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이끄는 ‘5G 지정학’ 전쟁

2020-10-30     예브게니 모로조프 | 언론인

5세대 이동통신망인 5G 시대를 앞두고, 환경과 보건을 고려하지 않은 기술발전에 대한 의문이 쏟아진다. 또한 그 이면을 보면, 5G라는 중대 사안을 둔 미국과 중국의 격렬한 대립이라는 지정학적 문제이기도 하다.

 

화웨이가 소규모 전화교환기 제조업체에 지나지 않던 1994년 무렵, 화웨이 창립자 런정페이는 당시 중국 국가주석이던 장쩌민과 교류했다. 대중을 위한 전자기기 산업으로 전향하기 전, 군사 기술자로도 일했던 런정페이는 애국심에 호소하기로 했다. “이동통신 기술은 국가안보와 직결된다. 이 분야에서 독자적인 설비를 갖추지 못한 국가는 군대가 없는 국가나 마찬가지다.”(1) 다른 국가들이 차례로 이 지혜로운 가르침을 받아들였고, 그 선두에 미국이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오늘날 화웨이가 가진 독자적인 5G 기술을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는 국가 또한 이들이다. 

 

모택동주의 가치를 숭배했던 화웨이

화웨이는 임직원이 지분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다. 이 특이한 지분구조를 바탕으로 경영진도 돌아가면서 맡는다. 화웨이의 주요 특징은 공공조달 사업을 런정페이가 평하듯 “탐욕스럽다”며 경시하는 경향이다. 모택동주의의 가치를 숭배하는 화웨이는 ‘제국주의’ 외국회사에 대한 중국의 의존성을 없애고자 국가혁신에 전념한다. 화웨이 그룹은 이제 세계 170개국의 이동통신망을 관리하며, 임직원은 19만 4,000여 명에 달한다. 2009년부터 산업전선과 다양한 국제표준화 기관에서 활약하며 5G기술 개발의 중심에 자리했다. 2020년 여름에는 삼성을 밀치고 세계 스마트폰 판매량 1위 자리에 올랐다. 가장 혁신적인 중국기업 중 하나로 꼽히는 화웨이의 자회사 하이실리콘(HiSilicon)이 생산하는 모바일 분야의 핵심 반도체칩 키린(Kirin)은 시중에서 가장 진보한 인공지능기술 적용에 추진력을 실어준다.

이같은 성공 뒤에는 연구개발에 대한 한결같은 노력이 있었다. 화웨이는 연수익의 10%를 연구개발에 투자하는데 2019년 이 금액은 150억 달러에 육박했고, 2020년에는 2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보다 높은 금액이다. 비교해보면, 독일 자동차산업 전체를 통틀어 2018년 연구개발비가 약 300억 달러였다. 금액 규모를 떠나, 화웨이는 중국사회에서 하나의 아이콘이 됐다. 완전히 규격화된 기본 아이템에서 출발한 화웨이가 이제는 애플, 삼성과 어깨를 겨루고 있다. 화웨이의 행보는 중국 정부가 기술 분야에 품은 열망을 보여준다. 오랫동안 중국은 외국제품의 조립공장 역할만을 맡으며 격리돼 있었다. 애플 제품 뒷면에 적힌 “캘리포니아에서 디자인, 중국에서 조립”이라는 굴욕적인 문구가 이를 상기시킨다. 하지만 이제 화웨이가 “중국에서 디자인, 베트남에서 조립”이라는 슬로건을 보여주며, 새로운 시대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른 중국 기업들이 화웨이의 선례를 따른다면, 세계 경제에서 미국이 행사하는 지배력은 심각하게 흔들릴 수 있다. 과거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던 독일, 일본, 아시아의 다섯 호랑이(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같은 국가들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성장과정은 미국 정부의 원격조종 영역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21세기 초, 미국 경제가 지쳐있는 동안 중국은 오롯이 스스로의 힘으로 정상에 올라 지정학적 목표를 추구했다. 미국이 이를 좌시할 리 없었다.

