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아프리카에 귀환할 것인가?

2020-12-31     아르노 뒤비앵 l 언론인

2019년 10월, 국가원수 40여 명이 2014년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흑해 연안의 소치에 모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주관으로 개최된 제1회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담은 향후 5년 이내 무역량 2배 증가 등 야심찬 목표를 선언하고 폐막하면서, 2022년 아프리카연합(AU) 사무국이 위치한 아디스아바바(에티오피아)에서 재회를 약속하고 막을 내렸다. 서구사회는 포괄적 전략지역에 속하는 아프리카에 대한 러시아의 접근을 ‘러시아의 공식적인 아프리카 귀환’으로 받아들였다. 러시아의 동향을 예의주시하던 측에서는 이런 추세가 실상 15년 전에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러시아는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오래전 독립해 인종차별정책에 저항하는 아프리카 국가들에 접근했다. 1920년대 초, 레닌도 아프리카를 인식하고 있었지만, 30년이나 흘러 프랑스와 영국의 식민 지배가 끝나면서 러시아 대외정책의 주안점이 됐다. 1956년 10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며 수에즈 운하 위기에 개입한 후,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URSS, 소련)은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이 이끄는 이집트를 경제적·군사적으로 대폭 지원하면서도 다양한 국가해방운동에 강한 관심을 보였다.

 

중국의 자극, 러시아의 ‘소프트’ 정책

마오쩌둥의 중국은, 한때 돈독한 형제애를 과시하던 소련을 ‘혁명에 소극적이다’라는 비난의 말로 자극했다. 1956년부터 소련은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LN)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크림반도 페레발네의 소련 기지에는 넬슨 만델라의 아프리카민족회의(ANC)와 짐바브웨 아프리카인민동맹(ZAPU), 모잠비크 해방전선(프렐레모, Frelimo)에서 인종차별정책에 맞서 싸우던 이들을 영입했다. 

러시아는 군사적 지원에 더불어 ‘소프트’ 영향정책을 폈다. 가령 1961년 파트리스루뭄바 민족우호대학을 모스크바에 설립했고 20년 후에는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지에서 학생 2만 6,500명이 이곳으로 유학을 왔다.(1) 소련은 아프리카 각국은 물론 제3세계 국가에 외교관들을 상당수 파견했는데, 신생 독립국이 소련에 외교관 2~3명을 파견하면 소련은 수백 명의 외교관을 보냈다. 1960년 토고에는 주민 1만 8,000명당 소련 외교관 1명이 있을 정도였다.(2)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아프리카 대륙은 주변부임에도 불구하고 동서 대치의 주요무대가 됐다. 소련은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에서 세력확장을 시도한 후,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가 붕괴하고 인종차별정책에 저항하는 투쟁이 발발한 틈을 타 남부로 방향을 전환했다. 소련의 세력확장 노력은 앙골라에서 두드러졌는데 1975년부터 1만여 명의 소련군을 파견했다. 그들은 쿠바 원정군과 협력해 1988년 겨울 앙골라 쿠이투쿠아나발르 전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나미비아 독립의 길을 열었고, 남아프리카 프리토리아 정치체제를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약화시켰다. 그러나  공산당의 마지막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1980년대말 서구사회와의 관계정상화를 명목으로 아프리카에서 전략적 철회를 결정했다. 이 과정은 눈에 띌 만큼 신속하게 진행됐다. 소련 붕괴 이후에도 이런 흐름은 이어졌다.

이후 새로 집권한 보리스 옐친과 당시 러시아 지도자들에게 ‘아프리카’는 ‘뒤떨어진 경제’, ‘쓸데없는 모험’과 동의어였다. 따라서 소련은 1992년부터 아프리카 소재 대사관 9개소, 영사관 4개소, 문화원 20개소 중 13개소의 문을 닫는다고 발표했다.(3) 냉전시기 주로 대외정보기관의 위장기지였던 구소련 언론사무소 상당수가 새로운 정권의 자금과 관심을 받지 못한 채 문을 닫았다. 1993년 러시아의 대아프리카 교역은 총 대외무역량의 2%를 넘지 않았다. 러시아는 수십 년에 걸친 정치·경제적 투자를 포기했고, 몇 달 만에 아프리카에서 자취를 감췄다. 아프리카가 ‘부상’하고, 다른 국가들이 아프리카 진출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에서 역설적인 선택이었다. 그만큼, 2000년대 들어서 러시아가 따라잡아야 할 격차는 클 수밖에 없었다.

