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 위한 ‘마법의 돈’은 존재하지 않는다

허풍과 미봉책으로 얼룩진 사회보장제도

2020-12-31     도미니크 시코 l 언론인

프랑스에서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사회보장 재정 법안 관련 논란이 한창이다. 물론 퇴직 연령을 늦추고자 여론을 ‘간보기’하던 상원 의원들의 행보와는 무관하게 연금개혁도 중단되고 거동이 불편한 돌봄 대상자 관련 지출항목도 신설됐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기존 방향을 수정하지 않은 채 급한 불끄기에만 급급하다. 

 

2020년 10월 27일 프랑스 국회 1차 독회에서 법안 심의가 시작됐을 때, 올리비에 베랑 보건부 장관은 2021년 사회보장 재정 법안에 대해 ‘이례적인 경우’라고 수식하면서 “동 법안에 언급된 수치는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상상도 못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의 대유행과 그 여파로 사회보장 재정상황이 크게 달라진 까닭에서다. 특히 건강보험을 비롯해 2018년 14억 유로였던 재정 적자가 2020년 484억으로 급격히 확대된  타격이 컸다. 30년째 한결 같이 추구해온 재정 균형이라는 목표가 갑작스레 현실의 벽에 부딪힌 것이다.  

그런데 상황과 함께 정부의 말도 급변했다. 2018년 4월 5일만 하더라도 마크롱 대통령은 예산부족을 호소하던 루앙 대학병원 의료진에게 “마법의 돈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구조조정을 전제한 역량 강화의 압박으로 1년 이상 휘청거리던 의료계가 2020년 봄 코로나19로 직격타를 맞아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정부는 마치 ‘마법의 돈’을 찾기라도 한 것처럼 말을 바꿨다. 3월 12일 코로나19에 대한 총력전을 예고하는 대국민담화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건강은 돈으로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얼마가 들더라도 환자를 보살피고 생명을 구하는 의료지원에 필요한 모든 재정적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이후로도 정부는 수십억 유로를 들먹이며 계속해서 ‘마법의 돈’을 소환했다. 

실제로 건강보험 지출 목표치도 예년에 비해 크게 늘었다. 매년 의회에서 (약국이나 병의원 등) 각 부문별로 상한선을 정하는 건강보험 지출 목표치는 지난해 2020년 사회보장 재정법 기준 총 2,056억 유로였다. 하지만 2020년 말 기준 지출액이 2019년 대비 9.2% 상승한 2,181억 유로에 달해 2021년 목표량은 2,254억 유로로 책정되며 3.35% 증가했다. 지난 10년간 사회보장재정법에서 승인된 건강보험 지출 목표 증가율은 약 2~2.5%였다.

 

병상은 계속 줄어든다

그러나 이같은 예산지원의 허수에 속아서는 안 된다. 코로나19 퇴치의 최전선에 있는 국공립 병원은 수년 째 위기에 처해 있어 특히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임에도(1) 사회보장재정법안에서는 의료기관(공공 및 민간 병원, 재활치료원 등)에 할애할 지출 목표치를 (총 929억 유로로) 3.3%밖에 인상하지 않았다. 지역 단위의 의료 서비스 기관인 약국 및 의원의 지출 목표치는 5.8% 증가한 989억 유로였고, 의료 복지기관의 경우 10% 상승했음에도 총 260억 유로 밖에 되지 않아 여전히 건강보험 지출 할당량이 적은 상황이다.(2) 파리 비샤 병원과 콜롱브 루이-무리에 병원의 내과전문의 겸 병원연합체(3) 회원인 안 제르베 박사의 분석을 보면 정부 방침의 허수는 또 있다.

“건강보험 지출 목표치가 승인되면 병원에는 예년보다 85억 유로가 추가로 더 할당된다. 그런데 연중 급여인상분 75억 유로와 부채 회수금 8억 유로, (의료진 처우 개선 프로젝트에 따른) 신규 투자액 8억 유로 모두가 이 안에 포함되며, 2019년에 연간 상승률 2.4%로 동결된 고정 비용 상승분(물가상승분이나 기본급 변화 등에 따른 임금의 자연 인상분과 의약품 가격 상승분) 20억 유로도 그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달리 말하면 2021년 건강보험 지출 목표치에서 최소 25억 유로가 부족하다는 소리다. 그리고 여기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비용은 아예 고려되지도 않았다.