5G를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단지 전화표준에 대한 중국의 지배력에 국한되지 않는다. 5G 기술은 더 많은 기기가 통신망에, 그리고 서로 다른 기기들끼리 더 신속하게 접속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데이터 처리 작업과 데이터가 생산되는 곳, 즉 최종 사용자와의 거리를 좁혀준다. 그러나 사람들은 실제로 5G를 산업에 적용하려면 많은 장애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대다수 사용자에게 5G가 주는 효과는 다운로드 속도 향상, 더 나아가도 오래전 발표된 사물 인터넷 시대의 도래 정도에 그칠 것이다. 

물론 통신망과 설비를 업그레이드하려면 막대한 투자가 불가피하고, 시장을 점유하려는 싸움은 격렬하다. 하지만 화웨이의 5G 기술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그 이면에는 경제, 지정학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를 둘러싸고 중국이 미국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거대한 대립이 숨어있다. 5G 문제를 두고 미국이 이토록 흥분하는 것은 자국에 독보적인 기업이 없기 때문이다. 유럽은 노키아와 에릭슨이 있기에 한층 차분한 모습을 보인다.

통신장비 제조사 중흥통신(ZTE)부터 위챗과 틱톡에 이르기까지 중국발 첨단기술에 대한 미국 정부의 공격적인 태도는 다양한 중국기업을 겨냥하고 있다. 그러나 주된 표적은 명백히 화웨이다. 미국의 관점에서 봤을 때 화웨이는 미국이 끊임없이 비난하고 벌하려는 홍콩, 신장, 남중국해에서 중죄를 저지른 양심 없는 중국이라는 표상의 정수이기 때문이다.(2) 트럼프 대통령은 화웨이를 “간첩(The Spyway)”이라는 별명으로 즐겨 불렀다. 

미국 정부에 화웨이는 ‘비겁함’을 상징한다. 지적재산권을 침해하고 협력사에 횡포를 부리며, 중국 정부의 후한 지원을 등에 업고 시장에 형성된 가격을 폭락시켜 경쟁자들을 압도한다. 화웨이가 남반구 국가에 이동통신망을 구축하면서 중국에 대한 깊은 의존관계가 형성됐다. 이는 특히 중국의 ‘신 비단길’ 프로젝트에서 사용된 방식으로 인프라 산업을 통해 과도한 채무부담을 주는 중국 정부의 ‘부채 함정외교’와 궤를 같이한다. 더 심각한 것은 화웨이가 자사 제품에 ‘백도어’, 즉 몰래 정보를 빼돌리는 장치를 설치해 중국 정부의 감시활동을 확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상상력이 풍부한 일부 여론에 의하면, 화웨이가 5G에 연결된 냉장고와 토스터 같은 기기를 이용해 우리에게 해를 끼칠 날이 머지않았다. 

 

영국, 화웨이에 통신망 장비 철수 요구 

이 같은 비난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2017년 중국 정부가 공포한 정보법이 종종 인용된다. 이 법에 의하면, 기업과 시민은 당국의 협조 요청 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또 다른 우려는, 민간과 군의 융합이 점점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첨단기술 분야와 군대 사이의 간극을 메꾸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미국의 선례에서 영감을 얻었다.(3) 화웨이 측은 간첩행위 혐의를 단호히 부인하며, 중국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명예와 신용을 실추시키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언제나 그렇듯 트럼프 정부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아주 빈약하거나 전혀 없다시피 하다. 이런 사실도 미국을 막지는 못했다. 미국은 영국, 프랑스, 동유럽 국가 등 우방국들을 이 ‘성전’에 참여시켰다. 해당 국가의 5G망에서 화웨이를 추방하도록 ‘부추겼다’. 각국의 대사관을 통해 미국이 행사하는 강력한 경제적, 외교적 압력을 고려할 때, ‘부추겼다’는 표현은 약한 감이 있다. 전 대륙에서 같은 일이 일어났다.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의 강력한 로비 이후 칠레 정부는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해저 케이블 설치 사업에서 화웨이를 제외할 방안을 강구해야 했다. 화웨이의 활동이 활발한 인도에서는 중국-인도 국경지대에서 격렬한 분쟁이 벌어진 직후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화웨이를 중국 정부에 대한 보복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어떤 금지조치도 없었지만, 인도 정부는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라는 자국 회사에 사업을 맡기려 하는 듯하다.

