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 호텔의 고달픈 임시노동자
빨라진 노동, 짧아진 계약
고급호텔의 객실 청소노동자들도 지옥 같은 노동강도에 시달리고 있다. 심지어 점심시간에 도망가는 노동자까지 있을 정도다. 바스크 연안의 한 프레스티지급 레지던스형 호텔의 사례가 이런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오전 8시 30분. 바스크 연안에 자리한 ‘프레스티지급’ 레지던스형 호텔 1층.(1) 야외에서는 팬데믹 사태로 인한 장기격리에 지친 휴양객들이 바닷바람과 해변, 뜨거운 태양을 한껏 만끽하고 있다. 호텔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200개에 달하는 아파트형 객실과 호텔형 객실이 전부 만원이다. 이날 아침 18~57세의 객실청소원은 근무일지를 받아들었다. 스페인 국경 너머에서 온 청소원들을 배려해, 근무일지는 색상으로 표시돼 있다. 노란색 형광펜이 칠해진 호텔형·아파트형 객실은 새 투숙객을 맞이하기 위해 전체적으로 청소와 입실 준비를 마쳐야 하는 경우다. 반면 분홍색으로 표시된 객실은 침구 정리만 하면 된다.
60대 객실청소원, 미셸은 “중요한 것은 객실청소보다, 객실청소원이 다녀간 사실을 확인해주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녀는 취재진에게 몇 가지 주의사항과 ‘청소요령’까지 흔쾌히 알려줬다. 잊지 말고 꼭 변기 뚜껑을 내릴 것. 수도꼭지는 반들반들 윤이 나도록 닦아놓을 것. 샤워기 헤드가 정면에 보이도록 걸어놓을 것. 커튼을 쳐놓을 것.
이 다양한 임무에 소요되는 시간을 결정하는 것은 이 레지던스형 호텔을 운영하는 지배인이다. 호텔을 진두지휘하는 지배인이 스톱워치를 손에 들고 직원들을 따라다니며 업무시간을 체크한다. 그녀에 의하면 호텔 직원들은 늑장을 부리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매일 이 기록을 근거로 예약현황에 따라 다음날 객실정리에 필요한 시간, 현장에 투입할 객실청소원 수를 산정한다. 아침부터 호텔에 비상이 걸렸다. 방금 지배인이 ‘여자들’ 중 한 명이 펑크를 낼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긴급히 ‘대타’ 객실 청소원을 구해야 한다.
담당자는 “마이웬을 부르겠다. 그녀라면 언제든 군말 없이 달려온다”라고 말했다. 18세 소녀, 마이웬은 앙데의 한 서민임대주택(HLM) 단지에 거주한다. 실직한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난 그녀는 평생 ‘꿈’인 법학 공부에 들어가는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고 한다. 그녀는 연락을 받자마자 일을 수락했다. 그리고 장을 보러 나가기 위해 차려입었던 블라우스를, 편안하고 질긴 소재의 작업복으로 갈아입을 틈도 없이, 30분 만에 후다닥 호텔로 달려왔다. “일을 거절하면 앞으로 영영 연락이 오지 않을까 불안해요.” 그녀는 오늘로 연속 9일째 이 일을 하고 있다. “3주 만에 거의 150시간을 채웠어요. 1,000유로를 벌었죠. 이 정도면 수입이 괜찮은 편입니다.” 그녀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 레지던스형 호텔에서 일하는 객실청소원 중 그녀처럼 열성적으로 일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 호텔에서 일하는 객실 청소원은 대부분 최저임금만 받고 일하며, 아르바이트 형태로 고용돼 있다. 그들은 앞으로 자신들이 얼마나 일을 하게 될지, 한 달 내내 꾸준히 일할 수 있을지, 최종적으로 얼마를 받을지 전혀 알지 못한다. 게다가 오늘 마이웬의 경우처럼 대타로 현장에 투입되는 일이 허다하다. 그러니 풀타임으로 일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는 다른 일을 겸한다. 제시카의 경우 야간에 스페인 사창가의 한 술집에서 서빙을 하다가 퇴근 후 눈도 붙이지 못한 채 곧바로 호텔로 달려와 토요일과 일요일 아침 8시30분에 객실청소를 시작한다.
여름볕이 뜨겁던 어느 날 지배인은 느닷없이 취재진 앞에서 분통을 터뜨렸다. “프랑스 사회보장·가족수당징수조합(URSSAF)에서 우리 호텔의 아르바이트 고용에 대해 퇴짜를 놨어요. 아르바이트 고용이 너무 많다는 거죠. 대개 아르바이트들은 한시적으로 일을 해야 하는데, 장기간 일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 아르바이트가 아닌, 비정규직(CDD) 고용계약을 체결하라는 거예요. 하지만 우리 호텔 형편으로는 어렵다고요!”
