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당의 황금빛 야망

2011-08-04     올리비에 시랑

독일 녹색당은 오랜 세월 국회와 동떨어진 색다른 정치를 하기 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1960년대 비판 정신의 후계자인 녹색당은 원전 반대 투쟁을 벌이며 새로운 형태의 생활을 경험하게 했다. 녹색당 지도자들은 강력한 선거 지지 결과에 고무돼 생태·경제·제도의 문제를 통합하려 한다. 이런 통합이 함부르크에서 놀라운 결과를 낳고 있다.

독일 함부르크의 가장 세련된 지역은 가장 자연친화적인 지역이기도 하다. 그러나 식빵 조각을 하나씩 비스듬히 쌓아놓은 것 같은 전위예술 건축물인 16층짜리 마르코폴로타워 밑에 서면, 그런 것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빌딩의 중형 아파트 한 채는 370만 유로에 거래된다. 자연 사랑은 최근 이 건물 옆에 새로 본사를 개장한 세계적인 농산물·화장품 업체 유니레버 빌딩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건축 면적이 2만5천m²에 달하는 이 건물은 전력 소모가 크지 않다. 안내를 맡은 담당자는 “건물 전체가 엄격한 환경규범에 맞게 설계됐다”고 자랑했다. 그는 “현관홀엔 갓 배출한 열을 회수하는 시스템을 갖췄다”며 거대한 유리 천장을 가리켰다.

마르코폴로타워와 유니레버 본사는 함부르크의 새로운 상업지구인 하펜시티의 명물로 부상했다. 이 상업지구는 엘베강변, 슈파이허슈타트의 옛 물류창고 터 155ha에 고급 사무실과 아파트를 접목해 조성되고 있다.

두바이를 모델로 한 이 북유럽 버전이 2025년 완공되면 4만 개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창조적 계층’이라 부르는 주민 1만2천 명을 수용하게 될 것이다. 함부르크시가 지원한 3억5100만 유로로 건설 중인 고급 오페라하우스인 엘브필하모니는 이 지역의 비즈니스 문화를 책임질 것이다. 이곳의 기중기는 바삐 움직이고 있지만, 조금 떨어진 곳에 이미 준공된 건물의 테라스나 값비싼 라운지 바에선 고위 간부들이 타이식 후식을 먹거나 와인을 마시며 담소하고 있다.

함부르크의 ‘친환경적’ 마천루

그러나 이런 ‘유럽 최대 도시 프로젝트’가 영국 런던의 도크랜드처럼 은행과 부동산 개발업자의 술책 속에 진행돼 지속적인 개발 원칙과 마찰을 빚을 것이라는 편견은 금물이다. 오히려 이 프로젝트는 성공을 거두고 있다. 53살의 엔지니어인 해럴드 뮐러는 “지열 난방, 오염이 거의 없는 건축 자재, 녹지 공간, 보행자와 자전거도로까지, 이 구역은 지속성 측면에서 선구자 격”이라며 열변을 토한다. 그는 식당 칼스에서 절인 청어를 시켜 먹으며 “이 집의 또 다른 특별 요리인 프랑스 페리고르 지방의 송로버섯을 곁들인 리소토 아르보리오보다 멋은 덜하지만 맛은 더 좋다”고 했다. 하펜시티에 사는 이 엔지니어는 1997년부터 녹색당을 지지해왔다. “녹색당이 이 프로젝트를 추진한 것은 아니지만 성실히 지원해줬다. 그들이 없었다면 이 지역이 친환경적으로 변화하지 못했을 것이다.”

‘환경 2011의 유럽 수도’인 함부르크는 분명 녹색당의 본거지다. 녹색당은 함부르크시가 주도한 사업 프로젝트 경영단에 두 번 참여했다. 1997∼2001년에는 사회민주당(SPD)과 함께, 2008∼2010년에는 보수세력인 기독민주연합(CDU)과 함께 참여했다. 한자동맹(13~15세기 독일 북부 연안과 발트해 연안의 여러 도시 사이에 이뤄진 도시 연맹)의 수장 격인 이 도시에서 하펜시티만큼 이들의 경영 자문이 잘 반영된 곳은 없다. 심지어 거리 이름에 녹색당 자문위원들의 이름을 새겼다. 녹색당은 공공 도로에 붙일 이름의 남녀 성비도 존중하라고 요구했다. 함부르크 녹색당 지부장 카타리나 페제반크는 “물론 이곳은 고소득층을 위한 지역이다. 건물들이 창의적인데, 도시 이미지 형성에 아주 좋다고 생각한다”며 열변을 토했다. 2002∼2008년 분데스타크(연방하원) 의원을 지낸 그녀의 동료 안야 하즈덕도 “건물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지만, 이것이 꽤 성공적인 사업이었다”는 데 동의했다. 그녀는 “우리가 정부에 있을 때 가장 신경 쓴 부문은 도시 주민이 모두 이곳에 와서 산책할 수 있게 개방하겠다는 보장을 받아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유니레버로부터 시민의 로비 접근 허락을 받아냈다”고 했다.

