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는 인류에게 사랑을 일깨웠다!

뭇 생명들과 영원한 사랑을 추구해야할 존재

2020-11-30     김기석 | 성공회대 총장

이제 2020년도 저물고 있다. 어떤 이는 인류사를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눠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치면 2020년은 ‘코로나 1년’이다. 돌이켜보면 딱 1년 전이다.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호흡기 질환으로 인한 심각한 고통을 호소하며 병원으로 몰려들었다. 날이 갈수록 질병은 확산되고 사망자가 속출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를 ‘코로나바이러스 질병 2019(COVID-19)’로 명명했다. 

 

코로나 1년을 맞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6,000만 명이 감염됐고 14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팬데믹의 공포를 다룬 영화 <컨테이젼>(2011)과 거의 비슷한 상황이 현실이 돼 우리 앞에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는 경제, 문화, 교육, 여행, 레저 및 엔터테인먼트 등 모든 분야에 심대한 피해를 가하고 있다. 나아가 감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봉쇄나 이동 제한조치로 인해 우울증이 심해져 자살자가 증가하고 있다. 전 인류가 코로나19로 인해 건강 및 경제, 정신적 피해를 입고 고통을 겪고 있는 중이다.

코로나19는 인류에게 엄청난 고통과 함께, 새로운 깨달음도 줬다. 연초에 우리는 갑자기 공기가 좋아졌음을 실감했다. 공장이 가동을 멈추자 생긴 일이었다. 깨끗하고 투명한 대기를 보며, 어린 시절 본 맑은 하늘이 떠올랐다. 베니스에서는 바닷물이 깨끗해지고 물고기들이 되돌아왔다는 보도가 전해졌다. 사람들이 이동을 멈추자 자연이 우리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사람들은 그동안 살아온 방식이 얼마나 자연의 질서, 즉 생태계를 파괴했는지 새삼 실감했다. 또한 저녁시간을 가족과 함께 하며,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렸구나’하고 느꼈다. 이는 모두 코로나가 선사한, 예상하지 못했던 선물이다.

 

고통과 함께 찾아온 깨달음

사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알려진 것은 거의 1백 년 전이다. 외피 돌기가 왕관 모양을 띠고 있어 ‘코로나’라는 명칭을 얻은 이 바이러스는 1930년대부터 전염병에 걸린 동물들에게서 발견됐다. 그런데 동물들만 공격하던 이 바이러스가 돌연 인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2003년에 중국에서 발생한 사스와 2015년에 중동에서 유행한 메르스가 바로 코로나 바이러스 변종에 의한 것이었다. 

거의 매년 발생하는 조류독감과 돼지열병, 구제역도 언젠가는 인수(人獸)공통 감염병으로 돌변해 인간을 공격할 수 있다고 한다. 어떻게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수공통 전염병이 됐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간에 의한 생태계 파괴와 연관이 깊다는 점이다. 인간이 열대우림을 파괴해 아프리카 밀림 속 영장류에게만 국한됐던 에볼라 바이러스를 인류에게 옮겨왔듯, 코로나19도 인간의 박쥐 서식지 파괴와 무분별한 육식에 의해 확산됐다. 결국, 코로나19는 인간에게 생태계의 위기상황을 시급히 점검하라고 경고한다.

인간으로 인한 동물 대량멸종의 역사를 상세히 기록한 프란츠 브로스위머는 일상적인 생태계 파괴의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오늘도 무려 100종에 달하는 동식물이 멸종했고, 열대우림 5만 헥타르가 사라졌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사막이 2만 헥타르나 넓어졌으며, 오늘 세계경제는 2,200만 톤의 석유를 소비했습니다. 우리는 24시간 동안 온실가스 1억 톤을 대기 중으로 방출할 것입니다.”(1)

열대우림은 생태계의 보고라고 불리우는데, 지상으로부터 공중까지 수십 미터에 달하는 숲 속의 층층마다 다양한 생명체가 서식하기 때문이다. 생태계의 보고인 열대우림이 파괴된 지역에는 대개 옥수수밭이 들어선다. 여기서 수확된 옥수수는 전 세계에 사료로 공급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즐기는 식탁 아래 어두운 곳에는 열대우림에서 사라진 동식물들의 영혼이 침묵하고 있다. 지구 생명은 그동안 5번의 대량멸종을 겼었다. 그리고 매일 100종씩 사라지는 현 상황은, 바로 지금 6번째의 대량멸종이 진행 중임을 경고하고 있다. 

 

기후변화, 인류문명의 위기 

이런 생태계 파괴 현상 중에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무엇보다도 기후변화다. 산업혁명 이전 350ppm이었던 대기 중 평균 이산화탄소 농도가 지난 2016년에 400ppm을 돌파했다. 온실가스의 증가에 따라 21세기 내에 지구 평균 기온은 급격히 상승할 것이다. 전문가마다 다소 편차는 있지만 최소 2℃에서 최대 6℃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측하는데 2℃만 올라도 인류 문명에 파국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기후변화는 해수면 상승을 초래해 전 세계의 주요 도시들이 침수되고 수십억 명이 주거지를 잃게 될 것이다. 슈퍼태풍, 홍수, 가뭄, 이상고온 등 극단적인 기상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식량위기가 닥칠 것이다. 또한 툰드라 지대의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온실 효과를 극적으로 증가시키는 메탄가스가 대기 중에 방출돼 온도상승이 가속되고, 수만 년 동안 얼음 속에 갇혔던 신종 박테리아나 바이러스가 출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평균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이하로 유지하고,  나아가 1.5℃ 이하로 제한하고자 함께 노력할 것을 약속한 파리기후협약이 얼마나 절실한 과제인지 알려준다. 기후변화는 정의의 문제를 야기한다. 선진국들은 지금껏 온실가스를 배출하면서 부를 축적했는데, 그로 인한 피해는 개발도상국이 떠안고 있다. 공동체에 기반한 인류 공동번영의 동기가 근본적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볼 때 생태계 파괴 현상은 곧 인류 문명의 위기다. 미국의 바이든 당선자는 트럼프가 탈퇴한 파리기후협약으로 복귀할 것을 공언했다. 그동안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면서 다소 느슨하게 대응했던 한국도 이제 온실가스 절감 정책을 서둘러야 한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은 국제기구, 정부, 지자체, 기업, 학교, 가정 등 모든 단위에서 저탄소 정책을 실천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 모든 노력이 가능해지려면 의식의 전환이 필수적으로 수반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저탄소 사회는 단순히 정책과 제도의 도입, 과학기술의 도움으로만 가능하지 않고 생태계, 즉 자연을 바라보는 인간의 의식의 변화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제 생태적 세계관을 지지하는 몇 가지 주장을 소개하고자 한다.

