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G, 삶의 진보인가?
“유럽연합이 선두를 고수하도록, 6G 기술 연구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EU 역내시장 담당 집행위원직에 임명된 프랑스 텔레콤 전 사장 티에리 브르통은 이렇게 말했다.(1) 그는 유럽 국민과 그들의 미래를 위한 최우선 과제가 6G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30년 전부터 논의(만) 해온 사회적 유럽 등에 대해서는 차일피일 미뤄온 마당에 말이다. 6G 도입을 급선무처럼 강조하지만, 사실 5G 구축도 아직 멀었다. 프랑스 국토 40%에서는 4G 서비스도 제공되지 않으며, 뷔쉬스-뷔쉬엘(Bussus-Bussuel; 프랑스 북부 Hauts-de-France에 위치한 Somme 부서의 코뮌) 같은 곳에서는 이동통신 서비스 자체가 원활하지 않은 현실이다.
그런데 미래를 대비하겠다는 결의를 다진 유럽연합의 수장들은 6G를 준비하고 있다. 그 이유는, ‘박차를 가해, 선두를 고수하기 위해’라고 한다.
“경쟁에서 낙오될 수는 없다”
아녜스 파니에 뤼나쉐 프랑스 경제재정부 국무장관도 지난해 6월 30일 의회에서 “프랑스는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 뉴질랜드, 스웨덴, 핀란드, 독일, 미국, 중국, 한국처럼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핵심기술인 5G 도입에 주력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와 산업, 그리고 우리 국민이 살 길이다. 경쟁에서 낙오될 수는 없다”라고 역설했다.
그런데 이 ‘경쟁’의 목적은 무엇인가? 행복을 위한 경쟁인가? 공공복지를 위한 경쟁인가?
2018년 프랑스 통신규정 기관인 통신우정규제청(Arcep)의 세바스티앙 소리아노 청장은 “5G 도입을 절대 지체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2) 한편, 5G 통신기술 개발의 궁극적 목표에 대해서는 모호한 발언을 했다. 2020년 7월 1일 프랑스 상원에서 “5G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모르겠다. 그 용도는 우리 사회가 결정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반면 신기술 분야 전문 컨설팅 회사 가트너(Gartner)는 2020년 CCTV의 70%가 5G 사물인터넷 기기가 될 것이라고 좀 더 구체적으로 5G의 용도를 전망했다.(3) 이 예측에 대해 크리스토프 카스타네르 전 내무부 장관은 “우리는 디지털 세상에 살고 있다”라며 반색을 표했다. 이제 감시망은 더욱 촘촘해질 것이다.
10년 전, 프랑스 로봇 회사 비올레(Violet)는 모든 가정용품을 인터넷으로 연결하겠다는 포부를 발표했었다. 오늘날 가정에서 사용하는 물건은 평균 6,000개이며 그 중 전화, 컴퓨터, 텔레비전 3가지는 인터넷 연결에 성공했다. 그리고 자동 끈 조임 운동화(Electro Adaptive Reactive Lacing), 자동 풀림 브레지어(후크가 자동으로 풀어진다), 과식방지 스마트 포크(폭식을 하면 포크가 진동한다), 스마트 오프너(술병을 따면 인터넷으로 연결된 친구들에게 메시지가 전달돼, 함께 술자리를 즐길 수 있다), 물 마실 시간을 알려주는 스마트 물병, 약속시간을 알려주는 팔찌, 로레알 제품을 권해주는 머리 빗, 성기능을 측정하는 스마트 콕링이 이미 개발됐다. 그러나 이 정도는 시작에 불과하다. 곧 ‘스마트 홈’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물론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 다음은 ‘스마트 시티’가, 결국은 ‘스마트 세계’가 도래할 것이다.(4) 기술의 녹색성장을 예찬하는 미국 경제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차량, 기계, 장비에 센서를 부착해 기기와 인간은 전 세계 경제 전반에 펼쳐진 광대한 인터넷으로 연결될 것이며, 2030년까지 무려 100조 개의 센서가 인간의 생활환경과 자연환경을 연결해 전 세계적인 스마트 환경을 구축할 것이라고 예견했다.(5) 이런 전망은 유럽의 지도자들에게 꿈을 선사했다. 5G는 전 세계 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통신, 토목, 건축, 농업, 자동차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사용하는 차량, 기계, 장비를 신제품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거대한 시장을 열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국민들에게도 꿈을 선사하는가?