이런 ‘때우기’ 식 행태 외에도 정부는 아예 기본 노선조차 수정할 생각이 없다. 병상을 줄이려는 계획도 사라지기는커녕 도리어 더 교묘히 진행되는 느낌이고, 보비니 의료구급대(SAMU) 소속 의사 크리스토프 프뤼돔 역시 “정부 입장이 수시로 발표되고 있지만 이는 결국 연막작전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프뤼돔에 의하면 “(건강보험에서 지원해준다는) 병원 부채 회수액 130억이란 것도 15년에 걸쳐 상환해야 할 전체 부채의 1/3에 불과하며(15년 상환이므로 연간 지원액은 8억에서 8.5억 유로 정도), 정상화 계획, 즉 구조조정이라는 조건이 덧붙는다.” 

그런데 정부가 국공립병원에 대해 일반 기업처럼 급여세만 면제해주더라도 “1만 5,000개 일자리 기준 연간 40억 유로가 절감된다. 그러니 정부는 사실상 병원 측에 지속적인 자금줄을 추가로 마련해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앞에서는 돈을 푸는 듯하지만 뒤로는 자금줄을 틀어막는 조삼모사 식의 행태까지 보인다. “코로나19로 심각한 타격을 받은 사회보장 재정안정성을 복원해야 할 필요성”을 앞세우며 2021년 건강보험 지출 목표치에서 ‘조절책’이라는 명분으로 40억 유로의 비용절감을 계획해두었기 때문이다. 

비용절감 대상은 해마다 동일하다. ‘적절한’ 치료를 통해 ‘효율적으로’ 환자를 부담한다는 미명 하에 약국 및 의원 지출 쪽에서 10억 유로를 절감하고, 의약품 부문에서 (대개 가격을 통해) 6억 유로를 절감하며 직무 정지 및 의료 수송 쪽에서 3억 유로를 아낀다는 계산이다. 병원 쪽에서도 8억 500만 유로를 절감할 계획이라는데, 이는 예년보다 높은 수치다. 

이 말은 곧 보건의료기구 성과향상을 위한 국립지원청 권고에 따라 끝없는 생산성을 추구하며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뜻이다. 제르베 박사는 “6~7년 전만 해도 평균적으로 병상 8개 당 1명이었던 간호인력을 병상 14개 당 1명으로 줄이려는 속셈”이라고 강조한다. 파리 공립의료원(AP-HP)에서는 “2017년에 이미 병상 12개 당 간호인력이 1명으로 축소”됐다. 

정부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들것 운반인력, 기술 및 행정인력 등 국공립 병원에서 1만 5,000명을 채용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중 7,500명은 이미 공석인 자리를 채우는 것이고, 따라서 신규 채용은 7,500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열악한 노동조건 때문에 지원자가 점점 줄어서, 정부가 공언한 일자리 자체가 만들어질 수 없는 상황이다. 

생나제르 병원 응급실 간호사이자 응급실 상호조합 회원인 파비앵 파리스는 의료진 처우 개선 프로젝트 차원에서 합의된 임금인상이 “그동안 늦어진 걸 만회한 것”이라고 지적했는데, “10년째 기준점이 동결돼 그만큼 직업 메리트”가 떨어진 것이다. 사회학자 파니 뱅상 역시 “단기적으로는 지원자가 없다”면서 “이런 난국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국공립 병원에 보다 많은 투자가 이뤄져야 하나, 이런저런 계획들이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기본적인 생각에는 변화가 없다. 그저 의료계 문제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듯한 환상만 심어줄 뿐”이라고 지적한다.(4) 

 

