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와 함께 떠나고 싶은 <카일라스 가는 길>
영화평
아주 특별한 것이 있지만, 매우 특이한 것은 없는 영화가 있다. 그런 경우 미리 잘 알려진다는 것이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다. 80대 노모와 여행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카일라스 가는 길>이 그렇다. 촬영 당시 84세를 맞이한 할머니의 오지 여행은 호기심을 끌기에 특별한 소재다. ‘어머니, 나이, 도전’이라는 키워드로 방송이나 신문에서 아주 많이 다루기 시작하면서 <카일라스 가는 길>은 제법 알려진 영화가 됐다. 사람들은 왠지 ‘무언가 도전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더라’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게다가 많은 방송을 통해 영화소개가 아주 상세히 다뤄졌기 때문에 영화는 보지 않아도 본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호기심의 농도가 살짝 떨어진다.
실제로 우리는 진짜 이야기가 주는 동감(同感)이 이어지다가 감동(感動)으로 마치는 다큐멘터리의 구조, 그 전형성에 이미 익숙하다. 그리고 조금 더 장르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다큐멘터리 장르라는 것이 그 편향성과 목표에 따라 충분히 극적으로 가공되거나, 조작될 수 있는 픽션에 가깝다는 의심을 가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카일라스 가는 길>을 보기 전에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어떤 것, 즉 뻔한 감동과 도식적인 이야기가 어느 정도는 담기리라는 선입견을 가질 법하다. 하지만 <카일라스 가는 길>은 알려진 것과 참 많이 다른 영화다. 정직하다는 것 정도로는 설명할 수 없는 특별히 다른 점이 있다. 보편적 정서에 가닿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영화의 품새가 기대와 달라 낯설다.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것과 달리, 실제 <카일라스 가는 길>은 할머니의 극한 도전, 혹은 오지체험을 다룬 영화가 아니다. 그저 다큐멘터리 감독인 아들과 함께 조금 험한 길을 떠난 어머니의 아주 사적이고 개인적인 여행기, 혹은 여행일기라고 하는 게 맞다. 정형민 감독은 극적인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이야기를 굳이 세련되게 가공하지 않는다. 카메라 속의 피사체를 다큐멘터리 속 인물로 밀어내지 않고, 그냥 자신의 어머니로 대하는 것이 익숙해 보인다. 그래서 관객들은 뺄 것도 더할 것도 없이 오롯한 한 사람의 어머니이자, ‘이춘숙’이라는 이름을 가진 할머니의 현재와 만난다. 서른일곱에 남편을 잃고 홀로 아들을 키우며 살아온, 그저 평범하다면 평범하고 특별하다면 특별한 한 여성의 삶은 광활하고 거친 외국 순례길 위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고 이어진다.
사실 이 다큐멘터리를 기획할 당시에도 대단한 목표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더 늦기 전에 어머니와 여행을 하고 싶다는 소박하지만 쉽게 이뤄지기는 어려운 꿈을 애써 혹은 굳이 실천한 것이다. 그래서 길을 떠나게 된 이춘숙 할머니는 바이칼 호수, 몽골 대초원, 고비 사막, 알타이 산맥, 타클라마칸 사막, 파미르 고원, 그리고 대장정의 끝인 티베트 카일라스 산까지 우리가 익히 들어봤지만, 감히 가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곳을 찾아가 그 길 위에 선다.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오른 길 위의 여행 이야기는 특별한 것 없는 지극히 일상적인 순간을 담아낸다. 감독은 파편 같은 길 위의 이야기들을 특별히 가공하지 않고 툭툭 끊어서 관객들 앞에 내어놓는다.
