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한 테러리스트의 ‘메타포’

2011-08-08     레미 닐슨

3년 전 핀란드 공영 라디오방송은 한 총기 소지자가 핀란드의 한 학교에서 5명을 사살한 다음날, 내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물었다. “핀란드와 노르웨이가 문화적·지리적·인구통계학적으로 유사한데, 이런 일이 노르웨이가 아니라 핀란드에서 발생한 이유가 무엇인가?”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는 무차별 총기 테러 같은 문제가 노르웨이에서 일어날 거라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제 나는 당황스럽지만 그때와는 다른 견해를 갖게 되었다. ‘노르웨이 사회에 극단적인 어떤 것이 있을까?’ ‘신뢰와 평등의 기조가 잘 작동하는 사회민주주의적 사회에 극단적인 어떤 것이 있을까?’

우파의 사민주의는 반이민주의

노르웨이 총리 관저 바깥에 차량 폭탄을 터뜨리고, 오슬로 외곽 우토야섬의 청년 집회에서 76명을 사살한 테러리스트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가 노르웨이인이라는 사실과, 그가 다른 웹 포럼에서 강조한 ‘문화적 보수주의’(1)의 실체 때문에 노르웨이 사회는 충격과 불신에 빠졌다. 나는 신념에 따라 즉각 행동할 준비가 돼 있는 우익 극단주의자가 이 나라 안에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브레이비크는 미친놈에 불과한 건가? 그는 스스로 급진적으로 변한 외로운 늑대일 뿐인가? 그는 왜 온건하고 중도좌파적인 집권 노동당의 청소년캠프(AUF)에서 청소년들을 학살했는가?

명백한 답은 결코 얻지 못할 것이다. 사전을 보면, 아이들을 표적 삼아 냉혹하게 살해하는 사람을 ‘사이코패스’라고 한다. 우리는 정치적이고 공적인 논쟁이 갈수록 공격성을 띠는 사회 분위기가 그런 끔찍한 행동을 촉발한 건지, 그렇다면 어떻게 할지 자문해봐야 한다. 은유와 풍자가 글자 뜻 그대로 받아들여질 때 어떤 일들이 빚어지는 걸까?

스칸디나비아 국가 정치의 뚜렷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국민이 기존 사회민주주의적 체제를 절대적으로 신봉함으로써 모든 정당, 심지어 우파(올해 초, 우파 정당은 노동자 운동조직으로 창설될 때 중도적이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조차 사민주의적 이념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종주의적 우파- 특히 덴마크뿐 아니라 노르웨이와 스웨덴에서- 는 사민주의 모델을 수용해왔으면서도 자국을 위협하는 주요 요인이 신자유주의 세계화나 금융산업에 의한 불평등 심화가 아니라 이민이라고 여긴다. 인종주의적 우파는 (이민으로 인한) 체제 붕괴를 우려하는 자유주의적 우파의 세기 종말론적 주장에 의해 더욱 지지를 받고 있다. 이는 대다수 노르웨이인이 그들의 복지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기꺼이 더 많은 세금을 낼 의사가 있음을 보여주는 모든 여론조사 결과와 대조된다.

서유럽에 대항한 이슬람교도의 침입과 음모 이론을 (은유적으로) 키우고 있다 할지라도, 노르웨이의 인종주의적인 진보당(The Progress Party)은 지난해 총선에서 20석을 차지한 스웨덴의 민주당과 비교하면 아주 온건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스웨덴 민주당의 리더인 지미 오케손(2)은 “이슬람교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스웨덴에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되풀이해서 주장해왔다. 덴마크 국민당(3)도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2007년 총선에서 13.8%를 얻어 원내 제3당에 진입한 덴마크 국민당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이슬람교도들의 이민이 가장 큰 국가적 재난이라며, 제2차 세계대전 때 덴마크인이 보여준 저항운동을 본받아 이슬람교도의 위협에 대항해 전투를 벌이자는 주장을 스스럼없이 펼치고 있다.

이런 주장은 주류 유럽 정치에서 인종주의자들이 공공연히 내세우는 담론의 한 사례다. 프랑스 정부의 장관들은 “프랑스의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고,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올해 초 아무런 추가 논의도 없이 “다문화주의는 실패했다”고 선언했다. 두 사람은 상이한 문화(예를 들어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공존할 수 없다는 근거 없는 외국인 혐오적 주장을 암묵적으로 인정했다. 미국 신보수주의 단체인 티파티운동(4)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스스럼없이 히틀러로 묘사하는가 하면, 심지어 오바마를 이슬람교 잠입자로 여기는 음모 이론을 만들어내며 그의 출생증명서를 보자고 요구한다. 사람들이 이런 은유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유럽 정치권의 방조 또는 조장

그러나 의문은 계속된다. 노르웨이에서 왜 테러가 발생했을까? 노르웨이는 사회적 긴장이 거의 없고 사실상 실업도 없으며 높은 수준의 평등을 유지하고, 유엔에 따르면 가장 살기 좋은 국가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왜 평화롭고 안전한 국가에서 가장 극단적인 증오 행위인 테러가 발생했을까?

