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지 않은’ 뉴 노멀의 도래

2021-01-29     로랑 코르도니에 l 경제학자

코로나가 휩쓸고 지나간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보건위기 극복을 위한 각종 정책들은,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우려해왔던 ‘불확실성, 불안정성, 탐욕주의, 유리된 인간관계’ 같은 기존 추세에 불을 붙였다. 궁극적으로 디지털 자본주의로의 전환을 주도하는 주체는, 다름 아닌 ‘국가’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1차 확산에 따른 봉쇄조치로 전 세계 인구 절반이 고립상태에 놓였던 2020년 1~6월,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그동안 결단이 부족해서, 혹은 결단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해 억눌렸던 사람들의 열망이 곳곳에 분출된 것이다. 비록 낡은 세상의 폐단을 완전히 청산하지는 못해도, 나름의 장점들을 갖춘 ‘다음 세상’의 도래를 기대했다. 창가에는 음악이 흐르고, 하늘을 오염시키는 항공기가 줄어들며, 오리들이 도시 외곽을 유유히 거닐고, 단거리 교통망이 도시와 지방 사이 격차의 수렁을 메꿔줄 그런 세상을.

자본주의식 노동분업으로 잘게 쪼개진 일을 하던 사람들은 매일 저녁 발코니에서 종일 (혹은 밤낮 없이) 이룬 사회적 성과를 자축하고, 억눌렸던 임금도 제 수준을 찾으리라. 그 세상에서 사람들은 훨씬 맑은 공기를 마시고, 계산원들에게 미소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봉쇄기간이 끝나고 바이러스 2차 확산이 시작되면서 그런 세상은 섣부른 기대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상적인 삶으로의 회귀’라는 희망이 다른 모든 희망의 자리를 빠르게 꿰찼고, 경제붕괴에 따른 대가를 두고두고 가장 톡톡히 치르게 될 사람들에게는 이제 ‘정상적인 삶’마저도 과분한 일이 됐다.

이윽고 겨울이 왔다. 기대는 절망이 된 것일까? 일부는 기대를 행동으로 옮기기도 했고, 그 기대감으로 고통스러운 1차 봉쇄 기간을 그럭저럭 넘기지 않았던가? “위기발생 직전에는 기존 현상의 가속화가 신속히 진행된다”라는 프랑스 소비자연구협회(Obsoco)의 다음 분석을 짚어보자. “코로나19는 결국 일시적이면서 화학적으로 기존 현상을 가속시킨다. 이 현상은 ‘낡은 세상은 죽음을 거부하고, 새로운 세상은 아직 탄생하지 못했다’라는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로도 잘 알려져 있다.” 철학자 겸 정치학자였던 그람시는 통제가 없어 각종 위험이 도사리는 공위 기간(interrègne)에는 “지극히 다양한 병리현상이 도처에 나타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1) 불행히도 아직 태어나지도 못한 ‘새로운 세상’이 진정 새로울 것이라는, 혹은 바람직하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하지만 불가능할 것만 같은 또 다른 세상을 실현할 수 있다.

‘공위 기간’을 강제로 겪는 과정에서 과연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전 지구적인 고통 속에서 인류 공동체에 기대를 걸게 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정말 공감대를 형성하고 전 세계인을 하나로 이어줬는가? 인도에서 과들루프(Guadeloupe)까지, 투르쿠앵(Tourcoing)에서 케이프타운까지, 브줄(Vesoul)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세계 각지에서 같은 시기에 같은 병을 앓는 사람들에게 북에서 남으로, 서에서 동으로 기적처럼 수많은 병상이 보급되고 의료진이 파견됐던가? 흐름은 언제나 역으로 향한다.

