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의 영역이 된 전염병 퇴치

엘리제궁에서 열린 ‘국방회의’의 진실

2021-01-29     필립 레이마리 l 기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군 통수권자 자격으로 ‘국방회의’를 소집했다. 신종 코로나19 사태 발발 이후 3번째다. 그런데, 해외파병이나 국경방어전도 아닌, 전염병 퇴치가 ‘국방’의 영역인가? 국내에서 경찰과 헌병대가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이라면 이론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전염병과의 전쟁에 ‘국방’이 나서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대포 동원? 전쟁? 흑사병 재창궐? 이제 프랑스는 어떻게 될까?” 

국방회의 개최 이후 여러 블로그에서 폭발적인 반응들이 쏟아졌다. 물론 상황이 우려스럽고 예측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바이러스에 대처하기 위한 회의라면, ‘보건회의’가 마땅하지 않을까? 이미 지난해부터 ‘생태국방회의’(기후변화, 생물 다양성보존 등 생태전환분야 정책 방향 설정을 목표로 대통령이 주재하고 관계 부처 장관이 참여하는 회의-역주)가 개최되고 있는 마당에 말이다. 

내무부가 주관하는 ‘대책회의’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그동안 구호 조직 계획(ORSEC), 백색 계획(병원 대상의, 대규모 입원 사태 대비책-역주), 청색 계획(부양노인거주시설 대상 고령자 보호 대비책-역주), 생화학테러대응 계획(Biotox), 핵공격대응 계획(Piratome) 등 다양한 위기대응 계획들의 지휘본부 역할은 내무부가 수행해왔다. 이 같은 계획들에는 각 도의 도지사, 응급의료지원 서비스(SAMU), 병원, 군·민간 소방대, 프랑스군 의무(醫務) 사령부(SSA), 프랑스군 중앙약제실이 참여한다. 개인병원 의료진, 약국 네트워크, 헌병대, 경찰도 협력한다.(1)

그런데 이번에는 대통령이 직접 바이러스와의 전쟁의 선봉에 서서 비밀리에 ‘국방회의’를 소집했다. 화약 냄새와 전운이 감돌며 ‘중대 발표’나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됐다. 국민들은 대응책, 무기와 복장, 군부대 동원 등을 예상했다. 그러나 일요일 저녁 2시간에 걸친 국방회의 후 나온 대책은, 대중교통 이용 및 ‘국가기능 유지에 필수적인 경우 외에, 1,000명 이상의 집회 금지’가 전부였다.

대통령 ‘각하’는 또한, 지난 목요일 최고 권위의 항(抗)바이러스 연구원들을 대통령궁에 소집하고, 자신은 특별한 면역력을 갖추기나 한 듯 의료시설들을 수차례 방문했다. 대통령이 국민의 생존을 염려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불확실성과 위험이 확산되는 이 시기에 국민에게 위기를 극복하고 재기하며, 희생을 감수하도록 요구하면서, 정부가 바이러스와 전쟁을 치를 준비를 하고 있다는 확신을 심는 것은 국민이 정부 지도자들에게 기대하는 최소한의 덕목으로는 맞다.

 

 “비이성적인 공포심을 경계하라”

하지만 프랑스 정부가 국민에 대한 연민을 표출하고, 부분적으로라도 효율적인 대책을 강구중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름 아닌 정치적 필요성이다. 파국으로 치닫는 지방선거, 퇴직연금에 대한 정부의 추잡한 술책, 타협을 모르는 ‘노란 조끼’ 시위대, 그리고 전염병 대응을 위해 정부가 의료분야에 대한 국고 지원을 결정하자 갑자기 다른 시위대에 대한 연대의무와 위대한 직업의식을 외치고 나선 ‘흰 블라우스’ 시위대(근로환경·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간호사들의 시위-역주)와 같은 다양한 현안들을 전염병에 대처하는 동안 보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계별로 ‘합당한’ 대책을 취해 공포의 확산과 국가의 사회적·경제적 혼란을 막을 것인가? 이웃 이탈리아처럼, 불안을 조장하더라도 여론의 우려를 반영한 발언이나 대책을 내놓을 것인가? 쉽지 않은 선택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파리의 한 부양노인거주시설(Ehpad)(2)을 방문해, 시설 노인들과 식사를 하며 “프랑스는 매년 9,000명에서 1만 명의 사망자를 내는 유행성 독감에 대처해 왔다”라고 강조하고,(3) ‘비이성적인’ 공포심을 경계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프랑스의 신종 코로나19 대응단계를 곧 3단계로 격상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한편, 국토의 1/3에 달하는 북부지역을 몇 주 동안 완전봉쇄한 이탈리아와는 달리, 마크롱 대통령은 모든 활동을 금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건부, 병원, 연구기관, 군대에는 많은 전문가들이 있다. 그들은 정치인들보다 더 효율적으로 바이러스에 대처할 수 있다. 그런데,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존엄한’ 대통령에게 달린 것처럼 행세해야 했을까? 정치인들 대다수가 (제약회사와 민간의료기관을 비롯한 모든 형태의) 자본에 맞서려는 야심과, 맞서왔던 습성을 모두 상실했음에도 말이다(아니, 그런 것은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른다).

