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산업 앞에 사지가 마비된 국가들

2021-02-26     프레데리크 피에뤼 외

제약업체들은 대대적인 공적자금을 투자받아 코로나 백신을 개발했다. 그럼에도 버젓이 가장 높은 호가를 부르는 입찰자에게 백신을 판매하고 있다. 기껏해야 자사가 위치한 국가를 위해 백신 물량을 빼주는 것이 전부이다. 그러니 차라리 정부가 나서서 지적재산권의 효력을 중지시키면 어떨까? 여력이 되는 나라들이 다른 나라를 위해 백신을 생산할 수 있도록 말이다.

 

2020년 봄 격리조치 때 붐을 이루던 선의의 물결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만 해도 사회의 근간을 널리 바로잡아, 다가올 세상에서는 백신이 ‘글로벌 공공재’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11월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역시 다음과 같이 진지하게 질문했다. “첫 코로나19 백신이 시중에 나올 때 과연 우리는 전 세계인이 평등하게 백신을 공급받아, 모두가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하게 정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가? 오직 부유층만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양극화된’ 세상을 막을 수 있는가?”(1)

하지만 선의의 약속들은 끝내 공허한 구호로 남고 말았다. 2021년 1월 18일,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다음과 같이 참담한 현실 진단을 내놓았다. “지금까지 최소 49개 부유국은 백신 3,900만 회분을 접종했다. 하지만 저소득 국가의 접종은 단 25회에 그쳤다. 2,500만 회도, 2,500회도 아닌, 고작 25회분이다.” 그러면서 그는 인류가 ‘재앙 수준의 도덕적 실패’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세계보건기구(WHO)는 두 가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며 국제적 연대의 불길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첫째는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로, “코로나19 백신을 공동구매함으로써, 190개 국가 및 영토에 공평하게 백신을 공급할 수 있도록 보장”하려는 장치다.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코백스는 먼저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독일 스타트업 바이오엔테크와 공동 개발)와 4,000만 회분의 백신(메신저 RNA 백신) 공급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아스트라제네카(옥스포드 대학과 공동 개발)와도 1억 2,000만 회분의 추가 계약을 맺었다. 출범 당시 목표는 야심찼다. 2021년 말까지 20억 회분의 백신을 공급하겠다는 구상이었다. 두 번째는 ‘코로나19 기술 접근 풀(C-TAP)’이다. 대량 백신 생산에 필요한 지식·기술·특허 등을 개발도상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공유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 구상됐다. 사실 ‘C-TAP’는 현재 한낱 허수아비 프로젝트에 불과하다. 반면 ‘코백스 퍼실리티’는 아예 첫 출발부터 많은 벽에 부딪혔다. WHO가 제시하는 목표 시점도 2022년, 더 나아가 2024년 등으로 한없이 미뤄지는 실정이다.

 

손실의 사회화, 이윤의 사유화

유럽연합과 각국 정부는 공식석상에서 했던 발언에 발목이 잡힌 채 애매한 화법을 구사하고 있다. 하지만 어쨌거나 실질적으로는 다국적 제약업체들의 손을 들어주는 방향으로 현실정치가 승리를 거두고 있다. 사실 각국 정부는 제약사와 맺은 비밀유지협정 때문에 백신 선주문 계약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공개하기를 꺼리지만, 일부 기본적인 내용이 외부에 유출됐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시 우리는 이 분야에서도 역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철칙이 철저히 적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손실은 사회화되고, 이윤은 사유화되고 있다. 제약회사들은 유럽연합집행위원회와 각국 정부로부터 백신 연구 개발과 대량 생산에 필요한 자금 수십억 유로(백신 개발에만 20억 유로 이상 지원)를 지원받으며, 실질적으로 경영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제약회사들은 특허권을 홀로 장악하고, 각국 정부와 치열하게 가격 협상을 벌이며, 개도국에 백신을 기증하거나 재판매하기를 원하는 국가들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최근 에바 드 블리커 벨기에 예산부 장관이 실수로 유출한 내용(2)에 의하면, 유럽연합이 제약회사들과 맺은 코로나 백신 공급가는 아스트라제네카가 1.78유로, 큐어백이 10유로, 모더나가 14.68유로였다.