이 지역은 백만장자들의 사회주의적 공동생활체, 즉 돈은 많지만 친절하고 에너지를 절약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다. 이것을 현재 독일을 강타하고 있는 ‘친환경 혁명’의 예견된 결과로 봐야 할까? 미디어 논객들은 벌써 2013년에 녹색당 총리 탄생을 점치고 있다. 최근 몇 달 동안 녹색당은 믿기지 않을 만큼 눈부신 도약을 했다. 이들의 도약을 위해 매스컴 논객들이 앞장섰다. 2010년 내내, 이들은 앞다퉈 여론 공세를 펼치며 녹색당의 지지도를 끌어올렸다. 덕분에 2009년 12월 베를린에서 이들에게 투표하겠다고 의사를 밝힌 유권자의 비율이 19%이던 것이 2010년 10월엔 30%까지 상승했다. 언론들이 흥분했다.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녹색당의 기적”이라고 했고, 주간지 <디 차이트>는 “녹색당이 전례 없이 뜨고 있다”고 했다. 잡지 <스턴>은 녹색당을 “복지당”이라 일컬었고, 일간 <디 벨트>는 “벌써 총리를 꿈꾸는 녹색당”이라며 열광했다. 게다가 녹색당은 앙겔라 메르켈 정부에서 자민당(FDP) 소속으로 잠시 국방장관을 지낸 독일 정치계의 옛 총아 카를테오도어 추 구텐베르크가 박사 논문 표절 의혹 공방에 휘말리며 사임하자, 급격히 추락하는 FDP의 표를 잠식했다.

‘녹색당의 기적’은 투표로 이어졌다. 지난 3월 27일, 녹색당은 전통적인 보수당 지역으로, 독일에서 가장 풍요롭고 인구가 많은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선거에서 24.2%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는 예전 기록(2006년 11.7%)을 두 배 이상 뛰어넘는 수치다. 이들은 CDU에 이어 두 번째 정치세력이 됐다. 또한 지지율에서 동맹관계인 SPD를 간발의 차이로 누른 녹색당은 두 당 간 연합에서도 주도권을 쥐며, 예전의 ‘적-녹 연정’을 ‘녹-적 연정’으로 바꿔놓았다. 독일 역사상 처음으로 녹색당 소속 주(州)총리가 배출됐다. 날씬한 몸매, 어수룩한 외모, 스포츠형 머리, 그리고 일요일엔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60대 인물 빈프리트 크레치만은 독일 전역에서 벼락 스타가 됐다. TV 방송들은 그에게 ‘희망 전도사’와 ‘올해의 정치 돌풍 주역’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비싸지만 창의적 건물, 그럼 다 된 것

어떤 사건의 중요성은 주가에 미치는 영향을 기준으로 측정된다. 녹색당이 승리한 다음날, 독일 핵에너지의 주요 두 공급업체(E.on과 RWE)의 주식을 비롯해 다임러, BMW, 폴크스바겐 같은 자동차 업체의 주식은 소폭 하락했다. 반면 독일의 주요 10대 친환경기업 중 하나인 오코닥스의 주식은 8%포인트 상승했다. 그렇다고 일대 격변이 일어나진 않았다. 크레치만이 선거에서 승리한 당일 저녁 “우리는 약속한 대로 부르주아 사회로 가는 길을 택할 것”이라며 주식시장을 안심시키자, 별로 친환경적이지 않은 기업들의 주가가 큰 폭으로 재반등했다.

