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과 아마존에 의존한 ‘도시탈출’의 비현실성
대도시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전원주택에서 정원을 가꾸는 삶... 보건위기로 아픈 교훈을 얻은, 많은 도시인의 마음을 흔드는 생각이다. 하지만 환상과 현실은 다른 법이다. ‘시골의 반격’이란 무엇인가?
요즘 파리 지하철에서 빠지지 않는 문구들이 있다. “알레스, 숨쉬기 편한 수도”, “솔로뉴, 신선한 공기”, “센에마른, 진정한 승부처”… 지난 5월부터 지하철역 통로와 승강장에 등장해 승객들의 생활방식 변화를 부추기는 광고들로, 특히 라데팡스 업무지구로 운행하는 1호선역에 집중돼있다. 1년 전만 해도 파리는 기업본사, 대규모 행사, 고학력 전문 사무직(화이트칼라)을 유치하기 위해 런던, 뉴욕 또는 싱가포르 같은 세계적인 대도시들과 경쟁했다. 그런데 이제 국내 소도시들이 파리의 지하철에서 도시의 고위간부들을 몰래 가로채고 있다.
코로나19의 여파다. 봉쇄와 ‘확산억제 조치’로 인해 대도시의 매력은 빛을 잃었다. 식당, 카페, 콘서트, 박물관, 영세상점, 대규모 축제, 강한 사회적 유대관계, 비행기와 기차를 갈아타며 쉽게 떠나는 여행은 팬데믹 이후 대도시의 삶을 지하철(자전거)-회사-집의 끝없는 반복으로 축소했고 언제 이 지루한 삶의 방식이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코로나로 시작된 전원생활의 꿈
그러자 어떤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도시생활의 즐거움을 금지한다면 굳이 터무니없이 비싸고 비좁은 아파트에 다닥다닥 모여 살 필요가 있는가? 소도시나 시골에서 정원이 딸린 넓은 집에서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이 생각들을 실행할 가능성이,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장인과 전문직 프리랜서들에게 열렸다. 온라인 거래도 활발해져,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도 도시처럼 생활하는 것이 가능해 졌다.
많은 프랑스인이 올 봄 1차 봉쇄 때 이런 삶을 시도했다. 봉쇄조치 발표 직후 파리, 리옹, 릴 같은 대도시에서는 별장이나 고향집으로 떠나는 사람들로 도로와 기차역이 북새통을 이뤘다. 무려 45만 1,000명의 파리 시민이 3~4월 수도를 떠났다고 한다. 이는 파리 인구의 1/4에 해당하며 전년 동일기간 대비 4배에 달하는 수치다.(1) 전 세계의 대도시 대부분에서 동일한 현상이 벌어졌다. 뉴욕 맨해튼의 일부 부유촌의 경우 인구가 40% 이상 감소했다.(2)
<파이낸셜 타임스>는 런던을 ‘버려진 도시’로 묘사하며, “모든 요일이 일요일 같다”라고 묘사했다. “은행가들이 사라진 자리에 다른 유니폼을 입은 새로운 종족들이 나타났다. 무릎을 덧댄 검은 바지를 입고 먼지투성이 부츠를 신은 건설노동자들, 형광색 조끼를 걸치고 적막한 건물 입구 앞에서 서성거리는 경비원들, 라이크라 소재 운동복을 입고 텅 빈 거리에서 조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청년들이다.”(3)
“빨리 그리고 멀리 도망가, 천천히 돌아와라.” 기원전 5세기에 히포크라테스가 이미 전염병 대책을 설파했다. 그 후 도망갈 여력이 있는 사람들은 주저하지 않았다. 아비뇽에 흑사병이 창궐하자(1347~1348) 교황청은 짐을 싸서 피신했다. 19세기 파리에 콜레라가 퍼졌을 때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파리를 떠났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시골로 도망간 도시인들은 안전한 피난처 이상을 원했다. 봉쇄기간을 더 쾌적한 생활환경 속에서 보내고 싶어 했다.