사회보장의 자본화

따라서 모든 게 기대에 못 미치는 상황이다. 보건 분야는 물론이고 (막대한) 사회적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일단 재원이 필요하나, 정부는 허풍과 미봉책 밖에 내놓지 않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0~2021년 건강보험 재정을 15억 유로 가량 늘려준다는 ‘건강보조세’의 신설이다. 이런 식의 세금은 가격에 영향을 미쳐 결국은 수요자 부담의 원칙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거동이 불편한 돌봄 대상자 관련 지출항목 역시 다른 지출항목의 자금을 끌어오는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여름 표결된 두 법에서는 향후 2023년까지 1,360억 유로 상당의 부채를 사회보장부채상각금고(CADES) 쪽으로 서서히 이전함으로써 사회보장 재정 ‘구멍’을 막으려 하고 있다.(5) 2020년 8월 7일 조직법에 따라 그 수명이 2024년에서 2033년으로 연장된 사회보장부채상각금고(CADES)는 시장에서 돈을 끌어오는 역할을 맡는다. 사회보장재정의 ‘세제화’를 넘어서 ‘자본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정책의 기본 방침은 조세부담과 (전체 임금에 해당하는) 노동 비용의 감소다. 따라서 1990년대부터 축적돼온 사회보장분담금을 경감 및 면제하는 정책을 시행한다.(6) 사회보장재정이 부족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1994년 베유법에 따라 정부는 응당 재정적자를 메워야 했으나, 정부가 책무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1992~2018년 약 600억 유로의 재정이 소실됐다는 게 사회보장기구중앙청(ACOSS)의 분석이다. 마크롱 정권 이후 정부가 어떤 재정적자도 메우지 않기로 결정함에 따라, 정부의 재정상태 악화가 더욱 심화됐다.

필요한 만큼 돈이 모이질 않으니 지출을 통한 ‘조절’이 필요하고, 여기서 ‘조절 변수’로 사용되는 것은 언제나 국공립 병원이다. 이에 병원은 수익성을 강요받으면서 사회문제까지 떠안아야 하는 신세가 됐으며, 1차 의료기관에서 맡았어야 할 무휴진료 업무까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어 결국 병원 응급실에서 이를 책임지고 있다.(7) 그런데 약국이나 의원 단위의 의료기관을 관리할 의지도 여력도 없는 상태에서 건강보험재정이 바닥나고 있을 때, 이 모든 압박을 다 감내한 건 바로 국공립 병원이었다. 행위별 수가제와 (부동 소수점 방식을 사용한) 마구잡이식 수가조절 등 예산통제 수단이 모두 정부의 손에 있는 만큼 병원은 그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8) 

행위별 수가제 하나만으로도 비 정량화된 업무나 기준에서 벗어난 업무, 혹은 수익성이 낮은 작업을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고, 건강보험 지출 목표에서 정한 것보다 진료 행위나 횟수가 늘어날 경우 부동 소수점 방식을 사용해 원하는 대로 수가를 조절한 뒤 초과한 금액에 맞춰 요율을 낮출 수 있다. 병원의 숨통을 조일 모든 수단이 정부의 손에 있는 셈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2017년부터 이미 행위별 수가제를 손보겠다고 공언해왔다. 2021년 사회보장재정법안에도 진료의 적절성과 수준, (해당 지역 주민의 수요에 따른) 인구비율 등을 바탕으로 한 수가제와 행위별 수가제를 절충한 의료비 지불방식을 5년에 걸쳐 시험해보겠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이 복잡한 기준들이 반영된 구체적인 결과는 뭘까? 사회학자 프레데리크 피에뤼는 “현재로서는 실제 현장에 쓰일 만한 대안은 없는 상태”라고 지적하면서 “재무부가 행위별 수가제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고 확언했다. 그런데 “이 행위별 수가제가 바로 부채를 늘린 원인”이다.