 

2001년, 아프리카에 다시 눈을 돌리다

러시아가 다시 아프리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2001년경이다. 외교부 장관(1996~1998)에 이어 총리(1998~1999)를 역임한 예브게니 프리마코프는 러시아 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임명돼 앙골라, 나미비아, 탄자니아,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순방했다.(4) 그후로도 5년이 지나서야 러시아는 21세기 처음으로 아프리카에 진출했다. 2006년 3월, 푸틴 대통령은 알제리를 방문해 부채 47억 달러(37억 유로)를 탕감해주는 조건으로 60억 달러(47억 유로) 무기매매 계약 체결을 제안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냉전시대 네트워크를 동원해, 과거에 쌓은 사상적 친밀함을 전형적인 사업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관건이었다.

러시아는 소련의 고객이었던 리비아에서도 같은 전략을 폈다. 2008년 봄, 당시 푸틴 대통령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주기 불과 몇 주 전에 리비아 통치자인 무아마르 카다피를 만났다. 러시아는 소련 시절 리비아에 제공한 부채 46억 달러(31억 2,000만 유로)를 탕감해줬고, 리비아는 전투기와 전차, 방공시스템 등 군사장비 30억 달러 상당을 구매하기로 약속했다. 시르테와 벵가지를 연결하는 철도건설 사업에 러시아철도공사(RJD)가 참여하는 협약도 체결했다. 

아프리카로 귀환하려는 러시아의 첫걸음은 민간기업의 막대한 투자로 이뤄졌다. 소련과 긴밀한 관계였던 또 다른 국가 기니에는 세계 1위 알루미늄 생산기업 루살이 있었다. 2006년 9월 푸틴이 남아프리카의 프리토리아를 방문했을 당시,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철강업체 에브라즈와 빅토르 벡셀베르크의 광산업체 레노바는 하이벨브 스틴 앤 바나듐 회사를 인수했고, 칼라하리 망간 광산업체(UMK) 자본의 49%를 투자했다. 2010년 로스아톰 국영원자력회사의 자회사 ARMZ 우라늄회사가 탄자니아의 거대 우라늄 광산을 획득함으로써 러시아의 투자는 자리를 잡았다. 러시아 최대 다이아몬드 생산업체인 알로사는 앙골라와 짐바브웨에 투자했다.

메드베데프의 임기(2008~2012) 말에는 러시아의 대아프리카 정책이 제도화되기 시작했다. 2011년 3월, 당시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아프리카와 협력을 전담하는 특별대표를 임명했다. 아랍어를 구사하는 미하일 마르겔로프는 당시 러시아 연방의회의 상원, 연방회의의 통상교역위원회 위원장이었는데, 2014년 10월까지 대아프리카 협력 특별대표를 맡았다. 그는 2011년 12월 제1회 러시아-아프리카 무역 포럼을 조직했고 러시아의 대아프리카 정책을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

2011년은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푸틴 총리의 기묘한 연합이 지속되는 4년 동안 유일하게 공식적인 마찰이 발생한 해기도 했다. 푸틴은 메드베데프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그의 선택권을 앗아간) 서구사회의 리비아 공습에 대해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면서, 리비아 내 정권 교체 움직임에 경고를 했다. 서구사회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 일화는 러시아 권력 게임의 전환점이 됐다. 2012년 봄 대통령직에 복귀한 푸틴은 외교정책 기조 발표에서 서구사회의 내정간섭을 적극 비난했다. ‘리비아 선례’와 전반적인 ‘아랍의 봄’ 물결이 그의 연설을 돋보이게 했다.

