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루스코니, ‘G’와 함께 사라지나
지난 6월 12~13일 원전 재개와 면책법안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국민의 반대에 부딪히고, 북부동맹의 도전과 사법부의 감시를 받는 상황 속에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의 총리 임기에 대한 평가에는 2001년 제노바 주요 8개국(G8) 회담의 반대시위에 과도한 폭력으로 대응한 전력이 포함돼야 한다.
2001년 7월 20~21일, 제노바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회담 반대시위를 찍은 수백 장의 사진과 동영상은 경찰의 폭력적 과잉 진압의 증거로 남아 있다. 당시 상황을 기록한 수만 쪽의 법적 문서와 활동가들이 펴낸 수많은 자료, 보도자료, 학술자료도 있다.(1) 이런 폭력 사태의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기란 쉬운 작업은 아니다. 그래도 몇 가지 단서를 찾아볼 수는 있다.
10년 전, G8 반대운동 야만적 진압
1999년 미국 시애틀 이후 G8 회담이 개최될 때마다 대규모 반대집회가 열리는 것을 본 이탈리아 경찰 책임자들은 2만5천 명에 달하는 경찰을 투입했다(여기에 정보부 직원 수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들의 정확한 수를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다). G8 회담 개최 몇 주 전부터 대부분의 언론은 반대 시위자들을 온갖 짓을 서슴지 않는 체제 전복 세력으로 묘사했다. 심지어 경찰에게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된 혈액 봉투를 투척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정보부에서는 오사마 빈라덴 추종 세력들이 테러를 계획하고 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이런 분위기는 시위 진압을 준비하는 경찰에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했다. 주요 8개국에 감히 대항하려는 군중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마음의 준비가 된 경찰들이 선별됐다. 제노바 중심지가 완벽하게 차단됐다. 그 속에 남아 있던 일부 시민은 통행증을 지참해야만 외부 출입이 가능했다. 제노바 대주교가 G8 반대시위를 준비하던 기독교인들의 안전을 걱정하자, 2001년 6월부터 총리직을 수행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8개국 정상들과 제노바 시민, 시위대의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잔프란코 피니 부총리와 클라우디오 스카욜라 내무장관은 경찰에게 시위대와 충돌할 때 발생하는 사태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서구에서 자행된 최악의 인권침해
300~400명에 달하는 ‘블랙 블록’(black bloc·검은 옷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시위대)이- 수십 명의 위장 사복경찰 포함-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도록 내버려둠으로써 경찰 수뇌부와 정보부는 대중집회의 성격을 불순한 방향으로 몰아갔다. 상당수의 경찰들이 대안세계화주의 시위대로 보이는 사람뿐 아니라 아이와 노인, 기자, 수녀에게까지 폭력을 휘둘렀다. 디아츠 학교에서 잠을 자고 있던 시위 참가자 93명이 경찰의 습격을 받았고, 볼차네토 경찰서에서는 고문이 행해졌다.(3)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국가에서 벌어진 가장 심각한 인권침해 사례”(4)였다. 그 결과 시위대 중 1명이 죽고 560여 명이 다쳤다. 그중에는 평생 부상 후유증에 시달려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경찰에 연행된 사람은 ‘공식적으로’ 329명(공식 집계된 피해자 제외)이었고, 제노바시 곳곳이 물적 피해를 입었다.
지난 10년간 공식적인 소송만 4건이 진행됐고, 개인 소송도 줄을 이었다. 그중 일부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수많은 증거(사진, 증언, 경찰 통화 녹음, 행정서류, 의료진단 결과)는 고문 혐의 등의 피고로 지목된 시위 진압 투입 경찰과 간부들이 유죄임을 입증한다. 그중 상당수가 처벌을 받았지만 형량은 가벼웠다. 이탈리아는 아직 고문을 형사처벌 대상에 포함하지 않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처벌받은 이 중 누구도 경찰복을 벗지 않았고, 심지어 진급한 경우도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사법 조사 과정을 방해한 혐의로 처벌받은 잔니 데 제나로 경찰청장은 그 뒤 정보기관 공조 업무 책임자로 임명됐다. 폭력과 기물 파손 혐의로 최대 15년형까지 선고받은 시위 참여자들의 처지와 상당히 대조적이다.
끝없는 저항… 이탈리아에도 변화가
그러나 사회·환경·보건·정치 문제에 대한 대중의 대규모 결집은 멈추지 않았다. ‘사회적 무질서에 대한 폭력적 진압’이라는 신보수주의적 전략은 이제 효력을 잃고 있다. 많은 지도자들은 테러리스트·범죄자·소외계층·이민자·시위자를 ‘사회 위협 세력’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그들과 ‘항상적인 전쟁’을 지속하는 방식은 받아들일 수도 없을뿐더러 가능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탈리아에서는 민주주의의 승리를 위해 오로지 법정 투쟁에만 의존하는 방식이 효과를 보고 있다. 그 덕분에 경찰의 직권남용, 부정부패, 일상적인 폭력 행위가 줄어들었다. 더불어 치안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중도좌파 내부의 문제도 개선됐다.
글·살바토레 팔리다 Salvatore Palidda
최근 저서로 <위험한 이주: 유럽 내 인간 유동성의 관점으로 바라본 이민>(Karthala·파리·2011)이 있다.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각주>
(1) ‘권위주의로 회귀하는 이탈리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1년 10월호 참조. G8 회담에 관한 풍부한 자료와 참고문헌이 소개된 사이트 www.processig8.org 참조.
(2) Vittorio Agnoletto & Lorenzo Guadagnucci, <L’eclisse della democrazia>, Feltrinelli, Milan, 2011. Marco Imarisio, <La ferita. Il sogno infranto dei noglobal italiani>, Feltrinelli, Milan, 2011. Franco Fracassi, <G8 Gate 10 anni d’inchiesta: I Segreti del G8 di Genova>, Alpine Studio, Lecco, 2011.
(3) Massimo Calandri, <Bolzaneto. La mattanza della democrazia>, DeriveApprodi, 로마, 2009.
(4) ‘Italy: G8 Genoa policing operation of July 2001’, Amnesty International, 2001년 1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