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팬데믹, 두 개의 미래

코로나19는 어떻게 경제를 개편하는가

2020-10-30     로베르 부아예 | 경제학자

코로나19 팬데믹이 발발한지 거의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의학적인 해결책을 못 찾고 있다. 팬데믹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들은 오히려 경제·정치·시민사회에 걸쳐 삼중의 위기를 발생시켰다. 그 결과 디지털 산업이 대성공을 거두고, 국가가 자본주의의 관제사 역할을 하는 두 가지 중대한 추세가 강화되고 있다. 이 두 움직임은 상호보완적이다...

 

사회·경제 체제에 복원력이 생기려면 관행, 제도, 조직이 결합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경제학자들은 이 요소들이 수립되는 과정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들이 소련체제 붕괴 이후 러시아에 이어진 오랜 불황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 ‘관심 부족’을 증명한다. 모든 점을 종합해 보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혼수상태에 빠진 세계경제의 회생 여부는 다음 질문의 답에 달렸다. 서로 단절된 구성요소들을 가지고, 어떻게 경제 체제가 제대로 기능하도록 복구할 것인가?

그러나 우리는 역사를 되짚어 보지 않은 채 각자 선호하는 학설이나 이념에 따른 방법만 제시하고 있다. 경영자단체들은 ‘경제회복을 위한 생산세 폐지’를 주장한다. 반면 연구원들과 좌파 운동가들은 재산세의 재도입과 고소득층 대상의 일시적 또는 영구적인 과세제도를 통해 사회정의를 강화할 것을 주장한다. 한편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자’라는 이들도 있다. 생태계 붕괴의 위협을 고려해 이번 봉쇄사태로 가능성이 확인된 저성장을 연장하자는 목소리다.

 

급격한 불확실성 대비할 보건대책에 예산 확대돼야 

지난 두 세기의 유산에 대한 연구가 무엇보다 우선이다. 팬데믹은 세계경제가 2008년 금융위기에서 간신히 벗어난 시기 발생했다. 2008년 위기는 금융분야의 엄격한 관리를 부활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금융화에 지배당한 회사들의 경제활동 촉진을 위해 금리를 제로에 가깝게 유지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투기로 인한 석유와 원자재 가격의 폭등이 되풀이 됐다.(1) 자본소득의 비약적인 증가와 일자리 불안정화가 불평등을 지속적으로 증가시키고 있다. 2020년 초반 정책 담당자들은 바이러스 하나로 이 강력한 동력에 제동이 걸릴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물론 공공보건 전문가들은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과 신종플루(H1N1) 때의 경험에 근거해 세계적인 이동성 증가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전염병의 재확산에 대비해야 한다는 결론을 제시했었다. 아시아는 이들의 의견을 받아들였으나, 미국과 유럽은 반대로 행동했다. 대체로 정부들은 기초적인 전염병 대응 장비에 대한 투자를 줄여서라도 보건비용 증가를 억제하려 애썼다. 감염의 빠른 확산으로 ‘봉쇄’라는 극단적인 대책이 불가피해지자, 큰 혼란이 발생했다. ‘검사-추적-격리’라는 효율적인 전략수단을 사전에 예상하고 준비하지 못한 결과다. 세계의 주요 경제권들 사이에서 프랑스와 독일처럼 지리적으로 인접한 국가들 사이에서 코로나19 사망률이 차이가 나는 이유기도 하다. 

정상적인 경제활동 추구 대신 생명보호를 우선시한 많은 정부의 선택은 의료체계 악화의 원인인 자유화 계획이 앞서 확립한 전통적인 서열을 역전시켰다. 예상치 못한 이와 같은 급격한 변화는 증시의 공항, 유가의 급락, 대출의 정지, 소비의 감소, 환율의 급변, 전통적인 예산 편성 포기 등 사회 전반에 걸친 일련의 조정을 재촉했다. 코로나19 발발로 불시에 허를 찔린 논객들과 관계자들은 눈앞에 닥친 상황을 설명할 단어를 찾지 못했다. 테러와의 전쟁에 이어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선포해야 할까? 전염병 예방을 위해 모든 활동을 중단하는 정치적, 행정적 결정을 ‘경기의 후퇴’로 규정지어야 할까?

비전문가들과 정책 결정자들은 진보한 생물학의 힘으로 코로나19를 곧 제어할 수 있으리라 믿었을 것이다. 바이러스 전문가들의 경고는 무시한 채 말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형적인 바이러스가 아니다. 각각의 바이러스 유형이 개별적인 특성을 지니므로, 확산이 진행될 때 그 특성을 찾아내야만 한다. 당국은 극도의 불확실성 속에서 장기적인 결정들을 내려야 했다. 오늘, 내일의 일도 예상하기 힘든 상황에서 당장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불행히도 너무 늦은 것일까? 이성적인 경제학적 예측은 이제 불가능해졌다. 

