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도시’ 신화에 감춰진 모스크바의 민낯

이미지 쇄신에 나선 러시아 수도

2020-10-30     블라디미르 파블로츠키 | 파리8대학 연구원

크렘린 궁전 아래 도도하게 흐르는 모스크바 강물 위로, 세모꼴 모양의 구름다리가 튀어나와 있다. 자랴디에 공원을 잇는 이 구름다리는, 셀카봉을 든 국내외 관광객으로 가득하다. 러시아에 서식하는 모든 식물을 집대성해 놓은 자랴디에 공원은 스텝지대, 툰드라지대, 산림지대, 늪지대 등 다채로운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또한 얼음 동굴, 고고학 박물관, 고급 레스토랑, 영화 상영 및 전시회 개최를 위해 조성된 복합 멀티미디어 센터, 1,600석 규모의 콘서트홀, 같은 규모의 야외 원형극장 등도 조성돼 있다. 2017년 9월 9일 개장 이후 자랴디에 공원은 모스크바의 각종 권위 있는 국제적 행사를 줄줄이 유치해오고 있다. 모스크바 시당국의 자부심인 자랴디에 공원은 어느새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18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광지’ 대열에도 합류했다.

 

초국적기업의 글로벌 허브를 꿈꾸다

지난 50년 모스크바 역사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자랴디에 공원은 10여 년 전 세르게이 쇼바닌 모스크바 시장이 러시아의 수도를 아름답고 세계적인 도시로 만들고자 한 계획에서 탄생했다. 러시아 연방정부 관료 출신이자, 오랜 기간 블라디미르 푸틴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온 쇼바닌은 2010년 모스크바의 수장이 되자마자, 다른 세계적 대도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자 모스크바의 낡은 이미지를 쇄신하는 데 앞장섰다. 뉴욕·런던·도쿄·파리 등 쟁쟁한 대도시들과 경쟁하며, 모스크바를 ‘글로벌 도시’의 반열에 올려놓겠다는 포부였다. ‘글로벌 도시’란 개념은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사스키아 사센 덕에 유명해졌다. 특히 사센은 자랴디에 공원 설계공모전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이력이 있다.

사실 변동이 심한 유가에 경제가 종속된 모스크바는, 어떻게든 재정의 안정과 혁신을 위해 글로벌 허브로 거듭나기를 희망한다. 러시아, 그 중에서도 특히 외국인 투자처로 적합한 대도시 모스크바는 전 세계 경제와 자본을 끌어 모으겠다는 포부로, 초국적기업 유치 및 문화 활동과 관광업 활성화에 주력하고 있다.

모스크바가 이 목표를 실현하려면 몇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초국적기업으로부터 모스크바가 사적 재산권을 존중하는지, 유리한 조세제도를 갖추고 있는지, 행정절차는 유연한지, 기업소재지로서 번듯한 네임 밸류를 가졌는지를 평가받아야 한다. 또한, 자사의 간부급 직원들이 매력적인 도시환경과 우수한 공적 인프라를 누릴 수 있는지도 중요한 기준이다. 사실상 초국적기업의 간부급 직원들은 과학자, 엔지니어, 예술가, 미디어·교육·의료·사법 종사자 등과 더불어, 신경제를 견인하는 이른바 ‘창조계급’(세계 어디서든 네트워크를 통해 창의력을 발휘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계급-역주)을 형성하는 계층이다. 이 ‘창조계급’이라는 개념의 창안자, 리처드 플로리다(1)도 오늘날 모스크바로 발걸음을 향한다. 2019년, 그가 모스크바 도시포럼(MUF)의 주빈 자격을 얻은 것이다. 

도시 문제를 다루는 이 대규모 연회에는 매년 50개 이상 국가로부터 수천 명의 관람객과 수백 명의 관계자(정부의 정책결정자, 경제학자, 도시전문가)가 참석한다. 2017년 이후 이 행사가 개최되는 곳은, 다름 아닌 자랴디에 공원이다.

