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생태계를 덮친 재앙, 그 이후

2020-12-31     에리크 델아예 l 기자

프랑스 국립음악센터가 마침내 문을 열었다. 직접적인 ‘수익성’ 없는 창작물을 지원하는 일이 주된 임무지만, 일단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를 수습하고 장기적으로는 이익 창출의 압박을 견뎌내야 한다.

 

“파산을 막는 것.” 2020년 11월 3일 기자 회견에서 지금의 최우선 과제를 묻는 기자에게 프랑스 국립음악센터장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프랑스 국립음악센터는 오랜 시간의 염원을 담아 2020년 1월 정식으로 설립됐다. 설립된 지 얼마 안 됐을 때인 2020년 3월, 모든 콘서트가 금지되자 이 ‘공공기관’은 긴급대책을 세우라는 압박을 받았다. 수 세기의 망설임 끝에 세워진 국립음악센터는 음악 공공정책의 부활을 상징한다.

20년 전부터 디스크 산업이 몰락하면서 음악 생태계(아티스트, 기술자, 제작자, 편집자, 배급업자 등)는 이미 약해진 상태였고 여기에 불어 닥친 코로나19 위기는 이 아슬아슬한 카드 성을 더 흔들리게 했다. 손해가 크고 타격도 깊어 조직 정비와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2018년을 기준으로 음악산업의 매출액은 97억 유로, 관련 일자리는 25만 6,957개에 달한다.(1) 게다가 2020년 파탄에 이르기 전까지 스트리밍 기술과 더불어 성장하고 있었다. 경제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해서 국립음악센터가 표방하는 “창작과 배급을 지원할 임무”가 묻히는 일이 없길 바라야 한다.

 

음악과 권력, 유착관계의 역사

평소에도 이 임무를 완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음악산업은 미학적·사회적·경제적 측면에서 여러 간극이 공존하는 산업이다. 아마추어와 프로, 보조금을 많이 지원받는 클래식 음악과 그렇지 못한 현대 음악, 녹음 음악과 현장공연, 소규모 독립 회사와 세계적 규모의 메이저 기획사, 작은 공연장과 거대한 콘서트장, 작은 축제와 대규모 콘서트, 이제 막 알려진 예술가들과 백만장자 스타들... 때로는 이익집단끼리 충돌하기도 한다. 국립음악센터가 생기기까지 무려 반세기가 걸린 이유가 이런 분열 때문이었다. 그리고 팬데믹은 이 분열을 없애는 데 한몫하고 있다. 

음악과 권력의 유착관계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과거 루이 14세는 1669년 왕립 음악 아카데미(국립 오페라의 전신)를 설립했고 왕실에서 음악가를 부르는 일도 흔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무슨 거대한 혁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국가가 1861년부터 심포니 콘서트 사업에 지원하긴 했으나 이는 조직적 지원이라기보다 소소한 도움에 불과했다. 1946년, 국립 인문학 기금과 국립 영화 센터(2)가 설립됐다. 

그리고 1959년, 샤를 드골 정권하에서 레지스탕스 작가 앙드레 말로를 초대 장관으로 하는 문화부가 신설됐다. 그러나 문화부가 국회에서 음악 분야 내 “정부 지원이 부족하다”고 인정하기까진 4년의 세월을 더 기다려야 했다. 10년 동안 레코드 산업이 발전했고 로큰롤 붐이 일었으며 피에르 불레즈 작곡가는 “과감하고 신선한 음악 문화의 희망”(3)을 구현하고자 했다. 피에르 불레즈는 문화부에 합류해 최초로 문화 서비스 분야를 이끌 것을 제의받았지만, 1966년 음렬주의(음렬이 반복될 때까지 한 번씩 순서대로 쓰는 음악 기법) 지지자였던 그는 음계법 지지자였던 다른 작곡가 마르셀 랑도우스키에게 밀려났다.

그리고 랑도우스키는 자신의 노선을 피력했다. “지금부터 더 많은 보조금을 지원하면서 창작활동, 대규모 문화 활동을 장려하고 공연의 질을 향상하는 정책을 실시할 예정이다. 국가의 통제 속에 음악이 꽃피고 새로운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다.”(4) 1967년 랑도우스키는 (국가와 시에서 공동 출자하는) 파리 오케스트라를 설립함과 동시에 지방 분권을 촉진했다. 이를 위해 지역 오케스트라와 지역 오페라 네트워크를 조직하고, 지역사회 내 음악 학교와 국립 예술학교 발전을 지원했다.(5) 

1969년에는 “현대사회의 급격한 사회·기술 변화에 적응 못하는” 음악계가 겪고 있는 “심각한 뒤처짐 현상”(6)을 해결하기 위해 ‘10개년 계획’을 세웠다. 그 후 1971년, 최초로 음악, 오페라, 춤의 통솔자가 되어 교육과 연수에 중점을 둔 음악 대중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러나 랑도우스키는 1974년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이 취임한 후 밀려나 국립음악·춤센터에서 추진한 자신의 프로젝트를 제대로 이끌 수 없게 됐다. 국립음악·춤센터는 “행정부 산하의 전문가가 직업 기금으로 운영하는 준공공 기관”(7)으로 오늘날 국립음악센터의 예고편이라 할 수 있는 기관이었다. 

