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보다 빠르고 정확한 ‘미숙련’ 노동자

2020-10-30     리지 오시어 | 인권 변호사

미국에서 첫 직장이 맥도널드인 사람은 셀 수 없을 정도다. 가수 퍼렐 윌리엄스는 맥도널드에서 세 번 해고를 당했고, 청년 시절 맥도널드에서 일했던 배우 제임스 프랭코는 2005년 이 기업에 찬사를 보냈다. “제가 맥도널드를 필요로 했던 시절, 맥도널드는 저를 위해 항상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1) 미국의 전 공화당 하원의장 폴 라이언은 맥도널드에서 햄버거 패티를 구운 경험 덕분에 아메리칸 드림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고 말한다. 아마존 사장 제프 베이조스은 이렇게 말했다. “재미있는 점은 맥도널드에서 일하면 무엇이든 빨리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는 사실이다. 맥도널드에서 얼마나 빨리, 껍데기를 떨어뜨리지 않고 달걀을 깰 수 있는지 알게 됐다.”(2) 

노동자들을 노예 취급하며 성과에만 급급한 이 억만장자의 현 ‘직장’은, 그의 직장과 닮은 점이 많다. 현재 전 세계 약 80만 명이 아마존에서 일하며, 그들의 일은 맥도널드에서 하는 일만큼 단조롭다. 고객에게 주문품을 전달할 수 있도록 물류센터에서 물품을 준비하는 것이다. 판매원, 계산원, 종업원, 택배기사... 미국에서 가장 흔한 직업이다. 저임금, 반복작업, 비전 없음. 이런 일은 ‘미숙련 노동(unskilled labor)’ 범주에 속한다. 

이런 분류방식은 종종 착각을 일으키고 우리 인식을 구시대에 머물게 하는 데 안성맞춤이다. 미국 노동통계국(BLS)에 의하면, 통계학적으로 ‘미숙련 노동’은 관련 학위나 자격증을 요구하지 않으며, 초보적인 훈련만 받으면 되는 직업을 의미한다. 2018년 미국 노동자 31%가 이 범주에 해당됐다. 미국 노동자 3명 중 1명이 속칭 ‘미숙련 노동자’에 속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 직종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 ‘미숙련 노동’을 하려면 사실 여러 가지 능력이 필요하다. 레스토랑에서 서빙하고, 전화를 받고, 물품을 분류하고, 채소 껍질을 벗기고, 고객의 갑질을 견디는 것... 이 모든 일은 손재주, 체력, 기억력, 인내력, 대인관계 능력을 필요로 하는데, 대개 현장에서 일하면서 습득해야 하는 것들이다. 네바다 대학교에서 반나절 동안 강의하며,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브리타니 브론슨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능숙한 종업원은 팔뚝 위와 손가락 사이에 접시를 놓고 마치 두 군데를 동시에 여행하는 것처럼 테이블을 치울 수 있다. 그들이 어떤 수준의 학위와 언어 구사력을 가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미숙련’, ‘저숙련’은 정성을 다해 일하는 그들을 폄하하는 표현이다.”(3) 

 

‘미숙련 노동’이라는 범주

미숙련 노동이 실제로는 많은 능력을 요구하는 것과 그들을 관리감독하는 문제는 별개다. 우리는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로봇’에 대해 말하지만, 그것과 관리의 자동화를 연관 짓는 경우는 드물다. 이미 현실이 되고있는 상황임에도 말이다. 컴퓨터에서 물밀 듯이 나오는 스케줄 표를 생각해 보라. 이런 스케줄 표는 주로 저소득 노동자에게 해당된다. 미국 노동통계국(BLS)에 의하면 2017년과 2018년, 25세 이상 ‘미숙련 노동자’는 31%가 일주일도 안 남은 시점에서 다음 스케줄 표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같은 경우를 당한 학사학위 이상 노동자는 14%에 그쳤다.(4) 

이런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노동자들은 일과 생활의 균형을 위해 능수능란하게 일과를 조정해야 한다. 콜센터 노동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목소리 인식에 기반한 알고리즘과 블랙박스를 동원해 직원들을 모니터링하고 목소리 톤과 성과를 감시하는 일이 늘고 있다. 촉박한 시간 동안 엄격한 행동규정을 지키며 까다로운 고객의 전화를 친절하게 받는다는 것은, 상당한 능력이 필요한 일이다. 

‘미숙련 노동’이라는 범주가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는 구식 노동 분류법이 그대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리테일·패스트푸드 노동자노조(RAFFWU)의 총무인 조시 컬리넌이 강조했듯, 오늘날의 노동환경은 과거와 다르다. 오늘날 패스트푸드 드라이브스루에서 일하려면, 동시에 수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이어폰으로 고객의 주문을 받으며 주문명세서를 주방으로 전송하는 프로그램에 입력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음식 봉투를 받아 다른 고객에게 전달하고 전자결제 단말기로 대금을 수령한다. 이 모든 일을 단시간에, 그것도 신체적·정신적으로 압박을 받는 내내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은 채 해내야 한다.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있다. 30년 전부터 이런 일자리에서 수행하는 업무가 전반적으로 전문성이 더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의도적으로 세분화된 업무는 같은 행동을 끊임없이 반복하게 만들었는데, 이는 일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에밀리 구엔델스버거 기자는 최근 그의 저서  『근무 중 On the clock』(5)에서 이런 측면을 깊게 연구했다. 아마존, 맥도널드, 콜센터... 저임금 미숙련 직장을 전전하며 실행한 연구결과였다. 그녀는 아마존 창고에서 물건을 찾아 배송대로 보내는 ‘피커(piker)’가 업무의 질을 낮추려는 의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설명한다. 피커가 들고 있는 소형 핸드스캐너 화면에는 창고 어디로 몇 초 안에 가라는 지시가 뜬다. 카운트다운하며 정확한 작업시간을 지키도록 압박을 가한다. 일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이런 압박감이 주는 스트레스 때문에 진통제가 필요했다고 그녀는 호소했다. “카운트다운, 자동으로 주어지는 페널티, 이 모든 방식은 노동자를 로봇처럼 만드는 발상이었다.” 산업혁명처럼 디지털 혁명은 노동자를 그저 생산도구로만 취급한다. 