“이제 사람들은 식사도, 식전주도 온라인으로 주문한다. 성관계도 그렇게 될 것 같다.” 아미앵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티에리 마르탱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외출금지령이 20년이나 사회의 발전을 앞당겼다고들 하지만, 그에게는 20년 진보가 아니라 후퇴에 불과하다. 재택근무, 온라인 수업, 개인 방역 등 사회적 거리두기가 생활화되면서, 사람들은 이제 컴퓨터나 휴대폰만 들여다보게 됐다. 이는 5G 도입을 서두르는 계기가 됐고, 정치인들은 이 기회를 포착했다.
세드릭 오 디지털 국무장관은 “위기는 더욱 적극적으로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라면서, 프랑스가 5G 구축에 속도를 낼 것을 주문했다.(6) 이렇듯 5G 진입에 주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더욱 적극적인 변화’를 원해서인가? 무인 계산대만 있는 상점, 안내 창구가 없는 역, 직원이 없는 사무실을 원하는 것인가? 인터넷을 거의 사용하지 않거나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디지털 문맹자’가 무려 1,100만 명에 달하는 나라에서 ‘100% 디지털 서비스’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공공서비스 현대화 계획 ‘Cap 2022’를 실현하겠다는 말인가?(7)
기술의 진보는 삶의 진보인가?
프랑스 아동들의 1일 평균 컴퓨터와 휴대폰 사용 시간은 4시간 11분에 달한다. 그 영향으로 대뇌 피질이 얇아져 집중력 저하, 언어 발달장애, 불면증, 스트레스, 우울증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실리콘 밸리의 기업들은 마약상과 다를 바가 없다. 마약상은 돈벌이 수단인 마약을, 절대 가족에게는 주지 않는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창업자 윌리엄 게이츠는 자신의 자녀에게는 14세 이전에 절대 휴대폰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The Mirror 2017년 4월 21일). 그리고 페이스북의 전 부사장 차마스 팔리하피티야도 ‘그런 몹쓸 기계’를 아이들 손에 맡기지 않는다고 했다(The Verge, 2017년 12월 11일). 캘리포니아의 최상류층 학급에는 컴퓨터가 없다. 최상류층 학부모들은 ‘인간관계의 양과 질, 강도에 따라 성장한다는 교육관’을 고수하는 대안학교를 선호한다.
대형마트 오샹(Auchan)의 물류창고에서 지게차 운전수로 일하는 아르노는 창고에 음성인식 장치를 설치한 후, 퇴근 후에도 가족에게 마치 기계에 말하듯, ‘다시 말해줘’를 반복하며 짜증을 내게 됐다고 호소했다.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으로 직원들은 숨을 쉴 틈도 없이 일을 해야 하는 지경이 됐다. 인공지능을 도입하면서 직원은 54명 줄었지만, 근속년수가 21년이나 되는 아르노의 월 급여는 1,207유로로 동결된 상태다. 그리고 지난 10월 8일, 아르노를 포함한 창고 직원들이 아미앵 물류센터 입구를 막아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은 정보, 상품, 자본의 대륙 간 이동을 자유롭게 만들어 세계화와 오프쇼링을 실현시켰고, 이에 기업 임원과 주주들은 이득을 봤다. 그런데 직원들도 이런 ‘발전’으로 인한 혜택을 누리고 있는가? 앞으로는 누릴 수 있을까?
