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비참한, 그러나 인간적인 노동 현장

2020-10-30     앙토니 뷔를로 | 역사학자

19세기 전반, 새로운 주체가 사회와 정치 무대에 등장했다. 정부에는 위험하고 경제학자들에게는 흥미로우며, 위생학자와 자선가들에게는 불편한 존재. 다름 아닌 ‘노동자’다. 이 불편하고 위험한 존재에 대해 제대로 알고자 하는 움직임 속에 ‘노동조건에 관한 조사’가 탄생했다. 이 조사는 미셸 페로의 선구자적 연구(1) 이후 50년 만에 탄탄한 총서(2)로 결실을 맺으며 노동자의 역사와 흥망성쇠를 탐구대상으로 삼았다. 노동자 연구는 초기 통계수치 조사에서부터 ‘영광의 30년’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사회학 연구에 이르기까지 사회학의 발전에 도움을 줬다. 

영국 탄광촌 슬럼화의 풍경을 그린 독일의 사상가 프리드리히 엥겔스, 광산 노동자들의 애환을 담아낸 프랑스 소설가 에밀 졸라, 로디아세타 섬유공장의 파업을 다룬 프랑스 영화감독 크리스 마르케 등은 가정을 방문하고 예산을 조사하며 직업병(3)을 중심으로 열악한 노동조건의 민낯을 폭로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때때로 노동자들이 직접 자신들의 일상을 이야기하고, 자신들이 현재 어떤 존재인지 말하기도 했다.

캉(Caen) 박물관 전시회(4)에서 볼 수 있듯 화가들도 노동자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19세기 말 산업현실은 예술의 소재가 됐다. 클로드 모네, 알프레드 시슬레, 카미유 피사로, 막시밀리앙 뤼스, 혹은 젊은 시절의 라울 뒤피는 기차역, 부두, 철강공장, 조선소를 그렸다. 알렉산드르 슈타인렌, 쥘 그랑주앙과 같은 삽화가들은 현대적 노예제도를 비난하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묘사했다. 엽서에는 거대한 기계, 정돈된 작업실과 공장, 그리고 파업과 시위행진이 담겼다. 영광스러운 노동자들, 고통받는 노동자들, 투쟁하는 노동자들. 노동자는 그림의 소재가 됐다. 노동자에게는 이미지와 상징성이 있다.

비앙쿠르의 르노 공장은 거의 반세기 동안 상징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3만여 명의 노동자들을 수용했던 파리의 세갱 섬의 ‘요새’가 관심을 받게 된다. 기업계약 혹은 고도의 정치화와 관련해 모범사례이자 두려움의 대상으로 알려진 파리 근교 비앙쿠르는 ‘환상을 만드는 기계’와 같았다. 역사가이자 사회학자인 알랭 비기에는 조사과정에서(5) 공장의 모습과 공장에서 일어난 정치적 투쟁을 생생하게 담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비기에는 비앙쿠르에서 일어난 주요 에피소드(1947년 파업, 파리의 노동자 밀집지역인 샤론 대학살 이후 발생한 연쇄파업, 1968년 프랑스 노동총연맹의 책임자 브누아 프라숑과 조르루 세기 영입과정에서 벌어진 소동, 1970년대 전문노동자들의 파업…)를 재검토하면서 정치적 배경과 내부의 변수도 고려했다.

비기에는 공산당과 노동총동맹을 지지했으나, 조직이 하나로 통합된 적은 없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조직은 둘로 나뉘어 영향력을 행사했고, 투쟁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갈등과 전략에 대한 의견대립이 강했다. 노동자들의 분열(단순 노동자와 숙련노동자, 프랑스인과 이민자)로 공산당과 노동조합은 새로운 난관에 봉착했다. 1980년대에는 활동가들이 방향을 잃고 혼란에 빠지면서 공장이 점차 기울더니, 급기야 노동자의 상징이던 공장은 붕괴의 길을 걷는다.  

 

 

글‧앙토니 뷔를로 Antony Burlaud
역사학자

번역‧이주영
번역위원


(1)  Michelle Perrot, <여성들의 길 Le Chemin des femmes> <노동조건에 관한 조사 Enquêtes sur la condition ouvrière>(1972), Robert Laffont, Paris, 2019년.
(2) Eric Geerkens, Nicolas Hatzfeld, Isabelle Lespinet-Moret, Xavier Vigna, 『Les enquêtes ouvrières dans l’Europe contemporaine 현대 유럽의 노동자 조사』, La découverte, Paris,  2019년.
(3) Léon Bonneff, Maurice Bonneff, 『Les métiers qui tuent 목숨을 앗아가는 직업』, Plein Chant, Bassac, 2019년(초판 1905년).
(4) 참고할 전시회 카탈로그 : Emmanuelle Delapierre, Bertrand Tillier(총괄), <Les Villes ardentes. 1870-1914. Art, travail, révolte 불타는 도시. 1870~1914. 예술, 노동, 저항>,  Snoeck, Gand, 2020년.
(5) Alain Viguier, 『Le PCF à Renault-Billancourt. Force et crise d’un symbole ouvrier (1944~1992) 비앙쿠르 르노공장의 프랑스 공산당. 노동자 상징의 힘과 위기 (1944~1992)』, Arbre bleu, Nancy,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