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을 파고드는 중국의 영향력

2021-01-29     수지 개도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국가 간 관계

 

1946~1991년
소련 중국 프랑스 영국 미국
1991~2020년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 미국

 

위 도식은 거부권이 사용된 안건들에 대한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간의 거리를 보여준다. 각 국가 간의 거리는 어떤 안건에 대한 표결 결과 양국이 같은 의견을 냈으면 1, 그렇지 않으면 0으로 보는 유사성 매트릭스를 기준으로 계산됐다.  

 

국제연합 내에서 오랫동안 침묵했던 중국은, 경제문제와 관련해서는 자국의 입장에 따라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또한 평화유지활동이나 세계보건기구(WHO)등의 국제연합전문기구에도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고 가장 큰 지원국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하지만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중국이 행사한 거부권의 수는 미국보다 적다.

 

중국의 국제연합(이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 자격은 1949년 대만의 손에 넘어갔다. 이후 21년 동안 대만의 민족주의 정당에 이 자리를 내줘야 했던 중국은, 1971년 10월 26일 유엔 총회 투표 결과(미국은 반대표를 던졌다)에 따라 이사국 자격을 되찾을 수 있었다.(1) 그러나 중국은 여전히 거리를 유지했다. 10년 동안 유엔 총회에서 표결에 부쳐진 결의안 총 208개 중 1/3에 달하는 69개에 대해 기권했던 것이다. 반면, 거부권을 행사한 경우는 1972년 방글라데시의 유엔 가입에 대한 결의안이 유일했다.

이런 중국의 전략은 각국의 국내 문제에 대한 내정불간섭 정책으로 요약된다. 유엔의 임무 확대(1971년 키프로스에 대한 결의안 제305호 등), 잠정주둔군 파병, 감시 임무 신설(1974년 골란고원 내 이스라엘-시리아 분쟁에 대한 결의안 제350호 등), 유엔긴급군 임무 연장 등 평화유지 활동 관련 표결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2) 중국은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미국, 러시아(구소련), 영국, 프랑스, 중국 등 총 5개국) 자격을 통해 지위와 권력을 부여받았으며, 거부권을 통해 자국의 이해관계를 보호할 힘을 보장받았다. 그러나 유엔 내에서 거의 힘을 행사하지 않았는데, 이는 국제사회에서의 중국의 비중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007년 등장한 터닝 포인트

중국은 유엔의 활동들을 찬성하지 않았고, 이를 위한 재정적인 지원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1981년, 유엔이 자금 부족을 우려해 총회에서 군사비용 지출에 대한 ‘최대한의 참여’를 당부한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중국은 유엔에 자금을 지원하면서부터 수년에 걸쳐 자국의 지위를 눈에 띄게 향상시켰고 경제 무대에서도 점차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실제로 2000년대부터는 미국의 뒤를 이어 평화유지임무에 두 번째로 많은 금액을 지원하는 국가(2019년 기준 예산의 15.2%를 지원, 미국은 28%)가 됐다. 한편 현재 진행 중인 평화유지임무 13개 중 8개가 아프리카 대륙에 집중돼 있다. 이는 아프리카가 중국의 가장 핵심적인 원자재 공급지역임을 고려할 때, 아프리카 지역에서 커지는 중국의 이익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볼 수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중국은 보다 공격적인 외교정책을 펼쳤다. 더 많은 거부권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자국의 행정구역 중 하나라고 주장하고 있는 대만과 관련된 안건들이 대부분이었다. 예를 들어 1997년에는 서구 국가들과 대만의 주도로 진행되는 과테말라의 평화협정 이행을 위한 감시단 파견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또한 1999년에는 구유고슬라비아 마케도니아 공화국의 유엔 사전전개군(UNPREDEP) 임무 연장안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했는데, 대만과 국교를 수립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중국의 전략은 2007년부터 변화를 맞이했다. 2007년 이후 현재까지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한 안건은 11개(총 769개 중)로, 모두 러시아와 함께 거부권을 낸 것들이었다. 특히 중국은 인권침해와 관련된 모든 제재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해당 국가의 국내문제에 대한 지나친 내정간섭이라고 판단했을 뿐 아니라, 동맹국에는 너그러운 서구 국가들의 ‘이중잣대 정책’으로 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은 2011년 이래 시리아 정부가 자행한 범죄 행위들을 규탄하는 결의안 8개에 모두 거부권을 사용했으며 미얀마나 짐바브웨 문제에 대한 결의안(각각 2007년, 2008년)에도, 2019년 미국이 촉구한 베네수엘라의 새 대선 관련 결의안에도 각각 거부권을 행사했다.

반면, 2011년 3월 17일 통과된 결의안 제1973호에 대해서는 거부권을 사용하지 않았다. 리비아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병력을 투입해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는, 실상 리비아 집권자 카다피의 축출로 이어질 군사개입을 허용하는 이 결의안에는 거부표가 아닌 독일, 브라질, 인도, 러시아와 함께 기권표를 던진 것이다. 또한 북한에 대한 지지로 비난을 받아온 중국이지만 1993년부터는 북한의 핵 실험 및 미사일 실험을 규탄하고 이를 제재하는 결의안에 대해 항상 찬성표를 내고 있으며 핵확산금지조약에 관해서도 찬성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중국은 유엔 창설 이래 제시된 결의안 총 2,505개 중 152개에 대해 기권해, 최다 기권표를 던진 국가로 기록됐다. 그러나 지금까지 행사한 거부권은 단 14개로, 역대 205개의 거부권을 사용한 러시아(소련 포함)나 81개를 사용한 미국과 달리 거부권을 가장 적게 행사한 국가이기도 하다. 

 

 

글‧수지 개도 Suzy Gaidoz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기자. ‘국경없는 유럽연대’를 위해서도 활동하고 있다.

번역‧김보희 sltkimbh@gmail.com
번역위원


(1) 당시 유엔 총회 참여국들 중에는 세계적인 독립운동으로 탄생한 신생국들이 다수 있었다. 중국의 안전보장이사회 재가입에 대한 투표에서는 찬성 75표, 기권 15표, 반대 37표가 나왔으며, 미국은 반대표를 던졌다.
(2) 모든 결의안의 내용은 유엔 도서관 사이트에서 확인 가능하다. https://digitallibrary.u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