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일을 하셔야 합니다”

복지정책의 덫에 걸린 여성들

2021-01-29     뤼시 투레트 l 기자

2008년, 한부모수당(API)이 능동적연대소득(RSA)에 편입됐다. 이같은 사회복지개혁 이후 정부는 수급자인 싱글맘들을 집요하게 취업전선으로 내몰기 바쁘다. 설상가상으로 정부지원 일자리까지 급격히 축소되면서, 싱글맘들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요구와 함께, ‘좋은 엄마’라는 책무도 감당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오트루아르 지역 퓌앙블레 인근에 사는 부아 베크리 부인은 2000년대 말 남편과 헤어졌다. 50세가 가까운 나이에 남편을 따라 프랑스로 이주할 때까지, 그녀는 내내 가정주부로 살았다. 그러나 베크리 부인은 결국 집을 뛰쳐나왔다. 남편의 폭력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조카는 “(그녀는) 집을 뛰쳐나온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라고 증언했다. 뜬눈으로 며칠 밤을 지새운 부인은 지친 몸을 이끌고 첫째 자녀를 찾아가 몸을 의탁했다. 막내딸은 당시 10세에 불과했다. 막내딸은 당시 어머니와 사회복지사 사이에 오간 대화를 회상했다. 

“사회복지사가 어머니에게 대뜸 하는 말이, 일을 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어머니는 관절염과 당뇨병을 앓고 있고, 프랑스어도 전혀 모르시는데도요. 어머니는 사회복지사를 다시 찾아가 도저히 생계를 잇기 힘들다고 하소연했어요. 하지만 그때도 ‘일을 해야 한다’는 말만 반복하더군요.” 혼자 가정을 책임지는 다른 수많은 여성처럼, 베크리 부인도 꼭 1년 동안 증액된 RSA(능동적 연대소득·실업수당보다 적은 급여를 받고 재취업하는 실업자에게 그 차액을 정부가 보전해주는 제도-역주) 혜택을 입었다. 그리고 1년 후 기존의 RSA로 돌아갔다. 

연령과 무관하게, 자녀를 부양하는 한부모 가정은 기존의 RSA에 일정액이 증액된 사회급여를 받을 수 있다. 일반적인 RSA나 증액된 RSA나, 기본원칙은 기본소득 보장이다. 홀로 자녀를 부양하는 경우 가장 어린 자녀가 3세가 될 때까지, 혹은 이혼시점에 3세 이상 자녀가 있는 경우 1년 동안 증액된 RSA 급여혜택을 누린다. 기타소득은 수령액에서 공제된다. 자녀 한 명을 키우는 한부모는 최대 966.99유로까지 지급받는다. 2018년 말, 200가구가 증액된 RSA 급여혜택을 받았다. 그 중 96%가 여성이었다. 수급자의 절반은 30세 이하였다. 부양 인원으로 치면, 전체 인구의 1%에 해당하는 68만 3,200명이 증액된 RSA 혜택을 누렸다.(1)

 

엄마 역할을 강조하는 API, 노동을 강요하는 RSA

2008년, 증액된 RSA가 1976년 신설된 한부모수당(API)을 대체했다. 처음에는 명칭만 바뀐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많았다. 퓌앙블레에 사는 파리다 부카바 부인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2007년 남편이 어린 두 자녀(1세, 3세)를 두고 세상을 떠났을 때 수입원이 전혀 없었던 그녀는 API를 지급받았다. 베르트랑 프라고나르는 API를 최초구상한 인물 중 한 명이다. 당시 시몬 베유의 부비서실장이었던 프라고나르에 의하면, API만으로 ‘어느 정도 적절한’(2) 삶을 꾸려나가는 것이 가능했다. 신설 당시 이 가족수당은 종일제 일자리의 순 최저임금(3)과 맞먹었다. 

API는 최대 900프랑에 자녀 1명당 300프랑이 추가됐다. API 수당은 일정기간, 즉 프라고나르의 표현을 빌리면 “사회에 복귀할 때까지” 혜택이 주어졌다. 그런 점에서, 이 제도는 수급 희망자들(예나 지금이나 대부분 자녀가 있는 여성이다)에게 노동을 장려하는 것을 필수로 여기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자녀가 있는 여성은 직장에 복귀하기 어렵다”라는 것이 사회통념이었다. 얼마 후 최저통합수당(RMI)이나 RSA에 대해 “경제적 자립이 중요한 목표”로 제시됐다. 하지만 이때도 API에 대해서는 수급자들이 때가 되면 재취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프라고나르도 “여성들이 곧 사회에 복귀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팽배했다”라고 회상했다.(4) 실업률이 전체 활동인구의 3.6%에 불과한 시절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말, 실업률이 10%로 치솟았다. “노동에 대한 동기 저하가 새로운 위험요소로 등장했고,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사회보장제도가 도마에 올랐다.” 프랑스 국립산업예술대학(CNAM) 부교수로 재직 중인 경제학자 안느 에이두가 말했다. 종종 ‘모성급여’로 간주되는 API는 본래 일정한 가계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결국 출범 32년 만에 RSA와 통합됐다. 