언론은 심신의 안정, 맑은 공기, 자연, 가족과 함께하는 아침식사가 주는 기쁨을 새롭게 발견하고 봉쇄를 휴가처럼 즐기는 이 행복한 유배자들에 주목했다. 대도시의 압도적인 지배가 끝나고 ‘시골’ 또는 ‘중도시’, ‘변두리 프랑스(France périphérique 지리학자 크리스토프 길뤼가 2014년 동명의 저서를 발표한 후 자주 사용되는 표현으로 대도시의 영향권 밖에 있는 프랑스 국토를 지칭-역주)’의 ‘반격’이 시작됐다는 결론을 내리기 충분했다. 브리스 쿠튀리에는 4월 1일 <프랑스 퀼튀르(France Culture)>의 라디오 방송에서 “일종의 역방향 이농 현상”이 발생해 “시골 공동화 현상으로 무너진 프랑스의 지리학적 균형이 회복될 것”으로 예상했다.
일간지 <르피가로>(4월 10일)는 “시골생활에 대한 도시인의 욕구가 더 강해지고 재택근무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경제학자 올리비에 바보(Olivier Babeau)는 ”주택시장의 균형에 큰 변화“를 예상하며 ”가격, 공기, 심신의 안정 그리고 특히 귀중해진 여유로운 공간 등 시골만이 가진 많은 장점” 덕분에 농촌지역이 부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4)
봉쇄해제 후 사람들은 알리스와 페르디낭에 대한 방송에 관심을 잃었다. 이 두 희극배우는 같이 살던 파리의 아파트를 노르망디에 있는 주택과 맞바꿨다(<France 3>, 11월 9일). ‘집단지성 애니메이션’ 전문가인 셀린 역시 파리를 떠나 솔로뉴의 “숲속에 숨겨진 평화의 안식처”에서 재택근무를 하거나 비에르종의 공유오피스에서 일하는 덕분에 “도자기를 빚고 사진을 찍을” 시간이 생겼다(<르몽드>, 7월 24일). 요가 강사인 클레르는 봉쇄 동안 샤랑트에 있는 별장에서 지내며 행복을 찾았으며 별장을 떠나기 싫다고 말했다(<마리클레르>, 11월 11일).
샤를과 마갈리는 도시로 돌아갔지만 견디지 못하고 루아레주로 완전히 이주했다(<르피가로 매거진>, 10월 23일). ‘이중 거주지’를 선택한 이들도 있다. 얀은 니에브르의 주택에서 자연을 즐기며 살고 있지만, 통학을 해야 하는 자녀들과 업무적인 만남을 위해 파리에도 임시 거처를 남겨 놓았다(<르파리지앵>, 10월 23일). 미국과 영국의 언론도 똑같은 기사들을 찍어내고 있다. 그들의 기사에서는 허드슨강 골짜기나 켄트주로 이주를 꿈꾸는 캐틀린이나 앤드루로 주인공만 바뀔 뿐이다.
몇 달 전부터 프랑스의 사회지리학적 표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팬데믹 발생 전 기자들은 ‘지방’과 ‘시골’에 대해 보도할 때 주로 비참함을 연상시키는 표현들을 사용했다. ‘노란 조끼’ 시위대, 범국민 궐기대회 투표, 일자리 고갈, 영세상점 폐업, 기차역 폐쇄, 휘발유 가격, 단조로움, 공공 서비스 부재, 대중 교통수단 결핍 등이었다.
전원생활, 환상과 현실 사이
하지만 이 모든 문제들은 이제 언론보도에서 자취를 감췄다. 대도시에서 벗어난 곳이라면 어디든지 정원이 딸린 목가적인 저택으로 여겨질 정도다. 1년 전만 해도 창의성, 혁신, 지성을 대변하던 대도시는 이제 지방과 시골의 매력을 강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같은 역전은, 그동안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지 못하고, 지배계층의 관점에서만 나라를 바라본 결과다.
