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 체제, 진화하는 위기

2011-07-11     드니 뒤클로

권력이 자신의 위기를 통해 알몸을 드러냈다. 금융 시스템의 붕괴는 그것이 저지른 파렴치한 짓으로 인해 발목이 잡혔고,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핵에너지 문제가 제기되고 있으며, 안정적이라 여기던 아랍 사회에서는 민중봉기가 일어났다. 이 3대 사건은 전혀 다르지만 똑같은 논리의 한계를 명약관화하게 드러내고 있다.

세계를 뒤흔든 3대 위기는 우리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주제다. 2008년 말에 시작된 금융대란, 지난 3월 11일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그리고 지난 1월 14일 이후에는 많은 아랍 국가들이 민중봉기로 체제 위기를 겪고 있다. 얼핏 보기에, 이 세 가지 위기를 비교한다는 것은 비합리적으로 여겨진다. 이들이 각기 서로 다른 영역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위기는 마치 가상세계에서처럼 수조 달러가 증발해버린 사건과 관련돼 있고, 두 번째 위기는 다량의 에너지를 생산해야 할 기술이 빚은 중대한 사고이며, 세 번째 위기는 군사독재에 대한 대규모 민중봉기에서 촉발됐다. 또한 이들을 순전히 대재앙으로 병치하는 것도 온당치 않다. 첫 번째는 “탐욕의 승리”(1)이고, 두 번째는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의 결과이며, 세 번째는 아랍인의 고난이 ‘민중의 봄’으로 전환된 바람직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별개의 사건은 세계 자본주의 시스템이 지닌 똑같은 문제 안에서 서로 조우한다. 그래서 이런 결과는 저주의 콘서트(3대 위기)가 예고하는 글로벌한 혼란이라기보다는, 마르크스주의의 고전적 은유인 ‘역사 탄생’을 계승하는 해방론적 진화일 수도 있다. 이 3대 위기가 시스템의 핵심축인 에너지 기반과 돈벌이로만 수렴되는 인간 노동 그리고 정치적 안정성, 특히 그중에서도 중도 우파 진영에 요구되는 정치적 안정성을 약화시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극단적으로 닮은 양태를 보이면서, 용인할 수 없는 기술적 위험, 통제할 수 없는 금융위기 그리고 감내하기 힘든 살벌한 독재를 불러왔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이런 상황을 타개하려는 강력한 정향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자연적인(혹은 환경적인) 동력이, 즉 전 인류사회가 속임수와 오염, 타락한 당국에 자발적인 노예가 되길 거부하며 이런 상황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3대 위기는 세계 자본주의 위기

첫째, 긴밀히 결속되어 있는 전반적인 지배 메커니즘의 생존 조건, 즉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구) 지배하에서의 투자와 최상의 시장 개발로 최대의 수익을 내려는 지배 메커니즘이 비난받고 있다. 경제·금융감독기관은 지배 메커니즘을 신봉하며 인간의 경제활동을 수익의 논리로만 설명하며, 투기를 부추기는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세계화의 (상상적) 전쟁터에서라면 공장과 노동자를 이동시킬 수도, ‘신흥’ 경제를 창출하고 공장제국을 건설할 수도, 세계 대륙에 사무실을 개설해 이들 공장의 생산성을 예측하고 이런 공장과 사무실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소비의 노예층을 확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가상경제는 경제·금융감독기관의 주장에 비하면, 그나마 덜 엉터리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자본화의 목적은 고비용이 수반되는 세계 경제의 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후 이 틀이 거대한 거품 속에서 해결 불가능한 위기에 처하자, 시스템 속에서 작동하던 인간 노동의 전반적인 관리가 불가능해졌다. 심지어 유가가 2000년보다 3배, 1990년에 비해 10배가 상승했지만, 만약 석유가 없다면 세계 식량은 25% 정도로 감소했을 것이다. 여태까지 그 어떤 국가의 관리감독기관도 화석연료 없이는 저렴한 에너지를 공급하지 못한다. 각 분야에서 사용처에 따라 선호하는 연료가 다르기 때문이다. 원자력은 산업생산에, 또 주목받고 있는 액화석탄과 미래의 천연가스는 난방에, 그리고 석유는 주로 수십억 대의 차량에 쓰이고 있다.(2) 그러므로 원자력 사용의 중단 고려(독일은 2022년을 기점으로 원전을 포기한다고 발표함)는 전세계 전력 생산량의 최소 14%를 풍력·태양력·생태에너지 쪽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충고이자, 글로벌 메커니즘의 필수인 석유에 대한 공격인 셈이다.

