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인들을 실망시킨 프랑스의 배신

2021-01-29     앙투안 오리 l 파리 변호사협회 변호사

프랑스가 2014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이후, 프랑스군에 채용됐던 아프간 민간인들 중 프랑스 비자를 발급받은 이들은 극소수다. 이들은 오늘날 집권한 탈레반으로부터 배신자 취급을 받으며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 이 문제를 방관해온 프랑스 정부는 이제 노골적으로 이들에 대한 수용거부 의사를 표했다. 

 

“라파예트 태스크 포스(TF)는 귀하에게 우수증명서를 수여합니다. 귀하는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와 프랑스군 작전 병력으로 지원해 놀라운 희생정신, 서비스 정신, 프로 정신을 보여줬으며 뛰어난 지식을 바탕으로 근면·성실하게 일해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프랑스군이 철수한 지 6년, 프랑스군에서 일한 대가를 아직도 치르고 있는 와힛 F.에게 이 훈장은 빛을 잃은 지 오래다. 탈레반은 물론 고향 사람들에게까지 배척당한 그는 현재 카불에서 유령처럼 살고 있다. 목숨을 위협받으며 아내, 4명의 아이들과 야반도주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프랑스로부터 배신 당하고, 본국에서는 배신자가 된 ‘타르주만’들

“일을 계속할 수 없어요. 누군가가 저를 알아볼 게 두렵고, 위험합니다.” 

와힛은 말한다. 그의 동생은 2019년 3월, 탈레반의 보복으로 사망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프랑스 땅을 밟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약 800여 명의 다른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처럼, 그 역시 ‘현지채용된 민간인력’이었다. 이들은 프랑스군이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는 동안 통역사, 재고관리인, 요리사, 운전사로서 프랑스군을 위해 일했다. 그러나 프랑스군이 철수한 후에는 아프가니스탄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자신들을 ‘타르주만(Tarjuman, 아프가니스탄 현지 언어 중 하나인 다리어로 ‘통역사’라는 뜻)’이라고 부르는 이 임시직원들은 프랑스군과 아프간 국민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으며, 때로는 직책과 무관하게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다.(1) 

프랑스군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승인한 국제안보지원군(ISAF)으로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했다. 9월 11일 다음 날 미국이 이끄는, 그 이름도 화려한 ‘불변의 자유’ 공격을 지원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후 이어진 두 작전은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의 명령 하에 수행됐다. 프랑스군이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한 기간은 2001~2014년으로, 약 7만 명의 병력 중 90명이 사망했다. 기간 대비 사망자를 가장 많이 낸 해외 군사작전이었다.(2) 미국 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나 마찬가지인 전투였기에, 프랑스는 전쟁의 흐름을 좌우할 수 없었다. 미국에 예속된 표식처럼 여겨진 이 전쟁을 납득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고,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3) 지난 2월, 미국은 자기 역사상 가장 길고 비용 소모가 큰 이 전쟁을 끝내고,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맺어 2021년 5월까지 전 병력을 철수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들은 전쟁 중으로 여기고 있다.(4) 

‘현지 채용 민간인력’의 처리방식은 국가마다 다르다. 프랑스와 파견 병력이 비슷한 독일 등 몇몇 국가들은 이들 대부분을 자국으로 인도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처럼 특별 이민 비자를 발급하는 법안을 채택한 국가들도 있었다. 프랑스는 이들 국가와 달리, 민간인력을 ‘재배치’하는 시스템을 시행했다. 2012년 1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임기 2007~2012)이 프랑스군 철수를 승인한 후 첫 번째 정책이 마련됐다. 아프간 민간인에게 퇴직위로금을 지급하고 아프가니스탄에 재정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조치였다. 

본국에서 위협받는 이들에게는 프랑스에서 ‘장기체류’ 비자를 발급한다. 비자 발급 기준은 위협받는 정도, 프랑스군에 기여한 수준, 그리고 동화 능력이었다. 이 세 가지 중 마지막 기준(동화 능력)이 특히 까다로웠는데, 실상 종교를 규제하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일방적이고 가혹한 선발절차 후, 프랑스가 수용한 민간인력은 73명에 불과했다. 이 정책의 책임부서인 국방부, 내무부, 외교부, 사회·주거부는 이 결과에 만족하며, ‘골치 아픈 일’을 덮을 수 있다고 여겼다. 

