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는 라틴아메리카 드라마를 어떻게 바꿨나

라틴아메리카에 부는 터키 드라마 열풍

2020-11-30     안도미니크 코레아 | 에콰도르의 저널리스트

‘텔레노벨라’ 왕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 장르를 특징짓는, 고결한 여주인공, 순수한 감정, 급속한 사회적 상승이 뒤섞인 장밋빛 시나리오에 열광한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가 사랑하는 텔레노벨라는 이제 라틴아메리카가 아니라 터키에서 제작된다.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고, 어린 아들도 백혈병으로 잃게 된 한 젊은 여성이 있다. 아들은 골수이식을 하면 살 수 있지만, 그녀는 아들의 수술비를 마련할 수가 없다. 고민 끝에, 그녀는 시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아들과 그녀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았던 시아버지는, 도움은커녕 아들이 죽은 것도 그녀 탓이라고 비난한다. 절망에 빠진 그녀는 자신의 고용주에게 이유는 알리지 않고 대출을 간청하기로 결심한다. 그녀에게 돈이 절실하다는 것을 알고 사장은 한 가지 조건을 내건다. 자신과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 조건을 받아들인다.

이 <어두운 밤>에서부터 90분짜리 90회 러브스토리가 시작된다. 2014년 칠레의 메가(Mega) TV에서 첫 방송된 <천일야화(Las Mil y Una Noche)> 시리즈는 매일 저녁 전 국민의 28%를 TV 앞으로 끌어냈다.(1) 라틴아메리카의 다른 나라들에서처럼, 칠레에서도 로맨틱한 멜로드라마가 인기를 끈다. 그런데 이 시리즈에는 한 가지 특이점이 있다. 이 시리즈의 주인공들은 이 지역의 전통적인 ‘텔레노벨라(Telenovela,연속극)’에서처럼 ‘로사(Rosa)’와 ‘리카르도(Ricardo)’로 불리지 않고 ‘세헤라자데(Scheherazade)’와 ‘오누르(Onur)’로 불린다. 그리고 28회가 지난 다음 나오는 첫 키스 장면의 배경으로 보이는 보스포러스 해협의 해안과 갈라타 타워 전망대의 조명은 이 시리즈가 터키의 대표 도시 이스탄불에서 촬영됐다는 걸 짐작케 한다.

<천일야화>의 성공에 힘입어 수십 편의 터키 연속극이 라틴아메리카의 주요 민영 TV 채널의 화면을 채우며 대중적 성공을 거두고 있다. 2014년에는 가족의 명예회복을 위해 가해자와 결혼해야 하는 양치기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시리즈 <파트마귈의 잘못은 무엇인가? Fatmagül'ün Suçu Ne?>가 페루의 TV 채널 ‘라티나 텔레비시온(Latina Televisión)’에서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2) 콜롬비아에서 어머니를 찾아 헤매는, 버려진 소녀의 모험을 다룬 시리즈 <엘리프 (Elif)>는 2016년부터 현재까지 1,150회 이상 방영 중이다. 외국 드라마로서는 흔치 않은 기록이다.

 

“터키 드라마는 타임머신”

이 연속극들의 인기로 터키는 유행의 정점에 올랐다. 신생아들에게는 터키 드라마 주인공들의 이름을 따 ‘엘리프, 파트마귈, 이브라힘(Ibrahim)’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SNS에서는 배우들의 팬 페이지가 늘기 시작했다. 일부 팬들은 드라마 촬영지를 방문하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 터키로 떠나기도 했다. 2018년 라틴아메리카 여행사들의 터키 관광 성장률은 70%를 기록했다.(3)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도 2018년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후, 귀국 경로를 우회해 좋아하는 터키 드라마 시리즈 <부활: 에르투룰(Diriliş Ertuğrul)>(17세기 오스만 제국의 부흥을 다룬 역사물)의 촬영지를 방문했다. 

