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에 휘둘리는 국가채무의 진실

특권층이 ‘국민 겁박하기’를 계속하는 배경

2020-10-30     최배근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문재인 정부의 국가채무 악화는 국가신용등급 강등과 파국을 부를 것이다.” “전 국민 빚더미, 국민 빚잔치, 한국 국가부도 위험 2배 증가, 제2의 외환위기 우려 고조 등등….” 

올해도 보수언론들은 숱한 가짜뉴스들을 쏟아냈다. 가짜뉴스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저주’는 예고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등장은 2016년 촛불시민혁명의 결과였다. 촛불시민의 요구는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이었다. 국민이 부여한 공적 권한을 사적 이득 추구에 사용하는 불공정과 반칙을 청산하라는 명령이었다. 상식이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이런 촛불시민의 요구, 즉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은 특권층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특권이 불공정과 반칙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을 제대로 하지도 않았음에도 거칠게 저항하는 이유는 더 밀리면 자신들의 특권이 흔들릴 것이라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본토왜구의 지원을 받은 토착왜구

한국사회의 특권층은 식민지 경험이 없는 서양의 특권층과 달리, 매판적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한국에 대한 외세의 지배력 혹은 영향력을 전제로, 그 구조에 기생해 자신의 특권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길게 보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짧게 보더라도 일제 식민지 이후 이런 구조는 재생산돼 왔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불공정 및 반칙의 청산, 특권의 폐지를 요구하는 촛불시민과 양립할 수 없다. 매판적 특권층이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기 가장 쉬운 고리가 한반도(북한)와 경제 문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의 한반도 분위기는 전쟁설까지 나오는 등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치달았다. 그러나 이 험악한 분위기는 2018년 평창올림픽을 전후로 급반전되고, 급기야 그해 4월과 6월에는 각각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한반도 긴장 완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반도 평화체제로의 전환 가능성에 가장 큰 위협을 느낀 것은 누구일까? 분단에 기생하는 매판적 특권층과 일본의 극우세력, 미국 군산복합체 등일 것이다. 2018년 봄 ‘한반도 위기 조성’ 카드가 실종된 상황에서 매판적 특권층이 경제 이슈로 공격 방향을 잡은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보수언론은 고용참사, 분배참사 등을 지면에 도배했다. 그러나 실상 고용참사, 분배참사는 2019년 자취를 감췄고 모두 가짜뉴스였다. 

또한 토착왜구를 지원하기 위해 본토왜구는 2018년 하반기에 경제도발을 시작했다. 한국의 핵심 산업인 반도체산업을 어렵게 함으로써 경제 혼란을 통해 문재인 정부를 길들이려는 시도였다. 문재인 정부는 토착왜구와 본토왜구, 모두에게 ‘공동의 적’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보수언론은 한결같이 “기업을 힘들게 하지 말라”, “정부가 나서서 일본과 외교적으로 풀어라”라고 요구했다. 결국 일본 아베정부에 굴복하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한국의 예상 피해는 과장하고, 일본의 예상 피해는 축소하며 가짜뉴스를 쏟아냈다. 그러나 촛불시민은 불매운동과 ‘No Abe!’ 등으로 맞섰고, 시간이 갈수록 국내 언론의 보도는 가짜뉴스로 판명됐다. 

매판적 특권층과의 일전은 불가피해졌고, 그 출발점은 검찰개혁일 수밖에 없었다. 정치검찰이 지배하는 한국의 검찰은 매판적 ‘특권층 카르텔’의 방패막이로 부역해왔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의 상징인 조국 교수의 법무부장관 임명을 놓고 정면충돌한 이유다. 촛불시민은 조국 수호와 검찰개혁을 위해 일어났고, ‘공수처 설치법’ 국회 통과를 이뤄냈다.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매판적 특권층은 개정된 선거법을 악용해 국회 장악을 시도했다. 물론 공수처 설치법을 되돌리고, 문재인 정부를 식물정권으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촛불시민은 다시 일어섰고 4·15총선을 대승으로 이끌었다. 매판적 특권층은 코로나19 재난으로 경제가 어려워질 것이고, 선거를 쉽게 이길 것으로 예상했으나, 오히려 한국의 높은 시민의식 수준이, 코로나19 위기를 국가위상을 높이는 기회로 만들었다. 

