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씁쓸한 승리

2020-11-30     세르주 알리미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11월 3일 저녁, 민주당 선거 운동원들 중 상당수는 화가 난 상태였다. 자신들의 후보가 승리했지만, 선거가 계획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패배했지만 일부 주(조지아, 위스콘신, 애리조나, 펜실베이니아)에서 몇만 표를 더 받았다면, 백악관에 4년 더 머무를 뻔했다. 

팽팽한 결과에 트럼프는 “전부 사기”라고 외쳐댔다. 트럼프의 열성 지지자들은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를 위해 설계된 소프트웨어가 이번 선거결과를 조작하는 데 쓰였다”라며 투표 시스템을 공격했다. 미국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인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이 지지자들과 함께 이런 억지 주장을 하며 이마의 땀을 닦던 모습에서 미국 정치판의 현주소를 여실히 볼 수 있다.

공화당원의 77%가 이번 선거가 합법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조 바이든의 불안과 걱정도 만만찮다.(1) 내년 1월 20일 민주당이 상원에서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하고 하원에서 10석을 잃어 의회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없게 된 만큼, 이 민주당 당선자는 공화당의 불신에 직면해야 한다. 밀월기간도 누릴 수 없을 것이다. 바이든은 화려한 연설과 두 권의 회고록 외에는 거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은 버락 오바마의 12년 전 출발보다 훨씬 어려운 출발을 맞게 됐다. 게다가 오바마의 당선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었다. 그는 세계의 꿈이었으며, 그의 당은 양원에서 모두 다수를 차지했다. 오바마는 ‘슬리피 조(Sleepy Joe; 트럼프가 민주당 상대후보 조 바이든에게 지어준 별명들 중 하나)’보다 훨씬 활기찼고 30년이나 젊었다.

 

실망한 승자, 미래가 밝은 패자

역설적이게도 패배 진영의 미래가 오히려 밝아 보인다. 4년 전 트럼프 반대자들은 그의 당선이 믿을 수 없는 선거의 결과이며, 농촌에 살면서 종교를 믿는, 나이 든 유권자 계층과 연대한 트럼프 진영은 파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반면, 인구통계학적 지도는 "다양하고" 젊고 다민족적인 다수가 지지하는 민주당의 반격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이런 미래가 이미 결정된 것은 아니다. 느긋하게 자신의 기반을 확신하며 틈새를 파고드는 트럼프식 공화주의는 쉽사리 현장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퇴임을 앞둔 대통령은 자신이 인수한 정당을 변화시켰다. 앞으로도 그 정당은 트럼프의, 트럼프 일족의, 혹은 트럼프가 내세운 후임자의 당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민주당원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떤 형태로든 낙담과 해체가 뒤따를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20만 명 이상이 사망한 가운데, 경제는 침체되고, 실업률은 치솟고, 전임자들과 달리 4년 임기 내내 지지율이 50%를 넘은 적이 없고, 거짓말과 공개모욕의 기록만으로도 몇 권의 책을 낼 법한, 퇴임을 앞둔 대통령의 패배는 확실해 보였다. 그 모든 요인들에 거의 모든 언론의 맹폭격까지 추가됐고, 그가 확보한 선거자금은 민주당 경쟁자에 못 미쳤다(공화당 의원들이 억만장자들에게 엄청난 세금감면을 선물로 안겨준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예술가, 군 장성, 좌파 학자들, 아마존 대표를 포함해 대부분의 엘리트들이 거두절미하고 바이든을 지원했다.

따라서 11월 3일 민주당은 승리가 아닌 보복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들은 1980년과 마찬가지로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투표를 마치기도 전에 현 대통령의 참패가 확실시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리고 성스러운 진보국가 미국의 굴욕을 진정으로 씻어내려면, 공화당원들에게 예견된 재난(트럼프 가족의 투옥)이 닥쳐야 했다. 그런데 이 시나리오는 가상에 그칠 듯하다. 마라라고 골프클럽의 골퍼는 오랫동안 정치적 활동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탄핵 시도를 포함해 그가 당한 온갖 모욕에도 불구하고 4년 전보다 1,000만 표를 더 얻은 그는, 지지자들을 설득할 것이다. 자신은 약속을 지키고 당의 사회적 기반을 넓힌 용감한 대통령이었다고, 그럼에도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해 그 혁혁한 기록이 빛을 잃었노라고 말이다. 

일부의 열정은 다른 이들의 거부로 강화되기도 한다. 가장 열성적인 공화당원들의 ‘대안적 진실’은 비슷한 결함을 가진 민주당원들의 평행 우주보다 의심을 덜 받곤 한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단골 미디어를 제외한 대부분의 미디어에서 자신들의 챔피언을 묘사하는 것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바이든을 지지하는 많은 유권자들, 특히 도시 지역 대졸 이상의 고학력층들은 퇴임하는 대통령이 광대, 파시스트, 푸틴의 푸들, 히틀러의 후계자라고 확신한다. 

