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프타 17년, 텅 빈 미국 공장들
지난 6월, 미국의 고용시장이 얼어붙었다. 경제활동인구의 9.1%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미드웨스트 지역의 상당수 주에서는 공장들이 차례로 문을 닫고 있다. 노조원들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부분적인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오하이오주 산업도시 포스토리아 노동자들의 증언을 들어보았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국회 인준이 임박한 1993년 11월 9일 저녁, 협정 비준 찬성 세력들은 텔레비전 방송에 등장해 허풍을 떨며 대대적인 공세를 폈다. 수백만 명의 미국인은 CNN <래리킹쇼>에서 무소속 대통령 후보이자 NAFTA 반대에 앞장서고 있던 로스 페로와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부통령 앨 고어의 토론 장면을 지켜봤다.
아마추어 정치가와 직업 정치가의 논쟁은 후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CNN은 앨 고어 부통령의 발언이 대중의 지지를 충분히 끌어내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클린턴과 조지 부시 1세가 추진해온 이 대규모 사업을 선전해줄 ‘전문가’ 4명을 스튜디오로 모셨다. 그들은 ‘윈윈’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북미 관세장벽을 철폐하고 멕시코·캐나다·미국을 단일시장으로 ‘통합’해 모든 이에게 고용과 성장, 번영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초대 손님 4명 중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NAFTA를 옹호한 이는 래리 보시디였다. 경영자 대표로 NAFTA 체결 로비를 맡은 그는 다양한 분야에 진출한 다국적회사인 얼라이드시그널의 최고경영자(CEO)이자 오하이오주 포스토리아의 자동차 점화플러그 생산공장 오토라이트의 소유주였다.
젖과 꿀이 흐를 거라더니…
보시디는 NAFTA가 체결되면 생산시설이 대거 멕시코로 이전될 것(로스 페로는 “멕시코가 엄청난 소음을 내며 일자리를 흡수할 것”으로 예상했다)이라고 우려하는 반대자들을 반박하기 위해 미국 중서부 지역의 낙후된 산업단지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변모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앨 고어의 홍보 고문 카터 에스큐의 프로그램 바로 전에 등장한 이 얼라이드시그널 사장은 호주머니에서 점화플러그를 꺼내 흔들어대며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보십시오. 이게 점화플러그입니다. 오토라이트 제품이죠. 오하이오주 포스토리아에서 생산된 제품입니다. 현재 1800만 개를 생산하지만 앞으로 2500만 개를 생산할 예정입니다. 문제는 그걸 다 어떻게 판매하느냐죠. 현재로서는 이 제품을 멕시코에 판매하기는 힘듭니다. 관세가 15%나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NAFTA가 체결되면 멕시코에서도 이 제품을 판매할 수 있어, 포스토리아에서 계속 생산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공장은 현재 직원 수 1100명보다 더 많은 인원을 추가로 고용하게 될 것입니다. (중략) 조그만 자동차 부품 하나를 생산하는 게 이 정도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멕시코에 4천 대의 자동차를 수출하고 있습니다. NAFTA가 체결되면 첫해에만 6만 대 수출이 가능합니다. 그럼 추가로 1만5천 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그로부터 17년 뒤, 그의 약속은 지켜졌을까? 지난해 11월 미국 경제가 끝없는 침체에 빠지고 자동차업계의 거인 제너럴모터스가 공적 자금으로 연명하던 때, 포스토리아 공장에 남아 있는 노동자는 83명에 불과했다. 그나마 이들은 점화플러그 설치에 필요한 세라믹 절연재를 생산하고 있었다. 점화플러그 생산시설은 이미 멕시코로 이전한 터였다.
