 모래톱은 수위 변동에 따른 하천 유출량 조절 능력, 생태계가 갈수기를 견디는 데 큰 도움을 주는 물 저장 능력, 우수한 수질 정화력, 다양한 생물의 서식 터전 역할 등으로 자연환경과 생태계에 긍정적 역할을 한다.
또한 내성천은 그 자체가 산지하천 지형의 자연박물관이다. 하천의 모래톱 생성과 발달, 이것이 자연환경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에는 내성천만큼 좋은 곳이 없다. 하곡이 ‘ㄷ’자, ‘ㄹ’자 모양으로 산과 산 사이를 굽이쳐 빠져나감은 지형학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다. 내성천은 산지 하곡의 생성 발달을 연구하기에 좋은 사례를 제공한다.
세계적 희소성을 지닌 모래톱과 함께 내성천이 지닌 높은 수준의 심미적 가치, 자연 생태계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 학술적 가치로 볼 때 내성천은 한국의 자랑이자 세계자연유산이다.
글·오경섭
한국교원대 교수·지형학. 한국의 모래하천을 꾸준히 연구해오고 있다. 문화재위원회 천연기념물분과 위원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