영국, 독일, 프랑스, 벨기에나 이탈리아는 과거 동유럽 국가나 지중해 남부에서 수련한 의사들을 흡수했다. 루마니아의 경우, 자국을 떠나는 의사가 2009~2015년에는 전체의 50%에 달했다. 매년 의사들이 10%씩 꾸준히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이다.(2) 슬로바키아에서는 2004년 이후 25% 이상의 의료인력이 해외로 떠났다. (...) ‘의사 주요 수출국’, 루마니아는 고령인구와 함께 증가하는 의료수요를 감당하지 못한다. 게다가 코로나19 위기가 닥치면서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튀니지도 마찬가지다. 의사들은 오로지 조국을 떠날 생각뿐이다. 튀니지 전국의사노조협의회에 따르면, 튀니지에서 해외로 이직하는 의사 수가 매년 800명에 육박한다고 한다.(3)  

코로나는 사람들을 결집할 수 없다(오히려 그 반대다). 항공기 운항이 활발하던 때도 서로의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 항공편 운항이 줄자 일부만 자국 ‘탈출’을 감행할 수 있게 됐다. 좀 더 상세히 보면, 코로나 위기가 ‘문화계’와 ‘학계’를 하나로 잇지 못한 것은 확실하다. 공연 예술가들은 누구보다 철저히 활동이 단절됐고, 학생들도 원격으로 과제를 발표한다. 줌(Zoom) 배경에는 종횡정렬된 관, 검은 묘비에 흰 글씨로 적힌 추모글과 희미한 이름들이 보인다(룰루24, 이샴 라마르모트, 마농의 샘). 누가 그런 식으로 빈 교실을 연결할 생각을 했을까?

 

기술적 가치에 대한 선망

2020년 4월 13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했던 말처럼, 코로나 바이러스는 조직의 장점을 재발견하는 기회여야 했다. “조직을 재정비해, 적시에 필요한 성과를 도출할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상업 숭배에서 헤어 나올 때다. 곤경에 처할 때마다 우리는 기술이나 상업적 가치에서 해법을 구하곤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조직적인 대응과 방역으로 바이러스에 대처하며 수십만 명을 죽음에서 구해냈다. 지난해 4월 13일 저녁 담화문은 거의 이런 내용이었다. 

“장기계획을 통해 탄소 절감, 문제 예방, 회복 탄력성을 추구하는 전략을 세워야 다가올 또 다른 위기에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에 앞서, 3월 12일에도 이미 감동적인 말을 했다. “이번 사태를 통해, 일부 재화와 서비스는 시장 논리와는 별개로 가야 한다는 점이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식료품과 의료장비, 의료인력 등 삶의 근본적인 부분을 남의 손에 맡긴다는 것은 미친 짓입니다. 이 모든 것을 직접 우리가 통제해야만 합니다.”

정말 ‘미친 짓’일까? 고용과 전략적 공급 통제, 환경보호를 고려해 영토 내에서 반드시 생산해야 하는 50개의 생산품 목록(마스크와 아세트아미노펜 외에도)을 선별하자는 논의가 마무리됐던가? 새로운 국제무역 질서를 확립하는 획기적인 방안으로 부가가치의 50%가 국내에서 발생해야만 판매를 허가하는 50개 제품 목록을 만든다면, 호혜성에 기반한 국제무역을 통해 모두 이익을 얻고, 더 이상 대기업의 탐욕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새로운 세상을 과거보다 나은 방향으로 바꿀 만한 수단은 나오지 않았다. 공공 보조금과 인건비 삭감으로 유지되는 대기업(미국에서는 인력을 해고하고, 프랑스에서는 지방 정부가 실업 보조금을 지원한다)에 ‘최후의 순간’은 기약이 없는 이야기다. 미국 주식시장의 대표 30종목을 선정해 산정하는 다우존스지수는 2020년 3월 40%까지 하락했지만(세상에 종말이 닥친 분위기였다), 지난 12월에는 전례 없는 기록을 경신하며 상승세를 회복해, 5년 전 대비 70%나 상승했다.

물론 금융 투자자들이 주식을 매입하면서 향후 10년간 해당 회사들이 가져다줄 이득을 합리적으로 예측하지는 않는다.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도 파산신청 3일 전인 2008년 9월 15일까지 주식 종가가 3.65달러였다! 하지만 그 시점, 금융 타이태닉호 항해사들은 지브롤터 해협을 가로막는 A-68A 빙산이 불과 1해리 앞에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속도를 올렸을 것이다. 2020년 3월 금융공황 이후 투자자들은 탐지 범위를 조정하며 한층 선별적인 종목에 초점을 맞춰왔다.