 

프랑스 도시부 전직 장관을 영입한 이유

모신주프라옉트(모스크바 시가 지분을 100% 보유)도 모스크바 도시포럼(MUF)의 공동주최자로 참여한다. 모스크바 시의 오른팔 노릇을 하는 이 건설업체는 2018년 이후 한 정예 세일즈맨 요원의 서비스(월 1만 유로 부담)(2)를 받고 있다. 그가 바로 모리스 르루아 부대표다. 모리스 르루아는 루아르에셰르 지역 하원의원 출신으로, 프랑수아 피용 3기 내각에서 도시부 장관을 역임하며 ‘그랑파리’ 사업을 담당한 인물이다. 현재는 모스크바 공기업 모신주프라옉트의 모든 대형 글로벌 사업을 책임지고 있다. 

무엇보다 르루아는 2019년 7월 4일, 쇼바닌 모스크바 시장과 파트릭 올리에 ‘그랑파리 메트로폴’ 단체장(그랑파리 메트로폴 MGP는 파리와 인근 지역의 체계적 관리를 목표로 2016년 발족한 파리시와 수도권 코뮌/시읍면 간 협의체를 의미-역주) 간의 파트너십 체결 과정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특히 유명하다. 이 협정은 프랑스 전력(EDF), 수에즈 등 프랑스의 유수기업들이 모스크바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 사실 모스크바 도시포럼(MUF)은 전 세계 리더와 투자자들에게 모스크바 시정부의 도시정책이 올린 소기의 성과를 홍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모스크바에는 도심의 주요 명소마다 1m 높이로 설치된 거대한 도시 슬로건이 담긴 대문자 알파벳 구조물이나 각종 화려한 로고들이 가득 수놓아져 있다. 와이파이(무선인터넷) 이용도 아무데서나 자유롭다. 모스크바 시의 그래픽 아이덴티티의 기본원칙도 실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시민들의 의견을 모아 함께 완성했다. 지하철에서는 모스크바 시청의 방송채널인 <모스크바24>가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2018년 월드컵 때 붉은 광장에서 축구공으로 발재간을 부리던 브라질 응원객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 사이로 각종 시설물(공원, 지하철역, 도로, 병원)과 외곽 개발지구의 개관식에 참석한 시장의 모습이 흘러나온다. 바야흐로 이제는 단순히 짓기만 하는 것으로는 더 이상 의미 없는 시대가 됐다. 대도시의 근사한 서사를 만들어냄으로써, 도시의 건설소식을 세상에 널리 홍보해야 한다. 거대한 세계화의 흐름을 선도하는 역동적인 대도시의 이미지를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소뱌닌은 대대적인 홍보 전략을 내세워, 1992~2010년 유리 루시코프 전 모스크바 시장 시대의 역사를 완전히 종식하기를 원한다. 오늘날 루시코프 시장에 대한 평가는 냉혹하다. 시민들은 대개 그의 재임기간을 도시 인구가 폭발적 증가한 시기로 기억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건축허가를 따내는 일은 무척 수월해졌다. 그 결과 모스크바의 인구밀도는 1989년 1㎢ 당 8,280명에서 2010년 아시아 대도시 수준에 육박하는 1㎢ 당 1만 681명으로 현격히 급증했다. 도시 곳곳에 굴착기 소리가 요란하게 진동했지만, 정작 모스크바 시의 이미지는 좋아지지 않았다. 살인사건이 4배로 증가하는 등 1990년대 상반기만큼이나 도시 이미지가 부정적이었다. 갱단이 거리에서 총질을 하던 시대가 끝난 후에는, 부정부패가 도시의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

루시코프 시장은 ‘이익상충’의 개념을 몸소 보여준 인물이다. 1991년 시장직에 오르기 전 그와 결혼한 엘레나 바투리나는 유수건설업체 ‘인테코’의 사장이 됐다. 그녀는 남편이 시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모스크바 최초의 여성 억만장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부부는 한 팀이 돼 온갖 역사기념물에 대한 대대적인 건축 및 복원사업을 강행했다. ‘소련시대의 이미지와 철저히 단절하겠다’는 명분하에, 판에 박힌 건물들을 찍어냈다. 1031년 다이너마이트로 폭파된 구세주 그리스도성당을 1995~2000년 복원하거나, 1997년 선박형 기념물 위에 표트르 대제의 동상을 설치하는 등의 작업이 논란이 무성한 시대적 취향을 보여준다.