일자리 창출은 어디 가고 공장 이전
NAFTA 덕분에 오토라이트는 캘리포니아 남쪽에 위치한 멕시칼리(멕시코)의 마킬라도라(Maquiladora·수출용 생산단지)로 주요 생산시설을 이전할 수 있었다. 노동자 600명이 이곳에서 점화플러그를 생산한다. 주요 고객은 미국 자동차 빅3 중 가장 잘 버티고 있는 포드의 계열사 모터크래프트다. 직원들의 급여명세서를 보면, 회사가 왜 공장을 이전했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 포스토리아 공장 직원들은 주당 40시간 노동에 시간당 22달러(15유로)를 받는 데 비해, 멕시코 공장 직원들은 주당 48시간 노동에 시간당 15.5페소(약 1.27유로)를 받는다. 오토라이트는 이제 1999년 얼라이드시그널의 대주주가 된 하니웰에 속해 있다. 하니웰의 CEO 데이브 코트는 공장 이전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멕시칼리의 마킬라도라에 입주하면 인건비가 쌀 뿐 아니라, 행정적·법적 문제나 파업의 위험에서 최대한 보호받을 수 있었다. NAFTA와 멕시코 정부, 그리고 명백하게 부패한 멕시코 노동자총연맹(CTM)이 평화로운 투자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데이브 코트 사장이 높은 성과에 대한 보상으로 2009년 1300만 달러의 보수를 받은 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그뿐만이 아니다. 버락 오바마는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데이브 코트를 백악관으로 불러 단독 면담을 하고, 미국 경제의 ‘재기’를 촉구하는 자신의 연설(1)에 그를 대변인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포스토리아 주민들의 삶은 코트 사장이 누리는 영광과 거리가 멀었다. 포스토리아(인구 1만3441명)를 관통하는 두 개의 레일 위로는 여전히 이따금 화물열차들이 긴 꼬리를 끌며 지나가곤 한다. 철도 덕분에 곳곳에 공장이 들어서던 번영기(19세기 말∼20세기 중반)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이제는 기차가 포스토리아에 정차하거나 상품을 부려놓고 가는 모습은 구경하기 힘들다. 지역 상공회의소는 기차 애호가들이나 아마추어 사진가들에게 기차가 지나가는 장면이 일품이라며 거짓말일 수도 있는 선전을 늘어놓는다.(“이곳을 지나는 기차를 구경하기 위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스웨덴까지, 세계 곳곳에서 우리 도시를 찾는다.”) 그러나 이틀 동안 포스토리아에는 한 대의 기차도- 다른 어떤 것도- 지나가지 않았다. 이 도시의 유일한 서점은 폐업을 위해 모든 책을 반값으로 처분하고 있었다. 가동이 멈춘 공장의 텅 빈 주차장들이 광활한 들판처럼 펼쳐져 있었다. 포스토리아 인더스트리스(특수 오븐), 티센크루프 아틀라스(크랭크축)의 공장 건물과 자동차 판매점 그래프 오토몰 등의 건물이 황량하게 서 있었다. 한때는 ‘황무지 한가운데에 우뚝 선 작은 도시’라고 불리던 시절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1990년대, 멕시코로 이전하기 위해 공장들이 하나둘 문 닫을 때도 오토라이트는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 보시디 사장의 말이 허풍만은 아니었던 게, 당시 오토라이트 공장은 최고 생산량- 점화플러그 1일 생산량 13만 개- 을 자랑했다. 그러나 저임금의 엘도라도가 곳곳에 등장하는 상황에서 좋은 시절이 계속되기를 바랄 수는 없었다. 2000년 미국과 중국이 지속적인 교역 파트너가 된 뒤부터 미국 기업들은 중국에서 마킬라도라의 일당 15.5페소의 노동자들보다 더 값싼 노동력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2007년 1월, 오토라이트는 멕시칼리에 공장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한다. 8개월 뒤, 아직 포스토리아 공장에 남아 있던 노동자 650명은 2년 안에 전체 인원의 절반이 해고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는다.