“2004년부터 병원 빚이 점점 늘어났고, 이에 병원은 곧 위험 부담이 큰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병원이 진 빚은 구조조정을 강제하기 위한 훌륭한 정치적 수단이다. 제3세계에 구제 금융을 지원한 대가로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것과 정확히 같은 논리다.” 그리고 그에 따른 폐단은 코로나19 사태로 드러난 바와 같다.(9)  

 

 

글·도미니크 시코 Dominique Sicot
언론인

번역·배영란
번역위원


(1) 앙드레 그리말디 외, ‘마크롱의 ‘전쟁’ 선포 이후 바이러스는 퇴각할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20년 4월호.
(2) 건강보험 지출 목표에는 이외에도 지출항목 두 개가 더 포함되는데, 지역 의료자금(2021년 예상치 39억 유로) 및 기타 잡비(38억 유로) 등이다.
(3) 병원연합체는 국공립병원 수호를 위해 의사 및 대학생, 의료계인력 및 행정인력이 모인 조직체로, 응급실연합체 같은 다른 조직체와 연계돼 있다. 
(4) Pierre-André Juven 외, 『La Casse du siècle. À propos des réformes de l'hôpital public』, Raisons d'agir, Paris, 2019. 
(5) 1996년 설립된 사회보장부채상각금고는 사회보장부채상환기여금(CRDS)과 일반사회보장기여금(CSG)을 바탕으로 조성되며, 금융 시장에서 공채를 발행한다. 
(6) Nathalie Coutinet, Anne Eydoux, Anaï Henneguelle, Christophe Ramaux & Henri Sterdyniak, ‘Budget 2021 : une occasion manquée de rérienter l’éonomie 2021년 예산안: 경제 바로잡을 기회 놓쳐’, <Les Économistes atterrés>, 2020년 10월 13일, www.atterres.org 
(7) Pierre Souchon, ‘Cette France en mal de médecins 의사 문제로 병 앓는 프랑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6년 9월호.
(8) Frédéric Pierru, ‘La tarification à l'activité à la française. Entretien avec Brigitte Dormont 프랑스식 행위별 수가제: 브리지트 도르몽과의 대담’, <Revue françise d’administration publique>, n° 174, Paris, 2020. 
(9) Gilbert Achcar, ‘코로나19는 빈국을 갉아먹는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20년 12월호.

 

 

지속적으로 악화된 사회보장

 

2021 사회보장재정법안의 기본 가설은 다음과 같다.(1)

- 사회보장(건강보험, 산재 및 직업병 관련 보험, 가족보험, 연금보험) 적자 : 2018년 14억 적자 및 2019년 17억 적자에 비해 2020년 484억으로 사회보장 재정 적자가 크게 증가했으며, 2021년에는 271억, 2024년에는 210억으로 예상. 건강보험 부문 하나만 하더라도 2020년 재정 적자가 322억으로 추정되며, 2021년에는 197억, 이어 2024년까지 매년 170~180억 정도의 결손액이 예상됨.

- 코로나19로 인한 추가 비용 지출(마스크 구입, 수당 지급 및 병원&요양원 추가 근무 비용 지급, 휴직 관련 수당, 진단 비용 등) 및 건강보험 부담액 증가 : 회계감사원에 의하면 코로나19에 따른 2020년 의료 장비 관련 환급액은 150억 유로에 달하며,(2) 1차 의료기관 진료 감소로 상쇄된 추가 비용은 45억 유로 선.

- 이동제한조치에 따른 부분적인 경제활동 동결로 (세수의 절반을 차지하는) 사회보장분담금 및 정부 재정에 영향을 미치는 일부 세금(일반사회보장기여금)이 크게 줄어 2020년 세수가 200억 가량 감소.

- 2021년 경제 전망치가 - 낙관적으로 보더라도 - (2020년 10% 감소한) 실질 GDP의 8% 상승, 노동인구 6.8% 증가 정도이며, 이 경우 세수는 7% 증가해 4,150억 유로에 이를 전망이나 “실질적으로는 코로나19 이전에 예측된 수준에 못 미치는 정도가 지속될 것.” 

 

(1) 프랑스 국회 및 상원 웹사이트 참고. 
(2) ‘La Sécurité sociale. Rapport sur l’application des lois de financement de la Sécurité sociale 사회보장: 사회보장재정법 적용에 관한 보고’, 회계감사원, Paris, 202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