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독자를 광고주에게 팔아넘기다

상점(magasin)과 매거진(magazine)의 모호한 경계

2020-10-30     안소니 갈루조 | 생테티엔 대학교 경영학 강사

두 세기 동안 시장경제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인간, 즉 소비자를 만들어 냈다. 그렇다면 몇 가지 필수품들만 소유하며 자급자족에 의존하던 18세기의 가정들은 어떻게 수천 가지 물건들을 축적하는 창고고 변하게 되었을까?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철저히 소비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해야 했고 여기에 언론 매체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소비의 역사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상품 이미지의 확산과정’이라 할 수 있다. 19세기 이후 대량생산되는 상품의 이미지는 인류의 상상력을 정복하기 시작했다. 신문, 매거진, 카탈로그, 영화 등 새로운 매체의 도입과 함께, 서구인들은 점차 수동적인 관중으로 변해갔다. 이들 매체는 시각적 쾌락을 통해 대중의 소비 욕구를 자극했다. 대중은 매체를 통해 상품에 대해 학습하기 시작했고, 상품은 보편적인 기호이자 공통의 언어가 됐다.

19세기 상인들은 카탈로그 등 종이 매체를 확산시켰으며, 이를 통해 대중은 특정 브랜드나 제품군에 익숙해졌다. 상인들은 이미지를 보급하는 수준을 넘어, 상품의 이미지를 대중의 의식 속에 굳게 박고자 했다. 상인들의 이런 의도는 언론과의 야합을 통해 실현됐다. 언론은 대중의 공통분모를 형성함으로써 대중을 조직할 능력, 일상적 대화의 소재를 좌우할 수도 있는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광고주에게 ‘독자’를 파는 것이 더 큰 수익

신문사 사장은 독자에게 종이신문을 파는 것보다 광고주에게 독자를 파는 것이 더 큰 수익을 얻는 방법임을 알아버렸다. 그 후 일부 언론은 그들의 힘, 시민들과 연대할 능력을 돈과 교환하기 시작했다. 경제적 수익모델, 즉 ‘대량화의 단서’를 발견한 것이다. 19세기 초 유행했던 최고의 정기간행물들은 수천 명 이상의 구독자 덕택에 자리를 잡았다. 1890년대와 1900년대 무렵, 유명세를 떨치던 간행물은 수백만 부 이상 팔려나갔다.

삽화가 들어간 신문은 전 세계의 여러 이미지를 지면에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시간적·공간적 거리감을 없앴다. 현재는 더 이상 ‘바로 여기, 지금 이 순간’으로 국한되지 않았다. 삽화를 통해 대중은 먼 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과 시각을 짐작할 수 있게 됐다. 이 새로운 시선을 통해 대중은 미지의 경험 속에 자신을 투영해보고, 백일몽에 빠져볼 수도 있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이 거주하는 땅을 나누거나, 누군가와 직접 대면하며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들이 ‘읽고 보는 것’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일상적인 대화의 주제가 어떻게 ‘국유화’됐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각종 뉴스, 연속극, 매거진, 카탈로그, 교과서는 각각의 표현과 이미지 등을 ‘동기화’해 집단의식과 집단기억을 창출해냈다. 상점 가판대에 있던 인쇄물은 판매되는 순간 각 가정으로 깊숙이 침투했다. 특히 카탈로그 지면에는 실제 진열된 제품처럼 정교한 삽화가 실려 있다. 사람들은 집에서 카탈로그를 펼쳐보며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무료 쇼핑을 즐길 수 있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물건을 사러 가지 않는다. 눈앞에 있는 상품의 이미지를 소비할 뿐이다. 

독자가 상품의 이미지만으로도 만족을 느낄 수 있다면, 이미지 자체가 상품이 될 수 있다. 동시에 상품의 매개체도 될 수 있다. 이런 이미지의 지중적 특성은 ‘매거진’이라는 신조어의 등장으로 완성됐다. 매거진(magazine)은 19세기 말에 상점(magasin)에서 파생된 용어로, 원래 상품의 창고를 의미했다.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다. 실상 매거진은 집 안에 입점된 상점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상품이 창고나 상점에서 물리적으로 이동하는 것은, 매거진 지면의 상품 이미지가 시각을 통해 정신으로 이동하는 것과 일치한다. 매거진은 전적으로 소비를 유도하기 위해 기획된 최초의 대중매체였다.