10분의 1도 안 되는 멕시코 공장 임금
미국자동차노조(UAW) 포스토리아지부를 이끄는 밥 티플은 1995년 서른둘의 나이에 기술자인 아버지를 따라 오토라이트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는 이곳에서 노조 활동을 하는 블루칼라 엘리트들을 만나게 된다. 그때만 해도 도시 한복판에 있는 점화플러그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은 1천여 명을 헤아렸다. 2009년 9월 노조 사무실에서 밥 티플을 처음 만난 날, 그는 세라믹 절연재를 제외한 모든 생산시설이 이전된 뒤 직원 271명의 향후 대책을 걱정하고 있었다. 당시 멕시칼리의 새 공장은 몇 가지 문제로 가동을 시작하지 못했고, 포스토리아 공장의 해고 예정자가 몇 명인지, 언제쯤 해고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티플은 1993년 NAFTA 체결이 몰고 온 파장을 생생히 기억한다. 당시 보시디 사장이 직접 공장을 방문했다. “그는 사업이 잘돼가고 있다고 우리를 안심시켰다. NAFTA 체결이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는 예상할 수 없었다. 우리는 그저 텔레비전을 통해 찬반 논쟁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는 미소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보는 바대로 그 결과가 확실히 드러나고 있다.”
결과를 예측하지 못한 건 그의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53살의 페기 질리그는 아직 가동 중인 4개 생산라인(5년 전에는 13개였다) 중 한 곳에서 생산된 점화플러그들을 보호안경을 쓰고 검사한다. 10년 전 이곳에서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정치적인 것에 전혀 관심 없던 그녀는 이제 다른 사람이 됐다. 그녀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건 생산공정 자동화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정치인이 생산 로봇보다 더 위협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정치 지도자에게 실망했다. 그들은 우리 몫을 외국에 팔아넘기면서 우리 등에 칼을 꽂았다.”
다른 노동자들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61살의 래리 카프티요는 2007년 회사가 멕시코 직원 교육을 위해 그에게 다시 일해달라고 부탁했을 때 이미 퇴직한 상태였다. 카프티요는 다른 히스패닉계 직원 3명과 함께 이 일을 하면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그는 자신의 도덕적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그 과정을 일기로 기록해두었다. 일기장에는 그가 다시 출근을 시작한 날 하니웰 사장이 한 말이 기록돼 있다. “포스토리아 공장은 4~5년 전부터 손실을 내고 있다. 비싼 생산비용 때문만이 아니라 1200명에 달하는 퇴직자들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새로 일하게 된 동료들을 안심시켰다. “우리 네 사람이 회사가 멕시코에 자리잡도록 도우면 포스토리아 공장 직원 300명의 일자리를 지킬 수 있다.” 이 공장에서 잔뼈가 굵은 모든 노동자처럼 카스티요에게 오토라이트는 가족과도 같았다. 그의 아내 프랜은 이 공장에서 29년을 일하고 해고당했다. 딸 트레이시 역시 남편과 함께 이 공장에서 일했다. 경제위기 속에서는 시급 22달러도 감지덕지였다.
카프티요는 “우리가 이 일을 하겠다고 하면 동료들이 우리를 미워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회사는 다음과 같이 그들을 설득했다. “당신들이 이 일을 맡든 맡지 않든 공장은 이전된다. 우리는 성공적인 공장 이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하지만 멕시코 공장이 실패해 문을 닫게 되면 여기 남은 생산시설들도 가동을 중지할 수밖에 없다.” 카프티요는 그런 협박에 저항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게 정말 우리 공장을 살리는 길이라면 그 일을 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누구도 그 일을 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장이 멕시코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이쪽도 사정이 나빠질 것이라고 말했을 때 우리는 어느 쪽이든 선택해야 했다.”
유령도시로 변한 포스토리아
그러나 결과적으로 회사는 포스토리아에서 점화플러그 생산을 계속할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카프티요와 동료들이 2년간 미국과 멕시코를 2주 단위로 오가며 노력한 덕분에 멕시칼리 공장은 티플의 말대로 “백금만 있으면 무엇이라도 생산이 가능한” 완전가동 상태에 도달했다. 그 결과는 곧바로 드러났다. 2009년 회사와 재협상을 벌이던 포스토리아 공장 노조원들은 놀라운 말을 들었다. 회사 쪽은 110명의 일자리를 보전하고 싶으면 임금 50% 삭감- 시급 22달러 대신 11달러- 을 받아들이고 의료보험비의 일부를 자비로 부담하라고 요구했다. 티플은 “그런 요구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고 분노한다. 그런 모욕적인 조건을 감내하며 일하느니 차라리 퇴직 조건을 협상하는 편이 나았다. 카프티요는 “회사에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회사는 300명 이상의 일자리를 유지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절반도 남지 않았다”고 말한다.