지난 7월, 브렉시트로 혼란한 와중에도 영국 정부는 승부수를 던졌다. 2027년까지 화웨이 장비 일체를 통신망에서 뺄 것을 자국 통신사에 요구한 것이다. 런던에 지사가 있을 만큼 영국은 화웨이 그룹의 유럽진출 전략의 요충지였기에, 이 결정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화웨이가 2010년 영국 정보기관과 제휴해 설립한 화웨이 사이버 보안 평가 센터 (Huawei Cyber Security Evaluation Centre, HCSEC)가 자리한 곳도 영국이었다. 센터는 통신망에서 찾아낸 보안 취약점을 분석 및 개선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의 위협과 중국에 대한 반감이 만연한 보수당의 비난에 맞서며 화웨이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란 어려웠다. 

한편 유럽연합은 5G에 대한 공동정책을 수립하지 못했다. 해당 안건은 국가안보의 관점에서 논의됐고, 국가안보는 각 가입국이 고유의 주권을 행사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산업정책과 국제관계의 관점으로 문제를 파악하는 편이 더 적절했을 것이다. 유럽연합의 넉넉한 지원금을 바탕으로 연구개발을 향한 화웨이의 노력에 필적하는 노키아와 에릭슨의 뒤를 이을 유럽의 거물 5G 기업이 탄생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실제 현실의 흐름도 이와 비슷할 것이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비록 프랑스와 독일의 압력을 받는 유럽위원회가 최근 오랫동안 집착해온 경쟁력 중심 정책을 놓으려는 의사를 보였지만 말이다.

유럽 강대국 중에서 유일하게 아직도 5G 정책을 발표하지 않은 독일은 2020년 가을까지 결정하기로 약속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문제에 관해 의견이 분분하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속한 여당에서조차 의견은 엇갈린다. 베를린 주재 미국 외교관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화웨이에 관대한 조치를 내릴 경우 독일이 치러야 할 대가를 상기시킨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하는 대로 화웨이가 “은밀하게 중국식 공산주의를 실현시키고 있다”라면, 화웨이 현상을 둘러싼 다른 이들의 글도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경제학자 윤 웬의 생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화웨이 현직 회장 런정페이의 자신만만한 태도, 모택동주의적 격언과 국수주의 성향을 보면, 그는 미묘하게 얽혀 있는 국제정세에 정통한 것처럼 보인다. 화웨이는 런정페이의 지휘 아래 척박한 시장을 개척했다. 

1990년대부터 중국 시골에, 이후 이윤을 낼 가능성이 낮은 남반구 개발도상국에 진출했다. 중국이 아프리카와 남미 대륙에 손을 뻗어 나가면서, 화웨이와 중흥통신(ZTE)이 그 뒤를 따라가 통신망을 구축했다. 이 같은 공사는 대규모 인프라 구축사업의 비용 마련을 돕고자 중국이 지역 정부에 제공한 차관의 간접혜택을 봤다. 윤 웬의 주장에 의하면,(4) 화웨이의 경우 이런 부채 외교가 부정적인 결과만을 초래한 것은 아니었다. 진출한 국가에서 화웨이가 창출한 수익은 다른 시장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수수한 편이었고, ‘제3세계 친화적 개방주의’라는 모택동 사상에 입각해 현장에서 실력을 갖춘 엔지니어와 기술자를 다수 양성했다. 

트럼프나 오바마가 집권하기 훨씬 전부터 미국은 화웨이에 위험부담이 높은 시장이었다. 미국 경쟁사인 시스코는 2003년 특허권 침해로 화웨이를 고발했다.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화웨이가 미국 기업에 출자하거나 경영권을 획득하는 것이 전면금지되고 난 후에는 고객을 유치하거나 신제품을 출시할 능력을 상실할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끊임없이 반복되는 고발의 내용은 화웨이가 중국 군대와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2011년 <월 스트리트 저널>지는 10월 27일 기사에서, 화웨이가 당시 미국이 이란에 경제제재 조처를 하고 있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이란과 교역했다고 밝혀 심각성이 가중됐다. 결국 화웨이는 2013년부터 미국 시장에서 철수한다고 발표했고, 이제 미국에는 화웨이를 위한 로비스트 군단만이 남았다.