샤를과 마갈리는 만족스럽게 생활했지만, 소도시나 시골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봉쇄가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많은 주민들은 계속 출근해야 했으며, 농부들은 수확을 할 일꾼을 구하지 못했다. 노인들은 더 고립된 상황에 처했고, 이미 힘겹게 버티던 많은 영세상점들이 결국 문을 닫았다. (파리의 병원과는 달리) 시골의 의료장비가 턱없이 부족한 병원의 혼잡은 말할 필요도 없다.(5) 이런 상황은 넓은 정원으로도 위로를 받지 못한다.
도시를 탈출하는 이들은 아무 ‘시골’이나 ‘변두리 프랑스’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매력적이고 발전된 일부 시골로 몰린다. 이런 지역들은 주로 별장과 휴가지가 몰려있는 프랑스 남·서부 시골이나 대도시 인근이다. 사실 모든 농촌지역, 모든 시골 마을이 대도시를 상대로 반격에 나설 필요를 느끼는 것은 아니다.
페르슈, 브르타뉴, 도르도뉴, 랑드, 보클뤼즈, 벡생, 캬티네처럼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이전부터 역동적인 인구 동태와 번창하는 부동산 시장을 보유하고 대도시 부럽지 않은 삶을 영위하던 곳들도 있다. 흔히 동질적인 지역으로 묘사되는 ‘변두리 프랑스’에는 실상 큰 격차가 존재한다. 전문직 도시인들의 도시탈출은 이 격차를 더 키울 뿐이다. 파리나 리옹 시민 중 벨포르나 메스처럼 깊숙한 내륙지방으로 떠날 이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게다가 부유한 도시인들이 시골로 갔을 때, 그 결과가 항상 좋지만은 않다. 물론 주민 수가 증가하면 상점과 수공업자의 손님이 많아지고, 지방세수가 증가하고, 일자리 창출 가능성도 높아진다. 하지만 새로운 이주민은 온라인 상점이 아닌 동네 상점을 이용하고, 시골에서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도시의 관습을 시골까지 가져와서 시골을 도시 생활방식의 연장이나 장식품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현지에 동화된 삶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지리학자 그레타 토마시가 도르도뉴의 예를 통해 보여줬듯, 이는 어려운 일이다.(6) 원주민과 이주민은 섞이기 어렵고, 같은 장소를 이용하지 않으며 같은 사교 집단에 속하지도 않는다. 또한 부유한 인구의 유입은 지방의 부동산 가격을 대도시의 임금에 연동시켜 일부 원주민들, 특히 청년들의 삶터를 빼앗는 ‘지방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낙후된 지역이 활성화된 이후 임대료 인상 등의 부작용이 발생되는 현상)’을 유발한다. 많은 이들이 예언한 도시탈출이 실제로 벌어진 것은 아니다. 지난 25년간 4배로 뛴 파리의 부동산 가격(7)은 3월 이후 제자리다.
그러나, 파리 인근 부동산은 폭등하고 있다. 최소형주택도 며칠 만에 거래가 완료된다. 생활정보지 사이트에서 대도시 인근 주택 검색횟수가 지금처럼 높았던 적이 없다. 여론조사 결과도 만장일치다. 대도시인은 정원과 소도시를 꿈꾼다. 하지만 실질적인 거주에 있어서는 아직 이상과 현실의 격차가 크다. 도시탈출의 욕구와 노동시장, 서비스 이용 가능성, 가족과 친구와의 근접성, 좋은 학군, 부동산 가격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합의점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상이 항상 현실이 되지는 못하는 이유다.
도시확대인가, 자연으로의 회귀인가?
도시인들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갑자기 녹음을 꿈꾸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1945년 프랑스 국립인구연구소(INED)가 최초로 희망 주거지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을 때 이미 56%의 파리 시민(또한 72%의 프랑스 국민)이 “정원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라고 답했다. 조사를 실시한 연구원들은 “프랑스 국민 대부분은 소규모 사유지를 원하고 정원을 가꾸며 살기를 원한다. 도시에서 벗어나 꽃과 채소가 자라는 화단으로 둘러싸인 자기만의 집을 갖고 싶어 한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실시된 모든 조사의 결론도 같았다. 프랑스 국민 10명 중 7~8명은 작은 개인주택을 이상적인 주거형태로 꼽았다. 교외 소규모 주택 단지의 문어발식 개발을 장려한 미국 당국과는 달리 프랑스의 정책 결정자들은 오랫동안 이런 주거형태에 대한 국민의 욕구를 외면했다. INED 조사들의 결론에도 불구하고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는 공동주거형태와 대규모 주택 단지 개발을 우선시했다. 나라를 재건하고 증가하는 인구를 흡수하기 위해서는(8) 단기간에 많은 집을 지어야 했다.