지금까지 시장민주주의자들은 그들의 입맛에 따라 ‘중도’라고 표현한 중동의 견고한 독재 체제의 틀 안에서 세계적 화약고인 이 지역의 갈등을 관리해올 수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아랍 민중의 합법적 요구가 폭발하자, 리비아에 대해서처럼 자발적으로 연대하는 시늉을 하기도 했지만, 사태를 심각하게 우려하며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니 3대 위기가 세계 최고 국제기구의 회동을 이끌어낸 것이나, 이들이 경쟁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소란을 피우는 것도 놀랄 일이 못 된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의 나지메딘 메스카디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해 “이 사고는 한 국가가 관리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 사건을 논의해야 한다. 이는 리비아 상공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3)

사람·자연·민주주의 농락하더니

둘째, 3대 시스템 위기는 제각각 사태의 추이를 악화시키는 동일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즉, 금융위기는 금융 제약을 통해 인간의 노동을, 원전위기는 위험한 기술을 통해 자연을, 아랍의 위기는 여전히 테일러의 법칙(과거에 시민들에게 군대식 규율을 적용했고, 현재에도 그러한 노동법칙)을 통해 대중의 삶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업계는 공공부채로 빚잔치를 하기 위해, 대출금을 조작하기 위해, 그리고 채무자를 편파적인 계약이나 보이지 않는 함정으로 내몰기 위해, 자유국가들이 서준 보증을 이용했다. 아랍의 독재국가들은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족벌 계층의 오만함과 경찰력의 동원, (계엄령 같은) 예외적 상황의 연출, 정치수용소 운영 등을 통해 그들의 탐욕스러운 본색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핵산업은 전략적인 국익을 표방하며 핵 선택을 강요했고, 처음부터 군대문화에 버금가는 보안·경찰 문화로 자신을 에워쌌다. 이들 세 사건에서 이중성은 일상적인 관리 도구처럼 쓰였다. 금융 시스템을 마비시키지 않으면 ‘채무 청산’이 불가능하고, 원전에는 지속적인 냉각이 반드시 필요하며, 국민과 보안 서비스 사이의 유대관계는 단절해야 했다.

비난받는 지배 메커니즘

지배권력은 종종 사태의 진실을 호도하고, 피해 규모도 숨겼다. 2008년 10월에 의결된 미국의 금융자산 환매 프로그램이 감당할 수 있는 액수는 실제 손실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3천억 달러(250억 달러는 결국 납세자의 몫이 되었다)에 불과했다. 후쿠시마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TEPCO) 및 일본과 국제 당국은 후쿠시마 원전의 재난 규모를 최소화했고, 현재도 여전히 그러고 있다. 심지어 후쿠시마 사고가 체르노빌에 상응하는 심각한 수준임을 이들 당국이 밝힌 뒤에도 TEPCO는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또 아랍 지역에서는 매체에 알려지지 않은 실종, 고문, 체포, 온갖 학대가 왕족체제나 군사·경찰 독재체제 안에서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

지배권력은 이제 자신의 총체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오류에 빠진 근거 없는 주장이 난무하는 한편, 예측 불가능하고, 무질서하고, 사회 기능을 마비시키는 행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유 불문하고 모든 것에 지시를 내리려는 이런 월권 의지의 뒤에는 무지(無知)가 그림자처럼 뒤따르고 있다.

그래서 핵시설이 건설될 때는 단순 사고 발생 가능성마저 부정되기 때문에, ‘중대 사고에 대한 대비책’을 사전에 마련할 수조차 없다. 프랑스와 영국은 유럽 원자력발전소의 ‘내구성 실험’에 테러리스트 공격을 포함시키자는 요구를 거부하지 않았던가. 만약 당신이, 금융계에서, (당신이 살고 있는) 시장을 믿는다면, 당신은 거품처럼 팽창하는 시장이 ‘자살행위’로 나아가리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난 대공황 이후 한 세기도 채 안 된 시점에서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4)가 예측했던 일이 그대로 일어났다. 한편 엘리트 독재자들은 그들의 궁전 밑으로 깊은 구멍이 뚫리고, (그들이 멸시해온) 거리를 통해 그들이 신중을 기해 국외로 빼돌린 자산이 동결됨으로써 그들의 특권이 폐지될 수 있다는 것을 최후의 순간까지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무능한 문제 해결력을 놓고 볼 때, 원전위기와 금융위기의 유사성은 더욱 뚜렷해진다. 폴 조리옹의 지적처럼,(5) 금융위기와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서로 닮았다. 하나는 사고가 난 원전을 냉각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물을 퍼부어야 하고, 다른 하나는 거품 폭발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돈을 퍼부어야 한다. 하지만 부채를 장기간 숨기거나 과도한 신용대출로 부채를 해소하는 방법도 어려울 듯하다. 언제나 그렇듯, 이런 손실은 결국 납세자의 몫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반감기가 긴 방사성 세슘 137이나 독성이 매우 높은 플루토늄 같은 방사능 물질의 세계 확산(공기, 바다 그리고 수출 물품을 통해)을 안정화한다는 것은 장기간 불가능할 전망이다. 여러 개의 후쿠시마 원자로 격납용기에 구멍이 뚫렸음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다시 악화된 후쿠시마 원전, 단 한 차례의 지진에 뒤흔들린 기타 원전들, 그리고 오염 수치가 과소평가된 토양·농산물·화물수송용 컨테이너 때문에, 현재 일본은 후쿠시마 대피지역 바깥쪽까지 방사능 피해 위협을 받고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한 경제위기로 수백만 명이 추가로 실업자로 전락하리라는 사실을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됐다.

