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의 봄’ 예고하는 카자흐와 우즈벡

기로에 선 중앙아시아 독재정권

2020-10-30     마를렌 라뤼엘 | 조지 워싱턴대 교수

대부분의 중앙아시아 국가는 한 명의 권력자가 수십 년간 나라를 통치했다. 이런 전제군주들이 물러난 이후 정권을 잡은 권력자들은 많은 위험을 품고 있는 정치적 전환을 통제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청년 인구가 많고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의 압력에 직면한 신임 권력자들은, ‘아랍의 봄’이 다시 올까 두려워하며 개방과 연속성 사이에서 망설이고 있다.

 

독재정권은 일반적으로 권력 이양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절대권력을 쥔 독재자가 고령, 사망을 이유로 정권을 내놓아야 할 때 그렇다. 불안정하거나 비합법적인 정치기관으로 구성된 대부분의 중앙아시아 국가 체제는 최근 몇 년 동안 이런 민감한 상황을 겪었다. 1991년 독립 이후 현지 공산당 서기장에서 초대 대통령이 된 경우가 대부분인 권력자들이 수십 년간 유지해온 국가의 최고위직을 잇따라 내려놨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와 우즈베키스탄의 이슬람 카리모프는 각각 2006년과 2016년 별세했다. 카자흐스탄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는 2019년 3월 78세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28년간 타지키스탄을 통치해온 67세의 에모말리 라흐몬 대통령도 정권 이양을 고려하고 있다. 

다만 키르기스스탄은 예외다. 민주적 선거와 민중혁명으로 정권 교체를 이룩했다. 경제적 입장이 다른 각각 남쪽과 북쪽 지방 부족에 충성하는 정파로 나뉜 사회 지도층이 혁명을 주도했다. 2005년과 2010년, 두 번에 걸쳐 정부가 전복됐다. 2017년 당선된 소론바이 제엔베코프 대통령은 다원주의 구현과는 거리가 멀지만, 주변국 권력자들과 비교하면 그래도 민주적인 편이다. 덕분에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야당에 대한 탄압이 덜하고 시민 사회가 상대적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여러 정권이양 모델이 시험대에 올랐다. 투르크메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건국의 아버지’들이 공개적으로 후계자를 지정하지 않은 채 사망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의 뒤를 이은 이들은 이미 정부의 일원이었던 보건부 장관 구르방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투르크메니스탄)과 총리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우즈베키스탄)였다. 이들은 대항하는 경쟁자들을 은밀히 제거하고 정권을 차지했다. 타지키스탄의 라흐몬 대통령은 수도 두샨베의 시장을 맡고 있는 자신의 아들 루스탐에게 ‘왕관’을 물려주려 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의 헤이다르 알리예프 대통령이 2003년 수도 바쿠에서 아들 일함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준 것처럼 말이다. 

 

우즈베키스탄의 ‘페레스트로이카’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전례 없는 정권전환 방식을 보여줬다. 대통령이 민중의 압력 없이 스스로 물러난 후 스스로 적당한 지위를 부여해 후임 대통령을 감독하고 있다. 30년 가까이 대통령으로서 카자흐스탄을 통치한 나자르바예프는 이제 안전보장이사회, 집권당인 누르 오탄당, 그리고 그 자신의 자진사퇴를 계기로 만들어진 ‘초대 대통령실’과 같은 기관의 수장을 맡아 국가를 계속 통제하고 있다. 

나자르바예프의 장녀 다리가는 지난 5월 초까지 상원의장을 역임했으며, 사위 티무르 쿨리바예프는 에너지, 전기, 철도 등 핵심 분야의 국영 대기업들을 소유한 삼룩 카즈나 홀딩스를 이끌고 있다. 다리가가 상원의장직에서 갑작스럽게 해임당한 것을 보면 나자르바예프 일가가 나라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것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현 대통령의 의지가 엿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자르바예프 일가는 여전히 권좌를 유지 중이다. 

정권의 전환방식만으로 체제의 변화 방향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 시절 10년 넘게 총리로 재직하며 충성한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이 2016년 취임 이후 이토록 단호하게 개혁을 추진할 것이라고 예측한 외부 전문가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소련 붕괴 이후 국가의 엄격한 통제를 받아온 우즈베키스탄 경제는 이제 자유주의 처방으로 치유 중이다. 자국 통화인 숨의 태환성(다른 나라 통화와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개선되고 있다. 중소상점들의 경쟁 제한이 철폐됐으며, 세관과 조세 당국을 비롯한 ‘수탈기관’의 권력이 제한됐다. 