30년 전만 해도 주가 폭락을 막으려면 이런 예방 조처가 꼭 필요했을 것이다. 그때만 해도 녹색당은 서독의 골수 반공산주의 급진좌파를 대변했기 때문이다. 녹색당이 갓 출범한 1980년대 초반엔 CDU가 무장투쟁과 헌법에 위배되는 이념에 동조한다고 비난받던 녹색당의 해체를 요구했다. ‘부르주아 사회’가 사회정의와 환경보호를 위해 최일선에서 투쟁하던 ‘야만적인 녹색당’에 눈살을 찌푸린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 딴판이다. 자신을 좌파도 우파도 아니라고 선언한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새 지도자는 ‘온건 중도’와 뜻을 같이하겠다고 천명한(1) 이 지역 CDU의 거물 에르빈 토이펠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밀월이 전혀 이상한 게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가 최초로 ‘흑-녹 연정’(기민당과 녹색당 간 연정으로, 독일에서 우파를 상징하기도 함)을 시도한 독일 제1의 무역도시인 함부르크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2013년 총선에서 기민당과 녹색당 간 연정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녹색당 돌풍, 2013년 총리 탄생할까

오는 10월 베를린시장 선거 때, 이처럼 얽히고설킨 시나리오가 시험 가동될 수도 있다. 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 중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는 분데스타크 녹색당 대표 레나테 퀴나스트는 중도좌파나 우파와의 연정 가능성을 결코 배제하지 않는다. 또 다른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전임 베를린 시장 에버하르트 디프겐(CDU)은 발등에 붙은 불을 끄기 위해 “우리는 녹색당과 함께 정부의 프로젝트를 구상할 만큼 공통점이 많다”며 진화에 나섰다.(2) 이에 일간 <쥐트도이체 차이퉁>(2010년 5월 11일치)은 “녹색 열기가 보수층으로 확산되고 있다. 기업인과 부자들이 녹색당에 은근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며 비웃었다.

물론 ‘후쿠시마 효과’가 녹색당의 지지율 상승에 자양분이 된 건 사실이다. 원전에 반대하는 국민을 녹색당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그러나 유타 디트푸르트는 원전 폐쇄 프로그램이 이들의 입지를 공고히 한 것은 분명하지만, 일본의 방사능 누출이 ‘자전거 타는 자유당’으로 변신한 야당(녹색당)을 해명해주는 것은 아니라고 비난했다. 녹색당의 공동 설립자이지만 1991년 당을 등진 그녀는 자신의 저서(3)에서 옛 동료들의 발언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시사평론가인 일부 동료들은 마치 자신이 화성에서 25년간 살다온 외계인처럼 굴며, 친환경주의자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두고 보자, 우선 저들에게 정권을 맡겨보자고 말한다. 저들의 태도가 경악스러운 것은 녹색당이 이미 여러 번 정권을 장악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녹색당의 정권 참여 목록은 길다. 7년간(1998~2005) 게르하르트 슈뢰더 연방정부에 참여한 것을 비롯해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서 11년(1995~2005, 2010~현재), 헤센주에서 10년(1985~1987, 1991~1999),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에서 9년(1996~2005), 함부르크에서 6년(1997~2001, 2008~2010), 니더작센주에서 4년(1990~1994), 작센안할트주에서 4년(1994~1998), 브레멘주에서 4년(2007~현재), 자르(2009~현재)와 베를린에서 각 2년(1989~1990, 2001~2002)간 공동정부를 운영했다. 디트푸르트의 셈을 따르면, 녹색당은 총 59년간 정권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그녀는 “언론들이 녹색당을 마치 정권 운영 경험이 없는 신당 취급을 한다. 이들은 녹색당이 정권을 잡으면 무슨 행동을 할 것인지, 마치 대단한 서스펜스를 지켜보듯 숨죽인 채, 녹색당의 정권 참여를 지켜봤다. (중략) 녹색당의 59년간 정권 경험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지난 2월 함부르크 유권자들은 녹색당 집권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행동으로 분석해 보여줬다. 이들은 여당(흑-녹 연정, CDU와 녹색당은 각각 21.9%와 11.2% 득표)을 응징하고, 독일 전 지역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SPD(48.3% 득표)에 권력을 돌려줬다. 하펜시티의 산책로를 제외하면, 녹색당은 딱히 치적으로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이들은 2008년 우파와 연정을 체결하며 전차 도입, 석탄 화력발전소 포기, ‘모든 이들을 위한’ 특별 초등학교 개설을 목표로 한 야심찬 교육 개혁을 선거 공약으로 발표하지만 어느 것도 지키지 못했다. 전차 도입 계획은 2008년 경제위기로 예산이 계속 삭감되면서 폐기됐고, 석탄 화력발전소 건설 계획은 법원 판결에 따라 그대로 유지됐다. 학교 개혁은 지난해 7월, 주민투표를 거쳐 무산됐다. 흑-녹 연정은 잇단 정책 실패로 임기 2년을 남겨둔 채 공중분해됐다.

