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없는 ‘트럼피즘’의 득세

2020-11-30     제롬 카라벨 |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사회학과 교수

오는 1월 20일, 조지프 바이든이 미국의 새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일단 그는 과거를 복원함으로써, 혼돈과 분노로 점철된 지난 4년간의 세월에 종지부를 찍고 다시금 ‘오바마 3기’와 비슷한 시대를 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그런 목표마저도 실현은 쉽지 않아 보인다. 먼저 대개 연극적으로 극화된 격정과 흥분이 현재 미국의 정치무대를 지배하고 있다(토마스 프랭크의 기사 참조). 그런가 하면 소수자들의 결집에 기대던 선거전술의 효과나 정책의 우선순위를 놓고 민주당 내부의 분열도 심각하다. 한편 도널트 트럼프의 지지세력 역시 대선 결과에 집요하게 불복하고 있다. 더욱이 그들 이 게릴라 전투를 지속할 수 있도록 여전히 건재한 공화당이 그들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고 있다.

 

며칠에 걸친 긴박한 개표전쟁 끝에, 조 바이든이 마침내 미 대선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열망하던 완벽한 정권교체는 이루지 못한 반쪽짜리 승리였다. 민주당에는 참담한 선거결과라고 볼 수 있다. 민주당은 막대한 선거자금(7~9월, 단 3개월 만에 10억 달러)(1)을 모금하고도 상원을 재탈환하지 못했으며, 하원의 의석수도 줄었다. 게다가, 미 연방시스템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통로인 의회 과반 달성에도 실패했다. 

불편한 진실이겠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 사태와 그로 인한 경제위기(지난 4월 실업률은 1930년대 이래 사상 최고치인 14.7%였다)가 깊어지기 전까지 트럼프는 초반 탄탄한 재선가도를 달렸다. 미 국민은 지난 4년 간 대통령의 반복되는 거짓말과 코로나 사태에 대한 부실대응, 각종 돌출행위에 끊임없이 시달리고도, 이번 선거에서 최소 7,370만 표(2)를 그에게 안겨주는 것으로 응답했다. 이는 역대 공화당 대선 후보 가운데 최다 기록이자, 심지어 2016년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본인이 따낸 표보다 1,000만 표가 더 많다.

2020년 2월, 미국 경제는 호조세를 보였다. 실업률은 역대 최저치(3.5%)를 기록했고, 인플레이션도 2.3% 수준을 밑돌았다. 2019년 4/4분기 경제성장률 역시 2.4%의 견고한 성장세를 보였다. 여기에 (고립주의 여론이 우세하던 시절) 대규모 전쟁의 부재와 현직 대통령 프리미엄이 더해져, 많은 정치학자와 경제학자가 트럼프의 연임을 점쳤다.(3) 보건 및 경제 상황의 악화로 트럼프는 연임에 실패했지만, 미국의 정치지형에서 ‘트럼피즘’(Trumpism, 트럼프식 정치-역주)은 전혀 수그러들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지금도 여전히 트럼프는 수천 명의 열성적인 충성팬들과 ‘성장클럽’(조세와 재분배에 적대적인 보수적 성향의 경제단체)·가정연구위원회(낙태·이혼·동성애자의 인권 등에 반대하는 복음주의 기독교단체)와 같은 수많은 보수단체, 폭스뉴스·브레이바트뉴스 등 여러 언론사의 지지를 받고 있다. 게다가 지난 2016년 대선을 승리로 이끈 요인들 역시 그대로 남아 있다. 가령 지난 1세기 이래 가장 급격한 인구변화를 겪은 미 국민의 이민자들을 향한 반감이나 인종 간 적대감, 서민층을 향한 고학력 엘리트층의 거만한 태도, 세계화 현상이 최대 다수가 아닌 다국적기업과 상류층에만 이익을 준다는 통념 등이 대표적이다.  

