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성으로 세계를 변화시켜야”

2020-11-30     슬라보예 지젝 | 철학자

“세계를 바꾸는 게 문제가 아냐. 세계를 지금 있는 그대로 두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한 거야.”

 

비디오 게임 <메탈 기어 솔리드 4: 애국자들의 총>에서 죽어가며, 빅 보스가 뱉어내는 마지막 대사다. 이 말은 그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에 적합하다. 게임과 현실 사이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가뭄과 숲의 화재, 우리의 일상생활을 망쳐버린 팬데믹, 그리고 새롭게 출현하는 빈곤에 직면해 적어도 우리가 세계를 지금 있는 모습대로 두고자 할 경우에만, 우리는 세계를 급진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그곳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눈치채기 어려운 모습으로 세계는 빠르게 변화할 것이다. 현재 우리는 (지구의 보존을 위해)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지구 온난화를 다뤄야 할 모든 대책과 협약들은 이런 무위(無爲)를 숨긴 채 (피상적으로만) 진행된다.  

 

“급진성으로 세계를 보존해야 한다” 

유엔의 생명다양성 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10년 동안 세계는 야생생물의 파괴를 저지하기 위한 어떤 목표도, 이들의 생명에 필수불가결한 어떤 생태 시스템도 충분히 실행하지 않았다. 놀라운 예를 한 가지 들어보자. 미국 서부에서 식물군을 초토화한 화재가 그것이다. 화재 이후 야생식물의 생태 현상을 연구한 마이크 데이비스는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1940년대 말, 3년간 계속된 폭격으로 폐허가 된 베를린 인근의 산지에서 생태학자들은 어떻게 식물들이 다시 싹트는지 연구했다. 학자들은 이 지역의 토종 식물들, 전나무 숲과 키 작은 나무들이 신속하게 재출현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대신, 독일에는 존재하지 않는 외생식물들이 등장했다. ‘자연II’라고 명명된 이 연구의 목적은 이 피폭지역에 식물군의 지속가능한 존속가능성과, 포메라니 숲(독일과 폴란드 북쪽 발트해 연안지역의 숲-역주) 식물들의 재정착 가능성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폭탄 폭발의 화재로 인한 과열로 인해 새로운 유형의 토양이 형성됨에 따라 초기 지질시대에 생존했던 가죽나무 등의 식물들이 군락을 이루며 나타났다. 학자들에 의하면 폭발과 화재로 인해 지질의 변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호주 학자들의 추정에 의하면, 2009년 초 빅토리아주의 ‘검은 토요일’ 화재 이후, 화재에 의해 발생된 에너지는 히로시마에 투하됐던 폭탄 1,500개의 폭발력에 해당했다. 태평양 국가들에서 현재 발생하고 있는 열폭풍(대형화재시에 발생해 지속되는 고유의 바람 체계. 히로시마나 나가사키 원폭 때 발생-역주)은 규모가 훨씬 더 크다. 그 파괴력은 수소폭탄 100개의 폭발력에 비견된다.

끔찍한 재앙이 발생하면, 새로운 자연이 예전에 우리가 성스럽게 여겼던 풍경을 바꾸며 화재의 잔재 위에서 새롭게 출현한다. 우리는 자연을 파괴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파괴된 자연 안에서 새로운 자연을 탄생시키고 있다. 오늘날의 팬데믹 역시 하나의 공포스러운 재앙이자, 새로운 자연의 예가 아닐까? 그렇다고 지구상에서 자연의 존속에 대해, 또는 생명의 자연적 형태들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는 말자. 자연은 우리의 생각을 초월한 형태로 존속할 것이다. 

 

반드시 피해야 할 4가지 길

레닌식으로 질문하는 게 좋겠다. “무엇을 해야 할까?” 뱀파이어가 마늘을 회피하듯 우리가 반드시 회피해야 할 4개의 출구 없는 길이 존재한다.

 

첫 번째, ‘우리가 총체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에 근거해 이 위기들을 하나씩 하나씩 처리해야 한다’라고 생각하지는 말자. 팬데믹과의 전쟁 속에서 ‘우리가 환경 위기를 조금 게을리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거나, ‘팬데믹을 후퇴시키는 것보다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따르는 것도 금물이다.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운동은 경찰 폭력에 대한 저항이지만 또한 사법제도 속의 구조에 대한 저항이다. 오늘날의 팬데믹은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과 우리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와 연관이 깊다. 따라서 트럼프의 보건 담당관이(행정부가 팬데믹에 의한 수십만 명의 죽음에 아무런 책임이 없음을 설명하기 위해) “생물학은 정치로부터 독립돼 있다”라고 선언한 것은, 완전히 잘못된 말이다.