정부는 2020년 상반기에 3,480억 숨(2,900만 유로) 가치의 자산 299개를 양도했다. 앞으로 1,000개 이상의 추가자산도 민간투자자들에게 넘길 예정이다. 지난 3월에는 연간 국부창출의 1/4을 담당하며 국가가 의무생산량을 정하던 목화생산을 자유화했다.(1) 하지만 이 ‘우즈베키스탄의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 구소련의 개혁정책)’가 국가의 진정한 민주화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 대통령이 속한 여당이 정계를 지배하고 있으며 다른 인가 단체들은 들러리에 그치고 때문이다. 

그러나 개방의 바람이 불고 있다. TV토론이 맹위를 떨치고 있으며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상에서는 폭발적인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개개인이 자유롭게 의견을 표출하며 두려움이 조금은 사라졌다. 하지만 지난 6월 2일, 온라인 신문들이 페르가나주의 한 마을 주민들과 주지사 사이의 분쟁을 보도하자 당국은 관련 기사들을 삭제했다. 대통령 본인도 해당 주지사를 비난해 왔음에도 말이다. 유력 정치인을 비난하는 행위는 여전히 체포될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하지만 이런 개방의 바람이 놓칠 수 없는 기회라는 것을 깨달은 청년세대는 희망에 부풀어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권력의 이양이 우즈베키스탄에서와 같은 변혁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전문 외교관 출신인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 나자르바예프의 독재노선을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나자르바예프는 카자흐스탄의 정계를 여전히 좌지우지하고 있다. 일례로 작년 11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린 중앙아시아 정상회의에 토카예프 현 대통령 대신 참석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대통령 교체는 새로운 ‘테크노크라트(technocrat, 전문 지식을 갖춘 관료)’ 세대의 등용을 가능케 했다. 이 40대의 전문관료들은 석유가 연간 국가수입(收入)의 30%, 수출의 2/3를 차지하는 경제구조를 다변화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2)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계 경제가 침체된 현 상황에서 아직 소극적인 이런 노력이 국가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카자흐 정권, 대외정책 맹신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정부는 코로나19 위기에 꽤나 성공적으로 대처하고 있으며 자국의 어려운 보건문제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은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 이 두 국가의 정권 전환방식은 중앙아시아 지역의 지정학적 정세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다시 한 번 노선의 전환을 추구하고 있다. 특히 수자원과 에너지 문제 해결을 위해 20년간의 고립주의 정책을 끝내고 역내 협상 테이블에 복귀했다. 각각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과의 국경을 가로지르는 두 개의 강, 아무다리야와 시르다리야의 사용을 놓고 우즈베키스탄이 양국과 벌이던 갈등이 잦아들었다. 2016년의 노선변경 이후 중앙아시아 5개국 대통령은 여러 차례 회동을 가지며 이 국가 간 협력과 지역 통합체 결성을 바라는 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줬다.

미르지요예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의 지역주의에 대한 신념은 강대국의 영향력 배제를 뜻하지는 않는다. 러시아는 우즈베키스탄과의 관계에서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 특히 지난 3월,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참관국 지위를 수락하며 정식 가입을 향한 첫발을 내딛은 이후 양국은 탄탄한 관계를 유지 중이다. 러시아를 앞질러 중앙아시아의 최대 교역 상대국인 중국도 이 지역과의 경제적 유대 강화를 체계적으로 추진 중이다. 2018년 우즈베키스탄 고위급 장교들의 미국 기관 내 연수가 재개되면서 특히 전략 분야에서의 미국과의 관계 또한 강화되고 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연속성이 지배하고 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전임자와 마찬가지로 실질적으로는 러시아에 경제적, 특히 전략적으로 크게 의존하면서도 러시아, 중국 그리고 서구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다방향·다규모(multi-vector)’ 대외정책을 맹신하고 있다. EAEU 가입으로 인한 실질적인 경제적 혜택은 미미하다. 자국 기업들은 한편으로는 러시아 기업들과의 경쟁에 내몰렸고, 다른 한편으로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서구가 러시아에 부과한 제재의 부차적인 피해자가 됐다. 러시아 기업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부터 서구 투자자들도 잃어버렸다. 최근 몇 년 사이 러시아의 군사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전략 분야의 자립성도 더욱 낮아졌다. 