랑도우스키가 앙드레 말로처럼 문화의 대중화에 관심을 둔 건 사실이지만, 이는 대중이 기존 레퍼토리의 조예 깊은 (문화유산 혹은 동시대) 작품들을 접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둔 것이었다. 대중을 열광시킨 재즈, 펑크 혹은 디스코 음악 창작이 발전하기엔 좋은 시기가 아니었다. 1981년 자크 랑 문화부 장관이 취임하고 나서야 당대 모든 음악 장르가 고려 대상이 됐다. 노래부터 현대음악 그리고 록까지 “이제 프랑스 정부는 대중이 문화유산을 접하도록 장려하기보다는 각 분야 음악 활동이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혜택을 주는 정책을 펴기로 한다.”(8)

 

잃어버린 황금기, 반토막난 음반판매액

이제 더 이상 교육만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작품 생산과 배급까지 포괄하게 된 것이다. 공연 장소 자금조달, 아마추어 연맹의 활동 지원, 국립 재즈 오케스트라 창설, 버라이어티쇼 스튜디오 설립, 파리 최초 제니트 공연장 건설, 1982년 음악 페스티벌 창시... 1981년부터 1986년까지 모리스 플뢰레가 국립음악·춤 센터장을 역임하는 동안 센터 예산은 3배가 됐고, 지역 예산은 6배로 늘었다. 음악은 가장 많은 지원을 받는 문화 분야였다. 

그러나 플뢰레 전 센터장의 말에 의하면 “이런 정책이 시행되는 가운데 여기에서 직접적인 이익을 얻은 관련 업체들은 여전히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고, 결핍돼 있었으며, 심지어 적대적인 경우도 있었다. 여하튼 음악계는 항상 분열된 상태였다.”(9) 이런 분열 상태는 1990년대까지 이어졌다. 1988년부터 CD 판매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황금기를 맞았던 음악계는 단합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음악 재생매체가 디지털화되자 이런 황금기는 빛을 잃었다. 프랑스에서 물리적 매체(CD나 레코드) 판매는 추락했다. 2002년 4억 3,200만 유로에 달했던 판매 금액은 2019년 2억 3,000만 유로로 감소했다. 콘서트와 페스티벌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음악 시장이 붕괴해가자 ‘공공기관’ 즉 국립음악센터 설립 필요성이 다시 대두되기 시작했다. 국립음악센터 설립은 음악계 분열과 역대 문화부의 망설임 때문에 번번이 좌절됐었다. 그러던 2017년, 새로운 보고서는 마침내 “국립음악센터가 디지털 혁명 시대에 새롭고 야심 찬 음악정책을 펼칠 수 있다”(10)는 결론을 내렸다. 

2019년 문화부 장관 프랑크 리에스테르의 승인을 받아 설립된 국립음악센터는 맨땅에서 솟아난 기관이 아니다. 국립음악센터는 ‘국립 노래·버라이어티쇼·재즈 센터’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센터는 1986년 공연 제작사들이 설립한 단체로 2002년에 문화부 산하의 ‘산업 및 상업적 공공기관’이 됐다. 이 기관의 역할은 표 판매액에서 3.5% 세금을 징수해 음악 공연의 창작과 수익을 촉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원금을 재분배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음악 공연은 ‘코미디’와 서커스까지 포함했다. 

국립음악센터는 그 활동 범위를 ‘난해한’ 음악뿐 아니라 녹음 음악까지 확장하고 있다. 11월 1일부터 국립음악센터는 민간단체 중 그 지원과 자문 역할이 보존할 만하다고 여기는 단체들도 흡수했다. 창작, 배급, 교육을 지원했던 ‘음악창작기금’, ‘프랑스 독립 상표와 음반상인 활동 클럽’, ‘현대 음악을 위한 정보자료센터’, 외국에서 홍보 활동을 할 아티스트를 선정해 기획사 혹은 제작사와 함께 일하는 ‘수출 사무소’가 국립음악센터에 통합됐다.

 

과연, 위기 속에서 빛을 발할까?

세금, 정부 등등으로부터 국립음악센터가 받는 액수는 5,000만 유로다. (국립영화센터 예산이 7억 유로에 달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일반적인 시각에서도 부족한 액수지만 그 야심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는 금액이다. 국립음악센터는 창작활동 중인 음악가, 이제 막 떠오르는 아티스트, 소위 돈 안 되는 음악을 하는 예술음악가를 지원하고 지방 분권을 위한 조직을 만들고 남녀 차별을 타파하고 새로운 기술에도 투자하고자 한다. 