 

두 번째, 우리는 암울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또한 우리가 다중적 차원의 세계적인 위기에 맞서야 하기 때문에 우리의 도덕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결론은 내리지 말자. 지도자들은 새로운 윤리만이 우리를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며, 위기는 윤리적인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을 결코 잊지 않는다. 2008년 금융위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저명인사들(교황 자신이 그 선두에 있었다)은 우리들에게 물질적 탐욕과 소비의 문화에 대항해 투쟁할 것을 공격하듯 촉구했다. 

이런 ‘안이한 도덕화’에서 혐오스러운 장면은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다. 즉, 시스템 자체에 내재하는 이런 강박증이 개인적 죄와 심리성향의 용어로 표현된 것이다. 교황의 측근인 한 신학자의 말을 인용해보자. “오늘날의 위기는 자본주의의 위기가 아니라 도덕의 위기다.”  오늘날도 유사한 목소리들이 소리 높게 들려온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은 새로운 세계적인 윤리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편파적인 것이다.

 

세 번째, 미디어에서 항상 들려오는, “투쟁은 소용없다. 호흡기 감염과 기후 온난화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와 같은, 가짜 지혜를 믿지 말자. 우리는 ‘새로운 자연, 엄청난 재앙 속에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주장에 현혹돼 있다. 이런 지혜는 근거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염병 감염과 기후온난화 등은 우회할 수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자연과 우리들 사이의 상호작용, 그리고 다른 다양한 것들의 상호작용에서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자가격리 기간에 공기가 덜 오염됐다는 사실을 환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네 번째, 우리들이 경험해온 위기를 명확하고, 급진적이며, 다층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피하지 말자. 우리들의 행동은 사유 이후에 오는 것이며, 사유를 따라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적’들도 그들의 방식이긴 하지만, 역시 사유한다. 적들이 의존하는 은유적이고, 위험한 단락회로(court-circuit)들은 다양한 위기들 속에서 그들만의 방식대로 나타난다. 일례로, 폴란드의 보수당은 전국의 1/3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코로나 프리존(코로나 감염자 없는 지역)과 비슷한 동성결혼 프리존”을 선언했다. 폴란드는 같은 방식으로, 팬데믹에 연계시켜 강력한 국가 아이덴티티를 국가안보의 형태로 제시했다. (2020년 보수당이 집권하고 있는 폴란드의 일부 지방이 동성결혼을 불법화하는 법을 제정했으며,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유럽연합은 이 지방에 EU보조금 지급을 거부했다-역주)

 

그렇다면,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세계적인, 단 하나의 행동지침을 기다리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반대로 ‘세부적인’ 투쟁에 참여해야 하고, 여타 투쟁과 그것을 연계해야 한다. 즉 기후온난화와 오염에 반대하는 투쟁을 위해, 우리는 새로운 어산지(호주의 행동주의 저널리스트로 내부 고발사이트인 위키리크스의 전 발행인)가 필요하며, 팬데믹과 전투하기 위해 세계화된 보건 시스템이 필요하고, 인종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에 투쟁하기 위해 경제적 변화가 필요하다. 이 투쟁은 어떤 형식을 취할 것인가?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세계의 논리』에서, 세계적으로 레닌과 자코뱅파를 거쳐 마오쩌둥의 ‘중국적 법가주의(사회주의)’로 발전한 ‘혁명적 결의’ 4가지를 제시했다. 즉, 산을 요동치게 하는 의지(‘객관적인’ 법과 장애물들은 중요하지 않다), 적을 분쇄할 만큼 강렬한 욕망을 담은 테러, 우리에게 점진적인 변화가 아닌 실질적 변화를 가져오는 평등, 그리고 민중에 대한 믿음이 그것이다. 오늘날의 팬데믹은 우리에게 새로운 버전의 4가지 결의를 동시에 부과하는 것은 아닐까?   

 

 

*이 글은 2020년 <팔로소피 매거진(Philosophie Magazine)> 10월호에 실린 것으로 슬라보예 지젝의 동의를 받아 게재한다. 

 

 

글·슬라보예 지젝 Slavoj zizek 
슬로베니아 류블랴냐에서 1949년 출생. 정신분석학과 영화에 열정을 가진 이색적인 철학자로, 전 세계의 비판적인 청년들과 많은 영감을 교류하고 있다. 최근 저서로 『Pour défendre les causes perdues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기 위해』(Flammarion, 2012), 『Violence : Six réflexions transversales 폭력』(Au Diable Vauvert, 2012), 『Lacan et ses partenaires silencieux 라캉과 침묵의 파트너들』(NOUS, 2012), 스렉코 호르바트(Srecko Horvat)와 공동집필한 『Sauvons-nous de nos sauveurs: Crise de l'Europe: malaise dans la civilisation 우리의 구원자들에게서 우리를 구원하자』(Post, 2013) 등이 있다.

번역·정병주
번역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