한편 백신 공급기한과 관련한 계약조건도 고무줄처럼 제멋대로다. 그 바람에 유럽연합집행위원회는 지난 1월 아스트라제네카가 정해진 기한(2021년 1/4분기)에 예정된 물량(8,000만 회분)을 모두 맞추기 어렵다고 통보하면서 큰 낭패를 겪기도 했다. 급기야 유럽연합은 영국 공장 생산분을 자국이 차지하려는 영국 정부와 정치적 마찰을 빚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결국 계약 물량의 절반 선에서 합의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마지막으로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는 경우 제약사가 져야 할 법적 책임 역시 각국 정부가 대신 짊어주며 낮춰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불평등한 협상의 책임을 오로지 다국적 제약회사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의하면, 명실상부한 유럽연합 기관인 유럽투자은행이 바이오엔테크에 1억 달러를 대출해주며, 버젓이 수익에서 2,500만 달러를 떼어가는 조건을 달았다.(3) 백신을 돈벌이로 삼는 게 당연하다는 듯 말이다! 

계약조건만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다. 귀중한 백신을 개발, 제조, 배분하는 과정에서 여러 국가들이 겪고 있는 지정학적 마찰도 골칫거리다. 중국과 미국은 물론이고, 러시아(러시아는 자국산 백신 ‘스푸트니크V’가 공식 코로나 백신으로 순조롭게 인정받으며 국제무대에서 중대한 승리를 거뒀다), 독일, 이스라엘, 영국까지 대결구도에 가세했다. 비록 현재 모든 상황이 완벽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영국만은 백신 접종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임하며, 말도 많고 힘겨운 브렉시트 협상 동안 들어왔던 ‘유럽연합을 탈퇴하면 더 이상 유럽의 든든한 보호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들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2020년 5월 영국의 보리스 존슨 정부는 곧바로 백신의 개발·생산·공급을 원활히 하기 위해 ‘백신 태스크포스’를 조직했다. 프랑스 제약사 발네바와 제휴를 맺고, 스코틀랜드 공장에서 새로 개발된 백신을 생산할 계획을 세웠다.

한 마디로, 느려터지고 수동적인 프랑스와는 상당히 대조적이었던 셈이다. 2월 4일 영국은 전체인구의 16.2%에 대해 최소 1회 접종을 마쳤다. 반면 스페인의 접종률은 4%, 이탈리아는 3.9%, 독일은 3.6%, 프랑스는 기껏해야 2.7%다. 프랑스가 뒤쳐진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프랑스는 언론의 성화에 떠밀려 2021년 1월이 돼서야 부랴부랴 백신접종센터를 설치했다. 그 바람에 정신없이 바쁘고 지친 의료진의 어깨에 무거운 짐만 더 안겨주고 말았다. 그보다 더 심각한 사실도 있다. 프랑스 정부는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 도무지 상식에 맞지 않는 기존의 병상 감축 정책을 계속 고집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 프랑스 제약업체 사노피 역시 최종적으로 ‘국산 백신’ 경쟁에서 탈락하면서, 2월이 돼서야 뒤늦게 델파름므, 레시파름므 등 다른 프랑스 제약사들과 함께 백신 하청 생산(원액 충전 및 포장)을 시작했다.

 