“우린 부르주아 사회 선택”

그럼에도 녹색당은 함부르크 지역 우파 거물들에겐 좋은 추억거리를 선사했노라 자부할 수 있다. CDU의 함부르크 수장 그레고르 야키는 녹색당과 자신의 순정을 상기하며 “친환경적이란 삶의 맛을 느끼는 것이며, 우리가 공유한 가치이기도 하다. 우리는 미래에 대해 같은 걱정을 하고 있다. 우리는 기독교적인 의미에서 삶을 존중하고, 녹색당은 좀더 현대적인 의미에서 지속적인 개발을 추구하는 삶을 존중한다. 녹색당은 균형 잡힌 경제정책의 필요성을 SPD보다 더 잘 수용했다”고 열변했다. 그가 말하는 ‘삶의 맛’은 서정성이 떨어지는 예산 편성 분야에도 적용됐다. 연정 체결 몇 달 뒤 금융위기가 닥치자, 녹색당과 기민당은 간단한 눈빛 교환만으로, 가령 보육원비 같은 공공지출이 과다 책정됐다며 이를 제한하는 데 합의했다. 동시에 HSH 노드뱅크의 밑 빠진 독에 15억 유로를 투입하고 해운그룹 하파크로이트의 구조에 나서며 투자자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조처를 취했다. 야키는 “분위기상 신뢰 회복이 꼭 필요했다. 녹색당도 이런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고 평했다.

그렇더라도 안보정책 같은 몇몇 사안에서는 두 당이 마찰을 빚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젊은 녹색당이 CDU만큼 신뢰할 만한 공무집행을 할 수 있을지 의심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녹색당의 페제반크는 “국내 보안 문제는 우리 동맹인 보수주의자들에게 맡겨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녀의 분신인 CDU의 야키도 “우리가 공공질서 부문에서 꽤 엄격한 태도를 취했지만 녹색당은 이를 전면 수용했다”고 말했다. 요컨대 야키는 약간 씁쓸하지만 CDU의 지지 기반인 일부 중산층이 현재 녹색당에 표를 주려 한다고 인정한 셈이다.

풍부한 연정 경험… 이미 집권 체질

서민층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은 (녹색당의) 유혹에 덜 노출돼 있다. 지난 2월 선거 때, 녹색당은 부자 동네 블란케네제에서 9.2%를 득표한 반면, 유권자 2명당 1명꼴로 투표를 보이콧한 가난한 동네 로텐부르크소르트 외곽에선 6%밖에 득표하지 못했다. 이 지역엔 자전거도로나 지열 난방시설을 갖춘 주택은 없고, 석유 난방을 하는 지저분한 정육면체 콘크리트 건물과 문 닫은 상점들뿐이다. 인도에서 스쿠터를 손보고 있던 32살의 실업자 요하킴 리프키는 “내가 바보인가, 녹색당을 찍게?”라며 격분했다. 그는 실업수당과 복지수당을 통합한 사회보장수당인 하르츠4(Hartz IV)의 수당을 받는 670만 독일인 중 1명이다. “한 달에 359유로를 받는다. 어쩔 수 없어 거의 공짜로 일하고 있다. 지금은 고용센터가 날 가만 놔두지만, 두 달 전만 해도 나더러 2주 동안 양로원에 가서 설거지를 하라고 했다. 거절하면 수당을 끊으니 별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내가 그깟 것을 받자고 투표하겠는가?”

리프키가 말한 ‘그깟 것’은 2005년 SPD와 녹색당이 실행한, 유럽에서 강제성이 가장 강한 실업자 수당이다. 하르츠4법은 수당 수령자에게 강제로 일당 1유로짜리 일을 시키고, 이들이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집에 거주한다 싶으면 이사를 요구한다. 2004년 6월 30일, 하르츠4 법안이 제출됐을 때, 독일 보수 일간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1949년 이후 가장 강력한 복지수당 차단 정책”이라고 논평했다. 폴크스바겐그룹의 인사담당관이자 슈뢰더 전 총리의 친구인 페터 하르츠가 개발해 그의 이름이 붙은 이 개혁안(4)은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국가의 모델이 되었다. 하지만 카를스루에의 헌법재판소는 수당 수령자들이 하찮은 수준의 단일 수당으로는 자녀들의 기본적 욕구도 충족할 수 없다며 하르츠4 법안에 부분적인 무효 판결을 내렸다.

