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한 조국 현실에 대한 사상적 고백

루이 나폴레옹 독재 통렬 비판…'무지한 대중'에 절망하기도

2008-12-30     에드와르 카스트레통 | 역사학자

▲ 1851년 12월 4일
 '파리는 강도에 묶여 칼맞고 성폭행 당하는 여인의 처지'
 "새벽 5시 반에 일어났다. 참을 수 없는 심장의 박동과 함께 고열과 진통으로 밤잠을 설쳤다. 끔찍한 위기다. 한 비열한 모험가가 민중의 환상을 등에 업고 공화국의 운명을 책임지는 자리에 선출되었다. 그는 국론 분열을 이용하여 헌법을 유린하고 법 효력을 정지하며 국회의원들을 내쫓고 감금한다. 이에 저항하며 국민의 가장 신성한 의무를 다하는 시민을 살해한다. 그는 우리의 목에 칼을 대고 독재를 요구한다. 현재 파리는 강도에 의해 묶여 칼을 맞고 성폭행을 당하는 여인의 처지가 되었다. 만약 내가 자유의 몸이라면 충성스러운 시민들과 함께 공화국의 폐허 밑에 깔려 죽음을 맞거나 자유의 이름이 아까운 이 조국 멀리 망명을 떠날 것이다."
 
▲ 1851년 12월 9일
 '국민을 국가운명 심판자로 여기는 건 바보나 사기꾼이 할 짓'
 "나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온갖 종류의 두려움과 슬픔이 나를 엄습한다. 과학과 철학의 발전은 유럽 엘리트 식자층에게 엄청난 의식의 각성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대중은 중세 시대에 비해 별반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성, 이익, 국가적 숭고함, 그리고 자유에 대한 사랑을 통해 이들을 인도할 것이라고 믿어왔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농민의 3분의 2가 자신의 대표자보다 마을 성직자들의 말을 더 믿는다. 어떠한 합리적 사고도 나폴레옹 황제에 대한 이들의 환상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국민은 자기편과 자신의 해방자 모두를 집어 삼키는 괴물이다. 우리가 믿어온 것과는 달리 혁명적 민중은 없었으며, 민중을 열광시켜 공익의 사상을 구현시킬 수 있다고 믿는 엘리트만 존재한다. 이제 국민을 국가운명의 최고 심판자로 여기는 일은 바보나 사기꾼이 할 짓이 되었다."
 
▲ 1851년 12월 15일
 '건전한 사상과 양심은 총칼 앞에 사라져 갔다'
 "프랑스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루이 보나파르트는 제수이트의 대표이며 교회의 앞잡이이며 하느님의 종의 매우 비천한 종일 따름이다. 상업주의로 썩은 비열한 국가, 멍청한 왕당파와 용감한 척 하는 자코뱅 급진파, 공공정신과 담을 쌓고 물욕에 가득 찬 이기주의적 부르주아 계급, 항상 흥분에 굶주려 모든 형태의 매춘을 할 준비가 되어있는 프롤레타리아 계급, 위선적이고 허위 맹세를 일삼는 지식인 계급, 지난 20년간 아프리카 전쟁터에서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살인을 일삼는 것만 배운 무자비한 군대. 오! 이들 전부는 하느님과 인류에게 누를 끼친다. 1848년 6월과 12월, 1849년 6월, 1850년 5월, 1851년 12월에 발생한 모든 비열한 행동과 폭력은 이 죄악이 얼마나 끔찍하다는 것이지 보여준다. 건전한 사상과 양심으로 이 나라를 생존하게 하였던 엘리트는 추방되고 총칼 앞에 사라져갔다. 이제는 재만 남았으니..."
 
▲ 1851년 12월 21일
 '명예, 진실, 평등, 자유, 인간성 고취가 바로 하나님이고 조국'
 "루이-필립의 부패가 그 결실을 맺는다. 종양에 걸려 백치가 되어버린 이 나라는 더 이상 수치심도 미래에 대한 안목도 없다. 국민은 머리를 숙인 채 절대주의에 빠진다. 조국에 대한 숭배! 이는 카톨릭과 법원에 대한 숭배와 함께 인간의 가슴에서 도려내야 할 구역질나는 미신일 따름이다. 명예, 진실, 평등, 자유, 인간성의 고취가 바로 하느님이고 조국이다. 이것이 없이 막연히 추앙되는 동포, 신앙공동체, 동지들은 사납고 악한 짐승에 불과하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조국, 종교, 등 모든 이러한 낱말은 양심을 거슬리고 진리를 외면하는 거짓에 불과한 것이다."
 