사실상 이 레지던스형 호텔이 속한 그룹은 전체 호텔 운영에서 객실청소원의 임금에 대해 상한액을 정해놓고 있다. 대개 레지던스형 호텔은 전체 임금에서 청소원 비중이 높기 때문에 다들 가능한 이 항목에 대한 지출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아르바이트 형태로 노동자를 고용해 변동수요에 맞춰 청소원 수를 조절하지 못한다면, 결국 수지를 맞추기 어렵다. 초과근무 수당을 지급해야 하는 경우에도 예산을 맞추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 호텔은 초과근무에 대해 수당을 지급하는 대신 ‘보상휴가’로 대체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결국 보상휴가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그러니 매일 아침, 근무일지를 받아들 때마다 객실청소원들은 걱정부터 한다. 그날 누군가의 입에서 “제 시간에 일을 끝마치지 못할 것 같아”라는 말이 나오게 돼 있다. 땡전 한 푼 못 받는 일에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때부터 청소원들은 득달같이 시간과의 치열한 전쟁에 돌입한다. 용케 주어진 시간에 미션을 완수해내든 시간을 초과해 일을 하게 되든, 월급통장에 찍히는 금액은 같기 때문이다.
불과 한 달, 객실청소원 12명이 일을 그만뒀다. 일을 지속하는 청소원들은 대부분 염좌, 요통, 건염 등을 앓고 있지만, 대개 아무 말 없이 일을 지속한다. 염좌로 고생 중인 29세의 알리샤가 대표적이다. 그녀는 낮 내내 절뚝거리며 청소기를 밀거나 걸레질을 한 다음, 밤에는 얼음찜질로 아픈 부위를 달랜다. 그녀는 “조용히 앉아서 일할 수 있는 계산원이 꿈”이라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이내 한숨을 내쉬며 “경력이 없으니 취직이 너무 어렵습니다”라며 울상을 지었다. 청소회사에서 일하는 자신의 어머니처럼, 그녀도 벌써 3년째 청소 일을 하고 있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 해본 일이라고는 청소밖에 없다. 그녀는 매년 여름이면 “청소는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고 굳은 다짐을 반복한다.
이번 여름, 1시간이던 호텔 청소원들의 점심시간은 35분으로 줄었다. ‘여자들’이 집에 다녀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점심시간에 집에 간 청소원들이 오후에 나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호텔 지배인은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갑자기 청소원이 사라지면 정말 낭패라고요. 점심시간이 짧으면 업무 리듬을 유지하기에도 낫고요!” 게다가, 짧아진 점심시간조차 청소원들은 제대로 누릴 수 없게 됐다. 청소원들 대다수는 휴게실에서 점심을 해결해왔는데, ‘코로나19’ 감염병 사태로 인해 휴게실에서 전자레인지나 냉장고를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게다가 ‘거리 두기’를 위해 식탁에 주황색 테이프까지 쳐졌다.
비록 지하 주차장 한쪽에 마련된 공간이지만, 휴게실은 그나마 직원들이 편안하게 담소를 하며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취재진은 호텔 프론트 직원에게 살짝 열쇠를 구해 휴게실을 방문했다. 그나마 프론트 직원은 비교적 존중받는 위치에 있는 노동자다. 그러나 알리샤의 처지는 완전히 달랐다. “우리는 투명인간이나 마찬가지죠.”
팬데믹 사태 이후 호텔의 노동환경은 더욱 열악해졌다. 미셸은 매일 아침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출근해서, 전날 밤 TV에서 본 코로나 최신뉴스를 늘어놓았다. “저는 57세입니다. 고위험군에 속하는 이 일의 성격상, 최전선에서 일하는 셈입니다.” 과체중으로 고생하는 마이웬은 그보다 한층 더 심각했다. “저는 천식 환자입니다. 마스크를 쓴 채 숨을 쉬기 무척 힘들어요.” 그룹의 경영진이 객실 청소에 배당하는 예산만 가지고는 사실 ‘본사’로부터 이 호텔 지배인에게 내려온 ‘두툼한 보고서’에 실린 규정들을 제대로 지키기는 어렵다. 시간도, 마스크도, 앞치마도, 위생모자도, 걸레도 모두 규정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코로나 위생복’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호텔 지배인은 묘수를 짜냈다. 위생복을 따로 챙겨뒀다가 그룹의 ‘높으신 분들’이 불시에 방문할 때만 눈속임용으로 청소원들에게 입히는 것이다. 7월 말, 다시 코로나가 확산세로 돌아서자 본사에서는 새로운 지침이 내려왔다. 호텔 지배인은 청소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느 때보다 엄격하게 위생수칙을 준수해야만 합니다. 지금보다 두 배는 노력해야 하죠. 가능한 모든 곳을, 심지어 유리창 걸쇠까지도 전부, 소독제로 꼼꼼히 닦아내도록 하세요! 여러분들은 지금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최근 매출 수치를 보면, 단 한 명의 확진자도 호텔에서 나오지 않게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아주 근엄한 어조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모든 게 여러분들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객실 청소에 배당된 시간은 결코 늘지 않았다. 팬데믹 사태 이후로 단 한 가지 혁신적인 변화가 있었다면, 바로 자선단체 ‘엠마우스’가 감염 위험 때문에 판매할 수 없게 된 옷을 그룹 경영진들이 대거 수거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호텔은 수거한 옷을 찢어서 걸레로 사용했고, 그 덕택에 이 항목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이제 호텔의 욕조를 닦는 것은 폴리에스터 팬츠, 유리창은 파리생제르맹(PSG) 축구팀 로고가 새겨진 트레이닝복, 화장실은 레이스 슬립 원피스의 몫이 됐다.
글·마리 모르강 Marie Morgan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허보미
번역위원
(1) 취재 중에 만난 호텔 객실청소원들의 증언을 싣기 위해, 인명이나 장소명 등의 고유명사를 모두 익명처리 하거나 임의 수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