 

무역확대에서 안보협력으로

전통적으로 러시아는 남아프리카를 사하라와 북아프리카 아랍어권 지역과 별개로 여기고 후자에 외교적·경제적 노력을 쏟았다. 이런 경향은 2013년 압둘팟타흐 시시 장군이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후 이집트와 관계가 회복되면서 강화됐고, 2014년부터는 모로코와 관계도 돈독해졌다. 무기매매와 군사협력은 이집트와의 화해 분위기를 드러내는 첫 신호였다. 2013~2017년 이집트군은 전투기 MiG-29M 46대, 방공시스템 Buk-M1-2와 S-300VM, 공격헬기 Ka-52 46대를 인도받았다. 공격용 헬기 Ka-52는 원래 프랑스가 러시아에 판매하기로 한 미스트랄 항공모함용이었으나, 2015년 최종적으로 이집트에 인도됐다. 미국이 이집트에 가한 보복 위협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전투폭격기 Su-35도 이집트에 인도됐다. 게다가 러시아와 이집트 해군은 2020년 10월 흑해에서 공동 군사훈련을 진행했고, 양국 공수부대도 이제 매년 합동작전을 펴고 있다.

양국 간 무역 규모도 커졌다. 교역량은 2011년 28억 달러에서 2018년 80억 달러로 급증했다. 러시아는 세계제일의 곡물 수입국인 이집트로 수출량을 대폭 확대했다. 2017~2018년 대선 유세기간 동안 이집트 보리 수입량의 85%가 러시아산이었다. 게다가 2015년 체결된 협약에 따라 로스아톰은 알렉산드리아 서쪽의 알다바에 이집트 내 첫 번째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할 계획이다. 이 발전소는 2029년 완공예정이며, 약 250억 달러로 추정되는 전체 비용의 약 85%가 러시아 정부의 차관으로 충당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위기 이후 서구사회와 긴장이 고조되고, 시리아의 군사개입을 시작으로 근동지역에 정치 간섭을 확대하면서 러시아는 지금까지 미진한 축에 가까웠던 모로코와 관계를 급진전시킬 수 있었다. 2016년 3월 푸틴은 첫 방문 이후 14년 만에 장관 10여 명을 대동하고 모로코의 무함마드 6세 국왕을 다시 공식 방문했다. 모로코는 러시아가 2014년 8월부터 유럽의 경제제재에 맞서 취한 식료품 수입금지 조치로 수혜를 봤다. 게다가 모로코와 러시아를 잇는 직항노선을 개설해 러시아 관광객을 유치하려고 했다. 카사블랑카는 코로나19 감염병 사태 이전에 러시아로 이어지는 몇 안 되는 아프리카 도시였다. 양국 간 교역량은 점점 커져,  2018년에는 14억 7000만 달러에 달했다.

얼마 전부터 러시아와 모로코의 관계는 안보분야로 확산됐다. 2016년 12월 러시아 국가안보위원회 위원장인 니콜라이 파트루셰프는 모로코를 이틀간 방문했다. 이에 앞서 모로코 국가안보부(DGSN)와 국토관리부(DGST) 부장인 압델라티프 함무치가 그해 4월에 러시아를 방문했었다.  대외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러시아와 모로코는 사하라 서쪽 지역에 관해 견해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의 실리적인 관계는 거의 전 분야에 걸쳐 야심차게 발전하고 있다.

2014년 이후, 러시아의 대아프리카 정책에서 안보분야의 중요성이 높아졌다. 지난 5년 사이 러시아는 20개 이상의 국가와 협약을 맺었는데, 최근 협약국으로는 말리(2019년 6월), 콩고(2019년 5월), 마다가스카르(2018년 10월)가 있다. 이들 국가는 장교들의 러시아 파견 교육, 최신 군사장비 인도, 지급된 장비의 유지관리, 합동훈련, 테러와 해적 대비 활동 등 국가별 상황과 현안에 따라 다른 기대를 품고 있었다. 반면 군사기지 상시 개설은 고려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었다. 실전 차원에서 비용은 높고 효율은 낮기 때문인데, 아프리카 일부 국가 원수들은 끊임없이 이를 요청하고 있다. 2017년 11월 러시아를 방문한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도 홍해에 해군기지를 건설할 것을 제안했다. 2018년에도 같은 제안이 있었으나, 러시아는 대응하지 않았다.