▲ 1852년 1월 11일
 '대중은 자신들의 자유를 확대해줄 자들에 반대표 던져'
 "국가적으로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하려 할 때 천만 명의 시민에게 의사를 묻는다. 특히 과거 모든 권력이 저질러 놓은 온갖 불의에 대한 종식을 위해 국민투표라는 중요한 정치적 시도를 감행한다. 그러나 대중은 이러한 정치적 의도를 농락한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자신들의 자유를 확대해줄 자들에 반대표를 던진다. 오직 설득과 자유를 사용하는 선지자에 대한 보답으로 대중적 폭력과 핍박과 모독을 받는 그의 명예는 이렇게 실추되어야만 하는가? 프랑스 민중은 정치적 자유를 누릴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선언한다. 이들은 자신의 노예상태와 비천함으로 회귀한다. 이들은 자신들을 해방시킬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을 공공의 적으로 선포한다! 민중에 대한 호감은 우리의 모든 희망과 미래였다. 우리는 현재의 민중을 위해서가 아니라 민중의 발전이 우리나라에 가져다 줄 수 있는 영광과 인류애를 위해 싸울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이는 인간의 형상을 지닌 살아있는 존재들이다. 권리, 도덕, 이성을 준수하는 흉내를 낼 수 있을 뿐, 회초리에는 온순하고 은혜를 망각하며 스스로 말하기 보다는 남이 대신 말해주길 원한다. 이들은 아직 완전한 인간이 아니다."
 
▲ 1852년 3월1일
 '공화국을 죽인 것은 바로 보통·직접선거'
 "사회를 위해 계몽하고 교육하고 지도하여야 할 자들을 최고의 심판자 및 입법자로 대하고,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대중에게 지능과 권위를 부여하는 가설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말해야겠다. 이는 나라에서 가장 빈곤한 다수 집단, 따라서 가장 후진적이고, 무식하고, 사악하며 가장 말썽 사나운 집단을 모든 미덕과 이성, 그리고 선함을 보유한 집단으로 간주하는 것이기도 하다. 공화국을 죽인 것은 바로 보통·직접선거였다. 자신의 대표자를 유기하고 배반한 대중이 새로 주인을 만들었다. 인민이 자유를 적대시하고 독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은 증명되었다. 모든 독재의 공통점은 단 하나의 정책만 구사한다는 점이다. 중산층, 소위 부르주아 계급을 파괴하고 무식하고 천민적인 계급, 그 위에 귀족과 성직자 계급만 남겨놓는다. 이것이 1852년 제수이트가 꾸민 계획이며 루이 보나파르트가 집행하는 음모이다."
 
▲ 1853년 5월 15일
 '우리가 필요한 것은 영혼이다'
 "모든 면에서 볼 때, 19세기의 작품은 1789년 대혁명의 작품보다 더욱 위대할 것이다. 부르주아여 당신의 산업 작품을 완성시키도록 서둘지어다. 당신은 투기 수익과 배당금, 어음 할인과 근저당만으로 오래 살 것이라고 믿는가? 당신이 그토록 멋지다고 해도 인간의 사상이 이 모든 돈벌이로 만족할 수 있다고 믿는가? 많은 광산회사, 운하회사, 철도, 은행, 보험, 교통, 할인 보상금을 갖고 있다고 우리는 만족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안정된 직장과 낮은 물가에만 만족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은 물질이며 영혼이 없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영혼이다. 자! 당신의 영혼을 들여다보아라!"
 