이 ‘전체 총괄자’는 음악계 조직을 정비해 하나 되게 만드는 것을 넘어선, 더 큰 목표를 지향한다. 음악계가 하나로 뭉친 것은 방어적 문화정책을 펼치기 위함이다. 그래서 국립음악센터 사이트에도 명시돼 있는 “모든 미학 안에서의 음악”이라는 원칙을 천명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시장 논리를 상쇄시킬 수 있어야 한다. 

2020년 6월 중순, 음악계는 올해 손해액이 벌써 45억 유로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특히 현장공연 취소(83% 적자) 때문에 피해가 컸다. 정부 지원금은 늘어났다. 11월 초, 국립음악센터는 비상 대책을 세우기 위한 1억 3,740만 유로의 추가예산을 받았다. 다른 분야에서처럼 음악 분야에서 이 액수가 충분할지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지금은 조직과 아티스트에게 닥친 생존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지만, 미래를 준비하는 문제 역시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국립음악센터장에 장필리프 티에라이를 임명했다. 프랑스 국립행정학교(ENA, École Nationale d'Administration) 출신의 관료이자 테라 노바의 창립 멤버로 오랫동안 정부 내각에서 다양한 직책을 맡았던 인물이다. 르아브르 국립 연극단 이사이자 파리 오페라 부단장이기도 하다. 현대 음악의 위상을 고려해 놀랄만한 경력의 사람을 임명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모든 것이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국립음악센터는 아티스트를 선별하는 기관이 될 것인가? 

혹은 국립음악센터 설립을 위한 법안 소개 보고서(2019년 4월)가 명시한 임무에 따르는 기관이 될 것인가? 보고서에는 경제적 “위험 감수”가 “음악을 위한 공공정책을 실시하는 이유”라고 명시돼 있다. 국립음악센터가 공공 이익을 희생시키면서 음악산업에 따르는 조직이라는 비판이 벌써 나오고 있다.(11) 티에라이 센터장은 “지금의 코로나 위기에서 국립음악센터의 존재가 더 빛을 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말에 그치지 말고, 결과로 보여줘야 한다. 

 

 

글·에리크 델아예 Éric Delhay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이정민 minuit15@naver.com
번역위원


(1) ‘L’économie mosaïque. Troisième panorama des industries culturelles et créatives en France 모자이크 경제. 프랑스 문화 창조 산업의 세 번째 파노라마’, <France Créative>, EY, Paris, 2019.11.
(2) 각각 국립 도서센터(le Centre national du livre, 1993년)와 국립 영화·만화센터(le Centre national du cinéma et de l’image animée, 2009년)가 됐다. 
(3) Christian Merlin, 『Pierre Boulez 피에르 불레즈』 중 ‘Lettre de Pierre Boulez à André Malraux, 20 novembre 1965(1965년 11월 20일 피에르 불레즈가 앙드레 말로에게 쓴 편지)’, Fayard, Paris, 2019.
(4) 1967년 3월 14일에 콘서트 위원회 앞에서 한 발표 내용. 
(5) Guy Saez, 『La Musique au cœur de l’État. Regards sur l’action publique de Marcel Landowski 정부 안에서의 음악. 마르셀 랑도우스키의 공공정책 시각』, La Documentation française, Paris, 2016.
(6) 『Notes d’information du ministère de la culture, n° 7 문화부 정보 문서, 7권』, Paris, 1970년 1분기.
(7) Marcel Landowski, 『Batailles pour la musique 음악을 위한 싸움』, Seuil, Paris, 1979.
(8) Philippe Teillet, 『Vibrations. Musiques, médias, société 전율. 음악, 미디어, 사회』 중 ‘Rock : de l’histoire au mythe 록: 역사에서 신화까지’에서 ‘Une politique culturelle du rock ? 록의 문화정책은?’, Toulouse, 1991.
(9) Anne Veitl, Noémi Duchemin, 『Maurice Fleuret : une politique démocratique de la musique 모리스 플뢰레: 음악의 민주 정치』, Comité d’histoire, La Documentation française, 2000.
(10) Roch-Olivier Maistre, 『Rassembler la musique. Pour un centre national 음악의 결집. 국립센터를 위해』, 문화부 보고서, Paris, 2017.10.
(11) Jean-Michel Lucas, ‘Le rapport sur le Centre national de la musique ne fait que vendre la République au plus offrant 국립음악센터 보고서는 프랑스를 경매에 부치자는 소리에 불과하다’, <Profession spectacle>, 2019년 3월 13일, www.profession-spectacl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