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세상이 된 의료계
프랑스는 회의와 실의 속에서 2차 코로나 바이러스 물결을 맞았다. 정부의 태만은 권위주의로 깊어졌고, 공권력에 대한 불신을 낳았다. 이 심각한 위기상황은 우리 삶의 모든 측면과 맞닿아 있지만, 벗어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의학계마저도 이제 정치, 언론, 그리고 특히 재계에서 행사하는 영향력에 굴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저는 전 국민 마스크 착용을 권하지 않겠습니다. 정부 또한 결코 권한 적이 없습니다. 전 국민에 마스크 착용을 권장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무사안일주의자’나 ‘음모론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2020년 4월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프랑스에서 이미 1만 7,000명의 사상자를 낸 후였다.(1)
하지만 마크롱이 처음으로 입장을 표명한 3월 12일에도 과학위원회는 “국민이 사용할 손 소독제와 마스크 등 물자를 확보하는 동시에” 봉쇄조치 강화를 권장했다. 또한, “정부가 제안한 일련의 조치에 정치적 계산이 없어 보여야 신빙성을 얻는다”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제는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한다.
마스크나 진단검사, 확진자 역학조사 같은 정부의 약속이 이어졌지만 현실은 달랐다. 따라서, 장 카스텍스 총리가 7월 취임할 당시 정한 우선순위도, “신뢰를 다시 쌓아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불신이 퍼지고 퍼진 끝에 공중보건 분야의 전문성까지 도마 위에 오른 만큼 힘든 여정이 예견됐다.(2)
고등보건당국(HAS) 국장 도미니크 르귈뤼덱은 “1차 코로나 바이러스 위기 때와 비교하면, 시민들은 이제 정부의 권장사항에 잘 동조하지 않습니다”라며 “우리는 항상 발언에 극도로 신중을 기하고 윤리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정당성이 생깁니다”라고 강조했다. 프랑스 감염병 병리학회(SPILF) 회장 피에르 타트뱅은 “신뢰 저하는 아주 심각한 질병과 같습니다.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계속 퍼져나갈 것입니다”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생앙투안 병원의 감염병동 책임자로 언론에도 자주 얼굴을 비치는 카린 라콩브는 방어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이는 불안할 때 나오는 반응의 일종입니다. 국민들은 두려운 겁니다. 바이러스나 전염병에 욕을 할 순 없으니, 그에 대해 설명하려는 이들이 표적이 된 겁니다.”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코로나19 사태는 오히려 과학을 보는 프랑스인의 시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지난 6월, 질문에 응답한 사람들 중 69%가 “과학을 신뢰하는 편이다”, 24%는 “과학을 전적으로 신뢰한다”고 답했다. 이는 작년에 비해 더 높은 수치다.(3) 반면, 응답자의 2/3는 연구원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을 예견할 능력이 없었다”, 53%가 “명확하지 않았다”라는 의견이었다. 정부정책이 갈팡질팡할 때 과학자들이 갑자기 등장해 생긴 일시적인 불신일까? 의심할 법하다. 정부가 실패하면 사익을 추구하는 이들이 그 틈을 파고 들어오고, 독점이나 비동맹적인 상황이 생기는 법이기 때문이다. 의학계도 예외는 아니다.
“국민을 안심시키는 것은 과학자의 임무가 아니다”
타트뱅은 이렇게 말한다. “일일 사망자수 집계와 더불어 유일하게 시사성있는 주제인 만큼, 대중도 위기대처반에 참여하도록 권하게 됐습니다. 사람들은 전문가도 착각할 수 있음을 바로 깨달았습니다.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스스로 알아서 판단하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비샤 병원의 감염병동 책임자이자 과학위원회 일원인 야즈단 야즈단파나는 지난 1월 전염병 발생을 부정한 이들 중 한 명이다. 그는 자신의 오판을 인정한다. “국민을 아이 취급해서는 안됩니다. 위험에서 배제하지 말고 현실에 참여시켜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메세지를 전달해야 합니다. 우리는 더 신중했어야 했습니다. 저는 진심이었습니다. 감추려 한 게 아닙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속하는 바이러스군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내린 판단이었습니다. 이후 코로나 바이러스가 증상 없이도, 혹은 증상을 보이기 며칠 전부터 전염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르귈뤼덱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불확실성이란 불안감을 낳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건 현실입니다. 제가 우려하는 점은, 확신에 찬 태도를 보여주거나 불확실성을 무시해버린다고 신뢰가 생기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국민을 안심시켜주는 건 과학자의 역할이 아닙니다.” 공중보건 고등위원회 회장 프랭크 쇼뱅도 의견을 같이한다. “우리는 전문가들에게 상황을 확실히 밝혀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특히나 의학은 부분적으로 증명된 것들을 모아 하나의 명백한 사실로 집대성하는 학문입니다.”