 

“화웨이는 미국에 눈엣가시, 적대국 염탐을 방해”

이쯤 되면 무려 17년부터 논란이 불거졌는데 2018년 말에 와서야 반 화웨이 운동이 벌어진 이유가 무엇인지 합리적인 의문이 생긴다. 2018년 미국은 캐나다에서 경유 중이던 런정페이의 딸이자 화웨이 최고재무책임자인 멍완저우의 체포를 요청했다. 그때부터 미국은 더 강력한 제재를 가하며 본격적으로 화웨이 그룹을 무너뜨릴 계획에 착수했다. 트럼프는 국민연금기금에 중국 기업에 투자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연방정부와 일하는 협력업체는 화웨이와 이해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야만 한다.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된 중국 기업은 회계장부를 공개해야 하며, 중국 정부와 연락을 취할 때마다 신고해야 한다. 이 같은 미국의 공격성을 설명하려면 경제, 지정학 등 여러 측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지정학적 측면을 보자면 2013년 에드워드 스노우든이 미국 국가안보국(National Security Agency, NSA)이 한 활동에 대해 폭로한 내용은 윤 웬이 말하듯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져준다. 2010년 ‘샷자이언트 (Shotgiant)’라는 작전명 아래 국가안보국은 두 가지 목적을 이루려 화웨이 서버를 해킹했다. 첫째는 중국군과의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었다. 하지만 언론에 유출된 문서가 없었다는 점으로 짐작하자면 이렇다 할 수확이 없었음이 틀림없다. 두 번째 목적은 화웨이 설비의 보안 취약점을 찾아내 미 정보기관이 이란이나 파키스탄 같은 ‘주 고객층’을 정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스노우든이 폭로한 문서를 보면 국가안보국은 그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우리의 타깃 대다수가 화웨이 장비를 이용해 통신한다. 이 제품들을 면밀히 파악해 화웨이 통신망에 대한 접근 가능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궈핑 화웨이 순환 회장은 의미심장한 코멘트를 남겼다. “(화웨이는) 미국에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적국을 염탐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사실 화웨이가 5G 경쟁에서 이기면, 정보 분야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지배력은 크게 흔들릴 것이다. 화웨이가 다른 유럽 경쟁사들처럼 미국 정보국에 비공식적으로 협조해줄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경제적 관점에서 봤을 때 문제의 핵심은 5G 기술 보급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만이 아니다. 그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지적재산권도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5G는 하나의 새로운 표준이다. 5G를 이용하려는 통신망이나 기기는 5G 표준에 맞게 기술 사양을 맞춰야 한다. 

특허기술의 사용도 불가피하다. 와이파이와 프로세서, 터치스크린을 탑재한 현대 스마트폰은 최소 25만 개(2015년에 집계된 수치로, 이제 특허 개수는 더 많아졌다) 이상 특허의 보호를 받고 있다. 2013년의 추정치에 의하면 기술 표준을 맞추는데 필수적으로 필요한 특허(Standard-essential Patents, SEP)는 13만 개로, 이제 여기에 5G 표준 기술에 대한 특허도 추가된다.

 