하지만 루시코프의 정책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시장경제로의 이행’이다. 루시코프의 재임기간 동안 사실상 구소련 시절에는 존재하지 않던 상업지구와 업무지구 개발이 급증했다. 대표적인 예가 1998년 조성된 특별상업지구 ‘모스크바 시티’였다. 오늘날 이곳에는 유럽 최고의 초고층 건물 10개 중 무려 7개가 자리 잡고 있다. 모스크바 강둑 위에 건설돼, 당 고위간부들이 주로 거주하는 쿠투조프 대로의 스탈린식 건물들을 마주보고 있는 ‘모스크바 시티’는 러시아의 수도가 ‘글로벌 메가시티’의 반열에 올랐음을 보여주는 상징물이 됐다. 

하지만 2006년 모스크바의 업무시설 총면적은 550만㎡, 1인당 0.56㎡에 불과해 글로벌 평균에 못 미쳤다. 반면 같은 해, 파리의 1인당 업무시설 면적은 4.5㎡에 달했다. 모스크바의 업무시설 수요가 증가하면서, 연간 ㎡당 업무시설 임대료도 폭등했다. 영국 부동산 컨설팅업체 ‘나이트 프랭크’의 자료에 의하면,(3) 2008년 모스크바의 ㎡당 업무시설 임대료는 900유로로 파리(840유로), 싱가포르(826유로), 두바이(780유로)를 앞질렀다. 그보다 높은 곳은 도쿄(1,400유로)와 런던(1,017유로) 정도였다.

업무시설 부족이 모스크바의 국제적 매력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라면, 지역별 업무시설 배분 현황도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모스크바의 경우 전체 일자리 중 1/3이 총 국토 면적의 1/10 미만인 모스크바 도심에 집중돼 있다.(4) 이곳에는 일상적인 모스크바 노동자 수백 명에 더해, 모스크바 주에서 출퇴근하는 140만 명이 드나든다. 모스크바주의 인구는 사실상 전체 활동인구의 30%를 차지한다. 통근자 중 일부는 모스크바 외곽지역에 건설된 인구가 밀집된 베드타운이나 혹은 외곽순환도로(MKAD)로부터 100km 떨어진 작은 도시들에 거주한다. 그들이 매일 출퇴근에 보내는 시간은 40~240분에 달한다.(5) 많은 토지를 점유하는 상업지구도 이 베드타운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예를 들어, 모스크바 북서부 외곽지대 힘키에는 2000년 이케아 점포가 처음 문을 열었다. 이어 2002년에는 오샹도 선을 보였다. 외곽순환도로를 따라, 연방고속도로(국도)와 만나는 지점마다 순식간에 러시아 국내외 브랜드가 줄줄이 입점하며 거대상권을 형성했다.

 

과거와의 단절, ‘신 모스크바’를 향해

소련 붕괴 이후 자동차 보급은 도시구조를 새롭게 재편했다. 20세기 말 다른 유럽의 대도시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었지만, 모스크바에서는 자동차 보급률이 현격히 증가했다. 가령 1993~2016년, 인구 1,000명 당 자동차 보유대수는 113대에서 308대로 급증했다. 2000년 모스크바는 2025년 인구 증가가 850만 명 이상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 하에 도시 계획을 마련했다. 하지만 오늘날 모스크바의 인구는 이미 1,300만 명에 육박한다. 이제 모스크바는 세계적으로 교통망이 한계에 달한 도시로 악명이 높다.(6)

2005~2008년 대통령 행정실 실장(비서실장)과 2008~2010년 러시아 부총리를 역임한 소뱌닌이 2010년 모스크바 시장이 되면서, 과거와 완전히 단절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 18년 간 비교적 자율적인 정치시스템을 누리던 모스크바 시는 주요 부서에 줄줄이 연방정부 출신 고위관료들을 수장으로 앉히며, 다시금 연방정부(중앙정부) 체제로 돌아갔다. 연방정부가 시정부를 장악하고 몇 달 후, 모스크바의 새로운 도시정책이 대대적으로 발표됐다. 2011년 6월 17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경제포럼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모스크바 시의 경계를 확장하는 한편, 신규편입된 지역의 대규모 행정지구로 연방정부의 주요기관들을 이전함으로써, 행정기능의 도심 집중 현상을 해소하겠다고 발표했다.