3월 말부터 마르세유의 교수 디디에 라울은 하이드록시클로로퀸과 아지트로마이신을 사용한 치료법을 지지한다고 발표했고,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쇼뱅은 이렇게 답변했다. “과학이 논란 속에서 탄생한다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과학적 논란을 생방송 TV쇼로, 학자들을 검투사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디디에 라울 교수에 대한 윤리규정 논란
미 대통령과 브라질 대통령이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지지하면서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은 여전히 빈약했음에도, 모두가 어느 한 편을 들라고 채근당했다. 르귈뤼덱은 당시를 기억한다. “1년 내내 의약품을 평가하는 저희는 이 문제에 입을 굳게 닫았습니다. 관련 데이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혼란을 가중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감염병 병리학회는 “라울 교수가 의사 윤리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라며 500여 명의 감염병 전문의를 모아 의료위원회에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의사의 덕목인 신중함이 없이, 아직 충분히 검증되기 전인 새로운 진단법이나 치료법을 공표해서는 안 된다. 의사는 비의료인 대중을 상대로 이 같은 누설을 해서는 안 된다.”(4)
논란은 대중의 신뢰를 뒤흔들었고, 소셜미디어와 TV쇼는 문제를 키우는 데 일조했다. 거기에 치료기관과 연구기관의 균열이 일조했다. 마르세유 대학병원 의료진은 대규모 검사를 시행했다. 다른 곳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증상이 심각한 경우에만 연락하라는 지침을 받은 환자 대부분이 홀로 고통스러워할 때, 의료진은 기대에 부응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의학저널들은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깎아내리기에 급급했다.
그 중 <더 란셋(The Lancet)>은 기사에 사용한 정보 출처의 진실성을 왜곡한 사실을 인정해야 했고, 결국 치료법이 위험하다고 쓴 기사를 철회했다.(5) 하지만 이미 코로나 바이러스 치료법을 찾고 있던 범유럽 임상시험 디스커버리(Discovery)는 이 치료법에 대한 프랑스 임상시험을 중단했다. 라콩브는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지닌 장점과 위험성 간의 관계에 경종을 울리고자 했다.
그러나 제약업계와 얽힌 이해관계들이 그에게 부메랑처럼 되돌아왔다. 특히 또 다른 잠재적 치료제 렘데비시르를 만드는 길리어드와의 관계가 그랬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대규모 임상시험 결과 렘데비시르는 치료제로선 역부족이었다.(6) 라콩브가 변론했다. “이해관계의 충돌이라는 고발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에이즈와 바이러스성 간염에 관한 것이지, 코로나 바이러스와는 무관합니다. 이는 의도된 조작입니다. 목소리를 내려는 여성 전문가에 대한 인신공격입니다.”
라콩브의 수난은 제약업계가 의료연구와 의사연수에 미치는 영향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제약업계의 이익추구가 미치는 영향력은 가벼운 문제가 아님에도, 진상이 덮이는 경우가 많다. 그 증거로 과학위원회와 연구평가 분석위원회의 무분별한 구성을 보자. 위원회의 구성원들은 ‘보답성’, 혹은 기타 계약서의 형태로 사례금을 받는데, 이는 뒤늦게 신고되기도 한다.
