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이 드는 중국식 ‘낙수 효과’
중국이 개발도상국에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자, 오랜 세월에 걸쳐 개발도상국들을 빚으로 지배해왔던 선진 자본국들이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이라는 아시아의 거인은 늘 그래왔듯, 서구열강의 전철을 따르지 않고 자국 우선정책에 따라 행동한다. 중국은 이타주의와 국제 연대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그것들을 우선순위에 두지도 않는다.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파리클럽, 워싱턴, 파리, 유럽연합은 다음의 분석에 입을 모은다. 중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 BRI) 사업으로 흔히 알려진 신(新)실크로드 전략을 빌미로 ‘사업참여 개발도상국’을 중국에 종속시킨다는 것이다. 천연자원의 헐값 수출이나 영토 임차권마저 강요하면서 개도국들을 부채의 덫에 몰아넣는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같은 맥락에서 2018년 3월, 미-아프리카 관계에 관한 회의에서 렉스 틸러슨 당시 미국 국무부 장관은 “중국은 불투명한 계약, 약탈적 대출, 부당한 거래로 개도국의 의존성을 키우고, 부채를 지우며, 주권마저 훼손한다”라고 비판했다.(1)
과거에 개발도상국을 수탈하고(지금도 여전히 수탈하고 있으며), 긴축재정 정책을 요구해 공공 서비스(보건, 교육, 식량지원 등)를 축소하도록 강제해온 소위 여러 선진국 정부와 기구들도 이 비판 대열에 어김없이 가세했다. 1990년대 후반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에서 ‘기아 폭동’을 촉발하고, 오늘날 그리스 국민의 고혈을 쥐어짜 무기력에 빠트린 자신들의 전적은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중국 경제학자 청이핑은 이런 모순을 못마땅해하며 다소 분개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중국을 비방하는 서방 국가들은 아프리카와 남미 국가가 사회기반시설을 구축해 자생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대신 부채만 잔뜩 지웠다. 하지만 우리 중국은 도로와 공항, 통신망을 건설해준다.”
중국의 금융(공공 및 민간 모두)은 국제통화기금(IMF)과 달리 반대급부로 정치,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을 요구하지 않는다. 중국은 주로 시장보다 낮은 금리로 차관을 빌려준 후, 기반 시설 건설사업을 병행한다.(2) 그렇다고 해서 중국이 마냥 백기사를 자청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과도한 투자, 식민지 전략의 사전 포석?
중국 사회를 좀먹는 부정부패는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수혜국의 여러 정치지도자나 기업들이 부정부패에 물들었으리라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발표내용과 실제로 체결된 계약을 비교하기도 어려울 만큼 사업비용 자체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2017년 한 해에만 시중은행(중국건설은행, 중국공상은행, 중국은행)에서 2,250억 달러, 국가기관(중국개발은행, 중국수출입은행)에서 2,000억 달러 이상이 투입됐을 것으로 추산한다.(3)
더욱이, 투자계획에는 대체로 (기록적인 수준의 환경오염과 함께) 중국의 경제적 발전을 가능하게 한 대형 국책사업이 관행처럼 따라붙는다. 그런데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한 국가들은 민주주의 모범국은 아니다. 따라서 내부 견제세력이 있다 해도 불필요하거나 지나치게 큰 규모의 건설사업이 진행되기 일쑤고, 아프리카처럼 인프라 건설비용을 원자재로 치른다 해도 반대할 방법이 거의 없다.(4)
특히 아프리카 국가들은 중국자본에 예속된 국가의 전형적인 예로 흔히 거론된다. 2018년, 스리랑카 정부는 함반토타 항구건설에 들어간 자금을 중국상업은행에 상환하는 대신 무려 99년간 항구 조차권을 중국에 양도하기로 했다. 과다한 비용이 투입된 이 전례 없는 규모의 초대형 항구 건설사업은 중국의 국영은행과 민간은행의 자금지원을 받아 진행됐다. 그러므로 중국에 대한 경제종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반드시 혐중(嫌中) 정서의 발로라고 해석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스리랑카의 주권이 현저히 약화된 근본적인 원인을, 중국이 제공했다고 보는 것이 과연 마땅한가? 물론 중국이 차관을 승인하고 비용을 댔던 건설 사업(스리랑카의 함반토타 항구나 마탈라 라자팍사 국제공항)은 스리랑카의 필요와 재정능력을 한참 벗어났다. 그러나 이 사업으로 생긴 채무 중 대(對)중국 채무는 10%에 불과하며, 대(對)일본 채무가 전체의 12%, 세계은행 대출이 14%에 달한다. 금융시장에서 조달한 채무는 39%에 달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스리랑카의 경제학자 우메쉬 모라무달리는 “스리랑카가 부채 위기를 겪게 된 주된 이유는 수출이 감소하던 시기에 (수출에 사활을 걸어) 상업금리가 적용된 국제 자본을 택한 결정”이라고 지적했다.(5) 따라서 스리랑카가 무리하게 대규모 기반시설을 건설한 이유는 국제무역을 촉진하려는 의도에 있다고 풀이할 수 있다.