1,2차 세계대전 사이 프랑스는 비시정권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소규모 주택 단지 개념을 열렬히 지지했다. 하지만 이 시도가 ‘불량 토지 분양’이라는 완전한 실패로 끝난 사실을 모두가 기억하고 있다. 당시 부패한 부동산 개발자들은 들판이나 진흙탕 한가운데 위치한 대지를 분할분양한 뒤 택지조성도 하지 않은 채 초라한 집들을 세워 올렸다. 수십만 명에 달하는 ‘불량토지 분양자’들의 소형주택에 대한 꿈은 악몽으로 변했고 이들의 피해를 복구하는데 20년 가까이 걸렸다.
이런 경험 때문에 프랑스 당국은 오랫동안 공동주거형태를 선호했고 1970년대가 돼서야 소규모 주택단지 개발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농촌지역에 소형주택이 지속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했다. 7~10년마다 한 주(州)에 해당하는 면적이 콘크리트로 포장되고 있으며, 이 중 절반에 소형주택이 세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당국이 깨닫기까지 50년이 걸렸다.
그래도 20년 전부터는 정부가 도시확산 방지를 최우선 목표로 설정했으며 2000년 12월 연대와 도시쇄신에 관한 법률(SRU), 2010년 7월 환경에 대한 국가적 지원에 대한 법률(2차 그르넬(Grenelle)법으로 불림), 2014년 3월 주거 접근성과 새로운 도시계획을 위한 법률(ALUR) 같은 관련법을 제정했다. 도시 외곽 지역, 특히 대도시의 원거리 교외지역(grande couronne)의 ‘밀집화’ 필요성은 모든 도시계획 학술토론회에서 논의되는 주제다.
따라서 도시탈출 열망을 반기는 쥘리앙 드노르망디 현 주거부 장관의 발언은 놀랍지 않다. 드노르망디 장관은 5월 14일 “사람들이 국토정비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부동산 시장의 시각에서 봤을 때 지방은 위기 시 지금과 같은 매력이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방을 다시 찾기 시작한 이후 지방에 대한 강한 욕구가 일고 있다”라고 지적하며(9) 말을 이어갔다. “재택근무가 기여한 바가 크다. 이제 새로운 사회모델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화이트칼라가 대거 대도시를 떠나 페르슈나 벡생에서 재택근무를 한다는 이 ‘사회모델’은 특히 자동차와 줌(Zoom), 아마존(Amazon) 같은 거대 온라인 기업에 대한 의존성을 높여 심각한 도시확대 현상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을 진정 ‘자연으로의 회귀’라 할 수 있을까?
글·브누아 브레빌 Benoît Brévill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Population présente sur le territoire avant et après le début du confinement : résultats consolidés 봉쇄 전·후의 국토인구: 결과의 확인’, 프랑스 국립통계경제연구소(INSEE), 2020.5.18. www.insee.fr
(2) Kevin Quealy, ‘The richest neighborhoods emptied out most as coronavirus hit New York City’, <The New York Times>, 2020.5.15.
(3) Ben Hall & Daniel Thomas, ‘Everyday is like Sunday in a desert City of London’, <Financial Times>, London, 2020.3.27.
(4) Olivier Babeau, ‘Le coronavirus prépare-t-il la revanche des campagnes? 코로나 바이러스가 시골 반격을 준비하는가?’, <FigaroVox>, 2020.3.24. www.lefigaro.fr
(5) Salomé Berlioux, 『Nos campagnes suspendues. La France périphérique face à la crise 멈춰선 시골. 위기 속의 변두리 프랑스』, Éditions de l’Observatoire, Paris, 2020.