의료저널 <프레스크리르(Prescrire)>의 편집장 브뤼노 투생이 지적했다. “이는 불행히도 현상황을 폭로해주는 사건입니다. 과거에 있었던 모든 스캔들과 재난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상황은 그대로입니다. 수많은 전문가가 제약회사와 이해관계로 얽혀있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려 하면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1981년 창간된 <프레스크리르>는 광고나 지원금 없이 운영되며, 기사는 엄격한 재검토 절차를 걸쳐 출판된다. 정기적으로 의약품을 평가하고 매년 멀리해야 할 의약품 목록을 발표한다. 거대한 의약 스캔들을 초래한 당뇨병 치료제 메디에이터(Mediator)의 위험성을 조기에 경고하기도 했다. 치명적인 부작용을 유발하는 의약품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일은 이해관계의 충돌과 직결된다.
투생은 말한다. “우리에게 메디에이터는 하나의 신호에 불과합니다. 지난 수십 년간 관찰한 결과, 약품이 유명해지기 시작하면 그 효능이 전반적으로 과대평가되고, 위험성은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약업계가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과 보건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편향된 임상시험과 성급한 선전의 원인은 제약회사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독점권은 없습니다! 역사에 수많은 선례가 있었고, 2020년 봄 실제로 겪었습니다. 전문가 개인, 혹은 집단은 신념을 가질 수 있고, 그 신념에 맞게 반대로 데이터를 끼워 맞추려 할 수도 있습니다.”
4월 초부터 <프레스크리르>는 신중을 기할 것을 권했다. “마르세유에서 관찰된 결과는 특정 치료법을 인정하거나 배제하지 않습니다.” 그 후 7월 말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효과와 위험성 중, 점점 위험성으로 기운 듯하다.”
보건의료인과 제약회사의 미묘한 관계
초대형 다국적 제약회사가 세간에 갖는 이미지는 참담하다. 이는 ‘약품에 대한 여론관측소’를 재정적으로 지원할 만큼 걱정거리다. 관측소의 최근 조사결과는 의미심장하다. 물론, 응답한 사람의 소수(16%)만이 제약회사의 약품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 비율은 8년 만에 2배로 뛰었고, 2/3가 “약품에 대한 정보에 관해서는” 이들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7) 광고홍보나 의학계 인사들을 포섭하는 비용에 인색한 편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연구, 간호인력 연수, 규정에 맞는 전문성, 의사들의 관행과 대중이 얻는 정보까지, 보건의료계는 제약업계의 이해관계와 체계적으로 맞닿아 있습니다. 이 이해관계가 모여 치료에 영향을 미치고, 영향력은 공중보건과 기업의 재무구조 균형에 있어서 큰 위험입니다. 환자들은 기회를 박탈당합니다.”(8) 의료정보·연수 독립을 위한 조합(FORMINDEP)은 현 사태의 교훈을 끌어내며 이 문제, 그리고 문제의 정치적 측면을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이 단체는 제약업계가 눈에 보이게, 혹은 보이지 않게 행사하는 영향력을 우려하는 보건의료인과 시민들로 구성됐다. “수업을 시작하면서 자신들이 얽혀있는 이해관계에 대해 공표하는 교수는 아직 매우 적습니다. 이 주제를 언급하거나 주도하는 경우는 극소수입니다.” 조합 회장 폴 쉬퍼가 상황을 개탄한다. 의대생 단체인 웃음군단(la Troupe du rire)이 제약업계의 영향력 행사방식을 설명한 책자 제작에 협조함으로써, 제약업계를 견제하고자 했다.(9) 또한 프랑스 대학병원들의 “드물고 소극적인 노력”을 조명하려 각 병원을 이해관계 충돌 예방정책에 따라 평가했다.(10) 내년 1월에는 자립도에 따라 의대에 매긴 등급을 세 번째로 발표할 것이다. 지난 번 평가에선 2017년 치의대 학장 회의에서 채택된 직업윤리 헌장의 적용 정도를 측정했는데, 단 한 곳(투르) 만이 평균점을 얻었다.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약속은 대개 지켜지지 않는다. 때문에, 의료정보·연수 독립을 위한 조합(FORMINDEP)은 이런 약속을 준수하도록 법정대응을 하기도 한다. 일례로, 2011년 최고 행정 재판소는 고등보건당국(HAS)에 당뇨병 치료제 추천 중단을 명령했다. ‘독립’ 기관인 고등보건당국은 “의무사항임에도 이해관계 신고서 전체를 첨부하지 않았다.”(11) 당국 소속의 여러 명이 당뇨병 치료제를 공급하려 개입한 제약회사와 연관돼 있었으므로, 명백한 이해관계가 드러났다.