 ‘텔레노벨라’의 성지로 알려진 라틴아메리카에서 터키의 드라마 시리즈가 거둔 이런 성공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4) 기예르모 오로스코 고메즈 과달라하라대학교 커뮤니케이션 연구원은 “터키 드라마는 일종의 타임머신 효과를 낸다”라고 주장했다. 터키 드라마는 198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고전적 텔레노벨라의 형식을 취한다. 실제로 터키 드라마 대부분은 겸손한 소녀와 부잣집 남자의 불가능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고메즈는 터키 드라마의 이런 서사구조를 두고, “세계에 대한 매우 보수적이고 정숙한 시각”이라고 분석한다. 그는 또한, 터키 드라마의 주제를 ‘가족, 일, 전통’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터키 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이 속살을 조금이라도 드러내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키스, 애무를 암시하는 장면이 고작이며 그것도 여러 회가 지난 다음에나 나오곤 했다.

현대 터키 드라마와 라틴아메리카의 원형적 텔레노벨라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주인공, 선이 항상 승리한다”라는 점이다. 어린 소녀 엘리프는 양부가 죽은 후 어머니와 재회하고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는다. 세헤라자데는 아들을 구하고 오누르는 그녀를 괴롭힌 것을 뉘우친다. 파트마귈의 가족을 매수한 가해자들은 수감된다. 그리고 대개 행복한 결혼으로 마무리된다.

터키 드라마 열풍으로 라틴아메리카의 드라마 제작사들도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오로스코 고메즈는 “텔레노벨라가 자유로워지고 있다. 특히 많은 텔레노벨라가 섹슈얼리티라는 주제에 개방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2018년부터 넷플릭스에서 방영되고 있는 멕시코 코미디 드라마 시리즈 <꽃들의 집(La Casa de las Flores)>도 섹슈얼리티를 주요 주제로 한다. 이 시리즈는 겉치레에 집착하는 멕시코의 전형적인 부르주아 집안인 ‘데 라 모라(de la Mora)’ 가족의 불행을 다룬다. 첫 시즌의 첫 13회 동안에는 가족의 명예를 떨어뜨릴 수 있는, 숨겨진 비밀이 드러난다. 

시리즈의 초반부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도덕군자 버지니아’라는 별명을 가진 안주인 비르히니아 데 라 모라는 남편이 자신 몰래 내연녀와 트랜스젠더 카바레를 운영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후 아들이 집안의 집사와 밀애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성전환 수술을 받은 사위가 스페인에서 돌아온다. 첫 시즌 내내 비르히니아 데 라 모라는 어떤 상황 속에서라도, 이웃들에게 ‘정상적인’ 가족처럼 보이려고 애쓴다. 

이 시리즈는 낯 뜨거운 장면도 연출하면서 라틴아메리카의 청교도주의를 풍자한다. 32분짜리 첫 회에서부터 성관계, 동성애 장면이 계속 등장한다. 20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도 없었던 일이다. 과거의 조신함을 보여주는 유일한 인물은 비르히니아 역을 맡은 베로니카 카스트로뿐이다. 이 여배우는 1980년대 텔레노벨라의 주요 제작사인 멕시코 채널 텔레비사(Televisa)의 연속극에 주로 출연했던 유명 스타다.

이 여배우가 <꽃들의 집>으로 복귀했다는 것은 텔레노벨라의 시대적 변화를 말해준다. 예전에 신데렐라 역할을 하던 카스트로가 지금은 가족에게 닥친 불행을 잊고자 몰래 마리화나를 피고, 파탄을 피하고자 꽃가게의 꽃다발 속으로 숨어버린다. 베로니카 카스트로는 스페인 신문 <엘파이스(El País)>와의 인터뷰에서, 작은 화면에서 이런 ‘일탈’을 그려내기 위해 “스스로를 내려놓아야” 했다고 털어 놓았다.(5) 이 자유분방한 드라마 시리즈는 주로 젊은 시청자들에게 어필해 ‘천년 텔레노벨라’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이제, 주도권은 대중이 쥐고 있다