소뱌닌은 “사업가들은 흔히 행정부, 내각, 정부산하 기관들과 친하게 지내려 한다”라고 확언했다. 그는 모스크바로 신규 편입된 영토가 수많은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블랙홀이 돼, 자신이 추진하는 교통재편 정책의 주요한 수단을 제공할 것이라고 확신했다.(7) 모스크바 경계를 확대할 방안을 마련하라는 대통령의 명령에, 소뱌닌과 당시 모스크바주 주지사 보리스 그로모프는 남서부 간선도로 위에 펼쳐진 약 1,480㎢ 면적의 ‘넥타이’ 형태를 띤 영토를 편입해, 모스크바 시의 총면적을 2.4배 확대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신 모스크바’라고 불리는 이 영토는 당시 인구가 23만 2,000명이었는데, 수도의 규모를 상당히 확장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2012년 6월 1일, 새 영토를 편입한 모스크바는 총 2,561㎢(파리 성곽 내 영토의 25배)로 면적이 확대되면서,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넓은 도시로 등극했다. 한편 ㎢ 당 평균 인구밀도는 4,919명을 기록했다. 통계학적 수치만 고려하는 경우, 영토편입 이전 대비 약 12배 인구밀도가 감소되는 셈이었다.

 

런던·파리가 아닌 하노이에 비교되는 현실

러시아당국은 ‘신 모스크바’를 ‘대런던’(1999)이나 ‘그랑파리 메트로폴’(2016)에 견주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영국의 사례를 보면, 수도 런던과 인근 권역이 동일한 행정관할권에 속했다. 또한 주요 권한은 사디크 칸 런던 시장에게 부여됐다. 그런가 하면 ‘그랑파리 메트로폴’은 131개시로 구성된 협의체에 해당했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모스크바의 경우와는 확연히 달랐다. 러시아 수도는 아직 도시화가 진행되지 않은 지역을 미리 흡수한 경우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모스크바는 베트남 하노이와 견줄 법하다. 역시 공산주의국가 도시인 하노이도 2008년 하떠이성을 편입해 도시 면적을 3배 확대했다. 비록 도시의 명성은 모스크바에 못 미치지만 말이다. 

모스크바 시장은 2012년 1월 모스크바 경계 확장과 관련해 국제공모전을 개최했다. 공모전에는 총 10개 팀이 지원했다. 1위는 미국의 ‘어반 디자인 어소시에이츠’(UDA) 팀에 돌아갔다. UDA는 새로운 연방행정센터를 중심으로, 주변에 총 12개의 ‘기능별 클러스터’(산업, 행정, 상업, 의료, 교육, 과학, 관광, 물류 등)를 조성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방안은 인구 170만 명과 일자리 80만 개를 기준으로 마련됐는데, ‘신모스크바’와 ‘구도시’를 신속하고 효율적인 교통망으로 연결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하지만 공모전에서 나온 대부분의 계획은 휴지조각이 됐다. 공식적으로 사업이 중단되지는 않았지만, 행정기구 이전 등의 내용은 계획안에서 사라졌다. 담당 관료들은 푸틴(2012년 대통령에 재당선) 대통령이 2012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과 2014년 소치 올림픽에 더 역점을 두고 있다고 언론에 해명했다. 연방정부청사 이전이 무산된 뒤 ‘신 모스크바’는 프랑스 ‘그랑파리 익스프레스’(마크롱 정권이 추진한 파리 외곽 교통망 확충 프로젝트-역주)에 버금가는 건설업자들의 낙원으로 전락했다.(8) 끊임없이 들고 나는 불도저들이 이런 현실을 증명했다. 기존의 교통망과 신도시를 연결하는 8개 지하철역 조성사업은 부동산 폭등에 촉매제 역할을 했다. 한편 2035년까지 추가 신설될 예정인 지하철역도 17개에 달했다. 모스크바 시에 의하면, 앞으로 1,400만㎡의 주거지와 430만㎡의 상업공간이 빛을 보게 될 계획이었다. ‘신 모스크바’의 인구는 2012년 23만 2,000명에서 2020년 40만 4,000명으로 약 74% 증가했다. 공식자료에 의하면, 같은 기간 일자리도 17만 개 신설됐다. 그러나 교통망은 한계를 드러냈다. 현지 언론은 소형버스를 타고 신설된 지하철역으로 이동한 다음 다시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시민들이 더욱 늘면서 오히려 교통체증과 지하철 혼잡 현상이 심화됐다고 보도했다.

