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대학을 위한 탄원서

2011-06-07     박희아

‘대학생’이 이미 하나의 계급사회를 형성하는 이름이 돼버렸지만, 그래도 이 이름을 지키고 있는 것은 어떤 자긍심 혹은 대체로 이 나이를 사는 사람들의 명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래되지 않은 과거엔 대학생이 특권 계층이었다는 것을, 나는 절대로 모를 수밖에 없다. 으레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가야 하는 대학이라고 하여 정신적인 탈진을 몇 차례 겪었고, 심지어 수능시험에서 답을 밀려 쓰면서 ‘대학 서열화’에서 오는 자괴감을 치열하게 맛봤다. 서열 경쟁에서 ‘국제화’는 필수다. 이제 곧 국사학과 수업도 영어로 하면 어떡하지? 그럼 난 수업시간에조차 최하층 계급으로 밀려날 것이다. 누구에게는 배부른 소리라 해도, 이런 생활은 결코 특권층이 누리는 호사 같지 않다. 

어쨌든 이런 대학으로부터 학생인 나는 ‘산 교육’을 받고 있다. 카이스트(KAIST) 학생들과 교수의 잇따른 죽음 이전에도 중앙대는 이미 ‘두산대’가 됐고, 상지대 학생들은 재단 밥그릇 싸움에 지쳤다. 게다가 우리 학교는 나를 이른 직장인 대열로까지 몰아넣지 않았던가? 내가 돈을 주고 ‘산’ 교육이기도 하고, 대학이 기업에서 ‘사들인’ 교육이기도 하고, 취업전선에서는 ‘생생’한 오지 체험이기도 하니 분명 대학 교육은 살아 있다.  

그래서 진짜 내가 바란 ‘커다란 학문’을 위한 대학은 지금 갇혔다. 어디에? 모르겠다.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아즈카반 감옥처럼, 무시무시한 디멘터들이 지키는 고립된 곳이다. 어떻게 대학을 구출해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한국앰네스티 위원인 고은태씨가 ‘한겨레 훅’에 쓴 ‘실전! 탄원서 작성법’이라는 글을 발견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탄원서를 쓰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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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재판장님께
안녕하세요, 재판장님. 날씨가 며칠 뽀얗다가, 펜을 든 오늘은 다소 울적합니다. 뵌 적도, 이야기를 나누어본 적도 없는 재판장님께서도 오늘 하늘은 보셨겠지요?

제 동료 이대학도 지금 우두커니 서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것입니다. 최근 판사님이 내린 구형의 세월을 곱씹으며 상념에 젖어 있겠지요. 그는 자신에게 내려진 판결에 대해 쏟아지는 분분한 논쟁에도 입을 열지 않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어떤 사람들은 또 비난했습니다. ‘침묵죄’라는 죄목에 현실도피를 한다고 말입니다. 

재판장님, 저는 이대학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며칠 전 저는 고요해진 새벽에 잠시 그를 찾아갔습니다. 그는 이미 자신에 대한 기대와 가능성이 사라진 가운데 입을 여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고 말했습니다. ‘네 구명 운동을 펼치고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희미하게 웃으며 책이나 좀 갖다달라고 말하더군요. 한편 그는 과거의 열정을 판결에서 고려해주지 않은 데  안타까워하는 눈치였습니다. 물론 그는 결코 재판장님의 판결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동안 자기 반성 없이 입을 꾹 닫고 지낸 자신에 대한 각성의 메시지임이 분명했으니까요.

제가 이대학과 각별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4년 정도 됐습니다. 그전에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처럼 이미 이대학과 조우한 분들의 말씀을 들으며 부푼 기대에 젖어 살았습니다. 그가 얼마나 똑똑하고 현명한지 종종 이야기 들을 때면 설렜습니다. 실제로 만나보니 그는 책을 아주 많이 읽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저를 논쟁의 장으로 끌어주었습니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는지, 인간이 신을 만들었는지를 다투는 논쟁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였지요. 서투른 제 논리조차 그는 칭찬해주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빨간색연필로 줄을 쳐가며 버틴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한 것만 같았습니다. 그는 제 갇혀 있던 사고를 뒤흔들 만한 몇몇 위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주며 지레 먼저 전율했고, 어떤 날은 둘이 함께 영화를 보며 수다를 떨기도 했습니다. 재판장님도 이대학과 함께 보낸 시절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당찬 모습을 이미 보셨겠지요? 저는 주로 이대학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마디도 거들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지만, 재판장님처럼 똑똑한 분이면 오히려 그에게 한 수 가르침을 놓으셨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저보다 더 이대학과 많은 이야기,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새우셨겠지요. 

그렇다면 그가 결코 죄목처럼 입을 다물고 침묵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재판장님도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한창 정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주변에서 그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려는 치밀한 계획을 세운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결국 그는 잠시 책을 접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읽던 철학책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책을요. 그는 우리가 더 이상 함께 밤을 지새우며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는 것에 미안해했습니다. 평생 그날의 그 눈빛을 잊어버리지 못할 겁니다. 서운하다는 말조차 꺼낼 수 없을 정도로 그는 울적해 보였으니까요. 마치 오늘 날씨처럼…. 더 이상 책을 읽지도, 토론하지도 않아 할 얘기가 없던 우리는 그날 밤, 오늘 낮 창밖에서 들리던 등록금 인하 투쟁을 하는 목소리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며칠 전 학점도 높고 자격증도 많은 김대학이 대기업 서류전형에서 탈락했다는 얘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재판장님, 혹시 이대학이 ‘침묵죄’를 선고받던 날, 기억하시나요? 그날 이미 재판정 앞엔 ‘영어 강의를 알아듣지 못하는 학생은 불이익을 받아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한 무리들이 재판정 앞을 점거하고 있었습니다. 무리를 헤치고 재판정으로 들어가자 안의 상황은 더 심각했지요. 틈도 없이, 증인으로 나선 대학총장들과 여러 기업의 인사권을 쥔 사람들을 응원하기 위해 많은 지지 세력들이 몰려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엔 홀로 외로이 고개를 숙인 친구 이대학이 있었습니다.         

열아홉, 모두가 그와의 만남을 꿈꿨습니다. 재판장님, 이대학은 제가 무엇을 잘하는지, 앞으로 어떤 일을 잘해낼 수 있을지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는 상태에서 저를 기다려준 인내심 있고 현명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긴 옥고를 치르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할 것이고, 앞으로 그를 보며 달려올 많은 열아홉들의 희망을 앗아가는 일이 될 것입니다.

필요한 순간에 침묵한, 그리고 잠시 본분을 잊고 욕심을 부린 그의 죄를 아예 없던 일처럼 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의 현실을 고려해주고 그가 그럴 수밖에 없는 까닭을 고려해 선처를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서툰 탄원을 읽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재판장님에게서 이대학을 침묵하게 만든 한국 사회에 일침을 가할 판결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조심스럽게 전합니다. 
 
이대학의 求命, 求名, 求明을 위해, 박대학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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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원서의 수신인이 재판장이긴 한데, 그가 누군지를 모르겠다. 탄원서를 실제로 부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던데…. 보내지 않은 편지는 등록금 투쟁만큼 아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