 

국가채무 음모론의 목표, ‘경제 망치기’

위기에 빠진 매판적 특권층은 총선 이후에도 윤미향과 정의기억연대 사태, 박원순 시장 사망, 추미애 법무부장관 아들 휴가 특혜 의혹 등을 활용해 지속적으로 국면 전환을 노리며,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를 이슈화시켰다. 코로나19 재난 사태에 따른 경제 붕괴로 경제 이슈도 국가재정으로 옮겨갔다. 성장률은 마이너스(-)로 후퇴했지만, OECD에서 가장 선방하고 있고, 올해 성장률뿐만 아니라 올해와 내년까지 합산한 성장률도 가장 높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결국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경제 참사’도 쟁점이 되지 못했다.

사실 매판적 특권층이 국가재정, 국가부채 이슈를 들고나온 목적은 따로 있다. 국가재정 사용을 제한시켜 경제성과를 훼손시키고자 함이다. 4·15총선 참패의 핵심 원인이 방역 성공에 있다고 보고,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넘는 반사회적·반인간적 ‘바이러스 테러’(8·15 집회)를 시도한 것이다. 즉, 집회의 목적은 방역을 방해하려는 것이고, 방역을 방해하려는 목적은 경제를 망가뜨리려는 것이다. 특권층의 목적인 문재인 정권의 좌초를 위해서라면 국민의 생명이나 재산 등의 피해는 안중에 없다. 팬더믹 상황에서 경제성과를 훼손시키는 최대 요인은 재정 투입을 막는 것이다. 

팬더믹은 소비-유통-생산-유통-소비로 연결된 시장생태계를 끊어놓았고, 재정은 ‘시장생태계의 파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마지막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특권층은 버팀목을 제거해 경제가 망가지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설마 그들이 경제가 망가지는 것을 바라겠는가’라고 생각한다. 순진한 생각이다. 경제가 망가져도 특권층은 손해를 입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가 망가지면 경제적 취약계층에게 피해가 집중된다. 지구상의 모든 국가가 국가재정으로 위기에 대응하고 있는 가운데 국가재정 사용을 반대하는 논리에 ‘국가채무’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활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보수언론이 쏟아낸 국가채무에 대한 주장들은 특권층 자신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가짜뉴스라는 점이 확인된다. 

 

국가채무는 ‘악’인가?

우선 채무(debt)와 적자(deficit)를 구분해보자. 적자는 일정 기간(예: 1년) 내 수입과 지출을 정리한 결과 지출이 수입보다 많은 경우다. 반면 채무는 적자 누적의 결과다. 예를 들어 지난해 채무가 100이 있는데 올해 적자가 50이 발생하면 올해 말 채무는 150이 된다. 이번에는 채무(debt)와 부채(liability)의 차이도 짚고 넘어가자. 채무는 차입한 돈으로 반드시 상환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다. 모든 채무는 부채에 포함되지만 모든 부채가 채무는 아니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주택담보대출금이나 자동차 구입자금 대출 등은 ‘채무’다. 반면 헬스센터가 회원에게 1년 회비를 받았을 때 회원에 대한 서비스 제공이 완료될 때까지 회비는 ‘부채’가 된다. 마찬가지로 ‘국가채무’와 ‘국가부채’ 사이에도 차이가 존재한다. 용어가 혼용되기도 하지만 국가채무 음모론자들은 공기업 부채나 공무원·군인·사학연금 지원금 등이 포함되지 않아 국가채무가 과소평가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국가채무는 국제(IMF)기준에 의하면 정부가 직접적인 상환의무를 부담하는 ‘확정된 채무’로 정의한다. 

