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 사이의 신기루
융가이에서는 여기저기 죽음이 일상이다. 주인공 말라로사는 12살 소녀다. 말라로사는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했고, 나중에 다른 사람들의 죽음도 보게 된다. 아버지 살라디노 로블레스는 언젠가 부적이 행운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카드게임에 몰두한다. 로블레스의 친구 트레볼은 싸움꾼이지만 본성은 다정하다. 트레볼은 연애사건을 일으켜 마을을 떠들썩하게 한다. 매장, 싸움, 포커판이 소설에 자주 등장한다. 이 마을에서 누구나 공유하고 잊지 못하는 기억이 있으니 바로 ‘산 그레고리오 학살 사건’이다. 경찰이 자행한 노동자 학살 사건인데 이 소설에서 주요 테마로 다루고 있다.
비극적인 에피소드는 융가이에 깊은 영향을 끼쳤지만, 소설에서는 담담할 정도로 간단히 묘사돼 있다. 융가이 주민은 고단한 삶과 죽음에 익숙하다. 그들의 삶은 단순하게 묘사된다. “산 그레고리오 사건은 일어난 적이 없고, 이 사건은 신기루이고, 학살 자체도 신기루이고, 우리 아버지와 다른 사람의 아버지를 죽인 총알도 신기루이며, 거리를 흥건하게 적신 굵은 핏방울도 신기루라고 믿게 하려는 것 같다. (중략) 학살 사건에서 살아남은 우리도 신기루라고 믿게 하려는 것 같다.” 이 작품은 정치소설이 아니라 잊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사람들은 융가이를 점점 떠나고 거리에도 사람들이 점차 보이지 않는다. 불쌍한 등장인물들의 삶은 광업회사에 달려 있다. “우선 연기가 사라졌다. 주조공장의 연기, 기관차의 연기, 주방의 벽돌 오븐 연기가 사라졌다. 나중에는 남자들이 아내와 반려동물을 데리고 떠났고, 이어서 상인이 떠났다. 경찰 역시 떠났고, 창녀들이 떠났다. 결국 융가이 마을 자체가 사라졌다.”
책을 덮어도 신기루는 지워지지 않는다.
글·소피 디브리 Sophie Divry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번역서로는 <르몽드 세계사 2>(공역·2010)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