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는 대형 제약회사의 기니피그인가

풀리지 않은 식민지 시대의 앙금

2020-11-30     사빈 세수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아프리카 SNS에서 잡음과 함께 루머가 퍼지면서, 서구세계가 코로나19 확산및 치료제 개발실험 문제의 근원으로 지목됐다. 이는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는 현상이다. 지난 3월 27일 안토니우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은 아프리카 지역의 경각심을 촉구하는 취지의 연설에서 “아프리카 인구가 선진국 인구보다 젊지만, 필연적으로 사망자가 수백만 명에 이를 것입니다”라고 예상했다. 사람들은 ‘필연적’이라는 말에 몹시 분개했고, 분명 ‘준비된 계획’이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4월 중순, 미국의 자선사업가 멀린다 게이츠는 “아프리카는 곧 거리에 온통 시체가 널리는 상황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발언으로 멀린다 게이츠는 아프리카 주교위원회의 분노를 샀다. 그동안 아프리카 주교위원회의는 아프리카에 관한 ‘우울하고 끔찍한 논평’을 어떻게든 일축해왔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창립자 빌 게이츠는 코로나 대유행 초기부터 숱한 루머의 표적이 됐다. 말리에 특파원으로 파견된 네덜란드 기자 브람 포스트 후무스는 ‘빌 게이츠가 세계를 지배하려 코로나를 만들었다’는 괴담이 지금까지도 난무한다고 전했다.

구테헤스 사무총장 연설 6개월 후 아프리카연합 질병통제예방센터(Africa Centres for Disease Control) 발표 내용에 의하면, 9월 8일 기준 아프리카 지역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는 각각 전 세계의 약 5%, 약 2.4%에 그쳤다. 미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가 총 36개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위기관리 시책을 조사한 결과, 가장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국가는 뉴질랜드이며, 2위는 아프리카의 세네갈(9월 16일 기준, 사망자 298명 발생)이었다.

 

과거 임상시험 사례에서 싹튼 음모론

코로나 바이러스와 개발 중인 백신을 둘러싼 음모론은 끊이지 않는다. 그중 아프리카에서의 음모론은 일정 부분 생생한 집단적 기억에 각인된 실제 경험에 뿌리를 둔다. 사람들의 기억에 남은 경험은 19세기 독일령 남서 아프리카(오늘날의 나미비아)에서 자행된 강제 불임술부터, 남아프리카 공화국 아파르트헤이트 정권(1948~1991) 시절 세균으로 흑인 인구를 절멸하려던 계획, 반복되는 제약 스캔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최근 출간된 카메룬 작가 무트롱의 소설 『바피아의 700 맹인(Les 700 aveugles de Baffia)』은 1920년대 프랑스 의료진이 아프리카에서 원생기생충 감염과 관련하여 수면병 실험을 하다가 집단 실명을 초래한 실화를 다루고 있다.(1)

 

에이즈에 저항한 남아프리카 공화국

남아공에서 ‘죽음의 의사’라고 불리는 우트 바손은 실제로 극단적인 방법을 썼다. 그는 지금까지도 케이프타운에서 의사로 활동하는 심장 전문의로, 1981부터 1993년까지 흑인을 대상으로 시행된 세균전 ‘프로젝트 코스트(Project Coast)’를 총괄했다. 그는 2002년 무죄를 선고받은 뒤 TV에 출연해 ‘프로젝트 코스트’는 ‘합법적인 독살’이었으며, “입증한 사례가 한 건도 없을 정도로, 독살은 효과적인 작전”이었다고 변명했다.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싸운 흑인 인권운동가 프랭크 치카네는 옷에 묻은 독극물에 자칫 독살될 뻔했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독극물은 ‘죽음의 대가’ 우트 바손이 개발한 24가지 치명적인 물질 중 하나였다. 바손은 1980년대에 바륨이 주성분인 진정제 맨드락스를 대량으로 생산해낸 작전에도 가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약물은 격렬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마을에 살포됐다. 2012년 열린 의료징계위원회의 청문회에서 몇몇 증인들이 프로젝트 코스트 중에는 콜레라균과 에이즈 바이러스를 사용하는 방안에 관한 연구도 있었다고 폭로했다.

남아공에서 넬슨 만델라의 뒤를 이어 1999~2008년 집권한 타보 음베키 전 대통령 시절, 에이즈와 HIV 바이러스의 상관관계나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의 효과에 의문을 제기했던, 지나간 날이 반복되는 것일까? 1999~2003년 4년 동안 음베키 대통령은 주요 제약회사들이 행사하는 압력을 비판하고, 해당 업체들이 미국 CIA의 지원을 받는다는 의혹을 비추기도 했다. 음베키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이즈 유병률을 보이는 자국 국민에게 항레트로바이러스제를 배포하지 못하게 막았고, 그 결과 치료행동캠페인(Treatment Action Campaign, TAC)이 발족됐다. 남아공의 국가수반도 당시 떠돌던 소문대로 에이즈를 ‘흑인을 죽이는 백인들의 질병’으로 인식했던 것일까?

