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정부, 딜레마에 빠진 언론 통제

2011-07-11     셰르빈 아마디

지난 3월 어느 월요일, 인구 1400만의 테헤란 거리는 인적이 뚝 끊겼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명절 ‘누루즈’(Nowruz)다. 이란인들에게는 이날이 새해 첫날이다. 타즈리시 광장 시장 북쪽에 위치한 한 가게에 손으로 판지에 휘갈겨쓴 광고가 걸렸다. <쓴 커피>의 DVD가 출시됐다는 광고다. 신문 가판대와 구멍가게 등 어느 가게에 들어가도 이 코믹 드라마의 최신판을 쉽게 구할 수 있다. 현재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메흐란 모디리는 이 드라마의 연출과 제작뿐 아니라 공동각본과 주연까지 맡았다.

2년 전에 시작한 이 드라마는 이란 사회의 변화에 발맞춰왔다. 그러나 가벼운 유머와 익살은 등장할지언정, 체제 비판이라는 마지막 선은 결코 넘지는 않는다. 가끔 외국에 본사를 둔 방송 채널의 아나운서들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할 때는 있지만 정치적 비판으로 발전하는 일은 없다.

정치 비판 없는 대중문화 용인

약 150만 장 정도가 팔린 <쓴 커피>는 DVD 한 장에 3개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가격은 2유로가 채 안 된다. 이란 중산층에게는 그리 부담 없는 가격이라 굳이 해적판을 찾을 필요도 없다. 이란에서는 불법복제가 대량으로 이루어진다. 이 드라마를 위한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트위터 계정도 있으며 위키피디아에는 페르시아어와 영어 항목이 올라와 있다. 드라마의 배경은 먼 옛날이다. 전제군주의 횡포와 그의 후궁들을 조롱하는 내용이다. 시청자는 각각의 등장인물에게 예전(리자 샤, 팔레비의 아버지)과 현재 통치자들의 모습을 대입해보기도 한다.

이란의 유력지 <샤크> 4월 2일자에는 이란 문화지도부가 이 드라마의 20번째 DVD 판매를 금지할 예정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공식적으로는 몇 가지 내용 수정과 관련된 행정적 절차 때문이라고 발표됐지만, 인터넷신문 <아프탑>은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이 고위 정치인과 닮은 게 진짜 이유라고 폭로했다. 진짜 이유야 어쨌든 DVD는 결국 출시됐고, 예전처럼 큰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이처럼 검열을 망설이는 듯한 이란 정부의 태도는 비공식적 방송 네트워크를 용인하고 심지어 장려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런 채널들은 자체 자막을 입힌 미국 액션영화 해적판로부터 배급 금지 판정을 받은 이란 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송을 내보낸다. 이 중에는 마약 문제와 이란 젊은이들의 가치 상실, 어두운 미래를 묘사한 다리우스 메르지 감독의 영화 <산투리>(Santoori)도 포함되어 있다. 정규방송에서 이미 방영됐지만 시청자가 다시 보고 싶어하는 드라마들도 재방송한다. 이슬람 혁명 첫 10년간의 언론통제가 실패로 돌아간 후, 이란 정부는 대중문화와 청년문화 콘텐츠를 덜 엄격한 방식으로 통제하고 있다. 이란 정부는 언론 전체를 장악하기보다는 완벽한 정치적 통제와 ‘덜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콘텐츠의 허용이라는 방식을 병행하고 있다.

그 결과, 두 개의 공간이 병존하게 되었다. 이슬람 공화국 정권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통로로서의 공식적 공간과 함께 그보다 덜 통제받는 별도의 공간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후자의 경우, 책임자들은 이 공간에 대한 통제가 자신들의 권한 밖이라고 주장할 여지가 있다. 이는 이들이 정권이 내세우는 정치적·도덕적 원칙에 완전히 부합하지 못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비공식적 공간에서는 서구로부터 직수입되는 문화의 영향을 상쇄하기 위해 자체적인 콘텐츠 개발이 한창이다. 가령, 이란인 커뮤니티가 가장 발달된 로스앤젤레스에서 수입된 팝 음악을 흉내낸 가수들이 대거 등장했다. 처음엔 다소 소극적인 방식이었다. 일부 가수들은 미국으로 망명한 이란 출신 가수들의 목소리까지 그대로 흉내냈고, 대신 시에 멜로디를 붙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 후 ‘콤플렉스’가 덜한 실력 좋은 2세대 가수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란 정부가 ‘세상 모든 타락의 상징’(Mofsedin fil arz·‘서구적인’ 것들을 지칭하기 위해 이란 정부가 사용한 표현)이라 부르며 비난했던 외국 팝 문화와 비교했을 때, 멜로디나 가사에서 별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노래들이 연이어 발표됐다. 예전에는 불법으로 규정돼 음성적으로 만들어지던 팝과 록 음악들은 이제 반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비교적 자유롭게 들을 수 있게 됐다.