국가가 보증한 채무는 원채무자가 원리금 상환의무를 다하지 못할 때만 국가채무로 전환되는 미확정채무다. 확정채무인 국가채무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4대연금의 잠재부채(책임준비금 부족분)가 국가채무에 포함되지 않는 이유도 연금개혁 등 정책환경 변화에 따라 가변적인 ‘미확정채무’이기 때문이다. 부채에 포함되더라도 변할 수 있기에 정확성이 떨어진다. 즉 (정부가 암묵적으로 보증을 하는, 그러나 명시적으로는 보증하지 않는) 공기업 부채를 국가채무에 포함하지 않는 이유도 시장성을 갖춘 공기업이 독립적인 경영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채이며, 경영 결과에 따라 국가가 상환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가부채는 국가채무를 정확히 반영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국제비교도 어렵기에 중앙정부채무와 지방정부채무를 포함한 이른바 일반정부채무로 국한한다. 게다가 국가채무는 (조세 등 국민부담으로 상환해야 할 채무인) 적자성 채무와 (자산매각, 융자금 회수 등으로 자체 상환이 가능한 채무인) 금융성 채무로 구분한다. 즉 일반인이 생각하는 ‘진짜 채무’는 적자성 채무 정도다. 예를 들어 우리가 1,000만 원을 빌려서 주식을 투자했을 때 1,000만 원은 상환의무가 있는 채무다. 그러나 주식을 팔아 상환을 할 수 있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채무’와는 차이가 있다.

대표적인 금융성채무로 달러나 유로화 등 외화를 확보하기 위해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을 10억 달러 발행하면 10억 달러의 국가채무가 증가하지만 이 10억 달러의 채무는 외화를 처분해서 상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민부담은 아니다. 또 하나가 분양주택·임대주택 등 국민주택의 건설지원, 주택의 구입과 전세임차에 필요한 자금 지원, 국민주택 건설을 위한 대지 조성 및 주거환경 개선 등의 사업에 필요한 자금조달을 위해 발행하는 국민주택채권도 국가채무에 포함된다. 그러나 주택 분양 대금이나 대출금 회수, 대지 매각 등으로 상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민이 부담할 채무는 아니다. 2019년 말 기준 국가채무는 723.2조원이고, 이 가운데 적자성채무가 407.6조원, 금융성채무가 315.6조원이다. 우리가 언론을 통해 듣는 국가채무 중 국민 혹은 미래세대가 상환할 채무는 56%에 불과하다.

다음으로 채무에 대한 균형 있는 사고가 필요하다. 부채 없이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가계나 기업 중 부채가 많은 이들은 고소득층이나 대기업이다. 국가도 경제규모가 큰 국가, 혹은 이른바 선진국의 부채규모가 크다. 부채는 미래소득을 앞당겨쓰는 것이다. 경제학에서 부채는 ‘시점 간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긍정적 역할의 수단으로 평가한다. 예를 들어보자. 투자 시점이 중요한 기업이 새로운 사업에 진입하려 할 때 내부에서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이 불충분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자금을 모을 때까지 투자를 미루는 것보다는 외부에서 자금을 동원해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설사 내부에 여유자금이 있는 상황에서도 외부자금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예상하지 못한 경영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적당한 유동성 확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계도 마찬가지다. 고소득자나 고액 자산가가 많은 부채를 가지는 이유다. 

실제로 국가부채 0%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는 한 명도 없다. 어느 정도 국가부채는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국가부채가 적절한지는 뒤에서 논의하고, 먼저 국가부채는 가계나 기업 등 민간부채와 근본적으로 차이점을 가진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민간부채는 일정 기간 내 반드시 상환해야만 한다. 반면 국가부채는 사실상 원금상환의 부담이 없을 뿐 아니라 가장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특수성을 가진다. 무엇보다 국가부채는 조세를 거둘 수 있는 조세권으로 뒷받침된다. 그리고 국가부채의 특권(?)은 현대사회의 중앙은행 시스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일반인들의 선입견과 달리 중앙은행은 국가권력과 은행자본 간 이해 타협의 산물이다. 권력경쟁의 결과물인 유럽의 절대왕정은 팽창을 위해 전쟁 자금의 안정적 조달이 필요했던 반면 은행은 금의 지원 없이도 자신이 발행하는 은행권(은행화폐)에 대한 신용을 확보하기를 원했다. 국가의 차입, 즉 국가가 발행한 채권(국채)을 은행이 인수해줘 (반영구적으로) 상환 부담을 면제해준 대신, 은행은 국민이 납부하는 세금을 해당 은행이 발행한 은행권으로만 납부할 수 있게 해줬다. 중앙은행과 법정화폐의 등장 배경이다. 이처럼 중앙은행의 법정화폐 발행 권한은 조세권으로 뒷받침된 것이었다. 