트럼피즘은 정치·경제·문화 엘리트층을 향한 전 세계적 ‘포퓰리즘’ 저항에 기반한다. 특히 세계화나 탈산업화로 인생이 뒤집힌 사람들이 트럼프식 정치에 열광적인 지지를 보낸다. 존 주디스의 지적처럼, ‘우파 포퓰리즘’은 흔히 주류 정당이 진정한 문제를 외면하거나 과소평가할 때 더욱 득세하는 경향이 있다.(4) 그런 점에서, 민주당은 트럼피즘의 탄생과 강화에 무거운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1994년 1월 1일 발효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지지하고,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강력히 추진한 행보가 결국엔 미국 노동시장에 직격탄이 돼 돌아온 것이다. 미국의 싱크탱크 경제정책연구소(EPI)에 의하면, 중국의 WTO 가입으로 날아간 미국 제조업 일자리 수는 240만에 달한다.(5)

버락 오바마 역시 민생에 주력하는 민주당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일례로, 월스트리트의 대변자로 불리는 인사(티모시 가이트너)를 재무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또한 2008년 경제위기의 원흉인 은행가들을 법정에 세우지도, 주택에 연금까지 날린 수백만 명의 미 국민을 보호할 방법을 찾지도 못했다. 4년 전, 민주당은 뜨거운 자유무역 열병을 앓은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데이비드 아우터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 경제학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6) 중국의 무역 확대로 인한 미국의 일자리 감소는 2016년 미시간·위스콘신·펜실베이니아주 같은 산업지대에서 트럼프의 승점을 올려주며, 그가 최종 대선 승자가 되는 데 결정적 발판을 마련했다.

 

민주당, 서민층의 지지를 잃다

전통적으로 ‘노동자당’으로 불리는 민주당은 서민층의 지지율이 급감한지 오래다. 특히 ‘백인’을 자처하는 지지자들의 이탈이 심각하다. 이런 경향은 2020년 대선에서도 여실히 확인됐다. 초기 대선 출구조사에서,(7) 트럼프는 저학력 백인 유권자로부터 무려 64%(바이든은 34%)의 표를 득표했다. 특히 복음주의 기독교인(81%)과 농촌 주민(65%)의 지지가 두터웠다. 정작 2000년에 이르러서야 보수 세력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가장 빈곤한 선거구는 오늘날 공화당 표밭으로 바뀌었다. 반면 가장 부유한 50대 선거구 중 무려 44곳(가장 부유한 10대 선거구는 모든 곳이)이 민주당에 표를 던졌다. 사회계층 간 정치성향의 역전은 트럼프 없는 트럼피즘이 번성하는 비옥한 토양을 제공한다. 만일 민주당이 근본적인 궤도 수정에 나서지 않는다면, 아마도 더 많은 빈곤층이 공화당원으로 변신할 것이며, 공화당의 손에는 수많은 희생양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힐 것이다. 이민자, 흑인, 외국인, ‘엘리트층’ 등이 그들이다.

명심할 사항이 하나 있다. 오늘날 미국의 공화당은 헝가리, 터키 등을 집권한 독재정당 수준의 극우정당이 됐다. 제프 플레이크 애리조나주 상원의원(2013~2019), 마크 샌포드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하원의원(2013~2019) 등 반대세력을 축출한 공화당은 트럼피즘 세력의 온상이 됐다. 이런 현상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미국의 ‘우파 포퓰리즘’은 다른 유럽국의 경우보다 훨씬 위험하다. 유럽의 경우, 비례대표제 덕에 (일부 예외가 있지만) 극우정당은 대개 정치무대 변두리에 머무르는 데 그친다.

대표적인 예가 네덜란드(2017년 총선에서 13% 득표에 그친 자유당)나 스페인(2019년 총선에서 15% 득표를 넘지 못한 복스당)이다. 반면 미국에서는 트럼프 지지세력이 두 양대 주류 정당 중 하나를 장악하고 있다. 게다가 ‘단순다수 1차 투표제도’는 다른 정당의 출현을 막아주는 훌륭한 방어막이 돼준다. 그런 의미에서 현 선거제도는 트럼프보다 훨씬 더 위험한 선동가를 낳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가령 로널드 레이건의 카리스마에, 버락 오바마의 지성과 겸양을 겸비한 선동가의 등장을 상상해보라.