표준필수특허 주요 보유기업이 몰고 온 파장

휴대전화 제조 분야에서 표준필수특허를 보유한 기업의 지리적 분포와 그 수는 미국과 유럽 서구권에서 줄어들고 아시아국가에서 늘어났다.(5) 특허기술을 사용하려면 사용료를 내야 한다. 2G 기술의 승자이자 중요한 표준을 여럿 보유한 미국 기업 퀄컴은 매출의 2/3를 중국, 주로 화웨이로부터 거둔다. 2001년부터 화웨이 혼자서 사용료로 지불한 금액만 60억 달러에 육박하는데 이 금액의 80%가 미국 기업에 갔다. 이처럼 지나치게 큰 금액에 결국 중국 정부가 움직였다. 2015년 중국 정부는 우세한 위치를 남용한 혐의로 퀄컴에 9억 7,500만 달러라는 벌금을 부과했다. 그로부터 3년 후에는 네덜란드 반도체 제조사 NXP를 인수하려던 퀄컴의 시도를 방해했다. 자국 기업의 행동반경이 더욱 좁아질 것이라는 주장을 하며 국가승인을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화웨이는 이제 5G 관련 표준필수특허 최다 보유기업 중 하나가 됐다. 국제 지적재산권 체계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지만 말이다. 궈핑 회장은 특허 사용료를 “대로변에 자리 잡고 통행세를 내라는 깡패”에 비유하며 ‘국제 클럽’에 관련 규정을 모두에게 더 공정하고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수정해달라고 요청했다. 화웨이가 보유한 특허의 ‘필수적’이라는 특성은 특히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주제다. 한 분석가가 강조했듯 스마트폰을 비행기에 비유한다면 노키아와 에릭슨이 가진 특허는 모터와 항해시스템에 해당하나, 화웨이의 특허는 좌석과 기내식 카트 정도만을 커버할 뿐이다. 하지만 특허의 힘이 얼마가 됐든 간에 화웨이는 의존적인 상황에서 벗어났다.

중국이 특허 임대국이 아닌 대여국이 되려는 것은 경제적으로 이해가 가는 일이다. 이렇게 중국은 미국과 현격히 벌어지던 순수익의 간극을 메웠다. 1998년에는 미국 기업의 특허사용료 수익이 중국 기업 대비 26.8배에 달했으나, 2019년 1.7배로 줄었다.(6) 중국이 국제 표준화 기관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자연히 커졌다.(7) 국제전기기술위원회(International Electrotechnical Commission)와 국제전기통신연합(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s Union)을 이끄는 수장들은 중국인이고, 중국인 최초로 국제표준화기구(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의 회장직을 맡은 인물은 2018년에 3년의 임기를 마쳤다.

UN에서 중국은 안면인식 기술의 표준 정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국제표준화기구에서는 알리바바가 특히 선호하는 분야인 ‘스마트 시티’에 비상한 관심을 보여 일본을 긴장시켰다.(8) 2020년 거창하게 시작된 ‘차이나 스탠다드 2035’라는 야심찬 프로그램을 통해 중국은 첨단기술 분야 기업들과 정부기관 사이의 협력을 증진해 자국에 유리한 국제표준을 고안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미국은 어떤 행동을 취할까? 현재의 반중국 운동이 1980년대 미국이 일본 대기업을 이기려던 때와 유사하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1986년, 레이건 정부 각료들과 기업인들은 후지쯔가 미국의 전설적인 반도체 제조사인 페어차일드 컴퓨팅(Fairchild Computing)을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을 때 목이 졸리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업계의 한 경영인이 당시의 느낌을 요약했다. “우리는 일본과 전쟁 중이다. 무기와 총알이 난무하는 전투가 아닌, 기술과 생산성, 품질이 무기가 되는 싸움이다.”(<로스 앤젤레스 타임스>, 1987년 11월 30일 기사 참조) 이미 몇 년 전부터 백악관에서 주도하는 경제제재가 또 다른 일본 거물 기업 도시바의 발목을 잡는 데 성공했다. 도시바 컴퓨터가 미국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우리는 전쟁 중이다’라는 슬로건은 그때부터 바뀌지 않았다. 미·일 무역마찰은 평화로운 결말을 맞았다. 중국의 많은 이들은 지속 가능한 협약을 체결해 몇 가지를 양보하면 이번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갈 것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하지만 점점 예측 불가능한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다. 트럼프 정부 내에선 이 문제에 관해 세 가지 의견이 엇갈린다. 첫째는 대통령 본인의 의견이다. 화웨이와 관련자들을 향한 공세는 중국 정부로부터 무역 이권을 얻어내려는 더 큰 그림을 노린 전략이라고 생각할 만한 여지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이 정말로 5G에 대한 중국의 패권을 저지하려는 목적이었다면 국영기업인 중흥통신이 화웨이보다 나은 사냥감이고 슬로건에 더 어울리는 표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중흥통신은 10억 달러의 벌금을 제외하면 별다른 피해 없이 화를 면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어서 화웨이는 무역협상을 위한 교환 조건이다. 