막대한 부채를 떠안고 상환불능 상태에 처한 스리랑카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국제통화기금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자산을 분할매각하는 것이었다. 스리랑카는 결국 유럽연합의 주문에 따라 피레우스 항을 매각한 그리스, 동일한 절차를 앞둔 이탈리아처럼 두 번째 선택지를 택했다. 더구나 모라무달리는 “스리랑카 정부는 세계에서 이용도가 가장 떨어지는 마탈라 라자팍사 공항(MRIA) 운영권을 인도에 양도하는 방안을 검토했다”는 점을 언급했다. 당시 거론됐던 임대차계약 기간은 40년에 불과하다. 현재 이 계획은 연기된 상태다.
사실상 중국 다국적기업들은 신뢰도가 추락한 국제기구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중국 기업은 미국의 연금기금과 달리 단기 차익을 노리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이런 기업과 중국 정부가 자선기관을 자처하는 것은 아니다. 제각각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이해관계(중국 정부는 인도양 항구 확보)일 수도 있고 경제적인 이해관계(기업은 시장 판로 구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당사국 국민은 어떨까?
시진핑, “일대일로는 차이나클럽이 아니다”
차관조건이나 자금을 조달하는 사업에 비하면 부채 자체는 문제의 소지가 작다. 파키스탄 영토 내 통신 네트워크 구축사업에 불만을 가질 이는 없겠지만, 심한 오염을 유발하는 석탄화력 발전소 건설의 추진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유사한 예는 수없이 많다. 대(對)중국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파키스탄은 19%, 라오스는 40%에 육박한다.
스리랑카 사태 이후 이어진 항의시위, 정권교체(말레이시아도 마찬가지), 중국은행 부채 증가, 재정 준비금 감소가 이어지면서 중국은 해외 투자를 줄였다. 사업 규모도 대부분 조촐하게 축소됐다. 시진핑 주석은 2019년 4월에 개최된 제2차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Belt and Road Forum for International Cooperation)’에서 중국의 해외 투자 ‘3대 의무’로 ‘해외 투자의 지속적이고 건전한 발전 도모’, ‘친환경’, ‘부패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제시했다.(6) 이어, 일대일로 사업은 “차이나 클럽이 아니며, 중국의 국익뿐 아니라 투자 대상국과의 공동발전을 실현해야 한다”라고 강조하면서, “여러 물줄기가 한데 모여 깊은 강과 바다를 이룬다. 물줄기가 이어지지 않으면 대양도 곧 말라붙고 말 것”이라는 시적 은유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렇게 모인 물줄기도 ‘낙수 효과’를 일으키지는 못한다.
글·마르틴 뷜라르 Martine Bulard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부편집장으로 아시아 문제를 담당하고 있다. 경제학자이자 작가, 주요 저서로 『중국-인도, 용과 코끼리의 경주』(2008), 『서구에서의 병든 서구』(공저, 2009) 등이 있다.
번역·이푸로라
번역위원
(1) ‘Remarks - Secretary of State Rex Tillerson on US-Africa relations : A new framework’, <Global Public Affairs>, Washington, D.C, 2018년 3월 6일.
(2) Sophie van der Meer, Demystifying debt along China’s New silk road, <The Diplomat>, 2019년 3월 6일.
(3) Jean-François Dufour, 『China Corp.2025. Dans les coulisses du capitalisme chinois 중국 기업 2025. 중국 자본주의의 이면』, Maxima, Paris, 2019.
(4) Milan Rivié, Jean-Christophe Servant, ‘La Tanzanie mise sur la Chine 중국에 사활을 건 탄자니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2월호·한국어판 3월호.
(5) Umesh Moramudali, ‘Is Sri lanka really a victim of China’s debt trap?’, <The Diplomat>, 2019년 5월 14일.
(6) 4월 26일 연설,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 웹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