노르웨이에는 소득과 문화에 관한 계층 차별이 미약하지만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 10년 혹은 20년 동안 노동자 계층 유권자들이 사회민주주의적 노동당에서 포퓰리스트인 인종차별적 진보당으로 지지 성향을 바꾸는 것 같은 계층 재구성이 진행돼왔다. 이런 양상은 여전히 수수께끼다. 가장 설득력 있는 분석은 노동당 소속 정치인들이 국민과 유리된 채 전문성을 강화한 반면, 진보당은 좀더 서민적인 정책을 개발하고 국민과 동일시하려고 열정적으로 매진한다는 것이다. 덴마크에서는 2000년대 초부터, 그리고 노르웨이에서는 약간 시차를 두고 일부 포퓰리스트들과 자유주의적 우파가 좌파의 ‘정치적 교정’(브레이비크가 그의 ‘강령’에서 자주 사용한 용어)(5)에 대항해 ‘문화 전쟁’을 시작했다.

노르웨이에도 차별은 있다, 은밀할 뿐

노르웨이의 주요 정당들은 자신을 사회민주주의자로 여긴다. 사민주의 체제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전폭적임에 따라, 이에 반대하는 주장은 선거를 재난으로 내모는 단초가 될 것이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우파와 경제적으로 자유주의적인 일부 노동당 당원은 복지 체계가 장기간 실행될 수 없다는 데 의견일치를 보여왔다. 물론 자유주의적 우파는 사민주의 체제를 공적 서비스의 사유화를 변론하기 위해 사용하는 반면, 포퓰리즘적 우파, 즉 인종주의적 진보당은 이민자를 비난하기 위해 사용한다. 그래서 복잡한 경제문제를 ‘전통적인’ 정체성과 결합하려는 시도는 외국인 혐오 분위기를 확산시키고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9·11 테러 이후 총체적인 반이슬람 인종차별의 수용과도 맞닿아 있다.

외국인 혐오 환경은 노르웨이에서만 특별한 것은 아니다. 브레이비크와 여타 ‘문화적 보수주의자들’의 주적은 이슬람교인이 아니다. 그들은 이슬람교인의 강한 정체성을 존중한다. 반면 그들의 적은 사회적 약자와 페미니스트, ‘문화적 마르크시스트’, 다문화주의 지지자다. 이런 사실은 브레이비크가 공격 대상자로 이슬람 사원이나 다른 이슬람적 장소나 상징이 아니라 노동당원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이런 문제에 대한 논쟁은 새로운 것이 아니며 유럽 전역에서 찾을 수 있다. 좌파들은 백인의 제국주의적 과거를 들춰냄으로써 백인을 폄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반대로 (백인에 대한) 인종차별주의라는 게 브레이비크의 주장이다. 그가 자신을 반인종차별주의라고 내세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브레이비크는 노르웨이의 중도좌파에 대해 적개심을 드러냈다. 그런 사회적 동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오슬로의 부유한 서쪽 지역에서 자란 그가 주류 정치에 대한 적대감을 키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우리가 사회적 환경과 정치적 상황에서 심리적 요인을 명백히 분리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은유를 글자대로 읽어내는 무의식

‘마르크시스트적’ 요소는 무시될 수 없다. 지난 몇 해 동안 자유주의적 보수 및 보수적 우파는 마르크스주의를 나치즘과 동일시하면서 ‘공산주의 범죄’(스탈린과 크메르루주의 폴 포트)를 공격적으로 강조해왔다. 심지어 이들은 사회적 변화를 고민하는 것 자체가 무의적으로 전체주의 체제를 유도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좌파들에 대해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무너뜨리려는 꿍꿍이가 있다고 비난할 때도 종종 사용된다. 이런 전략은 정치를 부의 분배와 국민 통합에 관한 논쟁보다 ‘문화 전쟁’으로 전환시켜 우리 사회의 사회·경제적 발전에 대한 정치적 논쟁을 차단시키는 효율적 수단이기도 했다.

우리는 유럽 전역에서 브레이비크의 행동 배경에 정치적 동기가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유사한 적대감을 발견한다. 이번의 극단적 사례에서 무의식적 행위가 표출되도록 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런 초기 단계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공적 영역에서 인종차별주의가 승인되고 공격적 담론이 확산되면 소외된 사람들을 과격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포퓰리스트와 외국인을 혐오하는 우파라고 해서 이런 끔찍한 테러리즘과 관련해 비난을 뒤집어써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가 그 책임을 지고 있다. 은유는 글자 그대로 읽힐 수도 있다. 이는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수사학적 정직성과 책임의 문제인 셈이다.

글•레미 닐슨 Remi Nilsen

번역•김희철 hckim666@naver.com
일간지 기자 출신으로,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각주>
(1) 문화적 보수주의는 외부의 힘에 맞서서 자국 문화의 보존을 주장한다.
(2) 스웨덴 민주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6%를 득표해 원내 진입에 성공했고, ‘이슬람 반대’와 ‘반이민’을 정강으로 채택하고 있다.
(3) 덴마크 국민당은 현재 25석을 차지하고 있으며, 자유당-보수당의 연정에 협력하고 있다. 반이민 정책을 정강으로 채택하고 있는 극우정당이다.
(4) 티파티운동은 2009년 미국의 여러 거리시위에서 시작된 보수주의 정치운동이다. 이름은 ‘보스턴 차’ 사건의 영어 이름에서 나왔다. 미국의 진보 성향 시민단체인 무브온과 대립하는 입장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의료보험 개혁 정책에 대한 반발로 등장해 세력을 불려가고 있다. 주요 지지 기반은 남부 및 중부 지역이다.
(5) ‘정치적 교정’은 주로 유색인종·장애인·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을 암암리에 내포하는 용어를 중립적이고 비차별적인 말로 대체하는 사회적 운동이나 가치 지향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