‘타락의 상징’ 팝 문화 대량 유입

공식 방송 영역에서도 국영방송 채널이 늘어나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가족물이나 아동물 외에도 지역 방송이 엄청난 예산을 들여 제작한 드라마들이 방영된다. 내용도 유수프와 줄레이카 이야기(코란에 전해내려오는 이야기)의 할리우드식 버전에서부터 코믹 드라마, 정치 사극 등 다양하다. 메란 모디리도 이런 변화에 일조한 배우들 중 한 사람이다.

라디오 방송사들도 같은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처음엔 테헤란 교통방송으로 출발한 페이람방송은 1990년대부터 예전 같으면 틀지 못했을 음악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이슬람 혁명 이후 자취를 감췄던 팝 음악이 다시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공식 방송 채널에서 이런 음악들을 내보내기 시작하자 전통주의를 고수하는 사회계층도 이를 용인하게 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심지어 <노헤흐>(680년 카르발라에서 살해된 무함마드의 손자 이맘 후세인을 기리는 종교적 의례곡)가 팝 음악으로 편곡되기도 했다.

위성 채널이 등장하면서 미디어 전쟁이 격화되기 시작했다. 공식적인 금지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도시 가구뿐 아니라 농촌에서도 위성 안테나를 설치하는 집이 많아졌다. 정부는 전략을 바꿨다. 일단 정치 관련 뉴스는 사전에 통제된다. 국영 채널에서는 위성 채널이 누리는 표현과 비판의 자유가 엄격히 제한된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이란에서도 정치 관련 뉴스는 별 인기를 끌지 못한다. 따라서 다른 영역의 관리가 더욱 중요해진다. 정부는 정치와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위성 채널들의 방송 내용은 눈감아준다. 설사 체제가 내세우는 도덕적 원칙에 위배되더라도 정치적으로는 덜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현재 공식적으로 금지된 몇 개의 채널들이 내보내는 뮤직비디오들은 이슬람 율법에 저촉되는 장면들을 담고 있다. 이들이 함께 내보내는 광고 속에는 이란 휴대전화 번호들이 자막으로 삽입되기도 한다.

서구적 가치에 경도되는 중산층

이란 정부의 태도가 어떤 모순들을 초래하게 될지 예상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우선, ‘덜 위험하다’는 기준이 자의적이다. 외계인들과 맞서 싸우는 내용의 미국 액션영화가 전통적인 드라마보다 ‘덜 위험하다’고 볼 근거는 무엇인가? ‘비정치적인’ 영화들이 서구의 생활방식에 대한 호감을 불러일으키고 무절제한 소비를 부추길 수도 있지 않을까? 이미 이란의 대도시 중산층은 때로 정도가 지나쳐 보일 만큼 서구적 가치에 경도되고 있다. 이란은 중동 지역에서 두 번째,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화장품을 많이 수입하는 나라다. 대도시 사람들은 30년 전에는 알려지지조차 않았던 밸런타인데이 같은 상업적 축제도 즐긴다. 3년 전부터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뉴스 코퍼레이션의 페르시아어 채널인 <파르시 원>이 라틴 드라마들을 연속으로 내보내며 큰 인기를 끌자 이란 정부는 고민에 빠졌다. 미국 기자 덱스터 필킨스는 <파르시 원>의 인기가 빈곤계층으로 너무도 빠르게 확산되자 이란 정부가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1)

반대세력이 미디어 공간을 정치적으로 이용할까봐 두려워 시청자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려 했던 이란 정부는 스스로 놓은 덫에 걸린 셈이다. 이란 정부는 서구의 생활방식을 찬양하는 분위기의 조성에 본의 아니게 일조하고 있으며, 자신들을 ‘중세적’이라고 비난하는 이들에게 유리한 고지를 넘겨주고 있는 것이다.

글·셰르빈 아마디 Shervin Ahmadi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각주>
(1) <The New York Times>, 2010년 11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