국방부 대표들과 더불어 안보협력 분야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인사가 파트루셰프다. 그의 중개로 전 세계 정보기관 대표들을 초청한 안보에 관한 연간회담과 병행해 아프리카 정보부와 공식적으로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가장 최근인 2019년 5월 러시아 서부 우파에서 개최된 회의에서 나미비아 정보부국장 필레몬 말리마를 비롯해 브룬디, 튀니지, 우간다, 이집트, 콩고의 정보기관 대표와 면담이 있었다.(5) 아프리카 지도자 상당수가 우려하는 ‘색깔 혁명’ 예방책과 사이버안보가 주요 의제였다. 

테러와 봉기 예방책은 최근 안보협력 의제에 편입됐다. 두 나라의 공식적인 협력의 틀에서 대책이 마련되지만, 이따금 비공식적인 방식으로 사설업체를 포섭하기도 한다. 러시아와 나이지리아의 협력관계는 이슬람 무장단체 보코하람과의 전쟁에 역점을 두고 있다. 나이지리아 군인들은 러시아로 파견돼 교육받고, 러시아의 무기수출 부서는 2016년과 2018년 공격헬기 Mi-35M 12대를 인도했다(전투폭격기 Su-30가 매매됐다는 정보가 있으나 확인되지는 않았다). 2017년 5월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만수르 무함마드 단 알리 나이지리아 국방장관과 모스크바에서 장시간 회담을 했다.

반면 리비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모잠비크, 수단 등에서 러시아 정부는 정규군이나 특수군을 파견하지 않고 사설군사업체를 봉기군 진압 전투에 투입시켰다. 러시아 용병들은 2018년 말 지역안보군 편에 서서 수단 봉기 진압에 참여했고, 결국 알바시르 대통령이 승리했다.(6) 2019년 가을, 리프 자신투 뉴시 모잠비크 대통령은 두 번씩이나 러시아를 방문했다. 러시아 군사협력업체는 모잠비크 정부의 야심찬 천연가스원 개발 전략의 핵심 지역인 카부델가두주의 이슬람근본주의 집단을 진압하는 임무를 맡았다.(7)

진행 중인 사업은 많지만, 아직 전반적인 성적은 마이너스다. 바그너 그룹 소속 용병들이 트리폴리 전투 당시 칼리파 하프타르 리비아 총사령관을 지원했지만 패배를 막지는 못했다. 또 모잠비크에서는 상당한 손실로 쓴맛을 봤고 파병된 지 몇 주만에 퇴각했다. 그들이 수단 하르툼에서 수행하려던 임무는 2019년 10월 이뤄진 체제 변화 이후 러시아에 정치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힐 뻔했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 러시아는 수도 방기에 국방부 대표사무소를 열고 안보협력을 제도화하려는 것으로 보였는데, 이는 장기적으로 사설 군사업체를 밀어내고 러시아 정부군의 입지를 확고히 하려는 시도였다.

 

러시아는 고립되지 않았다!