두 나라 노동자들의 동병상련
2009년 12월 23일, 포스토리아 공장의 마지막 생산라인이 가동을 멈추고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공장을 떠나는 순간 이야기는 끝난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인 데이브 코트 사장에 대해 좀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니웰의 CEO 데이브 코트 역시 침체에 빠진 미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사람 아닌가. 2009년 1월, 이제 막 취임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러 백악관을 방문한 연봉 1300만 달러의 코트 사장은 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경제적으로 확실히 힘든 상황이다. (중략) 국회와 미국 국민, 그리고 우리 경영자들이 힘을 모아야 할 때다. 하니웰의 이름을 걸고 우리 임직원 모두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대통령에게 알리는 바다.” 뉴저지주 모리스타운 본사의 홍보 담당자들은 몇 달 동안 사장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4월 4일, ‘기적적인’ 재앙이 닥쳤다. 멕시칼리에서 60km 떨어진 지점에 강도 7.2의 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멕시칼리 지역은 비상사태에 돌입했고, 새로 지은 오토라이트 점화플러그 공장을 포함한 곳곳이 피해를 입었다. 하니웰은 별수 없이 일부 생산시설을 다시 포스토리아로 옮기고, 생산 주문을 맞추기 위해 이미 해고한 노동자 70여 명을 다시 불러들였다. 티플은 당시를 회고한다. “회사는 우리가 멕시코 공장보다 4배나 더 생산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 공장에서 점화플러그 13만 개가 생산됐다.” 그리고 10월 멕시칼리의 광활한 산업단지가 다시 정상을 되찾자마자 운 좋게 다시 일자리를 얻은 노동자 70명은 다시금 실업자가 될 처지에 놓였다. 이번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11월 1일 재계약 협상이 시작됐다. 현재 포스토리아 공장에 남아 있는 노동자는 83명뿐이다. 이들의 앞길도 밝지 않다. 티플은 “회사는 우리에게 멕시칼리에 세라믹 절연재 생산시설을 세우지 않겠다고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회사는 이미 카프티요에게 회사를 살리기 위해 도와달라고 부탁하며 비슷한 약속을 한 전력이 있다. 티플은 “일본 회사 NGK가 멕시칼리에서 가까운 캘리포니아 어바인에 세운 공장에서도 세라믹 절연재 생산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1936년 문을 연 포스토리아의 오토라이트 공장이 문을 닫는 건 이제 시간문제다.
돈방석에 앉은 사장, 오바마와 어깨동무
티플은 나쁜 소식 하나를 더 듣게 되었다. 지난해 1월 28일, 하니웰은 오토라이트가 속한 계열사 컨슈머프로덕트그룹(CPG)을 9억5천만 달러에 뉴질랜드에 본사를 둔 투자회사 랭크그룹에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코트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CPG는 경영상태가 훌륭하지만, 우리 회사가 보유한 차별화된 기술 포트폴리오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서 그는 랭크그룹에 신뢰감을 표시했다. “안정적 기업에 투자해 좋은 성과를 보여온 랭크그룹은 CPG의 브랜드와 소비자, 직원 모두에게 좋은 모기업이 될 것이다.”
이 말만 들으면 CPG 매각 결정 당시 코트 사장이 직원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랭크그룹의 소유주는 자산이 80억 달러에 달하는 그램 하트다. 그가 이룬 업적은 재계의 거물급 사이에서 전설이 되었다. 그러나 고용창출에는 별로 이바지한 바가 없다. 그램 하트는 금융계 용어로 ‘지렛대 효과’(Leverage Effect)라고 불리는 방법을 써서 부를 축적했다. 큰돈을 빌려 대규모 매출을 올리는 회사를 인수해 인원 감축으로 생산비를 절감한 뒤, 그 회사를 담보로 다시 큰돈을 빌리거나 이윤을 남기고 매각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그램 하트는 2008년 대기업 알코아에 27억 달러를 지급하고 패키징&컨슈머를 인수할 때도 같은 방법을 썼다. 하트는 알루미늄 포일을 생산하는 이 회사를 인수하자마자 20%의 인원을 삭감했다. 그중에는 버지니아주의 레이널드 랩 드 리치먼드 공장의 노조원 490명과 그 이웃 인쇄공장의 직원 158명도 포함됐다. 그 뒤 레이널드그룹 홀딩이 설립되고 SIG나 에버그린 패키징 같은 회사가 줄줄이 인수됐다. 노동자 처지에서는 CPG 매각이 결코 반가운 결정이 아니었던 것이다.
