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세이 나발니는 러시아의 선구자?

크렘린 궁을 난처하게 만든 야권 운동가

2021-02-26     엘렌 리샤르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독살 당할 뻔했던 러시아의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는 현재 구금 중이다. 서구의 사법부들은 그의 석방을 요구하며 새로운 대(對)러시아 제재 채택을 준비하고 있다. 크렘린 궁은 이를 내정 간섭으로 간주하며 국제사회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나발니 사건이 국내에 미치는 영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나발니의 영웅적인 투쟁은 간디, 마틴 루터 킹, 넬슨 만델라, 바츨라프 하벨(옛 체코슬로바키아에서 40년 공산주의 체제를 평화적으로 끝낸 비폭력 ‘벨벳 혁명’을 이끌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첫 대통령-역주)의 투쟁에 견줄 법하다.” 

주 러시아 미국 대사를 지낸 마이클 맥폴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반기를 든 반부패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를 언급하면서 서구 언론과 한 목소리로 위와 같이 강조했다.(1) 나발니는 지난 8월 시베리아를 출발한 비행기 안에서 독살 당할 뻔했으나 목숨을 건졌고, 독일에서 치료를 받았다. 영구적 망명을 거부하고 올해 1월 러시아로 돌아온 그는 스스로 예상했던 대로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존경을 자아내는 행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발니가 러시아의 다른 야권 정치인들이 자주 누리지 못하는 반향의 수혜자인 것은 사실이다.

 

“나발니를 즉각 석방하라”

그의 체포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서구의 사법부들은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했다. 그리고 “즉각 그를 석방하지 않으면, 보복이 뒤따를 것”이라고 위협했다. 미국 의회에서는 이를 계기로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들이 대거 연합해,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독일로 운송하기 위한 노드 스트림(Nord Stream) 2 가스관 사업 참여 기업들을 대상으로 2019년 채택한 제재를 강화할 것을 요구했다.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유럽 의회도 만족할 것이다. 유럽 의회는 지난 1월 (독일 정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폴란드와 발트해 국가들이 바라는 대로 “유럽 연합(EU)이 나서서 해당 가스관의 완공을 즉각적으로 저지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대다수의 찬성으로 표결한 바 있기 때문이다.

나발니도 국외 접촉을 늘리는 행보를 보였다. 그는 자신을 독살하려던 것으로 추정되는 고위관리 6명을 대상으로, EU가 지난 10월 15일 채택한 개별적인 제재들의 강화와 방향 재설정을 바라고 있다. 이 6명에는 세르게이 키리옌코 대통령 행정실 부실장이 포함된다. 나발니의 목표는 크렘린 궁에 대한 보복 조치를 얻어내고 친정권 과두정치가들이 유럽과 미국에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동결하는 것이다. 나발니 측은 “국내 정책을 동원해 선거를 조작하고, 공금을 횡령하고, 반대파를 독살하는” 35명의 목록을 미국 대통령에게 보냈다. 이 목록에는 정부 대변인, 모스크바 시장, 총리와 2명의 장관을 비롯한 주요 인사 외에도 친푸틴 기업가들과 공금횡령에 명의를 대여한 것으로 의심되는 고위 책임자들의 아들들도 포함된다.

미국 정부는 나발니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는 듯하다. 2012년에 채택된 글로벌 마그니츠키법(Global Magnitsky Act)은 전 세계에서 자행되는 부패에 미국이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가을 미국을 본받아 ‘나발니법’ 채택을 시도했지만 일부 회원국의 소극적인 태도로 타협을 해야 했다. 12월 7일 채택된 후 아직 발효 전인 새 제재 체제는 만장일치의 원칙을 유지하며 인권 침해 분야에 제한된다. 리나스 린케비치우스 리투아니아 외교장관은 “우리는 이 새로운 체제가 향후 부패 행위까지 확대 적용되길 희망한다”라고 밝혔다. 

국제사회의 나발니 지지 열기는 그의 자국 내 정치적 영향력 때문일까? 여하튼 미국 정부는 민주주의를 해친다고 비난하며 푸틴 정권의 체면을 손상하고 있다. 조셉 바이든은 2018년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서 러시아를 “정보부 출신과 과두정치인 도당(徒黨)”의 손아귀에 있는 나라로 표현했다. 바이든은 “시민사회에 대한 억압이 사라지면 (러시아 지도자들이 누리고 있는) 찬양의 박수갈채와 최고점에 가까운 지지율은 곧 조롱과 야유의 함성으로 바뀔 것이다. (…) 러시아 정권이 가지고 있는 난공불락의 이미지는 교육을 받은 도시 청년들 사이에서 특히 약한 지지 기반을 가리고 있다”라고 말했다.(2)

 

“러시아는 러시아 국민의 것”

체스 챔피언 출신 가리 카스파로프는 비록 지지자는 매우 적지만 오랫동안 푸틴의 ‘제1 정적’ 자리를 지켰다. 나발니는 ‘카스파로프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푸틴의 정적’이라는 자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유명 블로거이기도 한 나발니가 모스크바에서 청년 수십여 명을 이끌고 “러시아는 러시아 국민의 것이다”, “카프카스 지역을 먹여 살리는 것을 중단하라”라고 외치며 행진한 사건을 아직 기억하는가? 직업 변호사 출신 나발니는 2007년 러시아어로 인민을 뜻하는 나로드(Narod)당을 이끌었다. 