 

광고, 언론사 생존의 필수 요소로 기사에 영향 미쳐  

이런 유형의 정기간행물은 19세기 말 미국에서 처음 등장하고 대중화됐다. 1890~1905년 월간 정기간행물의 호당 발행부수는 1,800만 부에서 6,400만 부로 대폭 증가했다.(1) 여러 방면에서 선구적인 매거진 <레이디스 홈 저널(Ladies’ Home Journal)>의 경우 1884년 10만 부를 발행했고, 20년 후인 1904년 100만 부를 발행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에 이어 여러 서구 국가들은 <레이디스 홈 저널>의 이런 성공에 자극을 받아, 여성용 매거진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 프랑스에서는 최초의 패션 정기간행물로 꼽히는 <보트르 보테(Votre Beauté)>와 <마리 끌레르(Marie-Claire)>가 등장했다. 고객이 백화점 코너를 둘러보듯, 독자들은 지면 구석구석을 배회했다. 

<레이디스 홈 저널>의 편집장인 에드워드 복은 “성공적인 매거진은 장사가 잘 되는 상점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말했다. “소비자의 관심을 끌고 소비자의 선택을 받으려면, 상점 주인은 신상품을 비롯해 다양한 제품을 알차게 전시해야지요. 매거진도 마찬가지입니다.”(2) 여러 가지 상품이 진열대에 놓이듯, 여러 가지 정기간행물이 가판대에 진열된다. 간행물의 애독자들은 쇼윈도를 바라보듯, 다채롭고 매혹적인 표지를 보고 구매욕을 느낀다. 새로운 패션과 아이템에 대한 정보가 담긴 최신호가 출시되는 순간, 이전 호는 옛것이 돼버린다. 

1954년 <마리 끌레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매월 변화하는, 끊임없는 인생 그 자체가 우리 자신의 뉴스다. 새로운 모자를 쓰고, 유행하는 꽃다발을 들고, 과일 그릇을 바꾸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다.”(3) 소비자 및 독자들은 매거진이 제시하는 시각에 익숙해지고, 출판물의 모양, 색상 및 레이아웃의 변화에 ​​민감해진다. 그뿐 아니라, 예전에 구매한 제품이 노후화됐다고 탄식하며, 신제품을 바로 구매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19세기 말부터 광고수익은 언론사 생존을 위한 필수요소가 됐다. 사실 언론은 독자를 광고주에게 판매한 셈이다. 매거진 지면에는 광고주를 만족시키는 내용, 즉 광고하는 상품의 가치와 일치하는 콘텐츠가 실려야 했다. 청결과 위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기사 옆에 비누 광고가 배치되고, 패션쇼 탐방 기사 옆에는 주요 기성복 브랜드 광고가 배치되곤 한다. 매거진에 실린 기사는 광고의 설득력과 상징성을 최대화시키기 위해 지능적으로 배치된다. 매거진의 수익성과 지속 가능성은 이런 소위 ‘수용력’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한 매거진의 ‘수용력’이라고 하는 것은 상업적 이익에 거스르는 콘텐츠가 지면에 실리면 급격히 감소한다. 이런 광고 위주의 편집은 이미 오랫동안 고착된 나머지, 때로는 지나칠 만큼 명시적인 형식을 취한다. 페미니스트 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1990년에 밝혀낸 사실은 그 단적인 예다. 생활용품 제조업체 프록터앤드갬블(The Procter & Gamble Company, 약칭 P&G)은 미국 매거진 가운데 종교를 비하하거나 섹스, 마약, 총기 규제, 낙태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다루는 매거진에 대해서는 광고를 게재하지 않았다.(4)

