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에서 금융으로, 프랑스 엘리트들이 사는 법

2011-08-08     마티아 루

국립행정학교(ENA)는 전후 국가 고위 공무원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20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고등사범학교(ENS)는 인본주의 가치에 뿌리를 둔 엘리트 교원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됐다. 프랑스 지배계급 재생산의 도구가 된  두 명문 학교는 이제 비즈니스계로 진출하기 위한 발판 구실을 하고 있다.

<르몽드>의 새 주인이 된 마티외 피가스가 국립행정학교(ENA)를 다닌 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는 프랑스 재정부에서 에어프랑스와 프랑스텔레콤의 민영화 계획을 추진하고, 2002년에는 라자르 은행의 경영자가 됐다. 이 모든 게 “사회적으로 유용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집착”(1) 때문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니콜라 드모랑은 어떤가? 그는 고등사범학교(ENS)를 졸업하고 교수가 되는 일을 포기했다. “지식권력이 미디어 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그러나 공공서비스의 가치에 관심이 많다고 자부하던 그는 2010년 <프랑스 앵테르>를 떠나 <유럽1>(라가르데르 그룹 소유)로 자리를 옮겼고, 얼마 안 있어 <리베라시옹>(에두아르 드 로스차일드가 대주주로 있다)의 공동경영자가 됐다. 니콜라 드모랑 역시 “사회적으로 유용한 일을 하려는 욕망”(2)을 피력한다.

ENA·ENS 출신들, 갈아타기 보편화

ENS 출신이 모두 언론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ENA 출신이라고 해서 모두 사업으로 모은 돈을 <르몽드> 같은 언론사를 인수하는 데 투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것이 공공서비스든 ‘사회적 유용성’이든, 앞서 언급한 두 사람이 걸어온 행적은 권력을 추구하는 이들을 움직이는 새로운 동기가 무엇인지, 원래 교수나 행정관료 엘리트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학교들이 이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ENA와 ENS(특히 파리ENS)는 좀더 유연한 ‘엘리트들의 이동성’을 요구하는 시대에 부응해 발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공공서비스 해체에 앞장서고 있다. 이 학교들은 국가 개입이 약화되고 공직 생활의 이점이 줄어들면서 비즈니스스쿨 모델과 경쟁하며 국립 명문 학교로서의 위상을 지켜나가려 애쓴다. 사회적 유용성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명문 자리를 지키고 싶은 것이다. 커리큘럼도 공공서비스보다는 일반적인 지식 습득에 초점을 맞춘다.

캠퍼스 안은 특별한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에르네스트의 뜰’이라는 별칭이 붙은 정사각형 모양의 마당 주위로는 200년이 넘은 ENS 건물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학생들은 마당 연못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지금도 ‘에르네스트’(Ernest)라는 별명으로 부른다. 카르티에라탱 지역 한가운데 자리한 캠퍼스는 학생들이 다양한 만남과 토론, 학습에 열중하는 분위기로 가득하다. 복도 모퉁이를 돌아서면 장폴 사르트르나 폴 니장이 이 학교를 다니던 1920~30년대 입학식 사진에서 본 것처럼 골프 바지에 작고 동그란 안경을 쓴 학생과 불쑥 마주칠 것만 같다. 그러나 파리ENS의 한 직원은 “지난 1월 학교 쪽이 팔레스타인 문제 관련 강연회를 금지한 것은 학생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메시지였다”고 설명한다. “학생들은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을 실감해야 했다. 학생총회나 정치적 성격의 집회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학교 당국은 이제 국제적 평판 같은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긴다.”(3)

2005년 취임할 때부터 논란의 중심이 된 ENS 교장 모니크 캉토스페르베르는 학교 평판에 대한 조사 결과를 근거로 ‘ENS’ 브랜드 마케팅을 시작했다. 그는 ‘국제전략구상위원회’를 발족하고, 우선 ‘고등사범학교’(Normale Sup) 직인이 찍힌 학위를 받고 싶어하는 외부 청강생과 외국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자체 학위- 그 전까지는 ‘ENS 출신’이라는 명칭이 있었을 뿐이다- 를 새로 만드는 등 이미지 홍보에 나섰다. 또한 지난해 6월 개최된 ‘철학의 밤’처럼 대규모 행사를 마련하고 ENS 졸업생, 지식인, 유명 언론인을 초청해 학교를 홍보하고 있다.