프랑스경제전망연구소(OFCE) 소속 경제학자 엘렌 페리비에는 “API와 RMI의 상대적인 구매력은 불리한 지표 반영 방식 탓에 시간이 갈수록 악화됐다”(5)라고 지적했다. 즉 SMIC(슬라이드제 전직종 최저임금)이 아닌 물가를 반영했던 탓이었다. 오늘날 자녀 1명을 부양하는 한부모 가정은 최대 966.99유로에서 주택지원수당을 공제하면 831,44유로를 받는다. 즉 API가 최초 도입됐을 당시 수준, 종일제 최저임금에 준하던 금액과는 거리가 한참 생긴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복귀’는 요원한 일이다.

API가 여성이 종일제로 온전히 어머니 역할에 전념하도록 장려했다면, RSA는 노동을 강조한다. RSA 수급자는 ‘사회편입’, 즉 노동을 약속해야만 하는 것이다. 증액된 RSA든 아니든, RSA 수급자에게는 오늘날 구직활동 의무가 명시된다. “우리는 신규 수급자에게 체계적으로 권리와 의무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려고 한다”라고 오트루아르 지역 RSA 담당자 마르틴 알리베르가 설명했다. 수급자는 ‘상호약정’을 체결하고, 분기별로 소득을 신고해야 한다. 

다른 농촌지역 도의회 소속 사회복지사인 프랑수아즈 게랭은 ‘활성화 정책’(적극적 구직활동을 해야만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 자신의 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확신했다. “사회복지는 뒷전이고 오로지 고용만 중시되는 겁니다. 이제는 RSA를 수령하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앞으로 무슨 일을 할 것인지 물어봐야 하죠.” 알베르도 똑같은 지적을 했다. “이 제도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경제적 자립수단을 빼앗는 것입니다.”

노동시장에 초점을 맞춘, 이런 정책 변화는 여성 수급자를 가정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의 간극은 커지고 있다. 일반적인 RSA든, 증액된 RSA든 수급자들을 ‘아무 일터에나’ 내모는 경향이 있다. RSA를 수령하는 싱글맘들은 대개 젊고 직업숙련도가 낮다. 그런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퓌엉블레는 도청이 소재하고 있는 행정중심지로 생산업체, 즉 공장이 드물다. 저숙련 여성에게 취업가능한 분야는 보건업이나 요식업인데, 대개 저녁이나 야간 근무가 많은 업종이다. 즉, 어린 자녀가 있는 여성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더욱이 직업훈련기관도 드물다. 결국, 여성들은 면대면 서비스나 청소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일자리는 노동조건이나 지위가 상당히 불안정하다”라고 에이두가 지적했다. 

 

성실한 노동자, 충실한 엄마… 

이중의 부담에 시달리는 여성들

보육문제와 약한 구직 네트워크를 지닌 이 여성들에게, 일을 하라는 요구는 큰 난제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2018년 에두아르 필립 총리(30% 축소)와 이어 2019년 장 카스텍스 후임 총리(8% 축소)가 정부지원 일자리를 축소하면서 ‘재앙’과 가까운 사태가 벌어졌다고 게랭이 평가했다. 시청이나 학교 등에서 일하는, 1~2년짜리 계약직 파트타이머는 그나마 싱글맘들에게 가정생활을 병행할 수 있는 일자리였다. 

하지만 이제는 심지어 탄력적인 노동시간 조정과 노동자 관리로 큰 도움을 주던 ‘자활작업장’마저 정규직·계약직·임시직 혹은 직업훈련 등에 대해 ‘긍정적인 고용 진출 성과’를 수치로 증명해야만 하는 실정이다. 대개 노동시장 진입은 가장 능력이 좋은 유망한 기초생활수급자의 몫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반면 싱글맘들에게는 취업장벽이 높고, 보육문제가 늘 걸림돌이 된다. 보육에 대한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여성들은 일을 포기해야만 한다. 노동시간이나 근무조건이 수시로 바뀌는 일을 할 경우, 체계적으로 보육계획을 세우기 어렵다. 또한 대중교통수단이 열악한 지역에 거주하는 이들은 운전면허가 있어야 일을 할 수 있다. 