생명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백신을 둘러싼 갈등이 첨예한 만큼, 개도국을 먼저 챙기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제약회사들이 전부 특허권에 목을 매고 있는 상황에서, ‘C-TAP’이나 ‘코백스 퍼실리티’가 제대로 작동할 리 없다. 옥스팜(전 세계 빈민구호를 위해 활동하는 국제 NGO단체-역주)에 의하면, 전 세계 인구의 13%를 차지하는 선진국 국민들은 현재 전체 백신 접종분의 무려 51%를 선점했다. 심지어 유럽연합에서마저 국가마다 초기 백신 물량이 불평등하게 배분되는 실정이다. 예를 들면 이탈리아가 9,750회분, 프랑스가 1만 9,500회분, 독일이 15만 1,125회분을 받았다.(4)  국가별 상대적 인구수로는 설명할 수 없는 큰 차이다. 국가별로 평등함의 정도가 다르다고밖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특히 독일은 유럽연합집행위원회가 주도하는 백신 공동구매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도, 버젓이 개별적으로 추가 백신 구매 협상에 나서고 있다.(5)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 선진 국가들 사이, 더 나아가 한 국가 내에서 ‘평등한 생명의 가치’(6)를 보장하려면, 제약시장의 법칙을 대대적으로 손봐야 한다. 현 위기는 제약업계에서 통용되는 주류 경제모델이 얼마나 비정상적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훌륭한 예다. 사실상 바이오테크놀로지나 유전체학이 발전하면서, 제약사들은 점점 더 연구개발 업무(다시 말해 리스크)를 벤처기업에 외주로 떠넘기는 형편이다. 이들 벤처기업은 대개 정부자금을 투자받아 대학과 연계해 연구를 진행한다.(7) 대표적인 예가 바이오엔테크와 모더나다. 

이처럼 민간부문과 기초연구분야, 공공자금이 연계되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지적재산권은 한층 더 강화되는 추세다. 심지어 공공투자자가 보건시스템이라는 이름을 이용해, 경매방식으로 운용되는 의약품 시장에서 돈벌이 수단을 창출하려고까지 한다. 다국적 제약업체들은 원하는 낙찰가를 관철시키기 위해 여러 국가들 사이에 서로 경쟁을 붙이고, 때로는 물량에 따라 가격을 낮춰주겠다며 은밀히 뒷거래를 하기까지 한다. 

공공투자자들의 탐욕과 백신 대란을 지켜보며, 많은 의료계 인사와 사회운동가, 비정부기구 및 일부 국가들은 정부가 ‘강제실시권’(특허를 가진 자의 동의 없이 강제로 특허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특허권에 대한 제약을 의미-역주)을 발동하라고 촉구하고 있다.(8) ‘강제실시권’이란 18세기 말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으로,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한 파리협약’이 개정된 덕분에 1925년 국제표준으로 편입됐다.(9) 

이후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으로 고통받던 남아프리카를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대대적으로 특허권 중지를 요구하며 들고 나섰고, 이에 프랑스에서 ‘직권실시권(licence d'office)’이라고도 불리는 ‘강제실시권(licence obligatoire)’이 2001년 비로소 ‘도하 선언(세계무역기구가 2001년 채택한 국가적인 보건 비상상황이 발생했을 때 각국이 의약품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무효로 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선언문-역주)’을 통해 본격적인 제도적 틀을 마련했다. 이미 30년째 효력을 발휘 중인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 제31조는 “국가 비상사태나 기타 극도의 위급상황 혹은 공공의 비상업적 사용을 위해서 예외적으로” 특허권 중지를 허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권리자의 승인 없이” 특허권의 효력을 중지시킬 수 있다.(10)

 

백신의 공유화를 가로막는 것들

더욱이 프랑스는 강제실시권을 요구할 만한 근거가 충분하다. 사실상 1959년 2월 8일 선구적인 법령을 제정하여, 이미 공중보건에 반드시 필요한 의약품의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높거나 품질 및 물량이 부족한 경우 국가가 특허의 효력을 중지시킬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특허 등록에 따른 독점적 권리와 공중보건이라는 상위의 이익 사이에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인 셈이다. 사실 오늘날의 상황이 분명 이와 같다. 하지만 프랑스는 어째서 남아프리카, 볼리비아, 케냐, 에스와티니(구 스와질랜드), 몽골, 모잠비크, 파키스탄, 베네수엘라가 요구하는 것처럼 특허권을 중지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지 않는 것일까?