당국의 독립성과 권위를 증명해 보이기란 현 국장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르귈뤼덱 국장의 주된 임무는 환자가 환급받기 전에 유럽 의약청이 허가한 약품으로 ‘제공된 의료서비스’를 평가하는 일이다.(12) 2017년 르귈뤼덱이 정부에 합류했을 당시 아녜스 뷔쟁 전임 국장은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기도 했다. 뷔쟁의 전임자 장뤽 아루소는 대중운동연합(UMP) 소속으로 루아르 지역 지방의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는데, 그는 2019년 제약회사재단의 회장이 됐다. 르귈뤼덱이 설명했다.
“보건의료인들은 제약회사와의 이해관계를 신고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변화에도, 변화가 문화로 자리잡는 데도 시간이 걸립니다.”
여전히 불완전한 투명성
1993년 공표된 ‘선물’금지법은 2011년 메디에이터 사건 이후로 강화됐다. 계약서와 돈으로 얽힌 제약회사와 보건의료인 간의 관계는 단 하나의 공공 사이트에서 관리, 공개돼야 한다. 사이트 <트랑스파랑스 상떼(Transparence santé)>(13)가 첫 신호탄을 쏘아 올리기까지 몇 년이 걸렸지만, 가독성이 좋지 않았다. 한 자원봉사 단체 덕분에 사이트 <유로스포독스(EurosForDocs)>가 빛을 보게 됐고,(14) 2012년부터 이권과 협정, 보수에 대해 파악할 수 있게 됐다. 1,400만 건에 달하는 세세한 신고의 액수를 합치면 60억 유로가 넘는다.
기자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일례로 2020년 1월, 10여 개의 지역 일간신문이 단체로 주요 대학병원의 이해관계를 밝히는 글을 게재했다. 클레르몽페랑에서 한 교수가 소속대학 몰래 “12만 유로를 보수로 받았다”고 <라 몽타뉴(La Montagne)>지가 밝혔다.(15) 해당 교수는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의료정보·연수 독립을 위한 조합(FORMINDEP)은 관련 규정을 적용하라고 행정기관을 끈질기게 압박한다.
그러나 투명성은 여전히 불완전하다. 3백만여 개의 계약서가 금액이 밝혀지지 않은 채 등록돼 있다. 또한 감사원은 이렇게 기록한다. “의사와 제약업계 협정에 대한 조사는 2018년까지도 전혀 효과가 없었다(…). 국가위원회에 소환된 의사는 아무도 없었고, 협정이 규정에서 벗어난 경우 규정위반에 대한 후속 징계도 정해지지 않았다.”(16)
“늦어도 2018년 7월 1일에는” 시행하려 했던 선물금지법에 대한 새로운 조처는 2020년 10월 1일부터 시행된다. 금지사항을 강화하고 ‘선물’의 기준을 낮췄다(식사 한 끼에 30유로, 구독료 150유로 등) 또한 의사회가 협정에 대한 허가를 내리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부여했다. 그러나 이런 조처들은 ‘처벌의 부재’라는 장벽에 부딪힌다. “이해관계 충돌이 형사상의 범법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법적인 접근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시민단체 안티코(Anticor)의 법률 전문가 파라 자위가 설명한다. “이해관계 충돌에서 법의 적용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일례로, 의사가 제조사의 로비에 따라 처방한다고 증명해낸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 어려운 일을, 부정부패와 싸우는 시민단체 안티코가 해냈다. 2018년 고등보건당국의 추천의약품을 작성한 전문가를 상대로 ‘불법적인 이익을 취했다’라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 추천은 심장혈관질환의 위험을 예방해 준다는 명목으로 60세 이상의 프랑스인 절반이 특정 약품을 사용하도록 이끌었다. 이들이 공개한 자신들의 이해관계는 불완전했다. 의료정보·연수 독립을 위한 조합이 최고 행정 재판소에 고등보건당국을 기소했지만, 예심판사가 2019년 11월에 맡은 예심은 아직도 기소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우리는 아직 투명성을 위한 모든 수단을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그 사건 이후 우리는 해당 시기에 근무했던 모든 사람들의 이해관계 신고서를 재검토했습니다.”