오로스코 고메즈에 의하면, 이 같은 텔레노벨라의 현대화는 시청자들의 사고방식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비즈니스 전략의 결과다. 2000년대 주문형(on-demand)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대중과 텔레노벨라의 관계도 변화하고 있다. 오로스코 고메즈는 “이제, 주도권은 대중이 쥐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예전에는 대중이 텔레노벨라의 리듬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넷플릭스의 등장과 함께 대중이 주도권을 잡았다. 이제 대중은 원하는 대로 볼 수 있다. 5회분을 한꺼번에 보거나, 한 주에 1회씩 볼 수도 있다. 장면별로 분리해서 볼 수도 있다.” 이제 오후 8시면 연속극을 보기 위해 온 가족이 TV 앞에 모이는 시대는 지났다. 텔레노벨라의 인기 감소는 이를 증명한다. 1990년대 텔레노벨라가 가장 인기를 끌던 때는 시청률이 40%에 이르렀지만, 이제는 15% 선에서 고군분투 중이다.(6)

따라서 텔레노벨라는 생존을 위해 국제적 확장을 꾀하고 있다. 미국의 스페인어 TV 채널 텔레문도(Telemundo)와도 파트너 관계를 맺고 콘텐츠 제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제는 새로운 미학이 필요하다. 콜롬비아 채널 RCN과 디즈니(Disney)의 공동 제작을 담당하는 콜롬비아의 텔레노벨라 작가 세실리아 페르시는 각 에피소드의 길이를 줄이고, 연속극의 전개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옛 텔레노벨라의 매력을 특징짓는 느린 음모 전개와 과장된 연기를 언급하면서 “이제는 더 이상 감정에 시간을 들이지 말고 행동에 시간을 들여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우리는 점점 더 해외에서 진행하는 작업에 의존하고 있다”며 유감을 드러냈다.

텔레노벨라 제작사는 이처럼 새로운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등장한 것이 라틴아메리카의 마약 카르텔에서 영감을 얻어 2000년대 제작된 ‘나르코벨라(narcovela)’ 시리즈다. 이 시리즈는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는 범죄자들을 영웅시 한다며 논란이 되고 있지만, 특히 미국 채널 텔레문도를 통해 방송되면서 해외에서 히트치고 있다. 거대 코카인 밀매조직에 가입하려는 매춘부의 모험을 다룬 2008년 드라마 <가슴 없이는 천국도 없다(Sin Senos no hay Paraíso)>는 28%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2년 후 멕시코의 마약밀매 조직의 두목 산드라 아빌라 벨트란(Sandra Avila Beltrán)의 삶에서 영감을 얻은 <남부의 여왕(La Reina del Sur)>이 제작돼 그 첫 번째 에피소드가 240만 명 이상의 시청자를 사로잡으며 멕시코 TV 시청률의 역사적 기록을 갱신했다. 

이런 트렌드를 이어받아 2012년에는 콜롬비아의 마약밀매업자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이야기를 다룬 전기 시리즈 <악의 비호자(El Patrón del Mal)>가 방송돼 220만 명의 시청자를 확보하는 대성공을 거뒀다. 페르시는 설명했다. “이 시리즈들은 마약, 폭력, 부패 등 미국인들이 라틴아메리카에 대해 갖고 있는 진부한 이미지에 부응한다. 또한, 북아메리카의 미적 기준을 따르고 있다."

 

‘열망의 거울’을 버린 텔레노벨라

최근 텔레노벨라의 또 다른 혁신의 결과로 탄생한 비오노벨라(bionovela)는 지역 인사들의 인생 여정을 재조명한다. 2019년 넷플릭스는 콜롬비아 채널 카라콜(Caracol)과 공동으로, 19세기 라틴아메리카의 독립을 상징하는 인물 중 하나인 시몬 볼리바르의 삶을 다룬 역사 시리즈를 제작했다. 넷플릭스에서 이 시리즈가 방송되기 전날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이 시리즈가 대중들에게 베네수엘라의 국민적 영웅 볼리바르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할까 걱정된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그들이 이 미니 시리즈에 얼마나 많은 거짓말, 명예 훼손, 쓰레기를 집어넣을 것인가?” 