봉쇄조치에도 밤낮없이 개장하는 이 주식시장에는 기술주가 중심축을 이룬다. 나스닥 지수는 지난 1년간 43% 상승했다. ‘다음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 예측하려면 렌즈 초점을 좁혀야 한다. 2020년 한 해 주가를 보자. 구글은 32%, 페이스북은 36%, 아마존은 79%, 애플은 82%, 줌은 (백신 실험이 성공했다는 발표 후 30% 하락했지만) 515% 증가했다. 2020년 11월 10일, 공모가 68달러로 주식시장에 간신히 상장된 에어비엔비(Airbnb)의 주가는 144달러(113% 급등)까지 뛰어올랐다. 

바이러스가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사람들은 여객기에 몸을 싣고 현지인의 집에 머물며 여행하기를, ‘더 가까워지기를’ 원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표다. 하루 전날, 가정으로 요리와 식료품을 배달하는 대행업체 도어대시(DoorDash)의 주가도 기업공개(IPO) 공모가 보다 86% 급등했다. 주식으로 거둔 이득을 응당 라이더들과 나누리라 여겨지는 영국의 배달음식 회사 딜리버루(Deliveroo)는 어떨까? 딜리버루 라이더들은 도시 외곽으로 나가는 길에 따끈따끈한 마그레드카나르(magrets de canard, 프랑스식 오리 가슴살 구이)를 교외 저택까지 배달하고, 사랑의 식당(프랑스 자선단체 운영, Les Restaurants du Coeur)에 들러 끼니를 때운다(단거리 이동 만세!). 2020년 1월 중순 이후 딜리버루 주가는 76% 상승했다.

제약회사 화이자(Pfizer)의 주주들을 동정해야 할 지경이다. 화이자는 바이러스 백신 효능을 발표했지만 11월 25일 이후 주가 상승률은 10%에 그쳤다. 19세기에 설립된 화이자는 일찍이 전 세계 49개 생산 현장에 공장과 설비, 직원, 연구원, 섭씨 영하 70도를 유지하는 초저온 냉장고 등을 두루 갖춘 견실한 산업 기업이나, 각국 정부와 협상을 거쳐 백신 가격을 책정해야 한다. 비즈니스 인사이더 프랑스(Business Insider France)가 지적하듯이 구시대 기업인 화이자의 백신 개발은 ‘다음 세상’의 각축장을 미리 들여다보는 데 도움을 줬을 따름이다. 

화이자 발표에 이어 “미국 주가가 상승했다. 미국 주식시장에서 항공, 숙박, 크루즈선 등 바이러스로 가장 극심한 피해를 본 업종의 주가가 급등했다. 반대로, 봉쇄조치와 재택근무로 성장세를 거둔 기업들은 타격을 입었다. 도큐사인(Docusign), 펠로턴(Peloton), 웨이페어(Wayfair) 같은 업체 주가가 줌(Zoom)에 이어 곤두박질쳤다. 투자자들이 낡은 세상으로의 복귀를 점친 탓이었다. (…) ‘스테이 앳 홈(stay-at-home, 집에 머물기)’ 종목은 백신에 대한 긍정적인 소식이 발표될 때마다 줄곧 하락했다.”(4) 

그런데 이런 현상은 혹시 분수공이 아닐까? 코로나 위기를 거치며 모든 활동의 디지털화된, ‘올 디지털(all digital)’ 사회는 이 기업들의 발전에 기폭제가 되어줬고, 그 효과는 또 다른 성장의 발판이 됐다. 원거리 근무 보편화 전부터, 이들 기업은 우리의 시간, 공간, 돈, 정보, 자율성, 의료, 교육, 식생활 등에 관한 ‘비대면’ 방식의 삶을 완전히 장악했다. 비대면 생활방식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5) 

우리 곁에 다가온 ‘다음 세상’에서 ‘스테이 앳 홈 종목(기세 좋고 상승세를 달리는 주식을 기다린다는 뜻)’은 격리된 우리 삶의 구성요소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 기저에 있는 것은 소비사회에서 생겨난 외딴 삶(은둔하며 구매한 상품과 얼굴을 맞대는 삶), 모든 것을 흡수하는 구식 경제활동, 온갖 출입문들(주택, 상점, 학교, 병원, 행정기관, 도서관, 공연장 등의)의 자리를 차지하고, 한층 촘촘한 그물망으로 우리를 옥죄는 인터넷상의 각종 ‘포털 플랫폼’이다.