제약회사와 의사의 불투명한 이해관계
학계에서 이해관계는 허가된 것과 금지된 것으로 확연히 구분된다. 이 구분법은 과학위원회 내부규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해관계 충돌은 임무 수행 중 전문가의 이해관계가 강하든 약하든 전문가의 객관성이나 독립성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유명 의학저널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의 전 편집장 마르시아 앤젤은 2009년에 이런 논리를 맹렬히 비난했다. “이들은 돈은 지키고, 부정부패의 흔적은 지우려는 듯하다. 제약업계에 대한 의료계의 의존성을 끊으려면 위원회 지명으로는 부족하다. 어마어마한 이득을 가져다주는 행위를 완전히 중단해야 하는 것이다.”(17)
제약업계는 의사들 사이에 존재하는 금전적 라이벌 관계를 이용한다. 먼저 여론을 주도하는 공직에 있는 전문의와 대학병원 교수들을 겨냥한다. 외부활동을 따로 하지 않는 대학병원 교수는 월급은 세후 약 6,400유로에서 시작해 세후 1만 500유로에서 경력을 마무리한다. 다양한 보너스와 당직 수당은 제외한 금액이다.(18) 개인 병원에서 일하거나, 같은 병원일지라도 자유업 신분인 동료들은 훨씬 더 많은 돈을 번다.
브뤼노 투생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전문가로서 활동할 때, 이해관계는 화근이 됩니다. 제약회사와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은 이미 관련 분야의 모든 측면에서 영향을 받습니다.” ‘영향력’은 부정부패보다 만연해 있다. 여러 연구결과에 의하면, 프랑스에서 기업의 선물을 받는 일반의는 잘 알지도 못하는, 의료보험 환급 비중이 적은 비싼 약을 처방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19)
독립성 보장은 아직 요원한 상황에서, 투명성을 위한 첫걸음을 내딛고 있다. 정치 자금에 대해 말하자면, 초반에 의회는 의무 공개를 조건으로 기업이 선거 캠페인에 자금을 대는 것을 허가했다. 하지만 1993년 캠페인 당시 하수처리 업체나 건설회사가 특정 정치인에게 막대한 후원금을 댄 것이 밝혀지자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입법부는 결국 기업 지원금을 금지하고 공공자금을 조성했다.
지금도 국민들은 의사나 전문가의 정직함을, 정치인의 정직함보다 덜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이제 바뀔 것이다.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임상의가 많아졌고, 바뀌는 중입니다.” 쇼뱅이 단언한다. 야즈단파나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2017년 국립보건의료연구기관(INSERM)에서 맡게 된 제 책무를 고려했을 때, 그만두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습니다. 제 생각은 확고합니다. 이제 한결 편안합니다.”
임상시험 결과 절반은 보고되지도 않아
선물공세나 일반의의 비위를 맞추려 찾아오는 제약회사 영업사원의 방문을 떠나서, 제약업계는 약품이 의료연구분야에 필요불가결하다는 점을 내세워 막대한 수익을 올린다. “제약회사는 종종 과학적 방법을 자신들의 목적에 맞춰 이용한다”라고 하버드 의대 교수 존 애브람슨이 강조한다. “제약회사 연구실에서 회사에 유리하게 만든 정보를 의사에게 전달합니다. 문제는 의사들이 이 같은 계략을 간파할 만한 대비가 돼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증거에 기반한 의학은 환자의 건강보다 오히려 제약회사가 행사하는 영향력에 휘둘리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20)
제약업계는 특히 발표의 편향을 이용한다. 연구결과가 좋지 않다면 서랍에 처박는다. 2013년 탄생한 국제단체는 “임상시험 결과의 약 절반은 전혀 보고되지 않으며”, 이는 주로 부정적인 결과란 사실을 확인했다. 이 단체는 모든 결과를 발표할 것을 요구하며 투쟁 중이다.(21)
투생은 좋은 수단도 잘못 이용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의학이 증거에 기반한다는 점은 치료의 효과를 연구할 때 여전히 중요합니다. 반면에 부작용을 연구해야 하는 경우, 신중함이 우선시돼야 합니다. 메디에이터가 아주 위험한 약품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50번이나 시험해볼 필요는 없었습니다. 부작용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견할 수 있을 만큼 화학, 약리학 데이터는 충분했습니다. 처음부터 충분히 피해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혁신?