함부르크 녹색당 쪽에 하르츠4 개혁안에 대한 얘기를 꺼냈을 때, 몇 가지 놀라운 답변을 들었다. 페제반크는 “수당 수준이 너무 낮은 것은 맞다. 하지만 복지수당과 실업수당을 통합하는 아이디어는 훌륭했다”고 말했다. 토론이 격해지자, 이 젊은 녹색당 의원은 “어쨌든 이런 개혁은 적-녹 연정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만약 CDU와 FDP가 시도했다면 혁명이 일어났을 것이다”라는 결정적 논거를 제시했다. 이것은 악의는 없지만 현대 녹색정책이 순진하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경제와 생태는 서로 잘 통한다’는 확신에 고무된 함부르크 녹색당은 15년 전부터 완벽한 행동 변화를 보여왔다. 오랫동안 좌파에 몸담은 함부르크 녹색대안당인 ‘녹색대안명부’(GAL·Grün Alternative Liste Hamburg)의 일부 창당 회원들은 1999년 연방 당국이 코소보전쟁 참여를 승인하자 이에 항의하기 위해 문을 박차고 나갔다. 평화주의의 포기와 이후 코소보전쟁에서 흘린 피는 고등교육을 받고 가정형편이 넉넉한 신세대와, 정부기관이나 기업에도 호의적인 신세대 녹색 활동가들을 많이 양산했다. 함부르크 적-녹 연정의 대변인인 여성의원 안야 하즈덕은 이런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인물이다. 심리학자인 그는 1995년 당원증을 발급받기 전까지는 녹색당을 찍은 것 말고는 한 번도 녹색당을 위해 시위해본 적이 없다. 2002년 분데스타크 의원으로 당선된 뒤, 그녀는 동료들과 똘똘 뭉쳐 부자들에게 부과된 부유세 감축을 승인했다. 이후 부유세 세율은 슈뢰더 집권 기간에 53%에서 42%로 낮아졌다. 그는 “좌·우파의 도식이 내게 믿음을 준 적이 없다. 녹색당이 경제개방을 한 것은 잘한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보수당의 복지 축소를 거들다

16년 동안 녹색당에서 일하다 1999년 당을 등진 노르베르트 하크버스크 판사는 “안야 하즈덕은, 열정도 없고 사회문제에 무관심한 실용주의 노선이 전국을 강타하면서 순풍을 타고 있는, 신녹색당의 전형적인 의원”이라고 꼬집었다. 하크버스크는 현재 독일 좌파당(Die Linke) 소속 시의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함부르크는 독일에서 부유한 도시 중 하나이며, 가난한 사람이 가장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이곳 어린이 5명 중 1명은 가난 속에서 살고 있지만, 헐벗은 이들 가족은 투표를 아예 안 하거나 녹색당을 찍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하크버스크가 예전 동료들에게서 느끼는 가장 큰 불만은 세금 문제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다. 독일 경제잡지 <마나거>(Manager)가 최근 매긴 순위를 보면, 독일의 300대 부호 중 26명이 함부르크에 산다. 이들의 재산은 함부르크시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에 해당하는 440억 유로에 달한다. 하크버스크는 “함부르크는 유럽의 환경 수도가 맞지만, 뭐니뭐니 해도 독일의 합법적인 탈세 수도다”라고 일갈했다. 함부르크엔 세무조사요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2010년, 국세청은 100만 유로 이상의 연간 소득을 신고한 납세자 627명 중 31명에게만 세무감사를 했다. 추징을 못한 세금이 수백만 유로에 달한다. 하크버스크는 “우리가 세무요원 150명을 더 충원하자고 요구했지만, 녹색당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5)

등 돌리는 소외계층… 그럼 부자는?