2015년 5월, 두 번째 정책이 시행됐다. 법률가 카롤린 드크루아가 결성한 전 프랑스군 아프간 통역사와 임시직원 단체가 노력한 결과였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공고를 숨기며 행정상 꼼수를 부렸다. 전 통역사들에게 서류를 준비할 시간으로 불과 몇 주만이 주어졌다. 이 두 번째 정책으로 103명의 아프간 민간인력과 그 가족들이 비자를 받았다. 그러나, 나머지 149명은 확실한 이유도 없이 거절당했다. 그리고 2018년 11월, 세 번째 정책이 시행됐다. 그러나 2015년 거절당한 요청을 재심사하는 데 그치는 조치였다. 결국 51명만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결국 세 번의 정책을 거쳐, 총 800명의 타르주만들 중 프랑스 입국을 허락 받은 이들은 227명에 불과했다.(6) 봉사를 자원한 변호사들의 도움으로,(7) 전 프랑스군 통역사협회는 비자 거절 결정에 맞서 소송을 제기했다. 모든 서류는 프랑스 정부의 비자 심사관이 검토 후 결정하는데, 신청인이 본국에서 얼마나 위협 받는지, 프랑스군에서 어떤 직책을 맡았는지가 주요 고려사항이다. 이는 타당하지 않다. 타르주만이 맡았던 직책에 따라 탈레반에게 보복당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무차별적으로 배신자 취급을 받는다.

 

“그들이 느끼는 위협은 망상에 불과”

프랑스 최고 행정법원인 국사원이 2018년과 2019년에(8) 내린 두 가지 결정은 아프간 민간인력에게 다시금 희망을 줬다. 이들에게 ‘기능적 보호’의 적용을 허가한 것이다. 국가가 채용한 공무원이 임무 수행 때문에 위협을 받을 경우, 국가가 해당 공무원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이를 ‘기능적 보호’라고 한다. 왕의 관료가 고소의 위험으로부터 미리 보호를 받은 것에서 이 ‘기능적 보호’가 유래됐다. 현재는 공무원의 일반 지위를 명시한 ‘르 포르 법’(1983년 7월 11일 제정)에 규정돼 있다. 국사원은 위협받는 아프간 인력이 기능적 보호를 요청할 수 있도록 허가했으며, 외국에서 임시채용된 공무원도 기능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그 영역을 확대했다. 

그 채용계약이 해당지역 법률에 기반한 것이라도, 프랑스의 기능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즉, 프랑스군에서 일했던 아프간 인력은 프랑스 국방부에 ‘기능적 보호’를 요청할 수 있다. 자신이 프랑스군에서 일한 결과 위협에 노출됐고 이로부터 보호받으려면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면 된다. 다음 단계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비자가 거부당할 경우 프랑스 법원에 항의할 수 있다. 비자 거부는 흔히 암묵적으로 행해지는 일이므로, 국방부가 이에 답변하려면 상당히 고전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큰 진전이 있었지만, 국방부의 뻔뻔스러운 농간으로 이 문제는 다시 벽에 부딪혔다. 아프간 인력 문제에 무시로 일관하던 국방부는 이제 태도를 바꿔, 보호 요청을 확실하게 거절하고자 마음먹었다. 국방부는 7명의 법률가를 고용해,(9) 타르주만이 제출한 계약서, 협박편지, 진단서, 신분증명서 등 모든 서류를 샅샅이 뒤져 허위 가능성을 찾아내려고 했다. 기능적 보호 요청을 무마하려는 의도였다. 국방부는 법정에서 태연하게 “아프간 인력이 받는 위협은 과장된 것”이고, 심지어는 “망상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위협이 사실일지라도 과거 그들이 프랑스군에서 맡았던 직무와는 무관하며, 국회(10)와 유럽망명지원사무소(EASO)나 유엔난민기구(UNHCR)에서(11) 조사한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덧붙였다. 

2019년 7월, 프랑스 국사원은 기능적 보호를 허가하는 조건을 명확하게 밝혔다. 이제 위협의 ‘실재성’은 물론, ‘개인성’과 ‘현재진행성’이며, ‘과거 타르주만 직무 수행과의 직접 연관성’을 입증해야 한다.(12) 충족하기 대단히 어려운 수준이다. 간혹 법원이 아프간 인력에게 기능적 보호를 승인하는 결정을 내려도, 국방부가 이를 파기환송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제, 국방부는 아프간 인력의 프랑스 입국을 막으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이런 비겁한 짓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재정 문제는 물론, 불법 이민자나 테러리스트가 유입되리라는 두려움에서다. 

 

프랑스는 잘못에 책임을 질 것인가?