어떻게 기업이 이 같은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됐을까? 쇼뱅은 이렇게 설명한다. “당신이 전염병 전문가이고 임상연구를 하려고 한다면, 제약업계와 같이 일하는 것 외의 선택지는 없습니다. 아니면 개발 중인 성분이나 백신을 얻을 수 없습니다.” 타트뱅은 “다행히도 공공과 민간 협력 체계가 구축돼 있습니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숨기지 않는다. “만약 한쪽에 제약업계, 다른 한쪽에 병원이 따로따로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진전은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에이즈 바이러스가 그랬습니다.” 카린 라콩브는 한층 더 단호한 태도를 보인다. “제대로 현실을 마주봐야 합니다. 제약업계 없이는 학문의 혁신도 없습니다. 그 때문에 모든 것을 법으로 감독하는 겁니다.”
투생은 다음을 확실히 해둔다. “물론 규정이 있습니다. 공권력은 이렇게 말하죠. ‘귀사의 약품이 충분히 효과적이고 너무 위험하지 않다고 증명되면 판매 허가를 내드리겠습니다. 연구하시면 서류를 검토해 보겠습니다. 약품 가격 덕분에 투자한 만큼 수익이 날 겁니다.’ 단기적으로, 이는 공공단체에 큰 비용이 드는 일은 아닙니다. 큰 대가는 일을 그르치고 난 후에 찾아옵니다. 약품은 제약회사가 관심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그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만들어집니다. 물론 회사는 관계당국 앞에서 투명성을 유지해야 하지만, 데이터는 손에 쥐고 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르면, 규제하는 쪽이 규제받는 쪽보다 훨씬 약해집니다.”
쉬퍼는 분석한다. “혁신이란 여론과 의사결정자의 지지를 부르는 강력한 키워드입니다. 고등보건당국의 투명성 위원회와 <프레스크리르>가 내놓은 수치에 의하면, 이미 시중에 나와있는 약품보다 더 나은 신약은 극소수입니다. 지금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것은 ‘혁신의 중단’입니다.” <프레스크리르>가 2007~2019년 연구한 1,292개의 신약들 중 주목할 만한 것은 7.7%에 그쳤으며, 17%가 미미한 진보를 이뤘다. 59.1%는 입증된 것이 전혀 없었으며, 16.3%는 유용성보다 위험성이 더 컸다.
제약업계에서는 연구개발보다 제품의 상용화에 훨씬 많은 돈을 쓴다. 현존하는 성분에 관한 비교연구나 아이, 노인, 임산부 등 제한된 인구집단에 관한 연구에는 흥미가 없다. 그럼에도 국가가 주는 혜택을 받아 연구세액공제 액수로 2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22) 이 기금은 분명히 공공연구소에 할당돼 의료지식의 생산과 배포를 둘러싼 기업의 지배력을 줄이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탈리아에서는 2005년 보건의료인을 겨냥한 제약회사의 선전비용에 5%의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첫 물꼬를 텄다. 국가 기금으로 모인 돈은 이탈리아 의약청이 직접 진행하는 임상연구에 쓰였다. 이탈리아 의약청은 이제 제출된 연구자료를 읽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연구원들은 데이터와 연구를 완전히 감독했고, 전부 발표해야 했다.