 

기계론적 세계관, 문명의 위기

제레미 리프킨은 생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세계관의 패러다임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늘날의 위기가 엔트로피 증가의 가속화에 의한 것으로 파악하면서 저(低) 엔트로피의 사회로 전환하지 않으면 인류는 파멸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2) 엔트로피의 증가는 무질서도의 증가를 뜻한다. 그러므로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는 대표적인 엔트로피의 증가에 해당한다. 

리프킨은 이런 위기가 인간과 세계를 주체와 객체를 분리시키고, 인간의 자연에 대한 지배권의 강화가 진보라고 믿는 뉴턴-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기계론적 세계관을 폐기하고 새로운 저 엔트로피적 세계관으로 인식의 패러다임을 전환해 과학, 교육, 종교를 변혁함으로써 새로운 문명을 시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정복자 아닌 수호자로 존재해야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의 유사성 탐구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물리학자 프리초프 카프라 또한, 서구문명의 위기가 뉴턴-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비롯됐으며 새로운 전체론적 세계관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런 패러다임의 전환은 인간과 세계를 이해함에 있어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sm)에 기반해 주체와 객체, 정신과 물질, 영혼과 몸을 근본적으로 분리하는 이원론적 사고로부터 ‘온 우주가 보이지 않는 그물망으로 서로 연결됐다’는 전일론적 세계관(Holistic World-view)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린 화이트는 그리스도교의 창조교리에 깔린 인간중심주의가 생태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3) 그는 창세기 1장 28절의 기록, “자식을 낳고 번성해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해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를 돌아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창세기 1: 28)”라는 구절에 나타나듯 성서가 자연과 동물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정당화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인간의 역할을 자연의 정복자가 아니라, 창조동산을 지키는 수호자로 재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영국 출신의 대기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은 “지구를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 봐야 한다”라는 가이아 가설을 주장했다. 그는 1979년에 출간한 저서 『가이아: 지구 생명을 보는 새로운 관점』에서 지구의 대기와 환경은 하나의 살아 있는 유기체와 같이 생명에 의해 일정한 상태로 조절되는 하나의 유기체적 시스템과 같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가 바라보는 아름다운 하늘, 맑은 바다, 풍성한 대지를 만든 존재는 오래전 출현한 박테리아를 비롯한 무수한 지구생명이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쳤다. 이 가설은 정상과학의 범주에서 인정받기 어렵지만, 지구환경은 지구생명이 오랜 역사를 거쳐 만들어낸 걸작이며 생태계를 파괴하는 존재는 가이아에 의해 축출될 것이라는 함축성을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나사의 과학자 칼 세이건이 『코스모스』에서 지구를 가리켜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고 묘사한 장면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표현은 태양계를 벗어나 항성 간 공간으로 진입 중인 보이저 1호가 토성을 지날 무렵 촬영한 지구의 모습을 두고 한 말이다. 보일 듯 말 듯 하나의 희미한 점으로 찍힌 지구의 사진은, 말없이 광대하고 어두운 우주 속에서 생명을 품고 있는 지구가 얼마나 소중한지 말없이 웅변하고 있다. 

36억 년의 진화의 역사의 꽃봉오리로 탄생한 인간은 생태계의 파괴자가 아닌 수호자로서 존재해야 한다. 인간은 비록 지구의 무수한 종(種)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만, 우주의 탄생과 생명의 역사를 밝혀내고 이해하는 존재이며 모차르트와 미켈란젤로와 윤동주, 그리고 타자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은 성인들과 같은 종족이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지구의 뭇 생명들과 함께 생명현상을 경외하면서, 우주 안에서 다른 지적 생명을 만나려고 노력하면서, 어떻게 물질과 생명과 지능이 우주 안에 출현했는지를 탐구해야 하고, 영원한 사랑을 추구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글·김기석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를 거쳐 2018년부터 동 대학 총장으로 재직 중이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생명윤리위원장(2016~2018)을 지냈다. 영국 버밍엄대학교에서 종교와 과학의 대화에 관한 논문으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저서: 종의 기원 vs.  신의 기원』 (2009) 등이 있다.


(1) 프란츠 브로스위머, 『문명과 대량멸종의 역사』(에코 리브르, 2006), p.16.
(2) 열역학 제 2법칙은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사용이 가능한 것(질서도가 높은 상태)에서 사용이 불가능한 것(질서도가 낮은 상태)으로 변화한다.”라고 규정한다. 제레미 리프킨,『엔트로피』(범우사, 2003), pp.261~268.
(3) Lynn White Jr., “The Historical Roots of our Ecological Crisis,” Science 155 [March 1967], pp.1203-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