에밀리는 “노동자가 로봇에 가까워질수록 대체하기가 쉬워진다. 즉, 노동의 질이 낮아질수록 인력교체 비용이 줄어든다”라고 지적했다. 즉, 미숙련 노동자를 계속 배출하는 것이 직원들이 장기근무하도록 독려하는 것보다 저렴하다는 이야기다. 에밀리는 “직원 경력이 늘면 임금도 비싸지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예외 없는 규칙은 없는 법. 최근 제프 베이조스는 미국 아마존 직원들의 최저시급을 15달러로 인상했다. 그러나 이 결정은 선의에서라기보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잠재우려는 의도가 더 컸다.(6) 

 

“이 도시는 우리가 만들었다”

반복작업이 모두 저임금 노동은 아니다. 일례로 운동선수들도 선수생활 내내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그들은 이 반복동작을 통해 역량을 발전시킨다. 이들의 반복동작은 ‘노력’과 ‘훈련’으로 인정받고, 큰 보상을 받는다.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에서는 타악기 연주자가 15분 내내 동일한 리듬과 템포를 반복해서 연주한다. 그럼에도 이 연주는 만족감을 준다. 엔지니어, 회계사, 은행원, 일부 의료인까지 ‘전문직’이라고 불리는 직업도 기술 시스템에 의해 좌우된다. 결국 전문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능력과 지식도 축소되고 있다. 우리는 업무가 반복적이라는 특성을 내세워 일부 직업의 저임금을 정당화한다. 반면, 어떤 직업인들은 반복작업을 함에도 상대적으로 높은 보수와 존중을 받는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수백만 명의 ‘미숙련 노동자’들이 일을 멈추면 사회기능도 멈출 것이다. 한 건물의 노동조합은 오랫동안 “이 도시는 우리가 만들었다”는 슬로건을 써왔다. 바버라 에런라이크 기자는 최근 트럭 운송업을 하는 자신의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여기 슈퍼마켓에 있는 물건들을 그 친구가 트럭으로 운송했다. 그 친구는 자기 같은 사람이 없으면 여기 일이 안 돌아간다고 종종 말한다.”(7) 

이는 택배기사, 계산원, 농·식품업계 노동자 모두에게 적용되는 이야기다. 이들은 마트 진열대를 채워 우리가 먹고 입을 수 있게 해준다. 즉, 우리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사람들이다. “우리가 너희를 먹인다.” 호주 농업인 조합의 슬로건이 이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수많은 미숙련 노동이 아마 지루하고 고통스럽고 불쾌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자리가 하찮은 일은 절대 아니다. 직업의 사회적 계급을 뒤엎고 진정으로 사회에 기여한 사람들이 피라미드 꼭대기에 설 수 있게 하려면, 노동자들이 결집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 텔레마케터의 경험은 큰 교훈을 준다. 한 콜센터에서 노동조합 대표들이 모이려 했으나 요구사항이 다양해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재미있는 요청이 촉매제 역할을 했다. 설문조사만 하는 이 콜센터에서는 기계가 자동으로 전화번호를 누르는 시스템이었다. 텔레마케터들은 통화와 다음 통화 사이, ‘막간’의 시간을 활용하기 원했다. 한 여성은 독서를 하려 했다. 그러나 상사는 그녀에게 곧바로 책을 내려놓을 것을 지시한 후 해고했다. 이 상황은 저항 동력이 됐다. 그녀의 동료들은 파업을 벌였고, 그 결과 동료를 복직시켰으며 독서 할 권리도 얻었다.

제프 베이조스는 미숙련 노동자 시절의 경험을 이용해 미숙련 노동자 집단을 착취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존중할 때가 아닐까. 

 

 

글·리지 오시어 Lizzie O’Shea 
호주 출신의 인권 변호사. 영국 런던에서 주로 활동하며, 방송에 출연하고 신문에도 기고를 하고 있다. 주요 저서에 『 Future Histories : What Ada Lovelace, Tom Paine and the Paris Commune Can Teach Us About Digital Technology 미래사-에이다 러브레이스, 토머스 페인 그리고 파리 코뮌이 디지털 기술에 대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Verso, 런던, 2019)가 있다. 

번역·이정민
번역위원 


(1) James Franco, ‘McDonald’s was there for me when no one else was’, <The Washington Post>, 2015년 5월 7일.  
(2) Charles Fishman, ‘Face time with Jeff Bezos’, 2001년 1월 31일, www.fastcompany.com
(3) Brittany Bronson, ‘Do we value low-skilled work ?’, <The New York Times>, 2015년 10월 1일. 
(4) ‘Economic news release’, 미국 노동통계국, 2019년 9월 24일, www.bls.gov
(5) Emily Guendelsberger, ‘On the Clock : What Low-Wage Work Did to Me and How It Drives America Insane’, <Little, Brown and Company>, 2019. 
(6) ‘Amazon raises minimum wage to $15 for all US employees’, 2018년 10월 2일, www.cnbc.com
(7) ‘On the origins of the professional-managerial class : an interview with Barbara Erhenreich’, <Dissent>, 2019년 10월 22일, www.dissentmagazin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