 

길을 비켜라, 전통 관행이 귀환한다!

자유롭고 공정한 국제경쟁이라고 해서 모든 이들이 한 배에 탄 것은 아니다. 선진국 당국들이 아무리 재앙의 규모를 줄이려고 아무리 애써도 카페, 식당, 극장, 관광, 행사, 회의 등을 업으로 삼는 중소기업들이 겪는 난항을 무기한 제한하지는 못한다. 지난 6월, 영국의 전통적인 택시 ‘블랙캡(black cab)’ 3,500대가 런던을 떠나, 수풀과 폐기물이 널린 외곽의 ‘택시 묘지’로 향했다. 택시 기사들은 주당 300파운드에 달하는 차량 임대료를 꼬박꼬박 지불할 여력이 없었고, ‘택시 묘지’로 간 택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코로나 사태는 우버화로 기울어진 택시 운영난에 불을 붙였다.(6)  

유엔아동기금(UNICEF)과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에 의하면, 2020년 한 해 전 세계에서 빈곤가정 아동 수(각국이 정한 기준에 의해)가 약 1억 4,200만 명 늘어 전체 7억 1,500여만 명(전 세계 아동인구의 38.4%)에 달했다고 추산했다.(7) 선진국에서도 빈곤율이 치솟아 가장 취약한 계층을 위협한다. 프랑스에서 사랑의 식당(Les Restaurants du Coeur) 국제관계 책임자 루이 캉튀엘은 식량지원 사례가 봉쇄기간 대도시에서 30% 이상 늘었다고 추정했다. “현 상황은 보건위기 이후에도 장기화돼, 극심한 빈곤이 계속될 것입니다.”(8)  

낡은 세상은 떠나려 하지 않는다. 아직 상처가 깊지 않은 새로운 세상을 앞에 두고, 낡은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도 깊은 상처를 드러내 보인다. 설상가상 보건위기는 확대경 역할을 한다. 해결되지 않은 각종 위기가 즐비하지만, “비용이 얼마가 들더라도”라고 호언장담하던 마크롱 대통령의 기세는 예산폭탄 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2020년 11월 17일, 프랑스 하원에서 2025년까지 정부 재정적자를 3% 이하로 낮춘다는 내용의 2021년 재정법 1차 결의가 통과됐다. 세금을 인상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결국, ‘정상’으로 회귀한 셈인가. 

 

 

글‧로랑 코르도니에 Laurent Cordonnier
경제학자, 프랑스 릴 대학 교수

번역‧이푸로라
번역위원


(1) Antonio Gramsci, 『Cahiers de prison』, Gallimard, coll. Bibliothèque de philosophie, Paris, 1978-1996(초판: 1948-1951).
(2) Clotilde Armand, ‘Le passage à l’Ouest de médecins est-européens 동유럽 의사들이 서유럽으로 향하는 통로’, <리베라시옹>, Paris, 2020년 9월 14일.
(3) Maryline Dumas, ‘En Tunisie, le ras-le-bol des blouses blanches 튀니지에서는 의사라면 진저리를 친다’, <피가로>, Paris, 2020년 12월 9일.
(4) ‘Les actions Zoom et Netflix s’effondrent à la Bourse après la bonne nouvelle autour du vaccin Pfizer Phizer 백신에 대한 희소식 이후 주식시장에서 줌과 넷플릭스 주가가 폭락했다’, <Business Insider France>, 2020년 11월 9일.
(5) Julien Brygo, ‘언택트 사회에서 안녕하신가요? Work, Family, Wi-F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0년 6월호.
(6) Mark Landler, ‘Field of broken dreams : London’s growing taxi graveyards’, <The New York Times>, 2020년 12월 3일.
(7) ‘Children in monetary poor households and Covid-19’, 유니세프, New York, 2020년 12월 11일.
(8) <France Info>, 2020년 11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