그렇다면 다음 선거에서 마르코폴로타워에 거주하는 부자들이 녹색당을 찍을 것이란 기대를 해도 될까? 확실치 않다. 자연경관이 항구의 물속에 잠기는 갑(岬) 위에 들어선 타워는 입주민들에게 여객선 선착장이 내려다보이는 전망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건축설계자들이 놓친 것이 있다. 여객선들이 뿜어내는 유독가스가 타워의 테라스와 유리창 쪽으로 날아오는 것이다.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조사를 통해 “주민들이 트럭 5만 대가 시속 130km로 달리며 일으키는 먼지뿐 아니라 이산화유황과 이산화질소, 그 밖의 발암물질이 포함된 공기를 신선한 공기로 알고 마시고 있다”고 보도했다.(6) 호화 유람선들은 과연 백만장자들을 중독시켰을까? 정말이지, 지속적인 개발은 숱한 놀라움을 감추고 있다.

글•올리비에 시랑 Olivier Cyran

번역•조은섭 chosub@ilemonde.com
파리7대학 불문학 박사로 알리랑스 프랑세즈에서 강의 중. 주요 역서로 <착각>(2004) 등이 있다.

<각주>
(1) 독일 타블로이드판 신문 <Tagblatt>의 인터넷판, 2011년 4월 14일.
(2) 독일 일간 <타게스슈피겔>, 베를린, 2010년 11월 7일.
(3) Jutta Ditfurth, Krieg, Atom, Armut의 공동저서 <Was sie reden, was sie tun, die Grünen>, Rotbuch, 베를린, 2011.
(4) 2007년 1월, 브룬스빅 경범재판소는 페터 하르츠에게 폴크스바겐사의 감사위원들에게 뇌물·여행·성상납 제공죄로 징역 2년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5) 독일에서 세무조사는 주 공공기관인 랑더(Länder)의 소관이다.
(6) <Luxusprobleme in Hamburg> <Der Spiegel>, 함부르크, 2010년 3월 5일.


돈방석에 앉은 요슈카 피셔‘들’

최근 독일 녹색당이 선거에서 성공하고 여론조사에서 터무니없이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자, 2013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것으로 예상되는 요슈카 피셔에 관한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독일 언론의 총아인 그는 오랫동안 ‘독일에서 가장 대중적인 정치인’이란 칭찬을 들었다. 독일 부총리와 슈뢰더 정부 때 외무장관을 지낸 그는 앙겔라 메르켈의 뒤를 이을 가장 유력한 좌파 인사로 평가받고 있다. 당사자는 정계 복귀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지만, 그의 부정은 좋은 음식과 고급 와인 애호가인 이 ‘현명한 노인’(피셔)에 대한 언론 논객들의 열정만 돋우고 있다. 그에게 아첨하긴 우익 신문들도 매한가지다. 세계 최대 출판그룹 스프링거가 경영하는 보수 언론의 대명사 일간 <디 벨트>는 ‘녹색당도 총리를 배출할 수 있을까?’란 사설에서 “요슈카 피셔는 지도자로서 거의 바이블적인 자질을 입증했다”며 “피셔 말고는 방도가 없다. 그런데 그는 원치 않는다. 만일 그가 원한다면”(1)이라는 유혹적인 글로 마무리지었다.

녹색당 경력 팔아 에너지기업으로

만약 독일이 가장 탐내는 생태주의자가 고민 끝에 정치에 복귀한다면, 그것은 단지 그가 겸손해서 혹은 (정치 복귀 종용에) 지쳐서만이 아니라, ‘바이블적인’ 지도자의 자질을 즐거운 은퇴 생활에 바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피셔는 2005년 선거 패배로 조기 퇴진하며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에 합류한 친구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전철을 밟아, 집권 기간에 작성한 인맥수첩을 들고 다국적기업을 상대로 돈벌이를 하고 있다. 그는 컨설팅 회사 요슈카&코(CO)를 설립했다. ‘CO’는 1995~2004년 분데스타크 녹색당 대변인을 지낸 동업자인 디에트마 후버를 의미한다. BMW와 지멘스, 그리고 유럽의 거대 상설 할인마켓인 레베(Rewe) 등이 고객이다. 게다가 이 회사는 1년 전부터 투르크메니스탄·이라크·터키의 지도자들과 함께 나부코(Nabucco) 유럽 가스관 프로젝트 컨소시엄을 추진하고 있다. 공직을 떠나 사기업을 운영하는 전직 독일 외무장관에겐 적격인 프로젝트다.