캉토스페르베르 교장은 “이런 홍보 전략은 기업주에게 제대로 교육받은 인문학 전공자를 경영자로 기용하도록 설득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미국의 스탠퍼드대학을 예로 든다. 이곳에서는 기업들이 전공과 무관하게 우수한 학생들을 스카우트해서 ‘현장’에서 재교육한다.(4) 최근 ENS 학생들에게 ‘나의 장래 진로’(My future career)라는 제목의 설문조사를 했다. 글로벌 인력컨설팅기관인 유니버섬이 유럽 차원에서 실시한 이 조사는, 학생들의 진로 전망과 그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고용자상’을 파악해 학교가 학생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 ‘학생-교사-연수생’(행정상으로 불리는 명칭)들이 4년의 학업 기간에 국가에서 매월 1300유로의 월급을 받고, 졸업 뒤에는 공공교육 일선에서 일하도록 돼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사르트르 시절 그대로인 건 건물뿐

유연성과 개방의 미덕을 반복해서 강조하는 캉토스페르베르 교장은 “ENS가 사회와 괴리돼 있다”며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ENS 역사와의 단절을 선언하는 그의 입장은, 지식 탐구와 연구의 장소로서 ENS의 존재 의의를 오히려 장애 요소로 여긴다. 다시 말해 ENS가 세속적인 제약이나 경제적 구속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원칙을 무시하는 것이다. 캉토스페르베르 교장의 생각과 달리, 학생들은 캠퍼스 안에서 서로 어울리는 분위기를 싫어하지 않는다. 이는 부정적 의미의 성역화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한 학생이 말한다. “학교 안에 모든 게 있다. 학생식당과 체육시설이 있고 자원봉사 동아리와 토론 클럽, 사회당 학생 조직도 있다. 학교 신문을 발행하고 다양한 연극 극단이 있다. 피아노가 있는 지하 모임 공간도 6개나 되며, 도서관은 엄청난 장서를 자랑한다. 여기서 우리끼리 계속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5)

2011년 봄, ENS 학생들은 학교 관리 직원과 식당 직원들이 정규직 임용을 요구하며 벌인 파업에 연대활동을 펼쳤다. 심지어 학교 사무실을 점거했다가 경찰들에게 끌려나오기도 했다. 이런 사건들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아직 금융계 임원들처럼 육식동물이 된 것은 아님을 방증한다. ‘정치적 질서 해체: 조사, 비교, 반성’ 혹은 ‘중세시대의 유럽 사회: 해석, 실천, 언어의 모델’ 등 수업이나 세미나 제목만 봐도 이들이 얼마나 아카데믹한 분위기에서 생활하는지 알 수 있다.

유연성·개방 기치, 파트너는 기업

ENS를 졸업한 공무원 연수생이 민간부문으로 빠져나가는 비율(15% 이하)은 아직 낮지만, 현재 학교 당국이 추진하는 정책은 이 움직임을 가속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또한 대학교수가 될 확률이 점점 작아지는 상황에서 별수 없이 중등교원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 이들에게는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다- 을 깨달은 학생들이 동시에 다른 학교(고등상업학교(HEC), 국립정치학교(Sciences-Po) 등)의 학위를 준비하는 것을 격려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6) 이제 ENS는 이력서를 채우기 위해 거쳐야 하는 명문 학교 중 한 곳이 되어버린 것이다.

