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삐걱거리는 에너지 전환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는 수많은 장애물들

2020-11-30     아가트 오신스키 외

폴란드는 EU 회원국들 중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실제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탄소중립을 실현해야 한다는 의무를 유일하게 면제받은 국가다. 그 대신, 2049년까지 모든 석탄 탄광의 운영을 중단하겠다고 지난 9월 합의했다. 이런 결정은 폴란드가 1989년부터 진행 중인 경제·사회 개혁, 그리고 다른 유럽국가들에 비해 기후변화에 관심이 덜한 폴란드 국민의 특성을 고려한 결과다.

 

2019년 폴란드는 6,160만 톤의 석탄(갈탄 제외)을 채굴했는데 이는 당해 EU 전체에서 채굴된 석탄의 95%에 달한다. 폴란드의 채굴량은 2012년 대비 약 20% 감소했지만, 폴란드보다 석탄 매장량이 많은 독일의 채굴량이 같은 기간 약 76% 감소한 것에 비하면 미미한 수치다.(1) 그러나 독일의 경우, 자국의 석탄을 채굴하지 않아도 필요한 양을 충분히 수입할 수 있다. 따라서 채굴량과는 별개로 항상 소비량이 높은 독일은, 2019년 유럽 전체 석탄의 35%를 소비했다. 

보수적인 카톨릭에 대한 애착으로 인해, 시대에 역행하는 이미지를 지닌 폴란드의 국민은 정말로 기후변화에 무관심할까? EU 시민들 중 폴란드 국민이 기후문제에 가장 덜 민감하다는 결과가 일부 여론조사에서 나오기는 했다. 그러나 2019년 가을 바르샤바에서 있었던 기후변화 퍼포먼스나 다른 조사결과들을 보면, 폴란드 국민의 의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8년 COP24(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리기 직전에 이뤄진 조사 결과, ‘기후변화가 현대문명의 주요 위협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라고 대답한 폴란드 국민은 1/3에 달했다(2014년에는 18%, 2009년에는 15%에 불과했다).

2018년 유럽투자은행이 실시한 조사에서는 폴란드 국민의 75%가 ‘기후변화의 위험을 인지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는 유럽 평균 78%와 비슷한 수치다. 바르샤바 대학교 교수이자 에너지 안보 전문가인 카밀라 프로닌스카는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인식이 많이 높아졌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언론에서도 기후변화 문제를 중요하게 다룹니다”라고 말했다.

 

엄청난 상징자본과 ‘표’를 쥐고 있는 광부들

콜레지움 시비타스 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파웰 루스코프스키가 “사회학적으로 대단히 어렵고 충격적인 과정이었다”라고 표현한, 구소련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은 폴란드 국민에게 긴 충격을 남겼다. 이 갑작스러운 단절로 인해, 국가는 세계화의 혜택을 받은 쪽과 받지 못한 쪽으로 양극화됐다. 시대의 변화를 읽고 신속하게 움직인 이들은 민간분야에서 높은 보수를 받는 일자리를 차지했다. 대부분 도시에 거주하는 이 신흥 관리계급은 자유주의적 가치를 쉽게 수용했다. 반면 소외된 농촌주민들은 여전히 카톨릭 신앙과 전통을 고수하며, 서구모델을 거부하고 있다.

좌우가 극명하게 나뉘는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폴란드의 정치권은 광범위한 가족수당 지급 등 급진적인 사회복지 계획과 민족주의에 기반한 보수주의 우파(법과정의당, PiS), 유럽 통합과 자유 무역에 찬성하는 자유주의 우파(시민연단, PO)로 양분돼 있다. 2015년부터 집권 중인 법과정의당은 1989년에 도입된 ‘충격 요법’으로 얻은 부를 재분배하자고 제안한 최초의 정당이었으며, 여러 세기 외세의 침략에 시달린 폴란드 국민의 애국심을 잘 이용했다.(2)(3) 진보세력은 1990년대에 집권하기도 했으나, 이후 신자유주의와 통합되면서 명맥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폴란드 변두리 지역에서는 보수 집권당에 대한 지지율이 굉장히 높다. 독일 등 타국의 간섭을 정당화하는 새로운 시도로 비춰지는 EU 정책으로부터 폴란드를 보호해준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일부는 기후정책도 폴란드의 경제발전을 저해하려는 내정간섭의 일종으로 간주한다.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거부함으로써, 폴란드 집권당은 자신의 지지층에 강력한 신호를 보냈다. 메시지는 간단명료하다. “우리는 EU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EU 집행위가 계속 탄소중립 목표를 부과하려는 것에 대해, 폴란드가 일방적으로 입장을 표명한 것에 불과하다. 