투기자본에 통째로 팔리는 계열사들
자유무역이 가져다줄 혜택에 관해 수많은 이야기와 이론이 넘쳐난다. 그러나 NAFTA 체결로 피해를 본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이 이야기들은 설득력을 잃는다. 제리 페스도 그중 한 명이다. 2009년 52살의 나이에 오토라이트 공장에서 일하던 때, 그는 자신이 행복하다고 믿었다. 그 공장에서 32년을 일한 그는 정식 퇴직연금을 신청할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두 딸은 사립대 졸업반이었고, 포스토리아에서 20km 떨어진 뉴리젤의 집 대출 상환도 끝난 터였다. 그는 자신의 일을 사랑했다. 무엇보다 ‘시제품 생산부’에서 근무한 게 기뻤다. “그곳에서 일하는 게 좋았다. 항상 같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손만 쓰는 게 아니라 머리를 쓰며 일했기 때문이다. 학력이 높은 동료들도 나를 동등하게 대접해줬다.” 페스는 아메리칸드림에 온몸을 바쳤고 그 보답을 받았다. “오토라이트에서 일하게 된 건 행운이었다. 보수도 좋았다. 덕분에 내 아내는 직장을 그만두고 8년간 살림을 하며 두 딸을 키울 수 있었다. 베이비시터를 둘 수도 있었지만 엄마·아빠만 하겠는가.” 그러나 그의 아메리칸드림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만다.
회사 미팅에서 하니웰 경영진이 정리해고 계획을 발표했을 때 페스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5년 정도 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끝난 일이었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할 말은 해야 했다. 나는 막 발언을 마친 한 경영자에게 말했다. ‘당신은 방금 우리가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401K 연금보험 가입자이며, 매년 연기금 운영 내역서를 받아본다. 그걸 보고 알게 됐는데, 하니웰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경영자 5명이 지난해에만 총 7천만 달러를 벌었다. 경쟁력 운운하면서 이렇게 돈을 써도 되는가?’”
페스는 당시 그 경영자가 한 대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글쎄, 데이브 코트 사장이 받는 보수에 대해서는 내가 말할 게 없다. 어쨌든 사장의 수입은 다른 기금에서 오는 것으로 안다.” 페스가 맞받아쳤다. “미안하지만 내가 알고 싶은 건 그게 아니다. 방금 멕시코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적은 임금을 받고도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고 했는데, 높은 사람 5명이 7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마당에 우리더러 돈을 너무 많이 받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페스는 그 경영자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그런 질문에 별로 당혹해하지 않는 이도 많다. 그중에서 가장 언변이 뛰어난 인물은 R. 글렌 허버드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경영대학원 학장이자 조지 부시 대통령 임기 첫 2년간 경제자문위원회를 이끈 그는 2008년 금융위기에 관한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잡>(2)에 등장한 뒤로 더욱 유명해졌다. 허버드는 미국 골든 보이들의 필독서인 <거시경제학>(Macroecomics)의 저자이기도 하다. 앨리슨 머리는 이 책을 잘 알고 있다. 포스토리아 공장에 해고 바람이 불자 그녀는 홀로 아이를 키우며 오토라이트 공장에서 일한 뒤 근처의 핀들레이대학에서 야간 수업을 들었다. 그 공장에서 17년간 일해온 머리는 퇴직연금 수급 자격이 없기 때문에 미래를 위한 대책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녀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배우며 씁쓸한 기분을 맛봐야 했다.