그래서 전체적인 이야기의 결로 보면 휘리릭 넘겨, 띄엄띄엄 보는 타인의 일기장을 보는 것 같다.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질지 쉽게 예측할 수 없다. 감독은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만들지 않고 어머니와 나누는 지극히 사적인 순간들, 그 중 또렷이 자신의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제 방식대로 기록한다. 카메라는 넉넉한 마음 같은 자연과 서로 말은 통하지 않지만 마음으로 대화가 가능한 사람들을 매 순간 마주하고 그들과의 자연스러운 교감을 담는다. 움직이지 않는 대자연과 그 속을 유영하는 짐승들 사이로 끼어든 사람 역시 이물감 없는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이춘숙 할머니의 길 위에서 만나는 바람의 소리와 차가운 눈밭 사이로 쏟아지는 볕의 따스함이 관객들 곁으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렇듯 <카일라스 가는 길>의 미덕은 보통 더 드라마틱한 연출을 위해 카메라를 왜곡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이춘숙 할머니는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격려의 마음을 사탕 한 알로 나누고, 오지를 여행하는 여성 순례자를 제 딸처럼 걱정한다. 누군가의 어머니이자 모두의 할머니가 된 현재 그 모습 그대다. 카메라는 할머니의 거친 손을 동정하거나, 여기저기 아픈 그녀의 몸을 과장하지도 않고 꾸며보려는 욕심이 없다. 할머니의 삶이 우리보다 무겁다고, 우리의 삶이 할머니보다 가볍다고 결코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쓸쓸한 삶을 초월하자는 거대한 메시지를 담을 생각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당당한 삶을 응원하자는 메시지를 강조하는 법도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특별한 소재를 가졌지만 <카일라스 가는 길>은 무척 평범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영화다. 그리고 뭔가 대단한 삶에 대한 깨달음이 있을 것 같지만, 드라마틱한 순간보다는 평범한 시간을 더 소중하게 카메라에 담는다. 그 속에 할머니의 일기는 클라이맥스가 없는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든다. 지극한 사담이지만, 사람을 향한 따뜻한 메시지는 경건할 정도로 아름답다. 그래서 자칫 길에 집중하기 쉬운 영화 속에서 할머니의 일기는 다시 사람을 바라보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아주 무심하고 정적인 대자연과 달리 수다가 많아지는 순간이 좀 어수선하다고 느껴질 때도, 할머니의 일기는 잠깐의 휴식처럼 마음을 넉넉하게 만든다.
이춘숙 할머니가 길의 매 순간 기원하듯 두 손을 모아 전하는 마음, 돌아오지 못 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는 어쩌면 모든 순간과 이별해야 하는 우리를 위한 기도다. 나이와 상관없이 오롯이 두 발을 딛고 길을 걷는 사람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마음이 울렁거리는 순간은 선물과도 같다. 그 삶 속에 과거에 대한 회상보다는 길을 걷는 현재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가 더 가깝다는 사실은 영화가 주는 선한 메시지이자 주제이기도 하다. 평범한 삶이지만, 굽이굽이 꼬인 길과 포장이 되지 않은 길을 걷느라 월컹대는 우리 삶이 두런두런 나눠온 너울이 그 속에 있다. 정체된 시간, 혹은 이미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포기하지 말라는 지키기 힘든 메시지 대신, 걸음걸음 마음을 따라 걷다 보면 오늘도 살아지는 법이라는 넉넉한 위로를 준다.
가끔 부지런히 걸었다고 생각하지만,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은 것 같은 삶의 길 위에서 잠시 멈춰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때 우리는 새로운 길을 발견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여행을 준비하다 보면 어쩌면 여행이 우리 삶을 완전히 바꿔주는 마법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 삶에 파랑새는 애초에 없는 거라는 사실을 여행의 끝에 자주 만나게 된다. <카일라스 가는 길>도 그렇다.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충분히 다 봤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이야기가 담겨 있다. 돌아오지 않는 이들을 위해 기도를 하고 싶다는 이춘숙 할머니의 마음속엔 삶에 대한 후회보다는 그리움의 감각이 훨씬 더 크게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남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할머니의 순수한 마음이 대자연과 만날 때, 할머니 역시 묵묵한 자연의 일부처럼 보인다.
* 사진 출처 : 영화사 진진 <카일라스 가는 길> 보도자료 사진
글‧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제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2018년 이봄영화제 프로그래머, 제2회 서울무용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객석>, <문화플러스서울> 등 각종 매체에 영화와 공연예술 관련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