이렇게 불안정한 과정이 길어지면서 실망은 커지고, 아프가니스탄 내에서의 위험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어떤 신청자들은 자비로 아프가니스탄을 떠나기도 한다. 언젠가 낙원에 도달하리라는 희망으로, 위험한 난민의 길을 떠나는 것이다. 이 여정은 때로는 이란, 인도, 터키에서 멈추기도 한다. 터키의 경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수십만 명에 달하는 이민자를 계속해서 출신국(2019년 1월에서 9월까지 3만 2,000명의 아프간인을 본국으로 송환했다) 혹은 유럽 국가로 추방하고 있다.(13) 한번 아프가니스탄에서 나오면 기능적 보호 요청의 기각은 확실해진다. 그럼에도 달아나는 것은, 탈레반의 직접적인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이제 프랑스에 밀입국해 난민 신청을 하는 것밖에 구원받을 방법이 없다. 프랑스군에서 일했던 아프간 인력은 일종의 모순된 상황에 직면한다. 그들에게 비자 발급을 거부하는 프랑스에, 불법적으로라도 도달하면 난민 지위나 부차적인 보호는 확실히 받을 수 있다. 이는 난민 문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프랑스 행정법원(CNDA)이 내리고 있는 결정이다. 타르주만은 이전 고용주인 프랑스군으로부터 버림받고 마땅한 누릴 권리가 있는 보호를 받기 위해 외롭고 험난한 망명길에 오르고 있다. 

2020년 9월부터 이 안건을 조사해온 국회정보팀의 임무는 문제 있는 부분을 종합평가하고 투명성을 재고해 기능적 보호 조치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현행법을 수정해, 국방부가 법의 빈틈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행태를 막아야 한다. 법안 개정을 하지 않으면, 차후 사하라의 사헬지역 혹은 다른 곳에서 프랑스군이 현지채용한 임시인력 문제에서 같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2017년 2월 16일 페이스북에 올린 선거 캠페인 영상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아르키(14)와 아프간 통역사를 비교하며 프랑스가 아프간 통역사에게 저지른 ‘잘못’을 인정했다. 그 잘못이 도덕적인 것이든, 법적인 것이든, 우리는 프랑스가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는지 지켜봐야 한다.  

 

 

글‧앙투안 오리 Antoine Ory 
파리 변호사협회 변호사 

번역‧이정민 minuit15@naver.com
번역위원


(1) Brice Andlauer, Quentin Müller, Tarjuman. 『Enquête sur une trahison française 프랑스의 배신에 관한 조사』, Bayard, Paris, 2019.
(2) 프랑스 국방부 인터넷 사이트 중 ‘mémoire(기억)’ 카테고리
(3) Alain Gresh, ‘Pourquoi l’armée française doit se retirer d’Afghanistan 왜 프랑스군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해야 하는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8년 9월호. 
(4) Georges Lefeuvre, ‘Les trois jours qui ont ébranlé le destin de l’Afghanistan 아프가니스탄 운명을 뒤흔든 3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4월호. ‘Débandade américaine en Afghanistan 평화롭지 않은 아프가니스탄 평화협정 이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0년 4월호. 한국어판 2020년 6월호. 
(5) Serge Slama, 『La protection fonctionnelle au service des Tarjuman 타르주만 임무의 기능적 보호』, Plein droit, n° 124, Paris, 2020년 3월. 
(6) M. Jean-Christophe Lagarde가 한 질문에 대한 국방부의 답변, 국회, 2019년 12월 17일. 
(7) 필자도 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변호사들 중 한 명이다. 
(8) Conseil d’État, n° 424847, 2018년 12월 14일. n°421694, 2019년 2월 1일. 
(9) Quentin Müller, ‘Les interprètes oubliés de la Grande Muette 위대한 침묵에 덮인 통역사들’, <렉스프레스>, Paris, 2020년 3월 5일.
(10) Philippe Meunier, ‘Philippe Nauche, ‘Rapport d’information sur le retrait d’Afghanistan 아프가니스탄 철수에 관한 보고서’, 국회, 2012년 2월 26일. 
(11) 2016년 유럽망명지원사무소(EASO) 연간보고서, ‘Principes directeurs du HCR relatifs à l’éligibilité dans le cadre de l’évaluation des besoins de protection internationale des demandeurs d’asile afghans 아프간 난민신청자의 국제 보호요청 평가관련 피선거 자격에 관한 유엔난민기구의 지도 원리’, 유엔난민기구(UNHCR), 2016년 4월 19일. 
(12) Conseil d’État, n° 430056, 2019년 7월 12일. 
(13) Delphine Minoui, ‘À Istanbul, le piège turc se referme sur les réfugiés afghans 이스탄불에서 터키의 덫에 잡힌 아프간 난민들’, <피가로>, 2019년 9월 24일. 
(14) 알제리 독립전쟁(1954∼1962) 당시 프랑스 편에 가담해 활동한 알제리 출신 군인을 ‘아르키’(Harki)라 부른다. 알제리 독립전쟁이 알제리 민족해방전선의 승리로 끝나자, 알제리에 남아있던 아르키들은 본국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혀 처형당했다. 생존한 소수의 아르키는 프랑스로 피신했으나, 프랑스 정부의 외면과 차별 속에 비참하게 살았다.(-역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