그러나 다른 모든 비오노벨라처럼, 이 시리즈가 볼리바르의 활동에 대한 정치적 분석보다는 인물의 내밀한 삶에 초점을 맞춘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들은 이 시리즈에서 살아있는 볼리바르, 인간적이고 섬세한 볼리바르를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7) 1980년대 큰 인기를 끌었던 멕시코의 볼레로(낭만적 발라드) 가수 루이스 미구엘이 1년 전 텔레문도와 계약하고 제작한 또 다른 비오노벨라도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에 배급됐다. 루이스 미구엘의 비오노벨라 출시 이후 오디오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Spotify)에서는 미구엘의 노래 다운로드 수가 3배 이상 증가했다.(8) "텔레노벨라의 새로운 전략은 지역적이지만 수출 가능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라고 페르시는 요약했다.

이런 발전으로 텔레노벨라가 보수적인 사회 관습을 깬다면, 초창기 시청자들과 거리를 둔다는 것을 의미한다. 텔레노벨라는 더 이상 노동자 계층에게 열망의 거울을 제공하지 않거나, 하지 못하는 듯하다. <세상에 태어날 권리(스페인어: El derecho de nacer, 1961)>, <부자도 운다(Los ricos también lloran, 1979)>, <야생 장미(Rosa salvaje, 1987)> 등 초창기 텔레노벨라가 극적인 결혼 등을 통해서나 가능한 신분상승을 보여줬다면, 최근의 텔레노벨라는 세계화된 엘리트들의 세상과 관심사를 보여준다. 

콜롬비아 TV 평론가 오마르 린콘(Omar Rincón)은 "텔레노벨라가 넷플릭스 시청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힙스터들을 위한 게토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이렇게 변해버린 텔레노벨라에 배신감을 느낀 일부 시청자들(특히 45세 이상 여성)은 터키 드라마로 옮겨갔다. 린콘은 “이들은 텔레노벨라가 남긴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옮겨간 것”이라고 말했다. 린콘은 텔레노벨라 업계가 터키 드라마의 성공을 경고신호로 받아들여야 하며, 텔레노벨라가 예전의 색깔을 되찾으려면 멜로드라마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안도미니크 코레아 Anne-Dominique Correa 
에콰도르의 저널리스트. 라파엘 코레아 전 에콰도르 대통령의 딸. 주로 라틴 아메리카의 미디어와 관련된 기사를 기고하고 있다. 

번역·김루시아
번역위원


(1) Eduardo Woo, ‘Con peak de 32 puntos “Las Mil y Una Noches” concluye su arrollador éxito en Mega’ ‘천일야화는 최고 32%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메가에서 압도적인 성공을 거뒀다’, <Bíobíochile>, Concepción, 2015.1.14. www.biobiochile.cl
(2) ‘Novela turca Fatmagül venció en rating al Perú-Colombia 터키 드라마 <파트마귈>, 페루-콜롬비아를 이기다’, <Diario Correo>, Lima, 2015.9.9.
(3) ‘Popularity of Turkish soap operas leads Latin American tourists to flock to Turkey: Association’, <Hurriyet Daily News>, Istanbul, 2018.10.22. www.hurriyetdailynews.com
(4) Lamia Oualalou, ‘Les “telenovelas”, miroir de la société brésilienne’ ‘텔레노벨라’, 브라질 사회의 거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3년 7월호.
(5) Elena Reina, ‘Verónica Castro, la reina del culebrón millennial 천년  연속극의 여왕 베로니카 카스트로’, <El País>, Madrid, 2018.9.1.
(6) David Luhnow et Santiago Pérez, ‘Viewers Spurn the Telenovela for a New Love: Netflix’, <The Wall Street Journal>, New york, 2018.4.23.
(7) ‘Maduro pide disculpas a los productores de una serie sobre Bolívar y recomienda 마두로, 볼리바르 시리즈 제작자에게 사과’, <EFE>, Madrid, 2019.8.1.
(8) Marysabel E- Huston-Crespo, ‘Luis Miguel rompe récords en Spotify gracias a su serie biográfica con Netflix 루이스 미구엘, 넷플릭스 전기 시리즈 덕분에 스포티파이에서 기록 경신’, <CNN>, Atlanta, 2018.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