결국 러시아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거둔 최대성과는, 자국의 역할과 영향력에 대한 인식개선이었다. 아프리카 국가는 러시아가 다시 주요 협력국으로서 최소한 경제협력을 제공하고, 국내외 안보에 도움을 주고, (인권문제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서구사회와 (많은 아프리카 국가가 친분을 다지길 원하는) 중국 간 외교관계에서 ‘제3의 길’을 대표할 수 있다고 본다. 러시아 입장에서 아프리카는 돈바스와 크림반도 등 민감한 사안을 논하는 UN 총회 회기에서 지원군의 표를 의미하기도 한다. 수많은 아프리카 국가가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을 비판하는 2014년 3월 결의안에 반대(수단, 짐바브웨)하거나 기권(알제리, 남아프리카공화국, 말리, 르완다, 세네갈 등)했다. 전통적으로 서구사회의 결의안에 반기를 드는 12개국보다 훨씬 더 많은 나라가 이번 결의안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미국과 유럽연합 국가의 생각만큼, 러시아는 외교적으로 고립되지 않았던 것이다. 2018년 러시아와 아프리카의 교역량은 200억 달러가 넘었다. 중국(2,040억 달러)이나 프랑스(513억 유로)에 비하면 적지만, 브라질이나 터키에 견줄 법한 규모였다. 러시아는 첨단기술 분야에 방점을 찍고 아프리카와 무역구조를 다각화하고자 했다. 2017년 앙골라를 필두로 2020년부터 튀니지의 위성 발사 시장에 진출했다. 민간 원자력 부문에서 로스아톰은 원자력을 처음 도입하는 잠비아, 수단, 르완다 등과 협약을 맺었다. 르완다의 경우, 2018년 6월 폴 카가메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을 기점으로 교류가 늘었다. 디지털보안 솔루션 제공업체 카스퍼스키랩은 2019년 5월 르완다 키갈리에 대표소를 설립했고, 이곳을 중심으로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러시아는 공공연히 ‘하드파워’를 확대하면서도 지역기업에 장기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단을 보급중이다. 프랑스어와 영어를 비롯해 포르투갈어를 제공하는 몇몇 러시아 국영언론(RT, 스푸트니크)은 많은 아프리카 국가에서 유의미한 시청자를 확보하며 정보원으로 자리매김했다.(8) 이들 언론사의 편집부는 러시아가 아프리카에서 식민 지배한 과거가 없고 반제국주의 항쟁에 기여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따금 반프랑스적 논조를 띠는 그들의 입장은 말리에서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러시아의 보건 협력 분야 활동도 매우 활발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최근 러시아에 수출용 코로나19 치료제 아비파비르를 주문했다.(9) 반면 이집트는 러시아 당국의 종용에도 불구하고 스푸트니크-V가 아닌 중국 백신을 선택했다.(10) 몇 년 전 러시아 보건부와 루살은 기니에서 에볼라 바이러스 백신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러시아 ‘소프트파워’의 다른 축은 정규교육과 직업훈련이다. 2013년 사립대학 과정을 이수하는 아프리카 학생 수는 대략 8,000명으로 추산됐다.(11) 현재 러시아는 기후와 최근 몇 년간 언론에 떠들썩했던 인종차별 문제 때문에, 유럽과 미국에 비해 덜 선호되는 유학지다. 한편, 협력기구의 신임회장인 예브게니 프리마코프(전 총리의 손자)는 아프리카 학생만 자격이 되는 전액지원 장학생을 현재 1,800명에서 더 늘리고, 아프리카에서 성업 중인 러시아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어 장학제도를 확대하고자 한다.(12) 

 

아프리카, 러시아에 어떤 존재?

그러나, 아프리카로 향하는 러시아의 발걸음은 그리 당당하지는 못하다. 암울한 미래가 보이는 발표도 있다. 2017년 로스텍이 우간다 정유공장 건설을 포기하면서 동아프리카 내 러시아의 경제 전망도 약화됐다. 모잠비크 앞바다에서 천연가스원을 개발하는 로스네프트의 여러 사업계획도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다. 로스아톰이 큰 기대를 걸었던 남아프리카 민간 원자력 개발계획도 보류됐다. 인종차별정책에 맞서 싸우던 시절, 아프리카민족회의의 정보부 부장으로서 러시아 정보기관 KGB와 긴밀히 공조하던 제이컵 주마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강제로 밀려나면서 아프리카 내 러시아 연락책들이 취약성을 드러냈다. 