정부청사 이전이 지지부진해지자, 모스크바 시장은 계획을 새롭게 수정했다. 모스크바 시의 조세수입이 급격히 확대(2015~2016년, 11.3% 증가)되고, 재정부가 모스크바 시의 예산을 타지역에 쓰기 위해 더 많이 각출하려고 하는 상황에서,(9) 새로운 대안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야심찬 도시재개발사업이었다. 2017년, 모스크바 시는 1,000억 루블(15억 유로)을 투입해 노후주택 5,000여 채를 철거하는 대규모 도시재개발 사업을 승인했다. 니키타 흐루시초프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집권한 1957~1968년 건설된 조립식 패널 아파트 '흐루시초프카'가 주류를 이루는 이 노후단지의 세대수는 35만 세대에 달했다. 모스크바 시민 10명 중 1명, 1백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셈이었다. 

2017년 8월 1일, 모스크바 시는 노후주택 철거 사업이 “분산적 형태의 도시구조를 형성해, 러시아연방의 수도에 현대적인 이미지를 불어넣어줄 것”이라고 법령에 명시했다. 미하일 멘 건설부장관은 러시아 온라인 경제매체 <RBK>와의 인터뷰에서, 거주민 이주문제와 관련해 발언했다. “여러분께 굳게 약속합니다. 동일 지역이나 인근 지역으로 이주를 추진하겠습니다. 결코 ‘신 모스크바’로 이주하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10) 

은연중에 ‘신 모스크바’ 사업의 실패를 시인하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더욱이 재개발아파트는 동일한 면적의 부지에 들어설 예정이었지만, 층수(최대 72층)(11)를 더 높이는 한편, 주거지·업무시설·상점 등을 한데 모은 복합단지로 탄생할 예정이었다. 한 마디로 주거중심지구에 다양한 새로운 기능들을 부가함으로써, 교통 인프라에 대한 부담(주민의 이동 필요성)을 낮추겠다는 구상이었다. (12) 한 마디로, 거주·업무·학업 문제를 한 곳에서 해결할,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한 고립된 섬(거점) 형태의 신규지구들을 줄줄이 개발하려는 셈이었다.

2018년 시의회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1년 앞두고 공약성으로 발표된 이 도시재개발 사업은 한때 시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자, 모스크바 시는 2017년 5월 15일~ 6월 15일, 시에서 운영하는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적극적인 시민’을 통해 시민들의 의견을 수집하는 대응에 나섰다. 각 거주민(대부분 1992년 이후 옛 소련 시절 점유한 주택에 대해 무상으로 소유권을 획득했다)이 자신이 거주하는 건물에 대한 재개발 찬반 의견을 스마트폰을 통해 표할 수 있게 했다. 철거 예정 아파트의 공동소유자들의 1/3 이상이 재개발에 반대하는 경우, 해당 건물은 철거목록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주민투표 결과는 시정부의 승리로 끝이 났다. 철거목록에서 빠진 건물은 전체 등록된 주택의 11%에 불과했다.