예전에는 부정적으로 비친 이런 관행을 ENS 출신 경영자 클럽(7) 같은 모임이 나서서 학생들에게 권하는 게 요즘 현실이다. ENS를 나와 사업가나 고위 경영자로 성공한 사례를 보여줌으로써 학생들을 자극하는 게 이들의 역할이다. 졸업생 중에는- 학생들 은어로는 ‘아르시퀴브’(Archicube)라고 불린다- 라가르데르그룹 부사장 필리프 카뮈, 아레바 전 회장 안 로베르종, 카지노 그룹 최고경영자(CEO) 장샤를 나우리 등이 있다. 이 클럽은 경영학교나 엔지니어학교처럼 오찬을 겸한 콘퍼런스에 고위 경영자가 된 동문들을 초청해 졸업자들 간의 인맥- 아직은 초보 수준이다- 형성을 유도하고 있다.

ENS 연구소는 매년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세미나를 통해 BNP파리바,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로레알 등 회원 기업들의 고위 경영자와 학계의 만남을 주선한다. 가장 최근에 개최된 세미나인 ‘오늘날의 경영’은 “지금까지 전통과 고답적인 경영 방식이 제공해주던 기준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위기의 시대에 (경영을 위해) 복잡하게 뒤엉킨 논리와 현실을 구분하는 연습”을 하도록 제안했다. 이 연구소의 회원사인 프랑스텔레콤과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은 2006년부터 ENS재단이 관리하는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1986년 설립된 ENS재단(알렉상드르 아들러의 뒤를 이어 2007년부터 알랭제라르 슬라마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은 ENS와 기업 간 교류 활성화 방안을 모색 중이다.

ENS는 이와 별개로 경영대학교, 저널리즘스쿨과도 다양한 협력사업을 추진 중이다. ENS 홈페이지(ENS.fr)에 들어가면 “언론·홍보 계통(편집·번역·신문·라디오·텔레비전)으로의 진출이라는 매력적인 가능성이 열려 있다. (중략) 본교 졸업생 중 상당수가 레이몽 아롱처럼 현대 저널리즘의 유명 필자로 활동하고 있다”는 글이 실려 있다. 드모랑(<리베라시옹>), 제랄딘 뮐만(<프랑스5>), 크리스토프 바르비에(<렉스프레스>), 에마뉘엘 케슬레르(<LCI>) 등 꽤 많은 졸업생들이 ENS 졸업장으로 언론계에서 성공을 거뒀다. 학교는 재학생들에게 이 선배들의 성공을 선전한다. 매년 ENS 졸업생 중 2명이 언론인양성센터(CFJ) 연수생으로 선발된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한 이 분야에서 HEC와 시앙스포 혹은 시앙스포와 런던정치경제대학(LSE)을 동시에 졸업한 학생들보다 고용주에게 더 잘 보이기는 쉽지 않다.

드모랑은 “대학에는 내 자리가 없다”고 말한다. 정상 궤도에서 이탈한 ENS 졸업생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8) 대학에서 교편을 잡는 일이 점점 힘들어지는 상황에서 ENS 학생들이 제 살길을 찾아 진로를 고민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학에 일자리를 얻어도 정교수나 연구원으로 취직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반면 ENS의 커리큘럼은 여전히 상당 부분 교사자격시험 준비에 맞춰져 있다. 이 시험을 통과하면 중등교원 자격증을 얻게 된다. 다시 말해 공무원이 되는 것이다. 이들의 공식 직위는 ‘학생-교사-연수생’으로서 졸업하면 ‘10년 의무 복무 기간’을 채워야 한다. 다시 말해 국가를 위해 10년간 공무원으로 일해야 한다. 만약 이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재학 중 받은 월급의 일부를 반납해야 한다. 하지만 형식적인 규정일 뿐이어서 이 문제로 고민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실제로 지금까지 그런 예가 없었고, 학교에서도 이 규정의 실효성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학생들보다 학교가 더 열 올려

요컨대 두 가지 전략이 서로 만나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은 자신의 전공을 살리고 꿈을 펼칠 수 있는 일자리를 국가가 보장해주지 못하는 현실을 깨닫고 있다. 학교는 명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본래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엘리트 양성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고 싶어한다. 그중 하나가 국제 무대에서 지명도를 높이는 일이다.