지난 9월 23일, 도니 도이치는 MSNBC의 한 토크쇼에 출연해 트럼프의 지지자들을 나치 집회에 참석한 광신자들에 비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에게 투표하려는 유대인 친구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의 연설과 아돌프 히틀러의 연설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이틀 후 <워싱턴 포스트>의 한 칼럼니스트는 미 대통령의 전체주의 유혹을 나치 독재의 시작에 비유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메리카여, 우리는 라이히스탁(Reichstag; 독일연방의회의 전신) 화재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소각되지 않도록 합시다.”(2)

마지막으로, 바이든의 당선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때 CNN의 스타 기자 크리스티안 아만푸어는 자신의 승리를 음미하고 전투를 잠시 쉬는 대신 11월 12일이라는 날짜를 이용해 기사를 썼다. 1938년 11월 12일은 유대인 상점이 약탈당하고 많은 상점 주인이 살해되거나 강제 수용소로 보내진 ‘크리스탈 나흐트(Kristallnacht)’, 즉 ‘산산조각 난 유리의 밤’이 있었던 날이다. 아만푸어는 그날이 "현실, 지식, 역사, 진실"에 대한 공격의 서막이 시작된 날이라며, 이를 즉시 미국 대통령의 범법 행위와 결부시켰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진보 언론은 대통령의 과도한 언행을 수용하지 않기로 결심한 듯하다. 그러나 트럼프 지지자들은 진보 언론이 자신들의 편집증을 비웃었다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4년 내내 계속 들어왔던 트럼프-러시아 공모라는 엄청난 의혹이 제대로 밝혀지지도 않고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는 것을 이미 알아차렸다.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은 증오와 날조의 메커니즘을 촉발시켰다. 그의 보수에 가까운 중도성향, 재정긴축 정책, 은행에 대한 관대함, 드론 암살 작전, 대규모 이민자 추방, 경찰 실수에 대한 무력한 대응에도 공화당은 그를 확고한 급진주의자, 가면을 쓴 혁명가, 가짜 미국인이라고 비난했다. 바이든은 전임 민주당 대통령만큼 좌파적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바이든은 투표 일주일 전 마이애미에서 “나는 사회주의자들에 맞서 싸운 온건파”라고 호소했다. 바이든 역시 과열된 분위기 속에서 임기를 수행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의 기자이자 정치평론가인 매트 타이비가 분석했듯, 미국의 주류 언론은 정보 전달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들을 죽이거나 살릴 수 있는 강성 지지자들을 만족시키는 데 열중하고 있기 때문이다.(3) <뉴욕 타임스>를 읽는 사람 중 91%가 자신은 민주당 지지자라고 답했고, <폭스 뉴스>를 선호하는 사람들 중 93%가 자신은 공화당 지지자라고 답했다.(4) 그렇다면 구독자에게 그 기대에 맞춘, 편향되고 날조된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 좋은 비즈니스인 셈이다. 그리고 언론인들은 다양성을 존중한다고 공언하며, 이단자들을 조심스럽게 공격하면 된다.

그 효과는 확실했다. 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멸시와 혐오를 담은 사설과 논평을 하루에 6개까지 쏟아내면서 민주당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도구로 전락해버린 <뉴욕 타임스>는 현재 구독자가 7백만 명에 이른다. <폭스 뉴스>는 좌파 진영을 대놓고 옹호하면서 매출액이 급상승했다.

 

리오그란데의 수수께끼를 푼 유권자의 표심

서로 무시하고 공격하는 두 나라가 미국 내에 공존하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과거 남북전쟁은 경제적‧사회적 카테고리와 무관하게 미국을 둘로 갈랐다. 1969년에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전략가였던 케빈 필립스가 공화당 측에 각종 지도와 그래프를 들이밀며 조언했다. “중산층에 가까워지면서 보수적이 된 미국인들의 반발 심리를 이용해야 한다. 좌파 기득권자들이 누리는 특권, 정책, 세제혜택에 반대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5) 

저축이 늘수록 세금도 늘어나는 과세제도에 대한 반감과, 종교적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진보주의 지식인들이 만든 사회적 구조에 대한 적대감에, 필립스는 인종차별적 요소를 슬쩍 얹었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텃밭인 남부의 ‘백인 서민’ 계층이 흑인노예의 해방을 반대했다는 점을 간파한 결과였다. 공화당은 이 부분을 파고들어 지지층을 확대할 기회를 잡았다. 이 계층은 본래 우파의 경제정책에 반대했지만 “당을 선택할 때에는 다른 어떤 요소보다도 민족적, 문화적 증오를 우선시”했다. 이와 같은 필립스의 전략은 리처드 닉슨, 로널드 레이건, 조지 W. 부시의 재선 성공에 상당 부분 기여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의 대통령 당선에도 크게 일조했다.