 

재개발이 초래한 과밀화 난제 

루시코프의 재임기간에 나타나기 시작한 도시 과밀화 현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번에는 사회적 갈등을 해소한다고 알려진, 동시에 개인정보도 널리 수집하는 신기술이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박스기사 참조). 2000년대 말, 시당국은 ‘참여민주주의’를 이용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가령 모스크바 시의 주택관리를 우호적인 조합에 맡기기 위해 아파트소유주의 서명을 대대적으로 날조하기까지 했다. 도시마케팅을 널리 벤치마킹한 이런 방식은 과거와는 상당히 다른 혁신적인 전술에 해당한다. 

이 모든 사업은 결국 모스크바 시민의 삶에 급격한 변화를 몰고 왔다. 새 영토 편입과 구 모스크바 ‘재개발’은 수도의 형태를 평등하게 재편하기는커녕, 오히려 새로운 문제만 초래할 수 있다고 많은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1989년 이후 러시아의 부유한 도시 15곳에 새로 유입된 신규 도시민 수는 모두 8백만 명에 달했다. 그런데 그 중 무려 45%가 모스크바 시로 유입된 사례에 해당했다. “러시아의 광활한 영토 안에서 오로지 일부 대도시에만 역동적이고 활동적인 삶이 집중돼서는 결코 안 될 일이다.”

2018년 푸틴이 의회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마침내 자기반성에 나선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푸틴은 곧이어 이런 말도 덧붙였다. “대도시들이 주변에 에너지를 고루 나눠주며, 러시아 전역의 균형 잡히고 조화로운 지역 개발을 위해 든든한 버팀목이 돼야 한다.”(13) 여기서 키워드는 바로 ‘에너지를 나눠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든 정치 시스템과 예산이 과도하게 중앙에만 집중된 러시아에서, 과연 ‘낙수효과’라는 신화가 현실이 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너무나 먼 게 아닌지…. 

 

 

글·블라디미르 파블로츠키 Vladimir Pawlotsky
프랑스 지정학연구소(파리8대학) 지리학박사과정 연구원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번역위원


(1) Richard Florida, 『The Rise of the Creative Class : And How It's Transforming Work, Leisure, Community And Everyday Life』, Basic Books, 뉴욕, 2002년.
(2) David Bensoussan, ‘Quand les Russes recrutent d'anciens députés français 전직 프랑스 의원을 고용하는 러시아인들’, <Challenge>, 파리, 2019년 1월 5일.
(3) ‘Global Real Estate Markets-Annual Reviez and Outlook’, Knight Frank, 런던, 2009년.
(4) Pascal Marchand, 『Mouscou 모스크바』, Autrement 출판사, Atlas Mégapoles 총서, 파리, 2010년.
(5) Alla Makhrova, Roman Babkine, ‘Méthodologie pour la délimitation des limites de l'agglomération moscovite sur la base des données des opérateurs téléphoniques 통신 정보에 기초한 모스크바 시 경계 획정을 위한 방법론’, <Etudes régionales>(모스크바), 제2호, 2019년, www.smolgu.ru.
(6) Hélène Richard, ‘A Moscou, rêves de liberté et grand embouteillage교통체증과의 전쟁에 지친 모스크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5년 8월호.
(7) 라디오 ‘Ekho Moskvy’와의 인터뷰, 2019년 4월 27일.
(8) Hacène Belmessous, ‘Le Grand Paris ou le pactole pour les bétonneurs그랑 파리, 황금알을 낳는 거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8년 10월호.
(9) <Forbes>, 러시아어판, 모스크바, 2019년 4월 27일.
(10) <RBK>, 2017년 2월 27일, www.rbc.ru.
(11) <Kommersant>, 모스크바, 2019년 12월 29일.
(12) 2017년 법령 제N-497호. 2017년 8월 1일자 모스크바 주택단지 재개발 사업과 관련한 모스크바 시정부 법률 제N-497-PP호. 
(13) Jean Radvanyi, ‘La nouvelle Stratégie de développement territorial russe. Entre volontarisme et utopie?새로운 러시아 국토개발 전략. 야심찬 정책인가, 한낱 유토피아인가?’, <Regards de l'observatoire franco-russe 프랑스-러시아 관측소의 시선>, 파리, 2020년.