그 결과 기계적인 모방이 보편화되고 있다. ‘혼자 옳은 것보다 다 함께 틀리는 게 낫다’라고 믿는 정부들은 서로를 모방하다가, 결국 동일한 팬데믹 확산 모델을 참조하기에 이르렀다. 금융가들은 주가지수를 모방하는 펀드에 투자하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다. 금융자산을 평가할 적절한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선견지명이 없었던 정부들은 전례 없는 대책들로 혁신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또 하나의 심각한 불확실성이 더해진 셈이다. 이런 대책들이 궁극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국의 결정이 서로 충돌하고, 공식적인 발표에 모순이 난무하는 이유가 일부 설명된다. 이처럼 강한 불확실성은 책임소재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앞으로 어떤 전략이 가장 효율적이었는지 밝혀지면, 부적절한 치료로 피해를 입은 시민들은 보건행정 당국을 상대로 또는 심지어 정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까? 가장 취약한 기업들을 도산시키고 가장 약한 자들을 빈곤으로 몰아넣는 위험을 무릅쓰고 경제를 사실상 정지시키는 결정은 기업활동과 노동소득을 지원하는 대책을 동반해야 했다. 프랑스에서는 정부의 막대한 자금지원으로 공공재정 균형 회복에의 노력이 중단됐다. 공공보건의 절대적인 필요성과 공황 직전까지 간 상황의 시급성은 정부가 정책상의 원칙을 재검토 할 수 있는 정당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바이러스와의 전투에서 빠른 승리를 거둘 희망은 사라졌다. 이에 따라 보건대책, 즉 예산상의 노력을 연장해야 한다. 생명에는 가격을 매길 수 없지만, 비용은 수반된다. 모든 산업분야가 파산 직전이고 직업단체들은 더 활발한 경제활동 재개를 요구하고 있다. 경제활동이 2019년 수준을 회복한다는 것은 실상 불가능하다. 바이러스 확산 저지를 위한 조치들이 생산성, 비용, 수익성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려면, 모든 것을 바꿔야”

논리적으로 보면 코로나19로 생겨난 정서가 지속될 경우 이번 팬데믹은 각성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안녕의 추구가 사회의 초석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낙관적인 예측은 금물이다. 코로나19가 과거를 백지화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려면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 특히 한 사회 내부의, 그리고 전 세계적인 권력 분배에는 전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한편으로 보면 코로나19는 이미 많은 행동과 관행을 변화시켰다. 대면 관계의 위험이 소비구조에 각인됐고, 업무의 디지털화로 비물질적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에서 시간적, 지리적 단절이 가능해졌다. 사람들의 국제적인 이동성이 지속적으로 제약받았고, 전략적인 재화의 생산에서 주권을 되찾으려는 노력으로 전 세계의 가치 사슬이 타격받을 것이다. 이로 인해 규제의 방식이 완전히 바뀔 것이고 과거로의 복귀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코로나19는 2010년대 이후 관찰되는 두 가지 추세에 박차를 가했다. 우선 막대한 정보 활용을 기반으로 이미 세계를 정복하고 있는 플랫폼 자본주의의 세력 강화다. 보건위기를 통해 플랫폼 자본주의의 위력은 더욱 강해졌다. 인공지능으로 활성화된 알고리즘과 물류 시스템에 힘입어 전자 상거래 활동을 유지하고, 모든 분야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했다. 재택근무와 재택수업을 촉진시키고, 자율주행 자동차, 공간의 상업적인 활용, 원격의료, 의료 장비 등 신산업 분야에 열린 미래로 향한 길을 탐사했다. 금융가들은 전통적인 경제가 쇠퇴하는 맥락 속에서 장기적인 성공에 희망을 걸고 있다. 빠르게 확산 중인 이 ‘초국적 자본주의’에는 이번 보건위기가 세력확장을 위한 기회가 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초국적 자본주의는 변증법적인 반대급부도 만들어냈다. 경제 개방에서 소외된 이들의 압력으로 경제분야에서도 국민국가(Nation-state)의 특권을 보호하는 국가주도 자본주의가 그것이다. 세계화의 혜택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다양한 형태의 국가자본주의가 생겨났다. 그 범주의 한쪽 극단에 중국이 존재한다. 하지만 가장 보편적인 형태는 ‘인기 영합적인’ 정부가 대표적으로는 이민자들에 맞서 부차적으로는 국제적인 경쟁에 맞서 자국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국가를 이용하는 나라들이다. 헝가리와 러시아가 이 두 번째 범주에 속한다. 