 

코로나19 사태로 벌어진 사회적 격차

바이든은 양극화가 심각한 나라에서 지도자로 등극했다. 더욱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사회적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노동부에 의하면, 미국은 현재 역사상 가장 불평등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 재택근무는 확실히 고학력자에게 더욱 유리한 근무방식이다. 위기가 최고조일 때 미국의 저임금 일자리 감소율은 고임금 일자리 감소율의 8배에 달했다. 대졸 노동자와 프리랜서는 저학력 노동자에 비해 재택근무 능력이 4배나 높다.(8) 

위기상황 속에서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됐다. 격리조치가 시작된 3월 18일부터 10월 20일 사이, 미국의 억만장자 643명의 재산은 무려 9,310억 달러가 늘었다. 이는 이 억만장자들이 보유한 총 재산의 1/3에 달한다. 특히 바이든은 이 대부호들의 덕을 톡톡히 봤다. 거부들이 10만 달러 이상씩 기부금을 투척해준 덕분에, 불과 6개월 만에 무려 2억 달러의 선거자금을 모금할 수 있었다. 사실상 미국의 주요 금권세력(월스트리트, 실리콘벨리, 헐리우드, 투자기금 등)이 바이든을 자신들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을 대통령으로 이해한 셈이다.

앞으로 상원은 냉혹한 미치 맥코넬 켄터키주 상원의원이 이끌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바이든이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정책들을 실천에 옮기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상원에서는 우파 세력이 정책을 좌지우지하려 할 것이고, 민주당 내에서는 버니 샌더스·엘리자베스 워렌 등 급진 좌파 진영의 공세가 뜨거울 것이다. 이런 상황은 결단력 있는 지도자에게도 난제가 될 것이다. 하물며 ‘슬리피 조’(9)에게는 오죽하랴.

한편 신임 대통령은 오바마와는 정책면에서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바이든이 오바마 정권에서 부통령으로서 충실히 수행한 정책은 훗날 트럼프와 그 세력이 출현하는 바탕이 됐다. 그런 점에서, 바이든은 본인과 민주당의 근본적인 변화를 꾀해야만 하며, 평생토록 견지한 중도주의적 신중모드를 탈피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궤도를 수정해나가야 할까? 먼저 팬데믹 상황에서도 돈을 번 계층에게 높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뒤 도입한 조세제도의 맥을 잇는)법인세를 물려야 한다. 바이든 정부는 (2009년 오바마 정권과 달리) 대기업이 아닌, 저임금 노동자·실업자·영세기업과 같은 현 위기의 직접적 피해자를 대상으로 경기 부양책을 펼쳐야 한다. 또한 코로나 사태가 한창인 와중에 보금자리를 잃게 될 위기에 처한 수백만 명의 세입자와 영세한 소유주들을 진정으로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물론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은 이런 조처를 결코 승인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끈질기게,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의 뉴딜 정신을 잇는 서민 대책을 강력하게 주장해야 한다. 그래야만, 2022년 중간선거에서 비로소 공화당의 보수적 태도에 맞설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원조 트럼피즘보다도 유해한, 새로운 트럼피즘의 출현에 맞설 최고의 방책이다.  

 

 

글·제롬 카라벨Jerome Karabel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사회학과 교수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번역위원


(1) Rebecca R. Ruiz, Rachel Shorey, ‘Democrats see a cash surge, with a $1.5 billion ActBlue haul’, <The New York Times>, 2020.10.16.
(2) 2020년 11월 20일 기준 통계.
(3) Jeff Cox, ‘Trump is on his way to an easy win in 2020, according to Moody's accurate election model’, <CNBC>, 2019.10.15.
(4) John B. Judis, 『The Populist Explosion : How the Great Recession Transformed American and European Politics』, Columbia Global Reports, New York, 2016.
(5) Robert E. Scott, ‘US-China trade deficits cost millions of jobs, with losses in every state and in all but one congressional district’, Economic Policy Institute, Washington DC, 2014.12.18.
(6) David Autor 외, ‘Importing political polarization? The electoral consequences of rising trade exposure’, <American Economic Review>, 제110권, 제10호, Nashville, 2020.10.
(7) ‘National exit polls : How different groups voted’, <The New York Times>, 2020.11. www.nytimes.com.
(8) Heather Long 외, ‘The covid-19 recession is the most unequal in modern US history’, <The Washington Post>, 2020.9.30.
(9) Sleepy Joe; 트럼프가 민주당 상대후보에게 지어준 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