현재 대통령이 누구인지 상관없이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동일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2014년 이후 러시아 루블화를 따라 자국 화폐의 가치가 하락했으며 이주 노동자들의 본국 송금액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런 송금액이 여전히 국내 총생산(GDP)의 1/3~1/2을 차지하는 타지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에게는 재앙과 같은 상황이다. 앞으로 닥칠 전 세계적인 경제침체는 중앙아시아의 경제를 악화시키고 구소련 독립국 중 가장 가난한 두 국가인 타지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을 더욱 불안정한 상황으로 몰아넣을 전망이다. 세계 경제의 침체는 중앙아시아 지역, 특히 카자흐스탄을 러시아와 유럽으로 연결되는 환승 요충지로 만들 그 유명한 중국의 ‘실크로드’ 사업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3) 

 

청년층에서 확산되는 ‘저항 정신’

카자흐스탄에는 ‘지역 간 불평등 해소’라는 또 하나의 과제가 있다. 가장 빈곤한 남부지역에서는 열악한 의료시설, 부족한 교사 수, 높은 청년 실업률, 어린 소녀들의 강제 조혼 등 사회지표가 많이 악화된 상황이다. 반면 아티라우와 망기스타우가 위치한 서부지역은 풍부한 석유자원으로 부를 축적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지역 간 불평등이 남부지역 주민들의 불만을 유발하고 이슬람주의를 확산시키고 있다. 지난 20년간 탄화수소 개발 혜택에서 소외된 농촌 지역을 위해 수입 분배의 개선이 필요하다. 현재까지는 그 수가 늘고 있는 도시의 중산층이 그 혜택을 독점해왔다.

7,000만 명 남짓한 중앙아시아 인구의 절반 이상이 25세 미만이다. 카자흐스탄을 제외한 다른 모든 국가에서 이 청년 인구는 농촌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아랍의 봄’을 모방해 사회·정치 체제를 뒤흔들 수 있는 ‘젊은 국민’의 위협을 모든 중앙아시아 정부가 느끼고 있다. 역내 주요 두 국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시민 사회가 형성되고 있다. 시민 사회는 집권층에 한층 높은 투명성과 책임감, 그리고 국민투표를 통한 시민의 목소리 반영을 요구하며 당국에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재산권 문제가 도시는 물론, 농촌 지역까지 동요시키고 있다. ‘두바이’를 모방한 상업지구 타슈켄트 시티 건설이라는 국가사업으로 수도의 역사적인 도심부에 거주하는 수천 명의 주민이 쫓겨날 처지가 되자, 전례 없는 대규모 시위가 SNS를 통해 조직됐다.(4)

카자흐스탄에서는 두 개의 저항세력이 부상하고 있다. 비록 이웃 러시아에 비하면 아직 태동단계지만, 도시에서는 도심 자동차 통행, 쓰레기 처리, 전기료와 난방료, 도심 밀집화 등 도시화와 환경문제를 중심으로 새로운 적극적 행동주의가 생겨나고 있다.(5) 2019년 봄, 도시의 중산층 청년들은 수도의 명칭 ‘아스타나’를 나자르바예프에 대한 숭배의 상징인 ‘누르술탄’으로 변경하는 것에 반대했다. 그리고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체포되고 유죄판결을 받으면서 시위는 곧 진압되고 말았다.(6)

이런 탄압 속에서도, 카자흐스탄 청년들의 움직임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시민운동단체 ‘깨어나라, 카자흐스탄(카자흐스탄어로 Oyan, Qazaqstan)’으로 점차 구심점을 옮겨갔다. 이 단체의 이름은 20세기 초 민족주의 운동인 ‘알라시 오르다(카자흐스탄 부족. 카자흐스탄어로 Alash Orda)’의 창시자 중 한 명인 시인 미르자키프 둘라툴리의 시에서 따왔다. ‘깨어나라, 카자흐스탄’은 다양한 집단이 벌이는 시민운동의 대표적인 구호로 자리매김했다. 러시아의 온라인 반부패 활동가 알렉세이 나발니를 모방하는 젊은 정치 활동가, 예술가, 화가, 래퍼, 유튜브 인기스타, LGBT+(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및 다른 성소수자를 포함하는 +의 합성어) 운동가 혹은 알마티 근교 콕 자일라우 산맥 스키장 건설을 반대하는 환경운동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청년들이 활발하게 참여하는 카자흐스탄의 시민운동은 비록 대중적인 지지는 거의 얻지 못하고 있지만 공공부문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싶은 열망을 대변하고 있다.