알바시르 수단 정부 전복 이후, 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 알제리 대통령이 사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들이 현 단계에서 수단과 알제리에서 러시아의 입지를 가시적으로 약화시키지는 못했다. 러시아는 소련 시절부터 군사정보 아카데미에서 교육받은 군대와 안보부 소속 현지 장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주로 사안에 따라 움직인다. 대륙 차원의 ‘대대적인 전략’의 기미는 없다. 러시아 정책을 추진하는 다양한 주체간 조율도 이뤄지지 않는다. 쇼이구 국방장관과 파트루셰프 국가안보위원회 위원장의 정치적 영향력은 일반적으로 협의를 거치는 외교부 차관이자 새로운 ‘아프리카통’인 미하일 보그다노프를 통하지 않을 만하다. 민간 군사업체와 군사정보기관의 협업은 국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중앙아프리카공화국과 리비아에서는 뚜렷하지만, 수단에서는 다소 느슨한 편이다. 이는 정치학자 테타냐 스타노바이아가 ‘지정학적 사업가’라고 명명한 이들의 운신의 폭을 반영한다. 러시아의 전략 고문관들이 최근 몇 년 이들 주위에서 활발히 활동했지만(마다가스카르 등), 현지 사정에 어두운 탓에 큰 성과는 내지 못했다.(13)

그러나, 러시아가 전략적 영향력을 더 키우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1990년대에 아프리카에서 존재감을 상실했고, 이후에는 잃어버린 존재감을 회복하기 위한 일관적인 노력과 의지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아프리카에 관심은 있지만, 우선순위에 두고 있지는 않다. 아프리카는 러시아가 2016년 11월 설정한 ‘외교 정책 가이드라인’의 지역 순위에서 가장 뒷자리에 있다. 

 

 

글·아르노 뒤비앵 Arnaud Dubien
언론인. <Russia Intelligence>와 <Ukraine Intelligence> 잡지의 정치부문 편집장을 맡고 있다.

번역·서희정, 이정민
번역위원


(1),(2) Joseph L. Nogee & Robert. H. Donaldson, 『Soviet Foreign Policy Since World War II』, Pergamon Press, New York, 1981.
(3) Arnaud Dubien, ‘La Russie et l’Afrique : mythes et réalités 러시아와 아프리카: 신화와 현실’, <Note de l’Observatoire franco-russe 프랑스-러시아 관계>, n° 19, Moscou, 2019.10.
(4) Arnaud Kalika, ‘Le “grand retour” de la Russie en Afrique ? 아프리카 대륙에서 러시아의 ‘위대한 귀환’인가?’, <Russie.Nei.Visions>, n° 114, 프랑스국제관계연구소(IFRI), Paris, 2019.4.
(5) 러시아 경제지 <Kommersant>, Moscou, 2019.6.20.
(6) ‘Russian military firm working with Sudan security service: sources’, <Sudan Tribune>, Paris, 2019.1.8. https://sudantribune.com
(7) Tristan Coloma, ‘La stratégie économico-sécuritaire russe au Mozambique 모잠비크에서 펼치는 러시아의 경제안보전략’, <Notes de l’IFRI 프랑스국제관계연구소 소론>, 2020.5. 
(8) Kevin Limonier, ‘Diffusion de l’information russe en Afrique. Essai de cartographie générale 아프리카 내 러시아 정보 확산, 전반적인 분포에 대한 소고’, 군사대학 전략연구소, Paris, 2018.11.13.
(9) ‘Russia’s coronavirus drug to be sold in 23 countries’, <The Moscow Times>, 2020.9.24.
(10) ‘Why Egypt chose Chinese Covid-19 vaccine over Russian one’, <Al-Monitor>, 2020.9.17. www.al-monitor.com
(11) Alexandra Arkhangelskaya &t Vladimir Shubin, ‘Russia’s Africa Policy’, <Occasional Paper>, n° 157, South African Institute of International Affairs, Johannesburg, 2013.9.
(12) 러시아 경제지 <Kommersant>, Moscou, 2020.9.9.
(13) Michael Schwirtz & Gaelle Borgia, ‘How Russia meddles abroad for profit : cash, trolls and a cult leader’, <The New York Times>, 2019.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