위와 같은 설명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어렵다. 어떻게 이처럼 대조적인 두 체제의 공존이 가능한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상반된 두 체제는 서로의 발전을 장려한다. 다국적 디지털 기업들의 공세는 국내 생산체계의 해체라는 대가를 수반한다. 또한 국가 간 경쟁 속에서 번창하는 집단 및 직종과, 반대로 생활수준이 정체 및 악화되는 패자들 사이에 균열을 만들어 사회 분극화라는 대가를 치르게 한다. 이런 대가들은 국가의 정체성을 수호하고, 스스로 맞서기엔 벅찬 국제적인 경쟁의 거센 바람을 국가가 방어해주기를 요구하게끔 한다.

역설적이게도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이 두 형태의 자본주의를 한층 강화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초국적 정보자본주의는 안정적인 물류 시스템을 구축한 전자상거래와 재택근무를 충분히 발전시켰다. ‘물리적 거리두기’는 초국적 정보자본주의 생산모델의 핵심이다. 또한 봉쇄조치는 단기간에 고객을 유치하고, 새로운 의료, 재택수업, 회의용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기회로 작용했다. 금융가들은 정보와 의료 연구분야를 팬데믹 이후 더욱 번창할 분야로 꼽는다.

이념적 측면에서는 ‘인기 영합적’이라고 평가받는 정부들이 득세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침입한 바이러스가 국경의 통제, 주권의 수호, 국가의 경제 개입 강화를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국가자본주의의 목표는 초국적 자본주의와의 경쟁이 아니라 생활수준을 희생시켜서라도 경제적인 주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정부들은 이른바 ‘GAFAM’(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의 앞 글자 딴 조어)으로 불리는 미국의 5대 IT기업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으로 발길을 돌릴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세계적인 영향력을 이등분 할 수 있다.

현재의 암울한 상황 속에서는 근래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적 분쟁이 다시 두드러질 위험성이 높다. 이미 사라진 일자리 수가 미래의 유망분야에서 새로 창출되는 일자리 수보다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경제 체제는 (특히 노동소득과 경쟁에 대한) 제도적인 뼈대를 구성하고, 축적을 인도하며 자본과 노동의 분쟁을 정리하는 기본적인 타협 위에 세워졌을 때만 지속가능하다. 사회의 분극화는 이런 타협의 실천을 대단히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새로운 타협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아무리 혁신적일지라도 오로지 기술적인 대책만으로 정치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헛된 생각이다. 

 

팬데믹 저지 실패로 대두된 사회 국가 체제의 필요성

기술 또는 경제 결정론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렇다면 ‘포스트 코로나’ 사회를 건설 중인 동력들이 어떻게 특정한 일관성을 가진 미래상을 만들어낼까? 상상할 수 있는 첫 번째 미래는 디지털 기술과 진보한 생물학의 결합에서 유래해 감시가 일반화된 사회로 나아갈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소수의 부유층과 민주주의적 이상을 포기한 무력한 다수의 국민 사이가 분극화된다.

두 번째 미래는 앞서 묘사한 사회의 붕괴에서 유래할 것이다. 국제 관계의 해체와 순전히 의학적인 해결책(치료제, 백신 또는 정반대로 집단 면역 형성)을 활용한 팬데믹 저지 실패는 경제 분야에서까지 민주주의의 후견인 역할을 해줄 사회 국가(Social state)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보건 위협에 맞서 공공보건 유지에 필요한 제도 전반을 강화하고 교육, 생활 방식, 문화를 국민의 안녕에 기여하는 요소로 여기는 국가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국가가 사회 국가 체제로 성공을 경험하면 초국적 상거래, 재정적인 안정성, 공공보건, 생태학적 지속력 등 국내 체제의 번영에 필수적인 세계적인 공공재와 공유재를 중심으로 결국 국제적인 체제가 다시 건설될 가능성이 높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이룩한 진전을 생각해보자. 이 국가들의 사회·민주적 자본주의는 필수 공공 서비스에 대한 투자와 환경의 절대적인 필요성 반영을 장려한다. 

이 두 미래가 실현될지 말지는 역사에 달려 있다. 그리고 코로나19가 그랬듯, 역사는 언제나 우리를 불시에 습격할 준비가 돼 있다. 

 

 

글·로베르 부아예 Robert Boyer
경제학자. 이 기사에 영감을 준 저서『Les Capitalismes à l’épreuve de la pandémie 팬데믹의 시련을 겪고 있는 자본주의』(La Découverte, 2020)의 저자.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Frédéric Lemaire and Dominique Plihon, ‘Le poison des taux d’intérêt négatifs 마이너스 금리의 독’,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