“오랜만에 학생이 됐는데 가장 먼저 배운 게 공교롭게도 거시경제학이었다. 학교에서 권해준 허버드의 책에는 산업생산 시설을 미국 밖으로 이전하는 게 얼마나 이로운 일인지 설명돼 있었다. 또한 미국의 산업은 공룡처럼 비대해졌고 살을 빼야만 더 많은 이득을 올릴 수 있다고 했다. 정면으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걱정에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가장 먼저 배운 게 미국 경제를 위해서는 내가 해고당하는 편이 낫다는 사실이었다!”
머리는 그 문제에 대해 교수와 벌인 토론을 떠올렸다.
“교수에게 말했다. ‘이론적으로는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게는 인간적인 현실이다. 나는 공장 이전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두 눈으로 목격했다.’ 교수는 내게 그건 전체 일자리 중 일부에만 해당되는 얘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구 1만5천 명의 도시에서 900개 일자리가 사라졌을 때 초래되는 결과는 심각하다.”
정리해고하며 수천만 달러 연봉
허버드는 자명한 진리라고 주장되는 몇 가지 요소를 결합해 <거시경제학>을 썼다. 그러나 2008년 경제위기가 닥치자 그의 주장은 신빙성을 잃게 됐다. 감세와 규제 완화, 자유무역과 시장법칙을 교리처럼 떠받드는 이 책은 승자들을 위한 교본이다. 이 책이 누리는 높은 권위는 비판의 가능성마저 차단한다. 굳이 비판하고 싶다면 이 책이 펼치는 논리와 숨기고 있는 사실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국제 교역에서의 비교우위와 이익’이라는 장을 살펴보면, 증명되지 않은 전제와 이미 시효가 다한 안정제 같은 논리가 넘쳐난다. 일부를 발췌해서 읽어보면, “일부 사람들은 부유한 나라의 기업들이 신흥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국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걱정한다. 불필요한 걱정이다. 자유무역이 경제적 효율성을 향상시켜 구매력을 끌어올릴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한 국가가 더 싼 가격으로 상품을 수입할 수 있는데도 스스로 상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보호주의 정책을 펼 경우 자국민의 구매력이 떨어지게 될 것이다.”
이 책의 공저자 앤서니 패트릭 오브라이언은 아동노동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아이들에게 노동을 금지할 경우 그보다 ‘훨씬 혹독한 일’(성매매 같은 일)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한 개발도상국이 임금 상승 요구나 환경보호 법안 도입을 거부하는 게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모든 게 상대적이기 때문이란다. “부유한 국가의 평균임금 수준과 비교한다면 적은 임금일지 모르지만, 가난한 국가의 노동자들이 그나마 일하지 못해 겪어야 할 고통에 비한다면 괜찮은 편이다.”
엉터리 경제이론, 여전히 교리 행세
요컨대 “미국은 숙련된 노동력과 고도로 발전한 산업으로 비교우위를 누린다면, 중국은 그들대로 미숙련 노동력과 기초적인 기술로 생산 가능한 산업에서 비교우위를 누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수준(시급 50센트)이나 국가의 노조 통제, 환경보호 장치 부재, 생산 노하우의 단계적 상승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페스와 머리, 셀리그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임금은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예전에 보시디 사장의 말을 믿었듯이, 최근 ‘무역지원조정제도’(TAA)와 관련한 노동부의 최근 보고서를 믿어보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TAA는 1994년 1월 1일 NAFTA가 발효된 뒤 실직 노동자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실질적으로 감소한 일자리 수를 고려하기보다는 구제를 신청한 실직자들에 대한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2011년 3월 4일 현재 이 프로그램의 혜택을 본 실직자는- 다시 말해, 국가에서 제공하는 몇 푼 안 되는 지원금의 수혜자는- 244만8299명에 달했다. 포스토리아의 오토라이트 공장에 남아 있는 노동자 83명이 이 명단에 포함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글·존 R. 맥아더 John R. MacArthur
<자유무역 판매: NAFTA, 워싱턴과 미국식 민주주의의 전복>(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버클리·2001), <미국의 카스트: 프랑스인에게 설명하는 미국 선거>(Les Arènes·파리·2008)의 저자.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각주>
(1) ‘Dave Cote Introduces President Obama at White House Media Briefing on U.S. Recovery Plan’, honeywellnow.com, 2009년 1월 27일.
(2) 2010년 찰스 퍼거슨 감독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