저항 정신의 각성은 수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토지 측량 개혁법이 외국인에게도 경작 가능한 토지의 임차권을 허가하자, 중국 기업들이 자국의 농업을 독점할 수 있다는 불안이 확산됐다. 그 결과 소외된 소도시와 농촌 마을에서도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토지에 대한 권리는 상징적인, 국가적 권리이기 때문이다. 지방의 불만 고조는 당국을 불안하게 했다. 당국은 카자흐스탄어 사용 인구가 많은 지방을 국가 건설의 주축이자, 정권 지지층으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반면 러시아어 사용자와 세계주의자가 많은 도시 중산층은 반항아로 여겨왔다. 여전히 불확실한 정치적 전환기에 있는 중앙아시아의 정권들은 앞으로 닥쳐올 위기를 맞아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하나는 국민의 참여확대 요구에 귀를 기울이며 포스트 팬데믹 시대의 긴축정책을 수용하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 반대로, 억압정책으로 선회하는 것이다. 특히 러시아를 포함한 역내 및 전 세계의 지정학적 정세의 변화 또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미래의 방향을 결정지을 선택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글·마를렌 라뤼엘 Marlène Laruelle
조지 워싱턴 대학교(Washington DC)교수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Étienne Combier, ‘Ouzbékistan libéralise entièrement la production du coton 우즈베키스탄 목화 생산 전면 자율화’, <Novastan>, Paris, 2020년 3월 8일, www.novastan.org
(2) Dominique Menu, ‘Le Kazakhstan, une puissance énergétique méconnue dans un environnement incertain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에너지 강국 카자흐스탄’, <Connaissance des énergies>, Paris, 2019년 6월 7일, www.connaissancedesenergies.org
(3) Arthur Fouchère, ‘Les routes de la soie passant par le Kazakhstan 카자흐스탄을 통과하는 실크로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7년 9월
(4) Dilmira Matyakubova, ‘Who is “Tashkent city” for? Nation-branding and public dialogue in Uzbekistan’, CAP Paper 205, Washington, 2018년 6월, http://centralasiaprogram.org
(5) Daniyar Kosnazarov, ‘Do-It-Yourself Activism: Youth, Social Media and Politics in Kazakhstan’, CAP paper 217, Washington, 2019년 2월
(6) Marlène Laruelle, ‘On Track to a Kazakh Spring?’, <The Diplomat>, Washington, 2019년 7월 1일, http://thediplomat.com

 

 

서구의 가치와 보수주의로 나뉜 청년들

 

인구의 절반 이상이 25세 미만인 중앙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젊은 지역 중 하나다. 중앙아시아에서 평균 연령이 가장 높은 카자흐스탄 국민의 51%가 1991년 독립 이후 출생자다. 2000년대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2010년대에 태어난 Z세대의 부상은 복지국가 소련의 붕괴와 이후 3세기에 걸친 자유주의적 개혁의 산물인 사회·문화적 분화를 동반한다.

농촌 지역에서 가능한 산업은 농업과 비공식 영세소매업이 전부이며, 일자리는 대부분 열악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유일한 희망은 ‘이주’다.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베리아(크라스노야르스크), 극동지역(블라디보스토크)이나 북극지역(무르만스크, 야쿠츠크)으로 소자본을 모으러 떠나는 것이다. 지방의 소도시들은 교육, 의료, 산업, 문화, 재원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부 소도시의 시민들은 이라크-시리아 전쟁터로 떠나는 경우도 있다. 카자흐스탄 제스카즈간 인근의 옛 탄광촌에서는 자발적으로 지하드에 동참하러 떠나는 청년 수가 늘고 있다.(1) 

반면, 대부분 수도인 대도시들에서는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진다. 특히 신흥 중산층 자녀들은 부모의 경제력을 통해 과외수업, 해외유학 등의 교육혜택을 누린다. 대도시에서는 폭넓은 문화활동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접속도 가능하다. 타지키스탄 청소년의 60% 이상이 정기적으로 인터넷을 이용하지 못하는 반면(2)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 알마티에서는 최신 유행의 술집, 유기농 음식점, 대안 문화공간, ‘글로컬’(세계화를 뜻하는 globalization과 지방화를 뜻하는 localization의 합성어)한 관행들이 생겨나며 힙스터 문화가 발전하고 있다. 