 

반복되는 공격

전염병이 안보를 위협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전염병의 종류가 늘고 있고, 2~3년 주기로 새로운 공격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신종 인플루엔자A(H1N1), 조류독감, 에이즈가 그 대표적인 예다. 최근 사례로는 기니,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의 경제를 마비시켰던 서아프리카 지역의 에볼라 바이러스, 한국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던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아메리카 대륙에 퍼져 수천 명의 태아를 위험에 빠트렸던 지카(ZIKA)바이러스가 있다. 

한 발표에 의하면, 최근 몇 년 동안 ‘나쁨’ 또는 ‘심각’ 단계의 팬데믹으로 매년 약 5,700억 달러의 비용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 세계 국내 총생산(GDP)의 0.7%에 달한다. 1918년의 스페인 독감 수준으로 심각한 팬데믹의 경우, 전 세계 GDP의 5%에 달하는 약 4조 달러의 비용에 해당한다. 세계은행은 최근 10년 동안 발생한 ‘팬데믹 비용’이 ‘재해 비용’과 ‘전쟁 비용’을 합친 것보다 높았다고 발표했다. 

2009년 지금의 형태를 갖춘 국방회의는 물론 국방 분야 외에도 국내 안보를 위협하는 대규모 위기사태 대응 권한이 있다. 이 회의는 대통령 주재로 거의 매주 열리는 다른 회의들처럼 대테러 작전, 시리아-이라크 분쟁, 사헬지역 분쟁 관련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제한된 인원이 참여하는 형태로 개최된다. 또한, 국가정보회의, 핵무장회의, 생태국방회의와 같이 특수 분야 전문가가 참여하는 형태로 열리기도 한다. 하지만 공공보건은 국방회의가 다뤄왔던 분야는 아니다. 

국민에게 고작 ‘손 잘 씻는 법’을 가르쳐주기 위해, 국가 최고 지도자가 주재하는 엄숙하고 비밀스러운 형태의 회의가 정말 필요한 것일까?

 

군대의 ‘진실게임’

신종 코로나19 감염증을 둘러싸고 많은 잘못된 정보가 유통되자 평소 ‘침묵의 집단’으로 불리는 군대가 직접 나서 ‘소문의 진위’를 밝혔다. 평소와는 다른 어조로 발표한 공식성명서에서 국방부는 많은 언론 매체가 우아즈도(道)의 신종 코로나19 전파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보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방부가 사실이 아니라고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 

· 2020년 1월 31일, 우한-파리 프랑스 교민 송환 작전을 수행한 에스테렐 대대(군대와 정부 주요 인사들의 장거리 수송을 위한 에어버스·팰콘 항공기 운행을 담당하는 프랑스 공군 대대)가 중국으로부터 신종 코로나19를 유입시켰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작전에 참여한 전 대대원은 FFP2 규격 마스크를 착용했다. 우한 공항에 도착한 이후에는 비행기에서 내리지 않고 기내에서 교민들을 맞이했다. 송환 교민 192명은 모두 무증상자였으며 그 어떤 대대원도 중국 영토에 발을 딛지 않았다. 이 비행에 투입된 전 대대원은 귀국 이후 14일 동안 자택에 격리됐다. 이중 누구도 증상을 나타낸 대대원은 없었다. 

· 우한발 파리행 비행편으로 귀국한 교민과 우아즈도의 신종 코로나19 전파 사이에는 연관 관계가 없다. 해당 편에 탑승했던 교민 193명은 모두 무증상자였다. 입국 뒤에는 14일 동안 카리 르 루에에 위치한 한 휴양 시설에 격리돼 철저한 임상 추적 조사를 받았다. 격리시설 퇴소 전 실시한 COVID-19 테스트에서도 193명 모두 음성판정을 받았다. 따라서 이들 중 감염자는 아무도 없었다. 우아즈도에서 실시한 역학조사 결과 우한 귀국민과 우아즈도의 최초 감염자(Patient Zero)사이에는 아무런 연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 에스테렐 대대원 중 그 누구도 지난 2월 크레피 앙 발루아 중·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한 적이 없다. 소셜 네트워크상에서 떠도는 소문과는 달리, 우한-이스트르 송환 비행에 참여한 크레유 공군기지의 에스테렐 대대원 중 그 누구도 지난해 2월 크레피 앙 발루아 중·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한 적이 없다.  

 

 

글‧필립 레이마리 Philippe Leymari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라디오프랑스 인터내셔널(RFI)에서 아프리카와 국방 관련 기사를 담당했다. 주요 저서로『Des 100 Clés de l’Afrique 아프리카의 100가지 비결』 (Thierry Perret 공저, Hachette littérature, 2006, ISSN 2266-7733)이 있다.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상황이 급격히 악화될 경우, 핵·방사능·세균학·화학적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군대가 안보유지, 물자보급, 항공·해상 운송 지원 등의 대응에 참여한다.
(2) Établissement d’hébergement pour personnes âgées dépendantes, 부양노인거주시설의 약자. Philippe Baqué, ‘Vieillesse en détresse dans les Ehpad 부양노인거주시설에서 보내는 비참한 노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3월호.
(3) 굳이 구체적인 사망자 수치를 거론한 것은 유행성 독감의 최대 희생자인 양로원 거주 노인들에게 큰 용기를 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