폴란드에서 공산주의가 붕괴한 후 5년 동안 8,000여 개 공기업의 3/4이 민영화됐는데, 국민자본이 부족했던 탓에 대부분 외국인 주주의 손에 넘어갔다. 그러나 에너지 분야는 전략적인 이유로 민영화되지 않았다. 연속적인 합병 끝에 현재 4개의 공기업이 폴란드 전역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 이 공기업은 폴스카 그루파 에네르게티츄나(PGE), 에네아, 에네르가, 타우론으로, 산업부 장관이 이 공기업의 임원들을 모두 임명한다. 여당이 바뀌면 이들은 민간 부문으로 옮기고, 새로운 집권당의 측근들이 임원직을 차지한다. 이 점에서는 PiS도 이전 집권당들과 다르지 않다.

이 4대 공기업 및 광산기업 납품업체 직원들과 광부들을 합산하면, 2019년 기준 경제활동인구가 1,800만 명(총 인구 3,800만 명)인 폴란드에서 무려 50만 명이 광산업에 몸담고 있다.(4) 광부들의 수는 8만 명에 불과하나 관련산업 종사자들까지 합산하면, 선거결과를 좌우할 만큼의 숫자가 된다. 높은 노조 가입률도 이들의 힘이다. 지금은 평균 약 15%로 떨어졌지만, 에너지 업계의 노조 가입률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고 일부 광산의 경우는 100%에 달한다.(5) 결국 광부들은 엄청난 상징자본을 보유한 셈이다. “과거 벨기에, 독일, 루르 지역에서 광부들은 영웅 대접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폴란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광부들은 평균 임금의 2배를 받고 있고 사회적 지위도 높은 편입니다.” 유럽노조연구소(ETUI)의 연구원인 벨라 갈고치가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폴란드의 에너지업계는 불확실한 변화를 차단하고 거부할 수 있는 힘을 갖추게 됐다. 그러나 석탄은 환경을 오염시키며, 경제성장도 저해한다. 2016~2018년만 해도 무려 40억 즐로티(약 10억 유로)의 공공자본이 공기업에 직접 투입됐다. 공기업은 막대한 지원금을 받고 있음에도 투자를 원하는 민간업체가 전무할 정도로 수익률이 낮아 만성 적자에 시달리며, 에너지 업계의 유일한 보증인인 공공은행의 융자에 의지해 간신히 연명하고 있는 실정이다. “풍력 등 다른 모든 에너지원들 중 석탄을 이용한 전력생산 비용이 가장 큽니다.” 비정부기구(NGO) 클라이언트어쓰의 일로나 제드라식이 말했다.

 

자립, 안보, 주권, 생계가 달린 석탄

역대 폴란드 정부들은 석탄의 시대가 지났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회적 반발과 선거패배를 우려해 광산업을 억지로 유지해왔다. 그 우려는 2015년 실레시아 지역 시위로 인해 굳어졌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프랑스가 반면교사 역할을 하고 있다. 폴란드 언론이 ‘노란 조끼’ 시나리오를 주기적으로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지난 9월 폴란드 정부와 광부노조는 석탄 탄광 운영의 중단에는 합의했으나, 그 기한을 2049년으로 최대한 늦추었다.

수세기 동안 주변 강대국들의 지배를 받았던 폴란드는 에너지 자립과 에너지 안보의 확립을 최우선 과제로 여겼다. 지난 30년 동안 폴란드는 러시아로부터 에너지 자립을 위해 에너지원의 다양화에 힘써 왔다. 2004년 EU에 가입할 당시에는 석유와 천연가스 수입량의 90%가 러시아산이었다. 에너지 자립을 위해 폴란드는 가스 공급망을 구축하고 정유공장을 재정비했으며, 발트해와 시비노우이시치에(포메라니아 동부)에 LNG 터미널을 건설 하고 확장하는 등 막대한 투자를 감행했다. 조만간 새로운 가스 공급관 설치가 완료되면 노르웨이의 천연가스가 덴마크를 지나 폴란드로 수입될 예정이다. 공교롭게도 이 관로는 러시아가 독일로 수출하는 천연가스의 공급관과 교차된다고 한다. 