3년 후에는 미국 뉴헤이번의 예일대를 거쳐 반부패 폭로 웹사이트 로스필(Rospil)을 개설했다. 재산 부정취득 고발 등의 활동을 펼치며, 신랄한 민족주의와 결별하고 서구 언론의 공감을 얻었지만 외국인 혐오주의 성향을 결코 부인하지 않았다.(3) 이때부터 그는 ‘러시아의 줄리언 어산지’로 불리기 시작했다.(4) 2013년에는 모스크바 시장선거에 출마해 27%의 득표율을 기록했는데 러시아의 상황을 고려하면 상당히 선전한 셈이다. 2018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후보 등록을 거부당했지만 전국적으로 20만 명의 자원봉사자와 100여 개의 지지위원회가 나발니의 선거운동에 참여했다.(5)

정치무대에서 추방당한 나발니는 우회적인 복귀를 시도했다. 2018년, 그는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통합러시아당 후보를 이길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의회 야당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촉구하는 ‘스마트 투표(Smart Voting)’ 운동을 벌였다. 다른 정당들을 트로이의 목마로 이용해 집권당의 지배적인 입지를 약화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러시아연방공산당(KPRF)과 러시아자유민주당(LDPR)이 이 전략의 가장 큰 수혜자다. 

2019년과 2020년, ‘스마트한’ 선택에 힘입어 야권의 여러 후보가 주요 도시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뿐만 아니라, 탐보프(18석 중 16석), 톰스크(27석 중 17석), 노보시비르스크(50석 중 14석)등의 지방 도시에서 시의회에 입성했다. 이 운동으로 나발니는 상대적으로 소외된 정치적 입지를 보상받을 수 있었다. 나발니는 체포된 이후 시위를 독려하고 직접 제작한 폭로 영상물 <푸틴 궁전>을 공개했다. 러시아 성인 4명 중 1명 이상이 이 영상물을 시청한 것으로 조사됐다.(6) 이 같은 행보는 실제로 반향을 일으켰다. 1월 23일, 약 10만 명의 시위대가 거리로 나왔다. 2011~2012년 선거 조작 항의 운동 중 벌어진 일부 시위와 맞먹는 규모다. 당국은 예방적 체포, 시위 금지, 대규모 소환 및 구류 조치로 억압을 강화했고, 북극 한파까지 기승을 떨쳤지만 시위를 막지 못했다. 

하지만 나발니는 정권에 심각한 위협이 되지는 못한다. 언론은 나발니가 구금된 후 그를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정치범인 넬슨 만델라에 비교하고 있다. BBC방송과 <가디언(The Guardian)>지(1월 17일자 기사)가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10만여 명의 당원을 거느리고 국내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린 아프리카민족회의(ANC)를 이끌었던 만델라에 나발니를 비교한다는 것은 무리다. 1월 시위를 지지한 러시아 국민은 22%에 불과하다. 프랑스의 ‘노란 조끼’ 시위가 초창기에 프랑스 국민 80%의 지지를 자랑했던 것과는 차이가 크다.(7) 뿐만 아니라 시위 참가자 수는 시위 두 번째 주말부터 감소했으며 저명한 지지자들에 대한 사법부의 괴롭힘이 강화됐다. 독립적인 조사로 정평이 난 러시아 여론조사기관 레바다센터(Levada Center)에 의하면 지난 여름 이후 나발니의 지지율은 20%에서 멈췄다.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인 64%에 훨씬 못 미치는 수치다.(8)

외교는 나발니를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 러시아는 제재에 익숙해진 듯 보이며 나발니의 석방을 요구하는 모든 외부의 압력을 내정 간섭으로 간주하고 있다. EU 외교 고위대표 조셉 보렐이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푸틴은 폴란드, 스웨덴, 독일의 외교관 3명을 추방하며 이 점을 분명히 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제재 때문에 민감한 영역을 포함한 일부 분야가 타격을 입어 우리나라 경제가 위협 받을 경우” EU와 외교 관계를 단절하겠다고 위협하며 쐐기를 박았다.