 

 

‘인터넷 민주주의’라는 신기루

 

러시아의 수도가 매우 혁신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대적인 국제 건축공모전을 개최하거나, 최근 ‘인터넷 지역민주주의’ 측면에서의 변화가 그것이다. 옛 소련 시절 경직되고 독재적인 역사적 유물 같은 도시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글로벌 도시’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최신 도시 경향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2015년 출범한 인터넷 플랫폼 ‘적극적인 시민’은 오늘날 300만 명의 이용자를 거느리는 한편, 1억 4,000만 건의 의견을 수집하고, 4,500여 건의 안건을 표결에 붙이는 성과를 올렸다. 교통(“모스크바에 지하철 노선을 더 신설해야 할까?”)부터 시작해, 환경(“가로수는 무슨 종으로 심는 게 좋을까?”), 건설(“주차장, 놀이터, 반려견 산책 시설 중 무엇에 더 중점을 둬야 할까?”), 교육(“체험학습에서 다룰 만한 주제는 무엇일까?”), 스포츠(“모스크바 내 어떤 운동장에서 국제 비치 사커대회 개최하면 좋을까?”)에 이르기까지, 총 24개 의제를 다뤘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의제는 빠져있다. 정부당국의 목표와 시민의 답변이 일치할 수 있는 질문만 안건에 올려 시당국의 정책을 합리화하고 있을 뿐이다. 여하튼 모스크바 시는 시민들이 꾸준히 플랫폼을 이용하도록 각종 유인책을 쓰고 있다. 가령, 가장 성실한 이용자에게 기념품, 옷, 공연티켓, 주차권, 교통이용권, 할인코드 등 다양한 선물을 제공하고 있다. 

이런 ‘인기 전술’을 토대로 모스크바 시는 다양한 개인정보를 널리 수집하고 있다. 대개 설문조사에는 익명으로 응할 수가 없다. 참여자는 거주지나 직장주소, 이메일주소, 자녀수, 직업, 미적·정치적 취향 등 다양한 정보를 입력해야 한다. 한 마디로 유권자 맞춤형 선거 전략을 펴는데 아주 유용한 자료인 셈이다. 

 

글·벤자민 페르난데스
조지 워싱턴 대학교(Washington DC)교수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모든 길은 모스크바로 통한다

 

“모스크바는 러시아가 아니다.” 이 말 속에는 다분히 모스크바의 통계학적 현실이 투영돼 있다. 2018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인구 530만 명)를 앞지르며, 러시아 최고의 도시로 등극한 모스크바는 1,260만 명의 인구를 기록했다. 사실상 러시아 총인구의 8%에 불과한 수치였다. 

반면 모스크바 시의 총예산은 제정 러시아의 옛 수도 대비 4배에 달했으며, 부의 창출 면에서도 더 우세했다. 가령 모스크바는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의 21%를 차지했다. 반면 대부분의 러시아 지역의 현실은 수도와는 전혀 사정이 달랐다. 교통망이 심각할 정도로 열악한가 하면, 대부분의 생산품이 현지시장에서 소비됐고, 관광업도 전무했다. 

사실 2013년 외국계기업 자회사들 중 약 60%가 모두 모스크바 한곳에 집중됐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사실 러시아의 수도 집중현상은 파리(73%), 도쿄(70%), 런던(69%) 등에 비해 크게 두드러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프랑크푸르트(18%), 뉴욕(16%) 등 다른 연방국가의 도시들과 비교하면 확실히 심각한 수준이다.(1) 

 

글·블라디미르 파블로츠키
파리8대학 연구원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번역위원


(1) Olivier Di Lello, Céline Rozenblat, ‘Les réseaux de firmes multinationales dans les villes d'Europe centre-orientale 중동유럽 도시 내 다국적기업 조직망’, <Cybergeo>, 제678호, 2014년 6월 20일, http:// journals.openeditio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