청년세대의 생활양식이 다양해진 만큼, 이념도 분극화되고 있다. 카자흐스탄에 대한 심층 연구(3)가 이를 잘 보여준다. 종교 중에서 이슬람의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에서는 대다수 청년이 보수적인 도덕관을 추구하며 전통적인 가치를 인정한다. 전통적인 가치란 애국심, 연장자 존경, 이성간 결혼에 의한 가족 구성 보존, 소수민족과 성소수자의 권리 부정을 말한다. 카자흐스탄 청년의 2/3 이상이 낙태에 반대하며, 동성애를 용인하는 비율은 4%에 그쳤다.(4) SNS나 대학에서는 젠더(gender)나 성(性) 정체성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카자흐스탄에 널리 보급된 러시아 언론은 이 두 주제를 가지고 ‘Gayvropa’(‘게이화된’ 유럽을 뜻하는 러시아어)라고 주기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많은 결혼 적령기 남성들이 떠났기 때문에, 일부다처제를 수용하는 25세 미만 여성들이 늘고 있다. 일부다처제는 공식적으로는 금지됐지만, 엘리트 계층의 남성들은 사회적 성공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다. 과거 소련 시절 획득한 여성의 권리가 법률의 변화가 아닌 사회적 관행의 변화로 인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도덕적 보수주의가 여전히 존재 

이 보수주의적인 다수와 정반대 이념을 지닌 두 가지 소수가 있다. 첫 번째는 수도에 사는 청년들이다. 대부분 고학력자로 외국어를 구사하며, 유럽과 아시아를 자유롭게 여행하고, 다문화와 진보주의적 가치를 변호한다. 현지의 실정과 동떨어진 이들은 때로는 ‘외국 스파이’나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람으로 취급당하며 부정적인 시선을 받는다. 두 번째는 극우보수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사상을 사회에 전파하기 위해 결집할 준비가 된 청년들이다. 

물론 이런 보편적인 특성은 국가마다 다르다. 일례로 투르크메니스탄의 경우 여론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 카자흐스탄의 상황은 2011~2012년 보수주의로의 전환이 사회적 토론을 지배하기 시작한 이후의 러시아와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경우 크렘린궁에서 직접 나서서 전통적인 가치를 장려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인종 민족주의가 확산되고 있으며 ‘Kyrgyz Choroloru’(키르기스 기사단 Kyrgyz Knights)를 비롯한 애국운동 단체가 거리를 순찰하며 질서를 유지하는 군대식 자경단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의 단속대상은 외국인, 서양인, 중국인이다. 매춘부, 동성애자, 외국인과 데이트하는 키르기스스탄 여성이 단속에 걸리면 나라를 더럽히고 전통을 파괴한다는 명목으로(5) 카메라 앞에서 매질을 당한다.

국민의 1/3이 이슬람 종교 율법인 샤리아(Sharia)법 도입에 찬성하는 타지키스탄의 청년들은 특히 이주 과정에서 살라피스트(salafist 이슬람 수니파 근본주의자) 단체나 경건파 단체에 가입하는 경우가 많다.(6) 러시아 이주 후 굴욕적인 환경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자긍심을 되찾고,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고, 경건함의 후광에 둘러싸인 채 귀향할 길을 이슬람 순수주의에서 찾았다.(7) 오랫동안 대외의 시선을 차단한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사회적인 흐름의 방향이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SNS에 이슬람주의자들의 활동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이곳에서도 도덕적 보수주의로의 전환이 이미 시작됐음을 예상할 수 있다.(8)

공공장소에서의 이슬람의 지위는 중앙아시아 청년들이 합의점을 찾아야 할 주요쟁점이다. 소수의 러시아인, 슬라브족, 정교회 신자를 제외한 대다수의 중앙아시아 청년들은 자신을 이슬람 신자로 여긴다. 하지만 이들 내부에서도 종교와의 다양한 관계가 존재한다. 어떤 이들은 부모님 세대의 유산을 이어받아 민족적 전통으로 이슬람을 받아들인다. 이들은 제한된 문화생활을 즐기면서도 할례, 장례, 성지 순례, 술과 돼지고기 금지, 구빈세(Zakat 무슬림들이 자선을 위해 재산의 일정 비율을 의무적으로 납부하는 것) 납부 등의 종교적 관습을 지킨다.

