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네 안에 박정희 있다

2011-06-07     장석준

5·16 쿠데타 50번째 해를 맞아 박정희의 이름이 신문 1면을 장식했다. 상식에 따른다면, 이미 30여 년 전에 죽은 옛 통치자가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게 낯설게 다가와야 맞다. 하지만 나만의 느낌인지는 몰라도, 전혀 낯설지 않았다. 왜 그럴까? 그의 딸이 현재 지지도 1위의 여당 대권 주자여서일까? 아니면 수십 년 전 그때를 연상시키는 정책을 펼치는 현 정권이 우리의 시간 감각을 무너뜨려서일까?

단지 이런 이유들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박정희의 이름이 다시 빈번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지 벌써 한참 되었기 때문이다. 대략 민주화가 완성 국면에 접어들었다던 1990년대 말부터 박정희의 유령(들)이 우리 주위에서 창궐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참으로 기이한 역설이다. 박정희 정권과 투쟁하며 성장하기 시작한 민주화운동이 그 결실을 맺던 그 시점에 그의 기억이 정치적 힘을 얻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박정희에 대한 상투적인 평가를 넘어

물론 ‘박정희 르네상스’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주로 민주화운동 참여자들이나 그 이론적 대변자들이 이 작업에 나섰다. 그런데 세월의 변화는 박정희 비판의 어조 또한 변화시켰다. 대표적인 것이 박정희 정권의 ‘독재’는 비판해야 하지만 그 ‘산업화’의 성과는 인정해야 한다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입장이다. 박정희의 오랜 정적이던 김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진보 진영의 많은 논객 사이에서도 “박 정권의 산업화 성과는 인정하지만”이라는 전제가 마치 관용어구처럼 입에 붙기 시작했다.

그것만이 아니다. 유신독재가 단순한 폭압 통치만이 아니라 광범한 대중의 지지에 기반했다는 도발적인 명제가 당당히 한 학설로 자리잡았다. 박정희 정권 초기인 제3공화국이 유신 시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민주적이었다는 점을 내세워 ‘초기 박정희’와 ‘후기 박정희’를 나누는 해석도 등장한다.

정치학자 이광일이 <박정희 체제, 자유주의적 비판 뛰어넘기>(이하 <박정희 체제>)라는 제목의 책에서 대결하는 것이 바로 이런 유의 ‘비판’들이다. 이광일은 이 작업을 위해 4월 혁명 직전 군부 쿠데타가 처음 모의되던 무렵부터 유신정권이 몰락한 순간까지 20여 년간의 박정희 독재 전 시기를 시간 순서대로 짚어나간다. 그래서 이 책은 마치 박정희 시대의 통사처럼 읽힌다.

이 역사 서술 속에서 이광일은 ‘정치사’와 ‘경제사’를 종횡무진한다. 이것은 그의 비판 작업의 뼈대와 직접 연관된다. 그는 박정희가 ‘정치적’으로는 잘못했지만 ‘경제적’ 차원에서는 박정희를 긍정해야 한다는 최근의 ‘표준적’ 시각을 비판의 주 대상으로 삼는다. 이런 시각의 심층에 정치와 경제를 별개 영역으로 나누는 자유주의의 고전적 전제가 자리한다고 본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정치와 경제가 계급세력 관계의 전개라는 하나의 과정 안으로 통일되는 역사 서술을 제시한다.

마찬가지로, 이광일은 ‘위로부터의 역사’와 ‘아래로부터의 역사’의 만남도 중요시한다. 그는 국가가 사회와 별개의 실체인 게 아니라 사회 세력 관계가 반영된 무대라고 본다. 그래서 정권 최상층부의 움직임을 민중의 동태에 대한 반응이라는 맥락에서 파악하려 하며, 대중투쟁의 존재와 그 효과가 자본 축적과 국가 통치의 구조 변동 속에 항상 현존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이광일은 역사 다시 읽기 작업을 통해 이 책의 논적인 ‘박정희 체제에 대한 자유주의적 비판’을 하나하나 논파해간다. 가령 ‘제3공화국 시기는 그래도 민주적이었다’는 주장은 4월 혁명이 쿠데타와 군부 정권에 끼친 영향, 6·3 항쟁과 제3공화국의 관계 등 구체적 분석과 마주치게 된다. 이광일은 이 대목에서 국가가 사회세력 간 투쟁의 무대이며, 제3공화국의 경우도 예외가 아님을 지적한다. 제3공화국이 상대적으로 일반 민주주의 룰을 존중한 것은 4월 혁명과 6·3 항쟁 등 대중 투쟁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재평가해야 할 것은 박 정권 초기 주역들의 선의가 아니라 1960년대 초 대중운동이다.