약품만이 아니라, 의료서비스, 의료장치, 의료기기나 보건 데이터는 탐욕과 부정부패를 부른다. 새로운 성분이나 코로나19에 맞선 백신이 나오려면 경각심이 필요하다. 업계의 이윤과 질병에 대한 불안은 동일선상에 있다. 결과가 가져올 현상은 훨씬 중대하다. 금전적 이득과 영향력의 작용으로 관심은 치료제와 병원모델에 집중되고 있다. 이런 위기사태는 먼저 공중보건, 예방, 위험성 억제와 1차 치료가 실패했다는 증거다. 이는 ‘검사, 추적, 격리’ 체제의 붕괴를 상징한다.
글·필리프 데캉 Philippe Descamp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정나영
번역위원
(1) ‘Emmanuel Macron : Ce moment ébranle beaucoup de choses en moi 에마뉘엘 마크롱 : 심란한 지금 이 순간’ , <Le Point>, Paris, 2020.4.15.
(2) Renaud Lambert, ‘Plombiers en blouse blanche 흰 셔츠의 배관공’,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0년 7월호.
(3) 표본그룹 1,032명을 대상으로 2020년 6월 15~16일 진행된 Philip Morris France를 위한 Harris interactive 온라인 조사.
(4) Article 14 du code de déontologie, article R. 4127-14 du code de la santé publique 직업윤리 규정 제14항, 공중보건법 R. 4127-14항
(5) Mandeep R. Mehra, Frank Ruschitzka et Amit N. Patel, ‘Retraction – Hydroxychloroquine or chloroquine with or without a macrolide for treatment of COVID-19 : a multinational registry analysis’, <The Lancet>, London, 2020.6.5.
(6) ‘Repurposed antiviral drugs for COVID-19 ; interim WHO Solidarity trial results’, <MedRxiv>, 2020년 10월 15일, www.medrxiv.org
(7) 표본그룹 1,029명을 대상으로 2019년 11월 26~29일 진행된 제약회사에 대한 Ipsos조사.
(8) ‘Quelques leçons de la crise 위기상황에서의 몇 가지 교훈’, <Formindep>, 2020.7.3. https://formindep.fr
(9) ‘Pourquoi garder son indépendance face aux laboratoires pharmaceutiques? 제약회사 연구소에 맞서 독립성을 지켜야 하는 이유’, <La Troupe du rire>, 2014. WHO와 Health Action International의 지침서 ‘제약회사 선전에 대한 이해와 답변하기’에서 착상을 얻음, 2013.
(10) ‘Classement 2018 des facultés française en matière d’indépendance 2018년 프랑스 대학 독립성에 대한 등급별 분류’, https://formindep.fr
(11) Arrêt du Conseil d’État 최고 행정 재판소 판결 no 334396, 2011.4.27.
(12) 우리 사이트에 게재된 공공기관의 임무에 관한 온라인 보충자료: ‘Un empilement d’institutions 산더미 같은 기관들’.
(13) www.transparence.sante.gouv.fr
(14) www.eurosfordocs.fr
(15) ‘Transparence CHU : notre enquête sur les liens entre médecins et groupes pharmaceutiques à Clermont-Ferrand 대학병원의 투명성 : 클레르몽페랑 의사와 제약회사의 관계 조사’, <La Montagne>, Clermont-Ferrand, 2020.1.10.
(16) ‘L’ordre des médecins’, <Cour des comptes>, Paris, 2019년 12월.
(17) Marcia Angell, Drug companies and doctors : A story of corruption’, <The New York Review of Books>, 2009년 1월 15일.
(18) 현장 의사와 대학교수의 신분, 세귀르(보건복지부와 보건의료인 자문단 회의)의 마지막 항목 참조.
(19) Bruno Goupil et al., ‘Association between gifts from pharmaceutical companies to French general practitioners and their drug prescribing patterns in 2016’, <British Medical Journal>, vol. 367, n° 8221, 런던-베이징-델리-뉴욕, 2019.11.6.
(20) <Big Pharma, labos tout puissants 빅 파르마, 전능한 연구소들>, 다큐멘터리, Luc Hermann & Claire Lasko, Arte, 2020.
(21) www.alltrials.net
(22) ‘L’évolution et les conditions de maîtrise du crédit d’impôt en faveur de la recherche 연구지원을 위한 세액공제 조건과 변화’, <Cour des comptes>, 2013.7.