1989년 설립된 단체 ‘노동편입교육’(FIT)은 사회적 취지에서 설립된 운전학원이다. 이 단체가 운영하는 플랫폼 ‘모빌리테 오트루아르’의 관리자인 카롤 라딕스에 의하면, 이 학원에서 연수를 받는 사람의 40%는 싱글맘이다. “싱글맘은 대개 자신감이 부족합니다. 과다한 스트레스가 운전연수에 걸림돌이 됩니다.” 이 단체는 최대한 싱글맘을 배려해 목요일과 방학기간을 제외한 낮 시간대에 운전교습을 실시하고 있다.

“일부 임시직 알선업체의 경우 운전면허증이나 차량이 있어야만 등록이 가능하고, 면허증이 없으면 가사도우미 직업훈련도 받을 수 없습니다. 청소도우미의 경우 면허증이 없으면 주당 5~6시간 밖에 일할 수 없지만, 면허가 있으면 더 많은 시간을 일할 수 있죠.” 라딕스가 이같이 증언했지만, 면허를 취득해도, RSA만으로는 자동차를 구입하기가 어렵다. 직원들에게 차량을 빌려주는 일터도 있지만, 임대료를 임금에서 공제한다.

한편 여성들은 가정 밖에서는 일해야 한다는 요구를, 가정 안에서는 ‘좋은 엄마’가 돼야 한다는 요구를 감당해야 한다. 15년째 5명의 자녀를 키우며, RSA와 자활작업장(Chantier d'insertion, 노동능력이 낮은 취약계층에게 사회통합을 목적으로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노동능력을 향상하고 노동시장에 진입할 준비를 하게 해준다-역주)과 콜센터를 전전하고 있는 56세의 크리스틴 주르드는 자녀들이 다니는 여러 학교의 교무주임들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학교에서는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교무주임들이 언제나 ‘싱글맘 가정이 다 그렇다’라는 말을 반복합니다.” 가정 심리치료상담가인 장프랑수아 르 고프도 이같이 지적했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사람들은, 아버지의 부재, 나아가 “권위의 부재”(6)를 운운하며 가정의 형태를 문제 삼기 일쑤라는 것이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엘린 페리비에는 API와 RSA의 통합이 결국 “전통적인 가정 모델의 강화”를 초래하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페리비에 연구원은 특히 가정의 형태에 따라 여성에 대한 처우가 달라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남편이 있는 여성은 가정 밖에서 노동을 해야 한다는 제약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주부로서의 노동역할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이 없는 여성은 금세 ‘활성화정책’(노동연계 사회복지정책)의 표적이 된다.”(7) 우리 사회는 여성이 배우자나 동거인의 소득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것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반면 남편과 헤어진 여성들이 국가연대에 의존하는 것은 좋지 않게 본다. 이 여성들은 생존하려면, 신속히 재혼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인가?

오트루아르 지역에서 13세 아들과 사는 싱글맘 실비 쇼드롱은 다른 종류의 연대에 희망을 걸고 있다. 그녀는 지역 내에서 활발한 ‘노란조끼’ 운동에 동참 중인데, “어려운 상황에 처한 싱글맘들이 알찬 교류를 할 수 있어 좋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고, 특히 자가격리 기간 동안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 

몇 달 전부터 그녀는 단기계약으로 야간근무를 전전하고 있다. 운동가 친구들을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포괄적 보안법’(경찰관의 얼굴이나 신원을 알 수 있는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유포할 경우, 최대 징역 1년이나 6천만 원 벌금형에 처할 수 있게 한 법률-역주) 규탄 시위를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시위가 본격화되면, 더 어려워질 각오로 일을 그만두고 사회운동에 뛰어들 계획이다. 

“운동에 제대로 불이 붙으면, 나는 다시 투쟁에 동참할 것이다.”  

 

 

글‧뤼시 투레트 Lucie Tourette
기자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번역위원


(1) ‘Minima sociaux et prestation sociales-Ménages aux revenus modestes et redistribution - Edition 2020 최저생계비와 사회급여-저소득층 가정과 재분배-2020년판’, DREES(보건부 산하 조사연구통계평가국), 파리, 2020년.
(2), (4) Clément Helfter, ‘La création de l'allocation parent isolé. Entretien avec Bertrand Fragonard 한부모수당(API) 제정. 베르트랑 프라고나르와의 인터뷰, 『Informations sociales』, 제157호, 파리, 2010년.
(3) 슬라이드제 전 직종 최저임금제(SMIC)
(5), (7) Hélène Périvier, ‘La logique sexuée de la réciprocité dans l'assistance 사회부조 상호성의 성적 메커니즘’, <Revue de l'OFCE 프랑스경제전망연구소 저널>, 제114호, 파리, 2010년.
(6) Jean-François Le Goff, ‘Les familles monoparentales sont-elles les oubliées des thérapies familiales? 한부모가정은 가정심리치료상담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가?’, 『Thérapie familiale 가정치료』, 제27권, 제3호, 제네바, 200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