그러나 전문가, 능력주의 사회, 이민자, 소수파를 겨냥하는 전략은, 유권자들 중 대학생이 늘고 백인이 줄고 있는 현재 미국의 상황에서는 점점 효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유리한 시기가 왔음을 확신했다. 흑인 대다수,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상당수, 여성 약간, 그리고 꾸준히 늘고 있는 고학력자들을 합치면 승리는 자명한 일이었다. 

2020년 대선은 유권자를 민족적, 정치적 성향에 따라 분류하는 정형화된 정체성 구분방식이 언제나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두 후보의 득표 결과를 보면, 바이든 후보는 4년 전 힐러리 클린턴에 비해 백인 유권자들의 표를 더 얻었고, 트럼프는 여성과 소수 계층의 지지율이 상승했다. 다만 선거결과를 좌우할 정도는 아니었다. 여전히 공화당은 저학력 백인남성들, 민주당은 흑인과 히스패닉 유권자들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변화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감지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경찰 공권력에 의한 흑인 사망사건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고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에 반감을 표한 후에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사이에서 지지율이 상승했다. 또한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불법 이민자들을 도둑과 살인자로 취급했는데도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지지율이 올라갔다. 이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일부 공화당 지지자들은 공화당이 서민 중심과 다민족 사회를 표방하는 보수 정당이 되는 게 아니냐고 할 정도였다.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당연히 자신들을 지지할 줄 알았던 계층을 잃을까 우려했다. 

이 수수께끼는 텍사스주의 리오그란데에서 마침내 풀렸다.(6) 리오그란데 인구의 90%는 히스패닉이다. 4년 전 클린턴 후보는 저파타 카운티에서 65%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트럼프 후보의 지지율이 더 높았다.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저 단순하게, 다른 유권자들과 마찬가지로 히스패닉 역시 우리가 정해 놓은 정체성의 원칙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리오그란데의 유권자들은 석유산업에 대한 바이든의 부정적인 관점 때문에, 저학력임에도 고임금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잃을까 걱정했다. 그들에게는 기후변화보다 자신들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한편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된 경찰 혹은 국경수비대로 일하는 이들은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자신들의 직업에 대한 정부 지원이 줄어들 것을 우려했다. 결국, 히스패닉이라고 해서 낙태나 시위에 무조건 찬성하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저파타 카운티에서 경험한 바로는 그렇다. 히스패닉도 보수주의자일 수 있다. 또한 아프리카계 미국인도 멕시코 이민자 유입에 부정적일 수 있으며, 아시아인도 대학 입학 시 소수집단 우대정책에 반대할 수 있다. 

오늘날 민주당은 진보주의적이고 작위적인 조항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공화당은 국민 분열로 조장하는 방식으로 지지율을 높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양쪽 모두 겉으로 드러난 현실의 이면은 보지 못하고 있다. 히스패닉 젊은이가 부모와 똑같이 민주당에 표를 던졌다면, 꼭 자신이 히스패닉이라는 정체성 때문만이 아니라, 부모 세대보다 더 많은 교육을 받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런 다양성 위에서, 이제 확실한 것은 그 무엇도 없다.

미국 정치 시스템을 향한 신뢰 위기는, 국제 사회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존재감이 크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승리를 거머쥔 미국 좌파는, 지나치게 신중한 정책을 펼쳐서 트럼프를 내세운 공화당에 정권을 내줬던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안팎으로 경계해야 할 것이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미국 버클리대 정치학 박사 출신으로 파리 8대학 정치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1992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합류한 뒤 2008년 이그나시오 라모네의 뒤를 이어 발행인 겸 편집인 자리에 올랐다. 신자유주의 문제, 특히 경제와 사회, 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 신자유주의가 미치는 영향과 그 폐해를 집중 조명해 왔다.

번역·김루시아, 김소연
번역위원


(1) 몬머스대학교 여론조사, 2020년 11월 18일.
(2) Dana Milbank, "This is not a drill. The Reichstag is burning", <The Washington Post>, 2020.9.25.
(3) Matt Taibbi, 『Hate Inc.: Why Today's Media Make Us Despise One Another』, OR Books, New York, 2019.
(4) 2019년 10월-11월 퓨리서치센터의 연구에 의하면, NPR(공영 텔레비전), CNN, MSNBC의 경우 공화당 지지자와 민주당 지지자의 비율에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ABC, CBS, NBC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5) Kevin Phillips, The Emerging Republican Majority, Arlington House, New York, 1969.
(6) Elizabeth Findell, ‘Latinos on border shifted to GOP’, <The Wall Street Journal>, 2020년 11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