ENS는 모순적 처지에 있다. 전통을 고수하는 동시에 학교 역량과 지명도, 적응력을 향상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학교 본래의 임무를 모호한 방식으로 수행해야 한다. ENS는 ‘학교 교사 양성’이라는 본래 목적에 충실하면서 학생들에게 교직을 피해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중·고등학교들은 실력 있는 교원을 확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와 동시에 ENS는 시앙스포와 마찬가지로 고위 공무원이 되기 위한 발판 노릇을 하고 있다. ENS는 2005년부터 파리1대학과 공동으로 ENA 입학준비반을 개설했다. 예전부터 ENA에 관심이 높았던 터라 준비반 진학은 갈수록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 ENS와 ENA 출신인 준비반 책임자 스테판 이스라엘은 “갈수록 지원자가 늘어간다”며 흡족해한다. 매년 인문학 전공자 20% 정도가 ENA에 도전해서 그중 3분의 1 정도가 합격한다.(9) 이런 식으로 이중의 졸업장 취득을 제도화하는 정책은 우리를 또 한 번 놀라게 한다. 학생들에게 월급을 주는 국립학교가, 재학생에게 다른 국립학교 입학을 장려해 또다시 그곳에서 월급을 받도록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10) 그 대가로 학생들이 수행해야 할 의무는 갈수록 줄어든다. 재학 기간이 국가에 대한 의무 복무 기간에 포함되기 때문에 학교를 더 다니면 학생들은 10년 의무 기간을 그만큼 단축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모든 게 민간부문으로의 진출을 용이하게 하는 셈이다.

중등 교원 되느니 돈을 벌겠다

ENA는 다른 방식으로 진로의 다양화를 꾀하고 있다. ENA도 ENS와 마찬가지로 고등교육 시장의 치열한 경쟁에 직면했다. ENA는 무엇보다 시앙스포의 효용성 높은 프로젝트에 위협감을 느끼고 있다. 시앙스포는 ‘퍼블릭 어페어스 마스터’(MPA) 과정을 개설해 2005년부터 신입생을 받고 있다. 마스터 과정 책임자 에르하르트 프리드베르크는 “MPA 과정이 미래의 엘리트 지도자 양성 과정의 좋은 모범이 될 것”이라고 자부한다. “프랑스에서는 엘리트 양성이 두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한쪽에는 대규모로 민간부문 엘리트를 배출하는 경영학교와 엔지니어학교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공공부문 관리를 양성하는 ENA가 있다. 우리가 개설한 MPA 과정은 두 부문을 모두 아우르는 교육과정이다.”(11) ‘거버넌스를 가르치는 유럽 학교’를 자임하는 ENA 역시 시앙스포의 이런 노력을 뒤좇고 있다.

ENA 교정에 가보면 파리 시절과 비교해 많은 변화가 느껴진다. ‘페니슈’(péniche·수송선)라는 별칭이 붙은 현관홀에 들어서면 활기차게 오가는 세계 각지의 학생들을 만날 수 있는 시앙스포와 대조적이다. 1992년 스트라스부르로 캠퍼스를 옮긴 ENA의 안내데스크(Soucoupe·‘컵받침’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주변은 오가는 사람이 별로 없어 썰렁하다. 학생들은 ‘생장 기사령’이라 불리는 캠퍼스 건물 너머로 보방댐의 장관을 감상하거나 프티트프랑스 지역을 한가하게 거닐 시간도 여유도 없다. 2~3개월 동안 진행되는 실습 과정을 세 번에 걸쳐 이수해야 하기 때문에, 이 알자스의 수도에 머무르는 시간이 별로 길지 않은 것이다.