중앙은행의 탄생이 은행자본과 국가권력 간 이해와 타협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때 민간채무와 다른 국가채무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은행법 제75조 ①항은 “한국은행은 정부에 대해 당좌대출 또는 그 밖의 형식의 여신을 할 수 있으며, 정부로부터 국채를 직접 인수할 수 있다”라고, 제75조 ③항은 “제1항에 따른 여신에 대한 이율이나 그 밖의 조건은 금융통화위원회가 정한다”라고 ‘대정부 여신’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발행한 채권을 한국은행이 직접 인수하고, 정부는 이자만 부담하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금은 만기가 되면 새로 발행한 채권으로 대체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자도 이론적으로는 제로금리까지 발행할 수 있다. 한국은행은 영리를 추구하는 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은 (시중)은행의 은행, 정부의 은행으로 역할이 규정돼 있다. 중앙은행이 빌려줄 때 적용하는 이자율을 은행과 정부만 이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금융과 자본주의의 태생적 불평등

문제는 국가가 허용한 중앙은행 및 은행시스템을 사회구성원 모두가 이용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에서 신용등급 6~7등급 이하는 현실적으로 시중은행의 이용이 어렵다. 신용대출과 마이너스 통장이 포함된 기타대출은 2020년 2분기 기준 약 673조원에 달하고, 이중 약 40%에 해당하는 242조원을 제외한 60% 이상(431조원)의 대출이 시중은행 밖에서 이뤄졌다. 60% 이상의 신용대출은 은행 밖의 금융기관을 지칭하는 제2금융권을 이용하고 있다. 비은행금융기관들인 2금융권은 일반 상업은행과 유사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지만 은행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보험회사와 증권회사를 비롯해 신용카드회사·상호저축은행·새마을금고·신용협동조합·리스회사·벤처캐피털 등이 포함된다. 이 비은행금융기관들은 은행과 달리 요구불예금을 취급하지 못하고 신용창조 기능이 제약된다. 그래서 중앙은행의 금융정책 규제 대상도 되지 못해, 은행보다 자금조달에서 불리하다. 2금융권 이용자에게 높은 금리가 부과되는 이유다. 2018년 12월 기준 전체 신용등급 평가 대상자 약 4,596만 명 중 약 20%에 속하는 911만 명 이상이 신용등급 6등급 이하에 해당한다. 실제 신용대출 거래실적이 있는 사람들은 2018년 12월 기준 1,883만 명이었고 이들 중 6등급 이하는 18%가 넘는 345만 명 이상이었다.

심지어 2금융권에서조차 대출이 불가능한 사람들도 상당하다. 금융위원회의 ‘2019년 하반기 대부업 실태조사 결과’에 의하면 2018년 12월 기준 대부업 이용자는 221만 명 이상에 달했고, 불법 대부업 이용자도 41만 명에 달했다. 이처럼 생산가능인구 중 약 20%는 은행시스템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하지만, 적어도 금융 접근성에서는 평등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가계채무를 국가채무로 전환하고, 최고금리를 현행 24%에서 10%로 인하하고(우량 대기업, 고액자산가, 고소득자 등이 누리는 1~2% 가량의 저리장기대출 기회를 대부업체 대출금 수준인 1,000만원 내외 규모로 국민 모두에게 주자는) 이른바 ‘기본대출’의 도입 등을 주장하는 배경도 국가채무와 중앙은행을 활용해 금융의 공정성을 개선하자는 것이다. 가계채무를 국가채무로 전환하는 것은 경제효율성 면에서도 부합한다. 그리고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점에서 (은행시스템에 접근하지 못하는 국민에 대해) 국가가 인가해준 중앙은행 시스템에 대한 접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다.