먼저 법적인 어려움을 들 수 있다. 사실상 ‘위급상황’에 대한 정의가 애매하다. 세계무역기구(WTO)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 위원회는 내부적으로 ‘위급상황’이란 말의 의미에 대해 아직까지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11) 더욱이 강제실시는 여러 기업에 줄줄이 타격을 입힐 수 있다. 기술, 임상자료 접근, 백신 생산 원료 등 관련 특허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시간을 한없이 잡아먹는 싸움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한편 물자보급체계도 걸림돌이다. 왜냐하면 백신 수백만 접종분을 생산할 수 있는 산업시설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한 번 프랑스의 경우를 살펴보자. 이번 사태는 프랑스의 탈산업화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는지, 그로 인해 대통령이 바라는 의료주권이 얼마나 위협받고 있는지 고스란히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적어도 마스크 대란을 겪는 동안 우리는 다음 단계를 대비했어야 옳다. 현재 가장 효과가 높다고 알려진 ‘RNA 백신’ 생산이 얼마나 중대하고 복잡한 과제인지 알았다면 사전에 훨씬 더 철저하게 준비를 했어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지정학적 장애물이 거대한 장벽처럼 떡하니 눈앞을 가로막고 있다. 강제실시권을 발동하기를 원하는 국가는 여러 막강한 주권국들과 힘겨운 줄다리기를 벌여야 한다. 특히 현재까지 가장 효과가 높다고 알려진 백신 회사 두 곳을 거느리고 있는 미국과 충돌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프랑스와 유럽, 그리고 그 외 국가들은 과연 감히 미국에 맞설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적어도 프랑스는 단 한 번도 미국에 맞서본 적이 없다. 2014년 제약회사 길리어드 사이언스가 C형 간염 치료제인 소발디 가격을 4만 1,000유로로 턱없이 비싸게 책정했을 때에도, 프랑스 정부는 강제실시권을 발동했다가 행여 미국으로부터 보복조치를 당할까, 차라리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감수하고 약품 배급 절차를 고도로 통제하는 길을 택했다.(12)

하지만 미국은 단 한 번도 망설인 적이 없었다. 미국은 9·11 사건 이후 자국 내 탄저균을 이용한 생화학 테러 공격의 위험이 높아지자, 바이엘사가 특허를 가진 탄저병 치료제 시프로플록사신에 대해 강제실시권을 발동하겠다며 협박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결국 바이엘사는 미국의 성화를 이기지 못하고 공급가를 낮춰줬다. 하지만 그런 미국이 정작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을 준수하지 않는 국가들을 조사해 일명 ‘스페셜 301조’ 보고서라 불리는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 여기에는 인도(특허기간이 만료되지 않은 의약품을 복제한 제네릭 의약품을 생산), 중국이 포함됐고, 캐나다도 이름을 올린 적이 있다. 그렇다면, ‘내 말대로 행하되, 내 행동대로는 하지 마라!(Do as I say, not as I do)’는 것일까?

 

‘강제실시’가 아닌 ‘자발적 실시’를 위해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 우리는 유럽연합이 지정학적인 측면이나 산업적 측면에서 얼마나 유명무실한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영국의 사례를 지켜보면서 오히려 유럽연합의 회원국이라는 지위가 더 불리한 조건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프랑스라면 강제실시권 발동을 고려해볼 수 있는 국가다. 하지만 그러려면 먼저 일정한 조건을 갖춰야 한다. 무엇보다 프랑스가 자유무역교리를 버리고 자율성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 가령 의약품 ‘국가허브’를 구축함으로써 산업 및 보건 분야에 유용한 수단을 마련하고, 연구개발은 물론 의료시스템(물적, 인적 투자)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투자를 벌이며, 향후 다양한 전염병 사태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모두 미래의 이야기일 뿐이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란 백신을 글로벌 공공재로 삼으려는 다양한 시민들의 활동에 기대는 길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특히 중국, 러시아, 인도 같은 미국이 아닌 다른 강국들과 관계를 돈독히 해야 한다. 그래야만 미국 제약회사들이 자국의 비호를 받으며 시장을 독점하지 못하게 견제할 수 있다. 사실 최근 프랑스 외교정책의 변화도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변화를 통해 비로소 프랑스는 ‘강제실시’가 아닌 ‘자발적 실시’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13) 다시 말해 권리자들의 승인하에, 러시아나 중국산 백신에 대해 특허권 효력 중지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공공투자의 기준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저가나 혹은 더 나아가 원가로 공급되는 의약품 개발에서 투자자들이 입을 수 있는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여러 전략들에 대해서도 공정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모든 관련 정보(특허권, 제조기법)를 가난한 국가나 신흥국 기업들에도 투명하게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만 모든 국가가 원활하게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개도국이나 혹은 극빈국에 기증할 의약품을 구매하기를 원하는 ‘국제 바이어들’에게도 저가로 의약품을 공급할 수 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지금 눈앞에 목도하고 있는 참담한 광경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일각에서 ‘조직화된 자유무역(organized free trade) 경제’라고 부르는 체제를 마침내 종식할 수 있다. 사실상 이 ‘조직화된 자유무역 경제’ 체제에서 ‘자유’란 실상 국가가 제약산업의 손에 터무니없이 막강한 권한을 쥐어줄 수 있는 자유에 지나지 않으니 말이다.  