 

UAE와 말레이시아에 매력을 느끼는 청년들 

한층 더 엄격하게 이슬람의 원칙을 지키는 청년들의 수도 늘고 있다. 이들은 할랄푸드만 먹고, 1일 5회 기도하고, 전통적인 남녀 구분을 지키고, 학교에서의 이슬람 교육을 장려한다. 1991년 이후 세속국가로 남은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학교에서 종교교육을 하지 않는다. 할랄푸드는 최근 몇 년 사이 이 지역 국가들에서 소비가 증가해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에서는 도시 중·상류층의 문화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일정한 부를 축적한 기업인 가족들은 경제적인 성공을 도덕적 선행에 대한 신의 보상으로 간주한다.(9)

많은 해외 전문가들은 중앙아시아 지역을 터키식 이슬람과 이란식 이슬람으로 구분하지만, 청년들은 세계화와 현대화된 기술, 도덕적 엄격함을 겸비한 아랍에미리트에도 많은 매력을 느낀다. 권위주의, 경제적 번영, 이슬람 정체성이 혼재하는 말레이시아 역시 이 지역 청년들을 사로잡고 있다. 소수지만 더 극단적인 이슬람을 주장하며 자신들의 제약을 사회에 강요하는 자생적인 살라피스트들도 있다. 이들은 소련의 유산인 세속주의를 부패와 현 정권들에 만연한 족벌주의의 원인으로 여기며 타파해야 하는 적으로 간주한다. 

이처럼 여러 집단 사이의 대립 한 가운데 히잡(hijab) 문제가 존재한다. 이슬람 신자들은 히잡 착용에 대해 ‘개인의 선택’과, ‘의무’라는 두 가지 입장을 보이고 있다.(10) 중앙아시아의 젊은 세대들은 점점 커지는 문화적 갈등 해소와 경제발전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사회모델 구상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글·마를렌 라뤼엘 Marlène Laruelle
조지 워싱턴 대학교(Washington DC)교수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Noah Tucker, ‘Terrorism without a god. Reconsidering radicalization and counter-radicalization models in central Asia’, CAP papers, n° 225, Washington DC, 2019년 9월, https://centralasiaprogram.org
(2) ‘Adolescent baseline study 2018’, Center for Strategic Research under the President of Tajikistan, 2018년 7월(유니세프 공식 홈페이지 www.unicef.org 에서 열람 가능).
(3) Marlene Laruelle (편찬), 『The Nazarbayev Generation. Youth in Kazakhstan』, Lexington books, Lanham, 2019.
(4) Tolganay Umbetaliyeva, Botagoz Rakisheva, and Peer Teschendorf, ‘Youth in central Asia: Kazakhstan’, Friedrich Ebert Foundation Kazakhstan, Almaty, 2016.
(5) Zhyldys Orospakova, ‘“Kyrgyz tchorolorou”— echtchio odna peshka v polititcheskikh igrakh’, Radio Azattyk, Almaty, 2015년 2월 16일, https://rus.azattyk.org
(6) ‘The world’s muslims: religion, politics and society‘, Pew Research Center, Washington DC, 2013년 4월 30일.
(7) Sophie Roche, ‘Illegal migrants and pious muslims. The paradox of bazaar workers from Tajikistan’, in Marlene Laruelle (편찬), 『Tajikistan on the Move. Statebuilding and Societal Transformations』, Lexington books, Lanham, 2018.
(8) Eldar Asanov, ‘Who are the new uzbek opinion leaders on social media?’, in Marlene Laruelle (편찬), ‘New Voices from Uzbekistan,’ Central Asia program, Washington DC, 2019년 5월.
(9) Aurelie Biard (편찬), ‘“Bourgeois” islam, prosperity theology and ethics in muslim Eurasia’, CAP Paper n° 198, Washington DC, 2018년 1월.
(10) Emil Nasritdinov, Nurgul Esenamanova, ‘The war of billboards: hijab, secularism and public space in Bishkek’, Central Asian Affairs vol. 4, n° 2,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