 

국가채무 60%의 허구성 

국가채무에 대해 ‘저주’(?)를 퍼붓는 사람들은 미래세대의 부담이나 국가 파산을 그 이유로 내세우지만, 실제 이유는 국가 재정(자원)의 배분 때문이다. 이들은 국가재정이 대기업이나 고소득자 및 고액자산가 등에게 사용될 경우 반대하지 않는다. ‘이명박근혜’ 정부의 재정 투입을 보수언론이나 재벌을 대변하는 연구기관, 보수적 색채의 전문가 등이 반대하는 경우는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국가재정의 운용에 대한 권한을 독점하고 있는 기획재정부 관료들의 저항은 심각한 상황이다. 

우리 헌법 제89조 4항은 “재정에 관한 중요사항은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로 돼 있고, 정부조직법 제27조(기획재정부) ①항은 “기획재정부장관은 중장기 국가발전전략수립, 경제·재정정책의 수립·총괄·조정, 예산·기금의 편성·집행·성과관리, 화폐·외환·국고·정부회계·내국세제·관세·국제금융, 공공기관 관리, 경제협력·국유재산·민간투자 및 국가채무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라고 규정하듯 기획재정부는 국가재정과 국가채무의 운용을 독점하고 있다. 

국민의 입장을 대변해 예산 심의권을 가진 국회조차 헌법 제57조를 보면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라며 기획재정부 독점권에 대한 견제를 할 수 없게 돼 있다. “공공임대주택을 중산층에까지 확대하라”는 대통령의 지시에도, 국민이 결정할 기본소득 도입에도 기획재정부 장관이 공공연히 반대할 수 있는 이유다. 

기획재정부는 (국가채무를 GDP 대비 60% 이내에서, 재정적자를 GDP 대비 -3% 이내에서 관리하는)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으로 자신의 특권을 ‘제도화’하려 한다. 재정자원의 사용을 제한할수록 그것의 배분 권한은 증대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책은 과학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국가채무 비율 60%는 근거가 매우 취약하다. 기획재정부는 두 번이나 국가채무 마지노선을 제시한 바가 있다. 40%, 45%가 그것이다. 그러나 ‘족보도 없는 수치’라는 필자의 반론에 부딪히자, 유럽이 경제통합을 위해 통화동맹을 추진하며 1992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에서 도입한 경제수렴기준을 차용했다. 먼저 유로화를 도입하며 재정준칙을 도입한 이유는 유로화를 도입한 국가는 재정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독자적인 중앙은행이 없어져)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일 통화 도입이 수반하는 ‘비용’인 것이다. 

그런데 독립적 중앙은행을 가진 한국이 재정 유연성을 해치는 ‘준칙’을 도입해야 하는가? 둘째, 60이라는 숫자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국가채무의 적정 규모는 주류경제학의 기준으로 봐도 경제효율성, 즉 성장에 미치는 효과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금융위기 이후 수십 편의 관련 논문이 나왔고, 대부분 연구결과는 적정 국가채무 비율을 90% 안팎으로 진단한다. 대략 90%가 넘으면 국가채무의 증가가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유럽은 60%를 도입했을까? 국가채무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원금상환 부담이 없기에) 정부의 수입 증가가 발행한 국채에 대한 이자를 감당할 수 있으면 국가채무는 증가하지 않는다. 유럽은 4~5% 금리를 전제로 설계했다. 국가채무 비율이 60%일 때 이자 비용이 GDP의 2.4%~3%에 달함을 의미한다. 이 정도의 이자는 경제가 침체에 놓이지 않는 한 명목 GDP 성장률을 하회하는 수준이다. 명목성장률이 0%, 즉 실질 성장률이 마이너스(-)인 극단적 상황에서조차 이자 비용을 3% 이내에서 관리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금융위기 이후 금리는 제로금리, 독일 등 일부 유럽 국가들의 국채 금리는 마이너스(-)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국가채무 비율 60% 수치를 결정할 때와 조건이 달라지다 보니 이 수치에 대한 수정을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차이를 외면하고 기획재정부는 자신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준칙’ 도입에 매달리고 있다. 문제는 무지하다 보니 30년 전 유로존 기준을 그대로 도입한 것이다. 필자가 기획재정부 관료들에게 공부 좀 하라고 주문한 이유다.