우리가 깨어나야 할 악몽 ‘박정희 신화’

또 다른 비판 대상, 즉 ‘독재자 박정희’와 ‘산업화 지도자 박정희’를 나누는 시각은 주로 유신의 등장과 몰락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집중 포화를 받는다. 여기에서 저자의 주된 무기는 유신 체제의 등장을 낳은 정치경제(학)적 토대를 밝히는 것이다. 저자는 우선 1970년대 초에 박 정권의 산업화 전략이 직면한 위기 상황을 지적한다. 이 위기 속에서 전태일 열사의 분신, 김대중 신민당 대통령 후보 지지 등으로 나타난 민중의 움직임을 강조한다.

유신독재 체제는 이런 사회·경제적 위기에 대한 박 정권의 파시즘적 대응이었다. 8·3 조치 이후 전개된 재벌 주도의 중화학공업 중심 축적 전략과 농촌을 중심으로 대중을 동원한 새마을운동, 그리고 유신독재 체제는 결코 서로 떼놓고 볼 수 없다. 즉 ‘산업화 지도자 박정희’는 ‘독재자 박정희’ 없이 존립할 수 없고, 이때의 ‘산업화’란 지금도 유혈 착취를 일삼는 재벌 대자본의 경제적 지배가 뿌리내리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박정희 체제>는 쉽게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다. 이광일의 문장은 거칠고 손볼 여지가 많으며, 사회과학 용어가 빈번히 출몰한다. 하지만 다소 인내하며 읽다 보면 점차 박진감을 느끼게 된다. 특히 유신 체제가 점차 종막을 향해 치달아가는 대목부터가 그렇다. 아마 역사의 전개 양상 자체가 이 책에 그대로 반영돼 있는 탓일지 모른다.

우리의 현재는, 이 책이 끝나가는 대목에서 본격적으로 태동한 거대한 역사적 운동의 자취 위에 자리한다. 어떤 점에서 이 장(章)의 주인공들(독재정권에 맞서 분연히 일어난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그리고 신민당을 전투적 야당으로 전환시킨 김영삼과 김대중)은 이후 역사의 승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 승리의 불완전성은 곧바로 박정희의 유령을 불러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정희 체제의 자유주의적 비판’은 이 절반의 승리 혹은 패배의 징후다.

도대체 우리가 딛고 일어서지 못한 곳, 그 패배의 지점은 어디인가? <박정희 체제>는 패배의 징후를 냉철히 폭로하지만, 그 원인 자체는 빈 괄호로 남겨놓는다. 이를 분명히 하는 것이 이 책의 성과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일일 것이다.

<박정희 체제> 안에서도 일정한 실마리를 얻을 수는 있다. 그것은 유신에 맞선 민중의 저항이 기존 지배 이데올로기, 즉 성장·발전주의 이데올로기의 ‘진짜 실현’을 요구하며 타올랐다는 지적(158쪽)이다. 이 궐기가 결국 민주화로, 그리고 민주노조운동으로 뻗어나갔다. 이 격동이 우리의 현재를 낳았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박정희 시대가 낳은 지배 이데올로기의 틀 안에 있다. 여전히 성장·발전주의 이데올로기의 원 안에 갇혀 있다. 우리 모두가 꾸는 이 악몽, ‘박정희 신화’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글•장석준
진보신당 상상연구소 연구기획실장. 저서로 <혁명을 꿈꾼 시대> <저지할 수 없었던 신자유주의  지구화?>(근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