(6) Greta Tommasi, ‘La gentrification rurale, un regard critique sur les évolutions des campagnes françaises 지방의 젠트리피케이션, 프랑스 시골의 변화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 <GéoConfluences>, 2018.4.27. http://geoconfluences.ens-lyon.fr
(7) 1m2당 가격이 1995년 1만 7,000프랑(약 2,500유로)에서 2020년 1만 500유로로 상승
(8) 1946~1961년 프랑스 인구는 1870~1946년 대비 2배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9) ‘Julien Denormandie : “Je veux revitaliser les villes moyennes !” 쥘리앙 드노르망디 : “나는 중도시의 활성화를 원한다“’, ‘L’Immo en clair 알기쉬운 부동산‘, <SeLoger> - <Radio Immo> - <Le Parisien>, 2020.5.14.
도시 발전의 요소
텅 빈 박물관 전시실을 활보하고, 혼잡한 출퇴근 시간에 사람들에 치이지 않고 지하철을 타고, 차가 줄어든 도로에서 자전거를 탄다. 코로나19는 도시의 숨통을 틔워 ‘포화상태에서 벗어난 대도시의 삶’이라는 드문 경험을 도시 거주자들에게 선사한다. 모든 상황이 불쾌하기만 한 경험은 아니다. 사람들은 오늘날 대도시가 집단 인구유출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한다. 사실 대도시 인구는 보건위기 전부터 감소하기 시작했다. 파리 인구는 2011년부터 매년 약 1만 명 감소했다. 지난 10년간 총인구의 약 5%가 감소한 셈이다. 뉴욕도 2016년부터 인구가 감소했다. 런던의 경우 이주민 유입으로 겨우 인구를 유지하는 상황이다. 대도시의 인구이탈은 업무용 부동산 개발과 단기임대의 성행 때문에 주거용 부동산 수가 감소한 탓이다. 하지만 단순히 스트레스, 소음, 오염이 덜한 생활환경과 더 넓은 집을 찾아 자발적으로 도시를 떠나는 사람도 있다. 물론 대도시는 여전히 부의 대부분을 끌어모으고, 많은 유학생, 젊은 경제활동자, 외국인 노동자를 유치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중 다수는 다른 선택이 없을 뿐이다. 일자리와 대학이 대도시에 있기 때문이다. 도시는 종종 전염병을 계기로 지속가능한 개선에 착수했다. 13세기 흑사병이 창궐하자 수도원에 있던 병원들이 도심으로 이전했다. 도시 당국은 길동물들을 포획하고, 시장을 체계적으로 청소하고, 의사도 고용했다.(1) 19세기 유럽과 미주에서 유행한 결핵과 콜레라는 위생개선 운동의 발판이 됐으며 낡고, 어둡고, 좁고, 인구가 밀집되고, 습하고, 악취를 풍기는 비위생적인 도시에 종지부를 찍고 싶은 욕구를 자극했다.(2) 기술자들은 하수를 통한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하수도와 연결된 수세식 장치를 발명했다. 국토개발 담당자들은 공기가 잘 통하고 빛이 잘 들도록 큰길을 내고 공원과 정원을 지어 도시에 자연을 들여왔다. 오염 활동은 도시에서 멀어졌다.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의 도시는 어떨까?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많은 계획을 구상 중이다. 얼마 전 시작된 ‘도시 디자인 의견수렴 사업’도 그중 하나다. 이 사업의 최종목표는 ‘파리의 새로운 미학을 위한 선언문’ 발표다. ‘온라인 아이디어 제안함’도 1월 중 개설 예정으로 미래의 신문 가판대와 버스 정류장에 대해 원하는 모두가 의견을 제안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글·브누아 브레빌 Benoît Bréville 번역·김은희 (1) Cécile Peltier, ‘Peste, choléra, tuberculose... Les épidémies ont modelé nos villes 흑사병, 콜레라, 결핵... 전염병이 우리의 도시를 만들었다’, <르몽드>, 202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