사람들이 그런 수완으로 얼마나 벌고 있느냐고 물으면, 환경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그는 “난 국세청에만 내 비밀을 털어놓는다. 이것이 내가 최근에 변해서 얻은 특혜다”라고 응수한다.(2) 피셔는 되도록 매들린 올브라이트에겐 비밀을 털어놓는다. 빌 클린턴 정부의 국무장관 출신이 설립한 컨설팅 회사 올브라이트그룹(LLC)이 2008년부터 LLC를 위한 전세계 투자자와 정부 간 ‘대화’의 가교 역할을 자신의 독일 동료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그가 받는 자문료도 기밀이지만, 사람들은 이 액수가 독일 총리의 월급보다 적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더군다나 1970년대 혁명적 투쟁 집단에서 활동했던, 이른바 프랑크푸르트의 ‘경찰 사냥꾼’인 피셔가 그의 동료인 환경운동가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지는 않는다. 권력의 맛을 본 이들은 ‘색다른 정치’를 펴고 있다. 이를테면 이들은 자신의 의원 경력을 재계의 문을 여는 ‘마법의 열쇠’로 활용하고 있다. 2006년, 슈뢰더 정부에서 보건부 장관을 지낸 안드레아 피셔(요슈카 피셔와 인척 관계가 없음)는 제약업계 로비 전문 홍보 자문회사인 플레온(Pleon)에 합류했다. 그는 현재 보건업계를 상대로 ‘독립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베를린 녹색당 대변인 출신인 그의 동료 노베르트 셸베르크가 그를 돕고 있다. 셸베르크는 동시에 주요 고객인 약사연맹(VFA)의 이익도 옹호하고 있다.

미샤엘 베스퍼는 온라인 포커게임을 좋아한다. 지난 3월, 전직 분데스타크 녹색당 사무총장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주택건설장관을 지낸 그는 잡지 <스폰서스>(Sponsor’s)와 인터넷 도박업체의 후원으로 열린 ‘최고경영자 포럼’에 참석했다.

그는 모든 체류비를 후원받아 독일의 부유층이 찾는 휴양 명소 질트섬에 위치한 호화 호텔에서 테니스계의 전 영웅 보리스 베커와 니더작센주의 경제장관인 자유주의자 외르크 보데와 함께 휴양을 즐겼다. 이런 횡재를 어떻게 거절할 수 있을까?

녹색당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돈방석에 앉은 녹색당원들’이라 꼬집는 피셔 추종자들은 도를 넘어 확산되고 있다. 미국 그룹 마스인코퍼레이티드는 ‘건강·영양·지속적인 개발’ 부서 총괄을 2005년까지 슈뢰더 정부에서 소비자보호 국무장관을 지낸 전 녹색당 의원 마티아스 베르닝거에게 맡겼다. 분데스타크 녹색당에서 기부금 조성과 기업 관계를 담당했던 전 녹색당 의원 마리안 트리츠는 현재 독일 담배산업의 로비스트로 일하며 흡연자 보호를 책임지고 있다. 그녀는 채용 당시 담배를 옹호하는 것이 “무척 흥분된다”고 했다. 하지만 모험을 좋아하는 그녀에게 향후 원자력산업에도 뛰어들 생각이 있느냐고 묻자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실망스러운 답변을 했다.(3)

얼마를 버느냐고? 그건 비밀!

그렇다고 생태학자들이 핵에너지를 터부시하는 것은 아니다. 2008년, 13년간 분데스타크 녹색당 의원을 지낸 마가레타 울프는 디클링아른트자문(Deekeling Arndt Advisors)에 합류했다. 그녀는 이 업체에서 ‘그린워싱’(겉으로는 환경친화적인 정책 또는 이미지를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환경을 파괴하는 등 다른 방향의 행위를 하는 것)의 미덕을 원자력업체들에 강연하고 있다. 울프의 줄타기는 원자력업체 EnBW에 취직한 녹색당의 역사적 인물이자 전 분데스타크 녹색당의 선동가 레조 슐라우흐의 줄타기와 거의 일치한다. 11년간 녹색당 의원을 지냈고 독일 텔레비전 <토크쇼>에서 에너지 문제 전문가로 활동했던 미샤엘레 후스테트는, 현재 독일에서 두 번째로 큰 원자력업체인 RWE에서 ‘재생에너지’ 홍보를 담당하고 있다.

<각주>
(1) <Welt am Sonntag>, 베를린, 2011년 4월 10일.
(2) <Der Tagesspiegel>, 베를린, 2007년 12월 30일
(3) <Handelsblatt Online>, 2008년 6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