공직 10년 의무복무제 형해화

ENA 시험감독관 대표 미셸 파팔라르도는 ‘2010년 국립행정학교 입학사정에 관한 보고서’에서 응시자들의 ‘순응적인 태도’와 ‘용기와 정신력의 부족’을 지적했다. “응시자들은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면서 입장을 방어하는 방법을 모르거나 그럴 의지가 없어 보였다. 시험관이 반대 논리를 펴면 곧바로 자신의 의견을 수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응시자들의 복장에도 불만을 표시했다. “대부분의 응시자는 시험관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도 아니면 최소한 밉보이지 않기 위해 개성 없는 복장으로 시험장에 나타났다.” 응시자들은 지적 능력에서뿐 아니라 복장에서도 순응주의적 태도를 보인다. 세련된 ‘여피’(Yuppie) 스타일로 차려입은 경영학교 학생들의 활력적인 모습과 대조적으로 생기 없고 우중충한, 전형적인 테크노크라트 스타일을 추구한다. 파팔라르도는 세계적 추세에 발맞춰 항상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 행정관료가 될 소질을 갖춘 응시자를 선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용기와 개성적 스타일을 갖춘 응시자가 합격에 유리하다”고 조언한다. 이런 응시자를 찾을 수 없다면 학생들을 그렇게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다. 동일한 고등교육·연구 거점(PresHESAM)에 속한 ENA와 파리 소재 경영학교인 ESCP유럽은 지난해 12월 20일 협정을 맺고 ‘공공·민간사업 정규·평생 교육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추진하기로 했다. <레나르시>(L’Enarchie) 1980년판에서 이미 자크 망드랭(장피에르 슈벤망의 필명)은 “지스카르 데스탱 정부가 공무원들을 매니저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12) 그는 이어서 “ENA가 조금씩 정치학의 대상인 추상적인 ‘인간’(HOMME) 개념을 매니지먼트 대상으로서의 특수한 ‘인간’(homme) 개념으로 대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990년대 초, ENA 리뷰는 ‘인간(homme)을 관리하는 법’을 배울 필요를 제기했다. 이 리뷰는 “공공부문에서도 인사 관리자들이 사회학과 심리학의 도움으로 특정 직책을 맡은 구체적 개인들을 관리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13)고 분석했다.

경쟁에 대한 압박감 속에서 ENA의 학사 개혁은 이런 경향을 받아들이고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ENA 교장 베르나르 부코의 말처럼 “미래의 고위 공무원들이 기업의 매니지먼트 기술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14) 컨설턴트들이 진행하는 세미나들이 개설됐다. 세미나에 참가한 학생들은 ‘인적 자원 채용 컨설팅(Talent Management)에서 세계 선두를 달리는’ 허드슨컨설팅의 직원들과 함께 매니저로서 소양을 갖추었는지 알아보는 ‘자질평가’를 수행한다. 2개월 이상 대기업에서 실습 활동도 해야 한다. 기업에는 정부에서 월급을 대는 우수한 인력을 공짜로 쓸 수 있는 좋은 기회인 셈이다.

졸업 땐 어느새 순응주의자   

한 젊은 금융감독관은 열정적인 말투로 “행정 당국 역시 ‘국가의 비즈니스 모델’을 개선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고 말한다.(15) 정부 부처 중에서도 최고 요직으로 꼽힌다는 금융감독관들이 컨설팅사(악상튀르, 보스턴컨설팅그룹, 매킨지 등)와 함께 업무를 수행하는 일이 점차 잦아지고 있다. 이전에는 모두 금융감독원 단독으로 수행하던 업무다. 가령 공공정책 일반 검토(RGPP)를 위한 감사 업무 중 상당 부분을 민간 ‘코스트 킬러’(Cost Killer) 기업들이 맡았다. ENA의 변화 역시 이런 새로운 경쟁 구도의 출현과 맞물려 있다. 이제 대형 국영기업의 고위직 자리가 ENA 출신에게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시대는 끝났다. 경영학교 HEC 출신인 앙리 프로글리오가 프랑스 전력회사(EDF) 사장에 취임한 것이 한 예다.