프로그램 시청 중간에 불쑥 끼어드는 텔레비전 광고와 달리, 매거진 광고는 매체의 시각적 연속성을 통해 독자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간다. 매거진 기사와 광고는 독자들이 자신을 투영할 만한, 백일몽에 빠질 법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오늘날 ‘글쓰기를 통한 광고(publirédactionel)’ 또는 ‘네이티브 광고’(해당 웹사이트에 맞게 고유한 방식으로 기획 및 제작된 광고-역주)라고 부르는 것은 이미 약 150년 전에 등장했다. 1880년대에 프랑스 백화점 르 봉 마르쉐는 <일뤼스트라시옹(L’ Illustration)>에 홍보 기사를 게재했다.(5) 

나아가 기사인지, 광고인지 혼란을 가중하는 교활한 방법이 1890년부터 1930년까지 유행했다. 언론사와 아나운서를 위해 삽화를 제작하던 아티스트들을 매거진 편집에 투입시켜, 시각적 스타일을 공유하는 방식이었다. 한편, 매거진의 표지 디자인을 멋지게 한 인물이 광고업계에 채용되기도 했다. 1902년, <레이디스 홈 저널>의 출판사가 독자들에게 올해 최고의 기사 삽화를 뽑아달라는 여론 조사를 실시했는데 가장 큰 인기를 끈 ‘기사 삽화’는 뜻밖에도 광고 이미지였다.(6) 

 

매거진 속 ‘우아한 세계’

하지만 구매욕을 자극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광고주가 출판물을 직접 편집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초기 여성 매거진 중 <보트르 보테>는 로레알(L’Oréal)사의 창립자이자 대표인 유진 슈엘러가 화장품 소비를 촉진하려는 목적으로 발간한 것이다. 1920년대에 미용사를 대상으로 한 정기간행물의 보조적 역할만 하던 이 매거진은 백발에 대한 기사를 게재했다. 이 기사에서는 백발을 노화 현상과 동일시하며 불쾌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매거진에 이 기사가 연속으로 실리면 슬며시 염색약 광고가 등장했다.

매거진은 유행, 관행 등을 만들어내는 ‘형상화’를 수행한다. 19세기 후반, 시골과 소도시에 사는 여성들은, 매거진을 통해 도시 중산층 여성의 여유로운 생활을 관찰하고, 상상 속에서 쇼핑을 즐길 수 있었다. 이런 형상화를 통해 쇼핑의 유행과 관행이 만들어진다. 대부분의 독자가 경제적으로 쇼핑을 할 여건을 갖추기도 전에 말이다. 매거진의 독자에게 낯설고(새롭고) 비싼(선망을 일으키는) 이미지를 담아내야만 존재할 수 있다. 독자들은 매거진을 통해 상품은 물론 어휘, 관심사 등을 습득한다. 

일례로 20세기 초 매거진에서는 ‘소독제’, ‘살균제’, ‘미생물’, ‘표피’ 등의 용어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위생용품과 화장품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서였다. 독자들은 매주 매거진을 한쪽 한쪽 넘기면서 현실도피적 상상 속에 빠진다. 문학 교수 리차드 오흐만은 앞서 언급한 <레이디스 홈 저널>을 비롯해 당시 미국의 주요 매거진 <먼시(Munsey)>,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 <맥클루어(McClure)>의 내용을 분석한 결과, 빈곤·노동·인종·이민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가 지면에서 배제돼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7) 

매거진 속 세계는 물리적 단절이나 이념적 갈등이 없는 독특한 공간이다. 역사가 롤랑 마르샹은 매거진의 이런 특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만약 역사가가 매거진에 등장하는 사회적 이미지만 살펴본다면 당시 미국인이 모두 부를 누리며 우아하게 살았을 것이라고 착각할지도 모른다.” 매거진이 퍼뜨리는 ‘사회적 이미지’ 속에서 노동계급은 부차적이고 기능적인 역할만을 담당한다. “이 그림이 묘사하는 세상 속에서 운전사, 하녀, 식료품상은 고용인을 존경하며 기쁜 마음으로 그를 섬긴다.”(8) 