▲ 1853년 6월 22일
 '혁명 프랑스는 사회주의를 배척하고, 그 사회주의는 외국으로 떠나버렸다'
 "지난 60년 동안 우리는 줄곧 프랑스가 진리와 상식에 눈을 뜨도록 요구하였다. 프랑스는 1789년에 1년 동안의 자유만을 누리고 금방 노예상태로 되돌아 왔다. 프랑스가 자신의 자유를 저주하면서 노예상태를 흠모하였을 때 혁명은 유럽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정당은 얼마나 허약하고 무식하고 무능하고 유토피아만 쫓았던가! 프랑스는 사회주의, 생-시몽, 푸리에르, 공산주의, 꽁트, 카베, 르루, 블랑, 그리고 나를 만들었다. 그러나 소위 혁명 프랑스는 사회주의를 배척하고 그 사회주의는 외국으로 떠나버렸다. 사회주의는 이탈리아, 독일, 슬라브 지역에 전파되었으며 헝가리, 다뉴브 강변, 모스크바, 흑해 연안에서도 연구되었다! 1799년에서 1830년에 이르기까지 사회주의를 배격한 곳은 프랑스 밖에 없다. 물론 생-시몽 학파를 통해 사회주의는 프랑스에 존재한다. 마치 부르봉가의 통치하에서도 인권헌장과 법조문에 혁명은 존재하듯이... 우리는 이를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30년 후에나 사회주의가 될 것이다!  2세대, 3세대 후에나 말이다!"

▲ 1854년 4월 2일
 '법은 무신론적이고 무정부적이다'
 "12월 2일 쿠데타는 프랑스에서 결정적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것은 대중의 무관심의 두 번째 단계에 해당된다. 1814년 이후, 프랑스는 종교에 관해서 무관심하게 되었다. 이전의 왕정 복고, 그리고 오늘날 제정시대에 권력이 기독교라는 시체에 전기 충격을 주어도 헛된 일이었다. 이제 일련의 정치적 시험(65년 동안 14회의 정권교체)을 거쳐 프랑스는 과거 종교적 무관심에 도달한 것처럼, 정치적, 혹은 왕조적 무관심에 도달하였다. 프랑스에서는 정부 형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정부는 하위범주에 속할 뿐, 중요한 것은 무질서한 개인의 물질적 이해관계이다. '법은 무신론적이고 무정부적이다' 이것이 1852년 이래 진정한 프랑스의 모습이다."
 
▲ 1858년 7월9일
 '포식자들, 즉 부르주아에겐 착취와 노예가 필요할 따름이다'
 "프랑스는 모든 면에서 궁지에 몰려있다. 대외 관계에서 프랑스의 고립은 더욱 악화되었다. 영국, 오스트리아, 프러시아, 독일, 벨기에, 스위스 그리고 피에몽, 심지어 교황청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우리에게 적대적이다! 이제 러시아와의 의심스럽고 매우 위험하기까지 한 동맹만 남게 되었다. 내부적으로 금융, 무역, 산업, 농업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더 이상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인기가 추락한 정부, 관심 밖의 부르주아 계층, 증오와 경멸의 대상이 된 서민 계층, 무기력한 정당. 우리는 소용돌이 속에 빨려 들어간다. 사람들은 오를레앙주의의 복귀(왕정복고)에 대해 말한다. 누가 이러한 현상을 만들었을까? 부르주아 프랑스의 부패, 욕심의 과잉, 법보다는 권력, 마키아밸리즘, 정열, 그리고 정권의 이익에만 기대었던 모든 정부의 실책. 불쌍한 부르주아 계급! 마치 수도사가 금식을 하면서 굶어 죽듯이 탐욕의 포로가 된 부르주아는 자신의 무덤을 팠다. 부르주아는 돈과 명예 모두를 잃었다. 원래 이들에게는 아름다운 임무를 지니고 사회 전체에 이바지하는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층 계급에게 모범을 보여주는 것. 노동자와 농민에게 교육 모델을 보여주는 것. 이들을 과학의 세계, 정치와 사회 생활에 입문하도록 돕는 것. 하층민 출신의 아름답고 정직한 남자 아이, 남편을 섬기고 아름답고 현명한 여자 아이를 자신의 계급으로 선택하는 것. 오랜 야만을 종식하는 것. 우리의 명예를 더럽히는 녹을 제거하는 것. 그러나 절대 아니다. 이 포식자들에게는 착취와 노예가 필요할 따름이다. 오! 이들은 처벌과 몰수가 제 격이다. 1852년에는 마치 마법처럼 부를 창출하고 부르주아에게 금으로 치장한 교량을 선물하고 모든 투기 종목에서 돈을 벌게 하고 자본을 배가시켰던 이 정부를 모두 칭송하였다. 이제 어리석은 자들은 슬퍼한다. 이들은 비난하고 황제에 분개한다. 황제는 이들의 요구에 너무 잘 따랐을 뿐인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