부코 교장은 “공공 매니지먼트와 민간 매니지먼트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16)고 강조한다. 예산성과관리법(LOLF)이 도입되면서 행정관리에서 지출관리(성과관리)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으며, 공공부문에서도 민간부문의 회계 원칙을 수용하는 추세다. ENA 졸업생 단체에서 실시한 한 조사를 보면, 2000~2010년 졸업생의 81%가 민간부문으로의 ‘갈아타기’- 공직을 떠나 민간기업에 들어가 정부 내의 연줄과 행정 지식을 이용해 고액 연봉을 받는 것- 에 관심이 있다고 한다.(17) 공공서비스 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ENA 졸업장이 다른 방면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다. ENA의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간부문 이직자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평균 4년 4개월 뒤 공직을 떠났다. 1970년대에 비하면 기간이 3분의 1로 짧아진 것이다.

선택된 소수를 위한 이중 특혜

시대 변화에 발맞추려는 학교의 노력이 여전히 충분치 않다고 여기는 사람도 많다. 매니지먼트 혹은 성과관리 같은 말에 이어 새로운 슬로건이 속속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령 ENA 학생들은 이제 단지 뭔가를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들은 ‘능동적으로 창조하고 개방적이고 활기찬 자세로 이노베이션을 주도하는’ 인재로 거듭나도록 주문받고 있다.

최근의 ‘챌린지-후스 후’(Challenge-Who’s Who)(18) 학교 순위에서 ENS와 ENA가 ‘고위 직종’ 분야에서 늘 선두를 지키는 경영학교 HEC와 ESSEC, 폴리테크니크(Polytechnique)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은 첫 번째 개혁 시도가 성공했다는 증거로 보아야 할까?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경계가 사라지는 시대에 인력 컨설팅 회사들이 좋아하는 ‘높은 잠재력’ 항목에서 ENS와 ENA 학생들이 좋은 점수를 얻는 것을 좋은 징후로 받아들여야 할까?

ENS와 ENA가 민간부문과 가까워지는 경향은 사회적 불평등과 교육 불평등을 더욱 심화해 학교의 존재 의의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2009년 ENA에 입학한 81명 중 4명만이 노동자의 자녀였다. ENS의 경우도 전체 학생 80%의 부모가 고위 관리직이나 자유직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프랑스 상원의 한 보고서(19)에 따르면, 이 두 학교에서 노동자 부모를 둔 학생 수가 1970년대의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고 한다.

능력만 있으면 출세할 수 있다는 믿음, 혹은 서민 가정 출신의 ‘검은 기병’(국립학교 교사의 별칭)과 ‘고위 공무원’들이 공화국에 봉사하면서 싸움을 계속해갈 수 있도록 해주던 제도는 이제 과거 속으로 사라졌다. 대통령 직권으로 도입된 ‘사회적 개방’ 혹은 ‘기회 평등’ 조처를 통해 그랑제콜 입학생의 30%를 장학생으로 선발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어려운 조건에 있는 고등학교들을 대상으로 한 ‘우선 교육대상 선정’(시앙스포), ‘나도 준비반에 들어갈 수 있다’(ESSEC), ‘ENS 고교생 개인지도’(Talens) 같은 프로그램들의 실제 목적은 엘리트 교육기관의 문호를 대대적으로 개방하는 데 있지 않다. “선택된 소수의 학생들에게 일종의 ‘보상’ 차원의 지원을 베풀어서 학생의 사회적 구성을 다양화하기 위한 것”(20)일 뿐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랠프 밀리번드는 기업 고용주들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권고하는 학생 선발의 ‘민주화’(21)는 “피지배 계급 출신 중에서 능력이 출중하고 출세하겠다는 결심이 확고한 학생들을 선발해 ‘부르주아’로 만들어내는 과정”(22)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재능 있는 다양한 학생을 선발하려는 정책들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고등교육 기관들 사이의 격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일반 대학들은 갈수록 개성을 잃어가며 예산 부족과 악화된 교육 여건, 학부 학위 취득률 하락, 학위 가치 추락 등의 문제와 씨름하고 있다. 일반 대학들의 평판이 나빠지는 만큼, 다른 한편에서는 이상적인 교육 여건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커리큘럼 등을 내세우는 엘리트 학교들이 부상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엘리트의 조기 선별과 양성 과정은, 사회학자 마리 뒤뤼벨라가 말하듯 “교육의 진정한 민주화에 반하는 것”이다. ‘진정한 민주화’란 “스무 살에 얻은 좋은 점수로 평생을 편하게 사는 것이 불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것”(23)이다.