졸부의 경박함에 대한 비난은 이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다. 대신 탁월한 차림새와 매너 등 과거 귀족의 전유물을 갖춘 상류층에 찬사를 보낸다. 미국의 광고 속에서 가사 도우미가 빠짐없이 등장했다. 심지어 1920~1930년대처럼 미국 상류층 가정에서도 가사 도우미를 고용하기 어려웠던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 마르샹은 이 시대의 광고를 분석한 결과 광고 속에 등장한 가사 도우미의 약 85%가 ‘안주인과 비슷한, 날씬한 체형의 젊은 백인 여성’으로 그려졌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당시 현실은 달랐다. 당시 미국의 가사 도우미 중 대부분은 중년 이상의 흑인 여성이었다.

매거진의 중요한 기능은 또 있다. 사회의 상업화를 막으려는 움직임을 파괴하는 것이다. 19세기 말 미국 매거진의 연재소설들은 시장과 공존하며, 소비를 지양하는 사회규범을 공격했다. 일례로 1890년대에 여성이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자, 보수적인 이들은 자전거를 타는 자세가 여성의 자위행위를 부추기고, 가정의 평화를 위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인식을 잠재우려면 광고만으로는 부족했기에 매거진은 1890년대 내내 자전거가 등장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양산해냈다. 자전거의 이미지를 정상화하는 작업에 골몰한 것이다.(9) 

이 ‘자전거 미담’ 속에서 선량한 청년들은 자전거를 타며 반복적인 일상에서 벗어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결혼해서 행복한 가족을 이룬다. 특정 자전거 브랜드를 찬양하는 광고에는 허구가 더해졌다. 이 ‘브랜드 스토리’는 자전거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일소하고, 집단적 상상 속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직조했다. 그러나 자전거가 상품성을 충분히 확보한 시점인 1990년대에 이르자, 자전거 이야기는 매거진에서 점차 퇴장하기 시작했다. 

 

 

글·안소니 갈루조 Anthony Galluzzo
생테티엔 대학교 경영학 강사. 『La Fabrique du consommateur. Une histoire de la société marchande 소비자 공장: 상품 사회의 역사』(La Découverte, 파리, 2020년)의 저자.

번역·이근혁
번역위원 


(1) Mary Ellen Waller-Zuckerman, ‘Old Homes, in a City of Perpetual Change : Women’s Magazines, 1890-1916’, <The Business History Review>, vol. 63, n° 4,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9년 및 “Marketing the Women’s Journals, 1873-1900”, <Business and Economic History>, vol. 18,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9년.
(2) Edward Bok, The Americanization of Edward Bok. The Autobiography of a Dutch Boy Fifty Years After, Charles Scribner’s sons, 뉴욕, 1920년.
(3) <Marie-Claire>, n° 1, 1954, p. 40-41. 다음 저서에서 재인용. Alexie Geers, Le Sourire et le tablier. La construction médiatique du féminin dans « Marie-Claire » de 1937 à nos jours, Éditions de l’EHESS, 파리, 2016년. 
(4) Gloria Steinem, ‘Sex, lies and advertising’, <Ms. magazine>, 알링턴(버니지아 주), 1990년 7~8월.
(5) Michael B. Miller, Au Bon Marché, 1869-1920. Le consommateur apprivoisé, Armand Colin, 파리, 1987년.
(6) Carolyn L. Kitsch, The Girl on the Magazine Cover. The Origins of Visual Stereotypes in American Mass Media, The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채플힐, 2001년.
(7) Richard Ohmann, Selling Culture. Magazines, Markets and Class at the Turn of the Century, Verso, 런던/뉴욕, 1996년.
(8) Roland Marchand, Advertising the American Dream. Making Way for Modernity, 1920-1940,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버클리, 1985년.
(9) Ellen Gruber Garvey, The Adman in the Parlor. Magazines and the Gendering of Consumer Culture, 1880s to 1910s, Palgrave Macmillan, 뉴욕, 199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