두 번째는 대통령의 무역 분야 고문, 피터 나바로와 미국 무역 대표 로버트 라이시저가 이끄는 강경파의 의견이다. 중국이 패권을 잡는 상황을 절대로 좌시할 수 없는 이들로 주저 없이 지금보다 더 세게 화웨이를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경제제재에 포함되는 중국 기업의 폭을 넓히는 안건을 낸 것도 바로 그들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유파는 평화주의를 표방하는 군산 복합체다. 중국은 수익성이 높은 시장이기 때문이다. 2019년 화웨이 혼자서만 190억 달러 상당의 전자장비를 미국 제조사로부터 사들였다. 미국산업이 중국과 거래하지 못하게 되자 외국 경쟁사들이 덕을 보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난 1월에 체결된 미·중 무역협약이 실행될 것이라는 희망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한 미국 재무부 장관 스티븐 므누신을 포함한 온건파는 나바로와 라이시저의 반중국 감정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러나 국제정세가 악화되고, 트럼프가 중국의 책임이라고 규탄하는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온건파는 약해졌다. 화웨이 또한 일어날 일 없는 협상의 교환조건으로 남을 위험에 처했다. 그사이 보복 조치는 점점 늘어났다. 지난 8월 초, 폼페이오는 클린 네트워크 프로그램을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중국 공산당의 “해로운 영향”이 미치는 인터넷을 정화한다는 목적인 프로그램이었다. 며칠 후 미국은 화웨이가 미국 기업이 조금이라도 연루된 기술을 사용할 수 없도록 가능성을 전면 차단했다. 화웨이가 제품을 계속 생산할 방안을 찾으려면 상당히 골머리를 앓아야 할 것이다. 연구개발에 투자한 막대한 금액과 수많은 엔지니어, 화웨이식 혁신에 대한 예찬에도 불구하고, 화웨이가 생산하지 못하고 중국에서 구할 수도 없는 부품들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감시에 맞서는 고유 국제통신망 

반도체 칩 키린 시리즈의 최첨단 모델이 바로 그런 경우다. 제품은 중국에서 고안됐지만, 외국에서 생산된다. 인공지능 기능성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반도체 칩이다. 약 15년 전부터 실리콘 밸리와 경쟁하던 중국은 이 분야의 여러 기술, 특히 안면인식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지금까지 중국의 주요 강점은 자동학습 알고리즘 훈련에 필요한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마련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IT 대기업뿐만 아니라 저임금으로 고용된 학생들도 데이터 수집에 참여했다.) 그런데 이 모델은 대만이나 미국산 고성능 장비가 문제없이 배달되던 과거의 중국에서 탄생했다. 공급망이 무너진 오늘날 중국 인공지능 분야 전체도 위험에 빠졌다.(9) 화웨이에 선전포고하면서 미국은 5G 분야에서 제동을 걸 뿐 아니라, 자회사 하이실리콘을 통해 자신만의 반도체를 보유하는 것도 방해하려 들고 있다. 

산업정책에서도 미국의 공세는 이어진다. 국회에서는 정해진 기한 내에 화웨이와 경쟁사의 설비를 대체할 수 있도록 개방형 구조 통신망을 구축하는데 필요한 기금을 비축하기로 했다. 동시에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미국을 위한 반도체칩’이라는 법에 따라 미국 반도체 제조사에 배정될 예산은 100억 달러에 이른다. 국제관계에 긴장이 고조되는 지금, 첨단기술 분야의 선구자격인 반도체 산업을 약화시킬 때가 아니라는 것을 미국이 깨달은 듯하다. 이에 실리콘 밸리가 덕을 보고 있다. 트럼프가 어플리케이션 틱톡을 노린 것도 페이스북 창립자의 조언을 들은 결과였다.