사회적 분노와 소수 지배자들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지금, 국가 엘리트들의 공공서비스 복무 의무화는 진보적 정치 프로그램에 우선적으로 포함돼야 할 의제다. 어떻게 하면 그랑제콜의 역사적 전통이 출세지향주의가 아닌 사회적 봉사로 연결될 수 있을지 고민할 때다.

글•마티아 루 Mathias Roux
ENS 출신으로, 리옹의 한 고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면서 지식인 사회를 주로 비판하고 있다. 오는 9월 7일 <나는 보고서를 요구했다>(Flammarion·파리)를 출간할 예정이다.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각주>
(1) <Les Echos>, 파리, 2009년 9월 4일.
(2) <Télérama>, 파리, 2010년 5월 6일.
(3) 도미니크 비달, ‘유대인의 이름으로 프랑스의 양심을 겁박하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7월호 참조.
(4) <Le Nouvel Economiste>, 파리, 2010년 5월 18일.
(5) <Libération>, 파리, 2006년 12월 5일.
(6) ‘점점 교직을 회피하는 ENS 졸업생들’, <Le Figaro>, 파리, 2010년 1월 26일.
(7) 현재 클럽 회원은 435명이다. 이 중 40%가 인문학 전공자다. 라가르데르그룹 재무 이사 도미니크 댕냉이 대표를 맡고 있다.
(8) <Télérama>, 2010년 5월 6일.
(9) ‘ENS에서 MEDEF로, 기업을 선택하는 ENS 출신들’, <Les Echos>, 2007년 9월 24일.
(10) ENA 학생들은 정부로부터 2년 동안 1500유로씩 월급을 받는다. ENA 졸업생 1명을 양성하는 데 국가가 지출하는 총비용은 13만 유로에 달한다. ENS 출신이 ENA로 진학할 경우, 국가는 ENS 재학 기간에 지급하는 월급에 더해 ENA 진학 준비 기간 최소 2년간의 경비(1만4천 유로. 일반 석사과정의 경우 7500유로)를 부담해야 한다.
(11) <Le Monde de l’éducation>, 파리, 2008.
(12) ‘ENA 출신 혹은 부르주아 사회의 특권층’, La Table Ronde, 파리, p.131, 1980.
(13) François Cusset, <10년: 1980년대의 거대한 악몽>, La Découverte, 파리, p.247. <ENA mensuel>, n°228, 1993년 2월호, ‘인간 관리’에서 인용.
(14) Bernard Boucault, ‘ENA의 매니지먼트 교육’, <L’ENA hors les murs>, 파리, 2010년 10월.
(15) <Les Echos>, 2009년 10월 27일.
(16) ‘ENA의 매니지먼트 교육’, art. cit.
(17) ENA 졸업생 단체가 동문들의 진로에 관해 실시한 조사 결과, <Les Echos> 2010년 12월 3일자에서 인용.
(18) <Challenges>, 파리, 2010년 10월 28일.
(19) ‘그랑제콜 준비반 학생들의 사회계층 다양성: 우수학생 유출 방지’, 상원 보고서, 2007.
(20) Ibid.
(21) ‘그랑제콜의 다양화를 위한 개방’, Institut Montagne, 파리, 2006.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 OECD, 파리, 2006.
(22) Ralph Miliband, <자본주의 사회 속의 국가>, Maspero, 파리, p.79, 1982.
(23) <Libération>, 2011년 4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