음베키 대통령은 2003년 10월에 이르러서야, 그때까지 공공의료체계에서 사용을 금지했던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제의 보급을 승인했다. 환자들에게 면역력 강화요법으로 사탕무, 레몬, 생강 섭취를 권고해 ‘사탕무 의사’로 불린 당시 보건부 장관은 2008년 음베키 정부가 퇴진할 때까지 같은 방침을 고수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비로소 항레트로바이러스 약물이 널리 보급돼 여러 생명을 구했다. 연구진들은 2000년대 초에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사망한 남아공 국민이 30만 명이 넘는다고 추산했다.

 

나이지리아에서 벌어진 야만적인 트로반 시험

존 르카레의 소설 『콘스탄트 가드너 (The Constant Gardener)』에 그려진 거대 제약기업의 음모를 완전한 허구로 치부할 수는 없다. 영화로도 각색된 이 소설은 나이지리아에서 일어난 트로반(Trovan, 또는 트로바플록사신 trovafloxacin) 사건을 바탕으로 쓰였다. 1996년, 제약회사 화이자(Pfizer)는 여러 차례에 걸쳐 ‘야만적인 방식’의 항생제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이 약은 1997년 출시됐다가 부작용이 확인되면서 회수됐다.

나이지리아 보건부가 조사위원회를 꾸린 것은 <워싱턴 포스트>가 2000년 개발도상국 내에서 진행되는 신약 임상시험 현황에 관한 조사결과를 발표한 다음의 일이다. 이어 2001년 <워싱턴 포스트>는 1996년 나이지리아에서 일어난 사건의 실상에 관한 특집기사를 발표했다. 당시 홍역과 뇌수막염이 유행하자 화이자사는 부모의 구두 동의를 받은 어린이 100여 명에게 트로반을 투약했다. 또 다른 100여 명에게는 다른 항생제를 투약했다. 치료를 받은 200명의 아동들 중 트로반을 먹은 5명이 사망했고 다른 약을 먹은 집단에서는 치료제와 무관하다고 알려진 원인으로 6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많은 아이가 뇌손상, 청각장애, 마비증세 같은 후유증을 앓았다.

이상하게도 이 보고서는 2006년 익명의 제보자가 <워싱턴 포스트>에 보내온 자료에서 나왔다. 피해자 가족, 카노주 및 나이지리아로부터 수많은 항의가 쏟아지자, 화이자는 2009년 양국의 전직 대통령인 나이지리아의 야쿠부 고원과 미국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동석한 가운데 로마에서 우호적인 합의 방안을 논의했다. 화이자는 피해자 가족과 나이지리아 카노 연방정부 앞으로 총 7,500만 달러에 달하는 보상금을 지급했고, 2013년 카노에 병원을 신축하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흑인 ‘인종’에 대한 ‘뿌리 깊은 경멸’의 역사

코트디부아르 부아케(Bouaké)대학의 사회학자 프랑시스 아킨데는 ‘오늘날 각종 루머와 음모론은 보편적인 현상이 됐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청산되지 않은 식민지 시대의 앙금에 그 뿌리가 있다’고 분석한다. 옛 식민지를 좀처럼 떠나지 않으려는 백인들이 역사에 뿌리 깊은 흑인종에 대한 경멸을 거두지 않으려 한다는 아프리카인들의 불신이 팽배해 있다. 헤겔, 볼테르, 몽테스키외 외에도 여러 유럽 ‘인본주의자들’이 흑인에 대한 경멸을 글에 담은 바 있다. 

따라서 아프리카를 향한 모든 움직임을, ‘인류는 오직 백인종뿐’이라고 보는 인본주의자들의 이중적 잣대에서 비롯된 산물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그 결과, 비 백인종은 불안을 느끼고, 서구의 접근 방식을 과거 역사 속 사실과 기준으로 끝없이 회귀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인정해야 할 점은, 아프리카 지식인들이 이런 명제를 재활용했고 상상력을 더해 명제를 살찌웠다는 점이다. 이런 인식은 시차를 두고 거듭 표면으로 분출돼 세계와 문명 간의 관계를 완전히 훼손하고 만다. 모든 것이 의심의 대상이 되고, 깊은 불신을 자아낸다.

4월 2일, 프랑스 보건당국 관계자 두 명이 프랑스 <LCI> 방송에 출연해, 아프리카 보건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결핵 백신 BCG가 코로나19 퇴치에 효과가 있는지 실험해보자는 발언을 해, 억눌린 분노에 불을 질렀다. 이 발언에 ‘아프리카인들을 실험동물로 취급한다’는 비난이 쏟아졌고, 그들은 어떤 백신 시험에도 단호히 반대하고 있다.(2)   
 

 

글·사빈 세수 Sabine Cessou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이푸로라
번역위원


(1) Emmanuelle Colas, Paris, 2020. 1.
(2) 프랑스 힙합 아티스트 부바(Booba)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5년 6월호 기사 ‘아프리카, 거대 제약회사의 영원한 기니피그 L’Afrique, cobaye de Big Pharma’를 인용했다. 팟캐스트 <디플로 Diplo>의 코너 ‘Retour des réseaux’에서 관련 에피소드를 청취할 수 있다.
https://www.monde-diplomatique.fr/podcast/2020-04#t481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