여하튼 폴란드 현 정부의 계획에 의하면 2022년부터는 오랜 ‘형제국’ 러시아로부터 에너지 독립을 완전히 이루게 된다. “러시아의 천연가스가 필요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러시아는 천연자원을 무기화하기 때문에, 폴란드는 러시아를 신뢰할 수 있는 에너지 공급처로 여기지 않습니다.” 프로닌스카가 말했다. 이런 이유로 역대 폴란드 정부들은 석탄을 에너지 주권의 핵심요소로 내세워 왔다. “폴란드가 석탄을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지정학적 이유가 있습니다.” 갈고치가 설명했다. 그러나 모순적인 부분도 있다. 폴란드는 석탄생산 효율이 떨어져 국내에 석탄이 부족해지자, 러시아로부터 석탄 필요량의 40%를 수입했다. 덕분에 최소비용으로 광산 인프라를 유지할 수 있었고, 결국 에너지 전환은 다시 미뤄졌다.

사실 일부 공동체는 광산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탄광폐쇄는 석탄으로 평생 생계를 꾸려온 이들에게는 비극일 수밖에 없다. 탄광이 폐쇄된 후에도 일부는 ‘빈곤의 갱도’라 부르는 곳에서 불법 석탄채취를 이어가는데, 이런 행위는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엄격하게 단속대상이 된다. 광부들로서는 산업화시대에서 영웅으로 칭송받다가, 친환경 사회가 도래하면서 갑자기 ‘잉여인간’ 취급을 받게 된 현실을 수용하기 어렵다. 노동자 계급은 자신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EU가 에너지 전환을 결정한 데 대한 반발이 크다. 사회적 정의와 환경적 야심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계획이 나와야만 현재와 같은 상황이 해결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2019년에 수립된 EU의 그린딜은 판도를 바꾸어 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린딜의 내용 중 하나인 ‘공정전환기금’은 오염 발생 산업에 의존하는 지역들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기금을 조성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최초 제안 시에는 75억 유로였고, 한때 400억 유로까지 늘어났다가 7월 중순 EU 이사회의 경기부양 회담 후에는 175억 유로로 줄었다. 

그러나 폴란드 정부는 이 금액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기후부 차관 아담 귀부르즈-체트베르틴스키는 “충분한 자금이 지원되지 않으면, 폴란드는 에너지 전환을 위해 노력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재정적인 부분을 빼놓고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논할 수는 없다. EU 이사회는 2030년 목표를 달성에만도 EU 전체에 연간 3,000억 유로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한다. 폴란드의 경우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몇 세대 동안 자본을 전혀 축적하지 못했기 때문에 특히 지원금이 절실하다.”

그러나 ‘공정전환기금’의 증액은 공동농업정책(PAC)과 결속기금 등 구조적 자원의 감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주로 EU 평균보다 경제적으로 낙후된 중부 유럽 국가들을 위한 지원책이다.(6) “‘공정전환기금’의 증액 결정은 반가운 일이지만, 현재의 결속기금 예산에는 손대지 않고 새로운 예산을 확보해야 할 것입니다.” 갈고치가 말했다.

그러나 본래 광산업 종사자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그들의 전업을 돕겠다는 취지에서 조성된 공정전환기금이 지금은 그저 에너지 전환에 부정적인 국가들을 회유하려는 방편이 된 것처럼 보인다. 유럽 그린뉴딜 캠페인의 코디네이터인 파웰 바건도 한계를 인정했다. “공정전환기금이 조성된다고 해도, 그 혜택이 반드시 가장 취약한 계층이나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이들에게 돌아간다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글·아가트 오신스키 Agathe Osinski
마티아스 페텔 Matthias Petel

루뱅 카톨릭 대학교 박사과정

번역·김소연 dec2323@gmail.com
번역위원


(1) Coal production and consumption statistics, Eurostat(유럽 연합통계청), 2019. 6.
(2) Julien Vercueil, ‘Thérapie de choc ou gradualisme ? (한국어판 제목: 폴란드와 슬로베니아, 시장경제로 가는 두 갈래 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0년 6월호, 한국어판 2020년 8월호.
(3) Thibault Deleixhe, ‘Dans les coulisses de la Pologne de Kaczynski 카친스키 집권 기간의 이면’, <Politique>, 2019년 12월 13일, www.revuepolitique.be
(4) 세계은행의 데이터베이스
(5) Aleksander Szpor, The changing role of coal in the Polish economy, Bela Galgoczi, (지도)Towards a just transition : coal, cars and the world of work, European Trade Union Institute, Brussels, 2019.
(6) Simone Bennazzo, Un vent de l’Est contre le Green Deal de la Commission européenne (동유럽 vs. EU 집행위의 그린딜), Courrier international, Paris, 2020. 6.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