중국의 반응은 전반적으로 이보다는 덜 공격적이었다. 중국은 기술주권을 강화하려고 미국이 수십억 달러의 나랏돈을 들여 공격해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비록, 그 사이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기금 일부를 앗아가 버렸지만 말이다(특히 5G 사업 전개는 연기됐다). 지난 5월 트럼프 정부가 화웨이와 그 공급업체를 노린 신규 규제를 발표한 직후 시진핑은 1조4,000억 달러 규모의 경제계획을 공개했다. 2025년까지 핵심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려는 정책이다. 요즘 중국에서 가장 유행하는 두 가지 표현은 공급망과 기술 인프라에서 미국을 배제하는 ‘반미화’, 그리고 내부시장에 재집중하고 최첨단 기술을 개발해 수출하자는 새로운 정치 성향인 ‘이중 순환 경제’다. 

틱톡의 미국 활동 매각에 관한 논의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음에도, 중국은 수출을 통제할 기술의 목록을 늘렸다.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이나 음성인식, 그리고 다른 인공지능을 적용한 기술들이 이에 포함된다. 미국 클린 네트워크 정책에 대한 반발로 중국은 얼마 전 고유의 국제통신망을 발표했다. 국제 데이터 보안 계획(Global Data Security Initiative)이라는 이름의 이 통신망은 미국의 감시와 염탐에 맞선다. 당분간 화웨이는 잘 견디고 있다. 멍완저우가 체포된 직후부터 제재가 강화될 것을 예견해 필요한 부품의 재고를 사 모으기 시작했다. 비축분으로 10개월~2년은 버틸 수 있지만, 몇몇 부품은 곧 구식이 될 것이다. 5G 통신망 계약서도 양손에 한가득하다. 또한 자사 제품이 곧 안드로이드 업데이트를 받을 수 없을 거란 걸 알고 하모니 OS라는 새로운 자체개발 운영체제를 사용하기로 했다.

가까운 미래에 화웨이의 운명이 어떻게 되든, 중국, 러시아, 그 밖에 다른 국가들이 받은 메시지는 분명하다. 기술 주권은 필수라는 것이다. 급작스러운 인상만을 남긴 트럼프의 선전포고 훨씬 전부터 중국은 이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기술)독립 없이는 국가의 독립도 없다.”는 런정페이의 격언을 실천에 옮기도록 중국을 부추긴 게 바로 미국인 셈이다. 화웨이에 맞선 미국의 싸움이 결국 미국 업체들을 공급망에서 완전히 배제하고 기술적으로 더 진보하고 독립된 중국이라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이 아이러니다. 

 

 

글·예브게니 모로조프 Evgeny Morozov
포털 사이트 <더 실라버스(the-syllabus.com)>의 창립자이자 언론인. 『모두 해결하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솔루셔니즘이라는 착오』(FYP éditions, Limoges, 2014)의 저자

번역·정나영
번역위원


(1),(4) Yun Wen, 『The Huawei Model. The Rise of China’s Technology Giant』, Champaign(Illinois),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2020년 11월 출간예정. 화웨이 경영인들의 발언은 해당 저서에서 인용했다.
(2) Philipp S. Golub, ‘Entre les États-Unis et la Chine, une guerre moins commerciale que géopolitique, 미국이 중국을 옥죄는 이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한국어판 2019년 10월호.
(3) Linda Weiss, 『America Inc.? Innovation and Enterprise in the National Security State』,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2014.
(5) Dieter Ernst, 『China's Standard-Essential Patents Challenge: From Latecomer to (Almost) Equal Player?’ 』, Center for International Governance Innovation, 2017년 7월, Waterloo (Canada), www.cigionline.org.
(6) Gregory Shaffer & Henry Gao, ‘A new Chinese economic order ?’, <Journal of International Economic Law>, Oxford, 출간예정.
(7) John Seaman,『China and the New Geopolitics of Technical Standardization』, IFRI, Paris, 2020년 1월.
(8) ‘Japan grows wary of China’s smart-city global standards’, <Nikkei Asian Review>, 2020년 8월 11일.
(9) Paul Triolo & Kevin Allison, 『The Geopolitics of Semiconductors』, Eurasia Group, New York, 2020년 9월, Dieter Ernst,『Competing in Artificial Intelligence Chips: China’s Challenge amid Technology War』, Center for International Governance Innovation, 2020년 3월, Waterloo (Canada), www.cigionlin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