전염병 비즈니스
제약업계에 드리워진 의심은 지난 20여 년간 발생한 수많은 약리학적 재난을 거치면서 점점 커졌다.(아래 목록은 그 일부에 불과하다.)
데파킨(Dépakine). 1967년에 출시된 간질 치료제로, 그 성분인 발프로산이 발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임신기간 중 복용할 시 배아의 기형을 유발하는 부작용이 있다고 1980년 말부터 알려졌음에도 약물 부작용에 대한 감시가 부족했다. 2004년에 와서야 위험성이 인정됐으나, 의사와 환자들에게 실제 발표가 된 것은 2010년에 이르러서였다. 2010년 2월, 데파킨의 제조사 사노피는 ‘위중한 사기행위’와 ‘비자발적인 상해’죄로 입건됐다.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해줘야 했다.
메디에이터(Mediator). 그 성분인 벤플로렉스는 1978년부터 당뇨병 치료제로써 공식 판매됐으나 곧 효과가 없고 독하며 매우 비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약품은 식욕억제제로 방향을 틀어서 팔렸고, 수많은 심장판막증을 유발했지만 2009년까지 여전히 시장에 유통됐다. 제조사 세르비에는 의사와 의료계에 매우 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 당시 법정에 출두한 경영진 중에는 고등보건당국 출신 한 명, 프랑스 보건용품안전청(AFSSAP, ANSM의 전신) 간부 여러 명, 국립보건의료연구기관(INSERM) 전 관장과 상원의원 한 명이 포함돼 있었다. 판결은 2021년으로 잡혀있다.
팍실(Paxil). 2001년 329연구는 파록세틴(paroxétine 제조사에 따라 팍실, 세로자트, 디바리우스 등의 상품명이 있었다.) 성분이 효과가 있고 무해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팍실은 GSK가 판매한 아이와 청소년용 항우울제였다. 2015년 <브리티쉬 메디컬 저널(British Medical Journal)>은 임상시험 데이터를 참고해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고, 특히 자살 위험성을 근거로 들었다. 329연구에 사인한 22명 중 실제로 연구에 참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GSK에 고용된 ‘유령 작가’가 보고서를 작성했다.
비옥스(Vioxx). 기록적인 광고비를 지출하면서 시장에 출시한지 5년 후인 2004년, 제조사 머크는 비스테로이드 항염증제 로페콕시브(rofécoxib, 상품명 비옥스)의 판매를 중단했다. 미국 식약청(FDA)은 머크에게 심장마비로 사망한 수만 명에 대한 책임을 돌렸다. 머크에 고용된 사건의 장본인들은 위약 그룹과의 비교실험에서 높은 사망률을 보였음에도 약품의 부작용이 ‘허용치 내에 있다’고 간주했다.
타미플루(Tamiflu). 2009년에 유행한 인플루엔자의 백신 캠페인은 실패로 끝났다. 인플루엔자의 위험성은 과대평가된 듯했다. 각국의 정부는 백신과 로슈에서 출시된 항바이러스성 오셀타미비르(oséltamivir, 상품명 타미플루)의 재고를 확보했다. <브리티쉬 메디컬 저널>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항바이러스제 사용을 권했던 세계보건기구 소속 몇몇 인물들이 제조사와 은밀한 계약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처음부터 효과에 대한 증거가 부족했음에도, 세계보건기구는 2017년에 와서야 오셀타미비르를 필수 의약품 목록에서 제외했다.
오피오이드(Opioïdes). 2015년부터 미국에선 수명 감소의 일부분을 강한 의존성을 유발하는 마약성 진통제 옥시코돈(옥시콘틴, 옥시놈 등으로 불림)의 탓으로 돌린다. 펜타닐과 오피오이드의 과다복용으로 몇십만 명이 사망했다. 퍼듀 파마 영업사원의 공격적인 판매전략으로 오피오이드는 대량으로 소비됐다. 퍼듀 파마는 미국 식약청이 그랬던 것처럼 약품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했고, 암 환자에게만 처방하지 말고 더 폭넓게 처방하라고 의사들을 압박했다. 존슨앤존슨 같은 다른 제약회사도 몇십억 달러에 육박하는 손해배상 청구를 면치 못하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