드러나는 총체적 한계

물론 3대 시스템(금융·기술·경찰)의 압박도 지속되고 있다. 이는 심지어 국제세력과 결탁해 지속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원자력기관들도 뻔한 짓을 강요하고 있다.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는 권한이 제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강력한 금융 로비를 지시하고, 독재국가끼리 서로 도움을 주도록 지시하고(수니파 왕자들이 바레인의 모든 시위대를 진압하거나, 마그레브 군대연합이 무아마르 카다피를 지지하는 등), 아랍 젊은이들에 대한 서양인들의 암묵적인 불신을 조장하고 있다.

국제세력의 이런 압박 전략은 더 이상 글로벌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다할 수 없다. 더 이상 필요악으로 여겨지기도 힘들거니와 그 실체가 밝혀졌기 때문이다. 지배적인 3대 시스템의 노예로 전락한 독단적이고, 위험하고, 포식성 강한 정부의 스타일, 즉 일자리를 가질 자유, 싱그러운 자연을 해치지 않고 즐길 자유(수학자이자 생태경제학자인 니콜라스 제오르제스쿠 로에겐은 이를 진정한 경제의 목적이라 했다), 인간적 정치 공동체의 구속 없이 참가할 자유를 짓밟는 정부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3대 해방’ 위한 사이버 저항 맹위

따라서 돈·기술·권력의 과도한 구속 때문에 똑같은 병목현상을 앓고 있는 3대 위기의 교차로는 이제 ‘3대 해방’을 숙원하고 있다. 첫째는 오로지 최대의 수익을 내기 위해 노동의 방향을 설정하고 재배치하고 집중시키는 게 아니라, 마땅히 노동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며 노동의 다각화를 통해 인간 노동을 해방하는 일이다. 둘째는 자연의 이용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자연에 마구를 달거나 고문을 하지 않는 자연 해방이다. 마지막으로 ‘세계인’의 자유로운 정치생활 참여의 해방이다. 이것이 우리가 군사정권의 회초리(혹은 갈수록 이슬람 세계에서 기피대상이 돼가고 있는 이슬람 율법칙령 파트와(Fatwa))에 맞서는 길이며, 자유주의의 산실이라는 서양에 퍼지고 있는 외국인혐오증에 맞서는 길이다. 이 모든 분야에 대한 놀라운 이념전쟁이 웹상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에너지 부문에서든, 모든 주역들이 시장의 기능을 비밀에 부치는 일부터 배워야 하는 금융 부문에서든 이런 전쟁이 어렵기는 매한가지이지만, 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광범위하게 확장되고 있다. 더 단순하게, 더 자유롭게, 남들과 다르게 살 기회를 얻으려는 (사람들의) 직관이 이제는 논거까지 뒷받침된 채 전문가들과 맞서고 있지만, 이를 두고 ‘퇴행적’, ‘비현실적’이라는 따위의 놀림은 쉽사리 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드니 뒤클로 Denis Duclos 
주요 저서로 <왜 우리는 환경주의자가 되길 한사코 주저하는 것일까>(Harmattan·파리·2010)등이 있다.

번역·조은섭 chosub@ilemonde.com
파리7대학 불문학 박사로 알리앙스 프랑세즈에서 강의중. 주요 역서로 <착각>(2004) 등이 있다.

<각주>
(1) 조지프 스티글리츠, <탐욕의 승리>, Les Liens qui libèrent, 파리, 2010.
(2) 카프리(Carfree)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4년 동안 개인 및 상용 차량의 수는 2배 증가하여 1조2900억 대에 이르렀다.
(3) 다케나카 기요시·구보타 요코, <장기간의 핵 위험에 체념한 일본>에서 인용한 글 참조, <로이터> 온라인, 2011년 3월 28일.
(4)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1929년의 대공황: 금융 재앙 해부>, Petite bibliothéque Payot, 파리, 2008.
(5) 웹사이트 www.pauljorion.com/blog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