 

국가채무는 대외신인도와 무관

국가채무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이미지를 이용하는 대표적 방법이 대외신인도 하락과 외환위기 도래 가능성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국가채무와 외환위기는 무관하다. 한국에서 외환위기가 발발했던 1997년 국가채무 비율이 10%였다. 사실, 한국 외환위기의 원인은 경상수지 적자였다. 즉 한국에 유입된 외국자본이 갑자기 빠져나갈 때 그것을 방어할 외환보유고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외환보유고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경상수지 흑자다. 외화 유동성의 충분한 확보가 금융위기를 결정한다. 미국과 일본을 포함 OECD 국가의 평균 국가채무 비율을 비교하면 나오는 말이 기축통화국 논리다. 

그러나 기축통화국도 금융위기를 겪었다. 그리고 미국조차 경상수지 적자의 확대가 금융위기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은행이 부실해지고, 은행을 구제하기 위해 국가재정을 투입하면서 국가채무 비율이 급증하게 된다. 즉 국가채무 악화는 금융위기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가채무와 대외신인도의 관계도 불명확하다. 한국의 경우 (S&P 기준) 외환위기가 발생했던 1997년 그 이전 AA-에서 BBB-로 6등급이나 하락했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국가채무 비율이 40% 중반까지 지속적으로 상승했음에도 국가신용등급이 7단계나 상승했다. 독일도 금융위기 이전 60% 안팎에서 금융위기 이후 한때 82%를 넘었지만 90년대부터 현재까지 AAA 등급에 변화가 없다. 두 국가 모두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급한 국가재정의 민주화

국가재정은 국가의 기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그리고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공공투자, 소득 재분배, 시장 실패 개입 등을 위해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앞에서 지적했듯 금융은 태생적으로 불평등하고 시장이 실패하는 영역이지만, 많은 사람이 금융과 재정이 동전의 앞뒷면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금융의 정점에 중앙은행 및 은행시스템이 있듯이 중앙은행과 국가재정의 자율성·유연성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신용등급=인간등급’이듯 현대사회에서 금융은 불평등을 주조하는 핵심 원인이다. 따라서 재정을 활용해 금융이 만드는 위계적이고 비민주적 사회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자본주의는 파국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재정이 이런 조정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국가재정의 민주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를 위해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포함한 국무위원 전원이 참석하는 재정분야 최고위급 의사결정회의인) 국가재정전략회의의 내용과 방향에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대통령 산하에 ‘국가재정위원회’(가칭)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 

국가재정위원회는 사회 각계 계층의 이해 대변자들로 구성(청년, 소상공인, 소비자, 노동자, 농민 등)하고, 위원회에서는 국가재정의 운용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국가재정전략회의는 여기서 제시된 방향에 대한 구체적 실행계획을 만들고, 기획재정부는 실행계획에 필요한 재정자원을 배분해야 한다. 물론 한국은행의 주요 정책에 대한 결정권한을 가지고 있는 금융통화위원회의 구성도 민주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글·최배근

건국대 민족통일연구소 소장, 국가인권워원회 전문위원, 행정자치부 자문위원 등을 지냈고, 더불어시민당 초대 공동대표에 올랐다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직후 사임했다. 총선 이후에는 유튜버(최배근TV그러니까경제)로 활동하며 강연 및 방송 출연과 저서 집필에 집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