 

 

글‧프레데리크 피에뤼 Frédéric Pierru
사회학자, 프랑스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주요 저서로는 André Grimaldi 와 함께 저술한『Santé : urgence(보건 : 위급상황)』(공저, Odile Jacob, Paris, 2020년)이 있다.
프레데리크 스탕바크 Frédérick Stambach
농촌 지역 앙바자크에서 활동 중인 일반의
쥘리앵 베르노동 Julien Vernaudon
리옹 대학병원 ‘HCL(오스피스 시빌 드 리옹)’ 임상의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번역위원


(1) ‘코로나19 감염병 극복 및 향후 팬데믹 대비에 관한 에마뉘엘 마크롱의 선언’, 2020년 11월 21일, www.vie-publique.fr.
(2) 에바 드 블리커가 2020년 12월 17일 트위터에 게시했다가, 다음날 삭제한 글.
(3) Matt Apuzzo, Selam Gebredikan, ‘Governments signs secret vaccine deals. Here's what they hide’, <뉴욕타임스>, 2021년 1월 28일.
(4) Virginie Malingre, ‘Vaccination contre le Covid-19 : les ratés et lenteurs de l'UE éclipsent ses succès 코로나19 백신 접종 : 실패와 지체에 가려진 성공’, <르몽드>, 2021년 2월 6일.
(5) Julian Deutsche 외, ‘Thanks to deep pockets, Germany snaps up extra coronavirus jabs’, <Politico>, 워싱턴DC, 2021년 1월 7일.
(6) Didier Fassin, 『De l'inégalité des vies 생명의 불평등에 대해』, Fayard-Collège de France, 파리, 2020년.
(7) Margaret Kyle, Anne Perrot, ‘Innovation pharmaceutique : comment combler le retard français? 의약계 혁신 : 뒤쳐진 프랑스는 어떻게 낙오를 만회할 것인가?’, <Les Notes du Conseil d'analyse économique 경제분석위원회 문서>, 제62호, 파리, 2021년 1월.
(8) ‘Les vaccins anti-Covid 19 doivent être un bien public mondial 항코로나19 백신은 글로벌 공공재가 되어야 한다’, www.change.org에서 진행 중인 청원. 
(9), (13) Gaëlle Krikorian, ‘Licence obligatoire(강제실시)’, Marie Cornu, Fabienne Orsi, Judith Rochfeld, 『Dictionnaire des biens communs 공유지 사전』,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파리, 2021년(제2판)
(10)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문’, 세계무역기구(WTO), www.wto.org.
(11) Kaitlin Mara, ‘Decision on intellectual property waiver over Covid Technology on hold until 2021; what are the next steps?’, <Medecines Law and Policy>, 워싱턴DC, 2020년 12월 18일.
(12) Olivier Maguet, ‘La Santé hors de prix : l'affaire du Sovaldi 턱없이 비싼 건강 : 소발디 사건’, <Raisons d'agir>, 파리,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