 

크렘린 궁이 우려하는 두 가지

러시아는 태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적어도 두 가지 요소만큼은 크렘린 궁도 우려하고 있다. 첫 번째 요소는 시위대의 사회학적 면모다. 2014년 이후 국민의 소득이 거의 매년 감소하고 2020년 식료품 가격이 급격히 인상(설탕 70%, 해바라기씨유 24% 가격 인상)(9)된 상황에서 “산업화 이후의 도시 프롤레타리아”(10)와 사회적 지위가 격하된 대학졸업자들의 시위 참여는 크렘린 궁의 대응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으로 시위에 참가했다. 1월 말 시위에 참가했다가 체포된 나발니의 측근이자 노조 운동가인 알렉세이 가스카로프는 건설 노동자, 에어컨 수리기사, 상점 직원과 같은 수용실을 썼다고 본지에 털어놨다. “한 명은 어머니의 치료비를, 한 명은 대출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해 매우 화가 난 상태였다. 현 체제에 대한 항의에는 사회적 동기가 명백히 작용했다.” 민심에 반한 2018년의 연금개혁으로 권력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이미 높아졌다.(11)

크렘린 궁이 우려하는 두 번째 요소는 이번 사건이 나발니에게 충성하는 것으로 유명한 의회 야당에 미치는 부차적 영향이다.(12) 블라디미르 지리노브스키 LDPR 대표는 TV 방송에서 나발니가 미국에 “매수됐다”고 격렬히 비난했지만, 같은 당 출신인 세르게이 푸르갈 전 하바롭스크 주지사는 2018년 ‘스마트 투표’ 운동 덕에 당선된 전력이 있다. 나발니는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와중에 구금됐다. 지난여름 전례 없는 시위를 촉발한 이유다. 

KPRF의 내부 분열은 더욱 뚜렷하다. KPRF는 러시아 하원의 450석 중 42석을 차지하고 있는 제1야당으로 크렘린 궁이 지금껏 온전히 통제하지 못한 당이다. KPRF의 당수 겐나디 쥬가노프는 나발니를 외국 요원으로 취급했지만, 이 정당 소속 여러 의원은 시위에 합류했다. 그중 한 명인 사마라주(州)의 니콜라이 본다렌코 의원은 몇 시간 동안 체포되기까지 했다. 그는 유튜브(Youtube) 구독자 128만 명을 거느린 유명 정치인이다. 이 사건은 향후 여파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본다렌코 의원은 9월에 열릴 총선에서 현 하원의장 비아체슬라프 볼로딘과 같은 선거구에 출마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당국은 보건 위기를 공식적인 이유로 내세워, 공산주의자들이 러시아 제정 붕괴를 기념하기 위해 2월에 개최하는 전통적인 행사를 금지했다. 이 결정은 정치 생활과 소셜미디어 이용 제약 강화를 우려하는 KPRF 내부의 좌파 의원들을 과격화시켰다. 발레리 라쉬킨 의원은 앞으로 크렘린 궁의 지시를 따르지 말자고 촉구하고 나섰다. 

나발니의 구금으로 러시아의 정치 게임은 혼란에 빠졌다. 정부는 “제도권 밖” 야권을 불법으로 규정하며 대응하고 있다. 앞으로는 합법적인 야당의 반정부 인사들까지 추방할지도 모른다. 푸틴이 지난 여름 국민투표에 따라 채택된 개정 헌법이 허락하는 2036년까지 권력을 유지할 계획이라면, 억압만으로 충분하다는 보장은 없다.  

 

 

글‧엘렌 리샤르 Hélène Richard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Michael McFaul, ‘A Russian dissident is fighting for his life. Where is the US?’, <The Washington Post>, 2020년 8월 21일.
(2) Joseph R. Biden, Jr. & Michael Carpenter, ‘How to stand up to the Kremlin’, <Foreign Affairs> vol. 97, n° 1, New York, 2018년 1~2월호.
(3) Marlene Laruelle, 『Russian Nationalism : Imaginaries, Doctrines, and Political Battlefields』, Routledge, New York, 2019.
(4) Marie Jégo, ‘La Russie a son WikiLeaks à elle 러시아 버전 위키리크스’, <르몽드>, 2010년 12월 10일.
(5) 선거운동 웹사이트, https://2018.navalny.com
(6) ‘The film “Palace for Putin”’, Levada Center, 2021년 2월 8일, www.levada.ru
(7) Levada Center, ‘January protests’, 2021년 2월 11일.
(8) ‘Putin’s approval rating‘, Levada Center, 2021년 1월, www.levada.ru
(9) Alain Barluet, ‘Russie : Vladimir Poutine face à l’envolée des prix alimentaires 러시아: 식료품 가격 인상에 직면한 블라디미르 푸틴’, <Le Figaro>, 파리, 2020년 12월 17일.
(10) Alexander Baunov, ‘The new face of Russian protest’, Carnegie Moscow Centre, 2021년 1월 25일, www.carnegie.ru
(11) Karine Clément, ‘Le visage antisocial de Vladimir Poutine 블라디미르 푸틴의 반사회적인 얼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8년 11월호.
(12) Arnaud Dubien, ‘Quelques réflexions sur la situation politique en Russie 러시아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몇 가지 고찰’, Observatoire franco-russe(프랑스-러시아 관측 센터), 2021년 1월 26일, https://fr.obsfr.r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