철학자 도미니크 부르그는 기술진보의 한계에 부딪혔다고 진단했다. 지난 ‘영광의 30년’ 동안 이뤄낸 기술발전 덕택에 식수, 전기, 세탁기, 욕실, 화장실, 냉장고 등이 널리 보급됐고 삶의 질이 널리 개선됐다. 그러나 사람들은 특별한 이유 없이 냉장고를 더 사지도, 냉장고를 전화기와 연결하지도 않는다. 즉, 기술의 진보가 더 이상 삶의 진보로 연결되지 않는 것이다. 1970년대 이후 프랑스 국내총생산은 50% 증가한 반면, 삶의 질 및 행복지수 향상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또한,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기술은 인간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으므로 기술에 대한 불신도 확산됐다.
게다가 인간 활동의 결과가 기후 온난화와 재난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지난 30년, 한 세대가 바뀌는 동안 곤충 80%와 척추동물 60%가 멸종했다.(8) 우리의 ‘무개념 과학기술’이 마음과 정신뿐만 아니라 공기, 땅, 바다, 그리고 생명체를 황폐화 시킨 것이다.
프랑스 대통령은 시민기후협의회를 창설하고, 협의회에 들어오는 권고안을 ‘거르지 않고’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이 협의회는 올해 봄, 5G가 건강과 기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도입을 유예하자는 권고안에 대해 98% 찬성표를 던졌다. 그러나 지난 9월 14일 엘리제 궁에서 열린 ‘프렌치 테크’ 행사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스타트업 국가’의 대통령답게, 결의에 찬 표정으로 프랑스는 5G를 구축함으로써 혁신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근심과 우려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현대 문명을 거부하고 18세기의 구시대적 생활방식을 고수하던 ‘아미시 모델’을 따르려 한다며 ‘석유램프’를 쓰던 시절의 생각이라고 깎아내렸다. 5G 기술은 사회, 직장, 교육, 교통, 심지어 사생활에까지 침투해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술에 대해 어떤 토론도, 심의도 없다.
우리 정부가 그토록 칭송하는 이 ‘경쟁’은 대체 무엇일까? 정부는 아마 논의할 시간이 없을 것이다. 다른 나라보다 조금이라도 앞서야 하는, 시급한 마당에 말이다. 정부는 이토록 중요한 경쟁 중에 민주주의에 할애할 시간이 없을 것이다. 시간은 곧 돈이기 때문이다.
글‧프랑수아 뤼팽 François Ruffin
국회의원
시릴 포크레오 Cyril Porcréaux
파키르(Fakir)기자
번역‧정수임
번역위원
(1) Virginie Malingre, ‘Risque de la 5G, Huawei... Thierry Breton dévoile la position de l’Europe 5G의 위협, 화웨이... 티에리 브르통 유럽의 입장을 밝히다’, 르몽드, 2020년 1월 29일.
(2) 5G, une feille de route ambitieuse pour la France 5G, 프랑스의 야심찬 로드맵, Arcep, Paris, 2019년 7월 16일.
(3) ‘Gartner predicts outdoor surveillance cameras will be largest market for 5G Internet of Things solutions over next three years’, Gartner, Egham, 2019년 10월 17일.
(4) Félix Trégueur, ‘La ville sûre ou la gouvernance par les algorithmes 안전한 도시 또는 알고리즘의 지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6월.
(5) Nicolas Bérard, 5G mon amour. Enquête sur la face cachée des réseaux mobiles 5G 내 사랑. 이동통신 네트워크의 숨겨진 면에 관한 조사, Passager clandestins, L’Age de faire 공저, Paris, 2020년.
(6) Grégoire Poussielgue, Isabelle Ficek, ‘Céderic O : “Nous ne devons pas perdre le fil du quinquennat, sinon nous disparaîtrons” 세데릭 오는 5년 집권의 레임덕이 온다면 우리는 소멸할 것이라 주장한다’ Les Echos, Paris, 2020년 6월 11일.
(7) Julien Brygo, ‘Travail, famille, Wi-fi, 일과 가족 그리고 Wif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0년 6월.
(8) Stéphane Foucart, ‘En trente ans, près de 80% des insectes auraient disparu en Europe 30년만에 유럽에서 곤충 80%가 멸종된 것으로 추정된다’, 르몽드, 2017년 10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