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네그로 정부의 정체성 혼란

발칸화가 집단이기주의를 조장한다면

2021-02-26     필리프 데캉 외

몬테네그로가 사상 최초로 투표를 통해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몬테네그로 대통령 밀로 주카노비치(Milo Đukanović)가 당 대표를 맡은 사회주의자민주당은 장기 집권 체제를 유지하는 동안 공산주의, 세르비아 민족주의, 친 러시아주의, 분리주의, 친 NATO. 친 EU 진영을 오가며 쉴 새 없이 노선을 바꿔왔지만 결국 재집권에 실패했다. 한편 과반을 차지한 야권 연합은 신정부를 구성하고, 국가의 부흥을 가로막는 정체성 논란이나 외부의 압력 같은 난제를 정면 돌파하기로 했다.

 

아직 10월 말이었음에도, 해발 1,700m가 넘는 이곳에는 살을 에는 추위가 엄습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추위에 맞서기 위해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주변에 모여 있었다. 몬테네그로 북부 산악지대 신야비나 고원에서 이른바 제2의 라르자크(Larzac) 시위가 일어난 것이다. 1970년대 중반에 프랑스 코스(Causses)에서 군사훈련장 확충에 반발했던 라르자크 시위대처럼, 이곳 주민들과 환경운동가들은 장대하게 펼쳐진 목초지가 군사기지로 변질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임기 말의 현 내각은 사비나 보다(Savina Voda) 호수의 연안 지대를 탄환 폐기장으로 만들 생각을 했어요.” 2018년에 ‘신야비나(Sinjajevina) 살리기 운동’을 시작한 밀란 세쿨로비치가 설명했다. “50개 이상의 농장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고, 도로, 전기 등 기반시설에 공공지원과 투자가 잘 이뤄지지 않아서 농민 수가 계속 줄고 있습니다. 자국의 농업과 축산업을 육성할 방안이 있는데도 식량의 8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요.”

2020년 8월 30일 총선에서 박빙의 승부 끝에 유고슬라비아 공산주의 정부 시절부터 장기 집권 체제를 유지해온 여당이 패배했고, 활동가들은 외부로부터 압력을 받는 신정권이 확실한 약속을 내놓기만을 기대한다. 몬테네그로는 2017년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회원국이 됐으나, 옌스 스톨텐베르그 NATO 사무총장은 사뭇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10월 21일에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동맹국으로서 중요한 임무인 군사훈련 수행과 동시에, 자연을 보호할 방안이 있으리라고 확신한다”라고 답했다.(1)

1999년 분리 독립 전에 발발한 코소보 전쟁 당시, NATO군의 폭격을 받은 몬테네그로인들은 이런 문제에 무척 민감하게 반응한다.(2) 이 시위에는 환경운동가, 농민은 물론 세르비아인의 정체성을 고수하는 이들도 참여했다. ‘세르비아인’이라는 정체성은 ‘몬테네그로인’이라는 단일 정체성에 덮여져 있다. 검은색 사륜구동차가 집회장으로 들어왔다. 잠시 후 옷자락이 긴 성직자 복장을 한 인사가 차에서 내렸다. 세르비아 정교회의 2인자이자 부딤례-닉시치(Budimlje-Nikšić) 교구를 맡은 요아니키예 미초비치(Joanikije Mićović) 주교가 한 손에는 화려한 지팡이를 쥐고 흰 수염을 바람에 휘날리면서 시위대를 향해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미초비치 주교는 연설에 앞서 작은 호숫가에서 활동가들에게 세례의식을 베풀었다.

그리고 “지금은 매우 중요한 전환기”라는 말로 운을 뗐다. “1945년부터 일당 독재 체제를 이룬 공산당이 정권을 상실했던 때처럼요. 사람들은 다시 믿음을 되찾고 있습니다. 땅과 천연자원, 삶과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지키고, 유산과 전통을 지켜내고 있습니다.” 환경보호를 위한 투쟁은 집회장의 청중에게는 물론, 미초비치 주교에게도 의미가 있다. 정부가 지난 1년간 세르비아 동방 정교회로부터 수도회와 예배당을 박탈하기 위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 문제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2020년 5월 경찰서에 갇힌 지 3일 만에 풀려났던 미초비치 주교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우리의 재산도, 정체성도 빼앗으려 했습니다. 항의 말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시위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고리가 됐습니다. 10만 명이 시위에 나섰습니다.” 프랑스로 치면 1,000만 명이 시위에 나선 셈이다.

 

외국 부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관광지구

사회주의자민주당(Demokratska Partija Socijalista, DPS)은 유고슬라비아 공산주의자 동맹을 직접 계승하며 탄생한 정당으로, 정세에 따라 정치색을 바꾸면서 장장 30년 동안 정권을 유지했다.(3) DPS는 세르비아의 초대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셰비치(Slobodan Milošević)의 편에 섰다가도 이내 등을 돌렸고, 분리주의를 지지하다가도 곧 반기를 들었으며, 친러에서 친서방으로 쉽게 노선을 바꿨다. 당 지도자가 연루된 사건도 무수히 많았고 청년 지지층이 대거 이탈하는 와중에도 장기 집권을 이어갔다. 그러다 인구 대다수가 속해있는 세르비아 정교회를 두고 소수파 몬테네그로 정교회를 육성하려는 계략을 폈지만, 정체성 문제에 부딪혀 지지율이 급락했다. 

2011년 여론조사에 의하면 몬테네그로 인구의 72%가 정교회 신도이며, 19%가 이슬람교도, 3%가 가톨릭교도다. 민족 정체성 측면에서 정교회 신도 상당수가 자신을 몬테네그로인(45%) 또는 세르비아인(28.7%)이라고 응답했고, 그밖에 8.6%가 보스니아인, 4.9%는 알바니아인이라고 답했다(무응답과 약 15개의 여타 응답 제외). 하지만 몬테네그로인의 정체성을 가진 많은 국민이 세르비아 정교회를 따른다. 공산주의 시절에는 몬테네그로인이라는 민족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많아서 인구조사에서 자신이 몬테네그로인이라고 답하는 비율이 1948년에는 90%에 달했다. 1981년에는 그 비율이 68%로 줄었다(유고 연방 시기에는 3.3%로 감소).

지정학 전문가 아마엘 차타루자는 세르비아 민족 정체성과 구분되는 몬테네그로 민족 정체성의 출현 계기가, 역사나 지리적 요인에 국한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한다. 밀로셰비치가 세르비아에서 펼친 권위주의 정치와 세르비아 정권을 고립시키려는 국제사회의 전략(주로 미국과 유럽연합)이 몬테네그로 내 자국 주권론자들의 몸집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 국제사회는 몬테네그로의 국가 정체성 개념을 민족에 두기도 하고 시민성에 두기도 하는 등 필요에 따라 기준을 달리하는 식으로 주장을 정당화했다.(4) 그러다 2000년 밀로셰비치가 실각한 이후, 분리 독립 진영의 의견이 강해졌고, 2006년에는 국민투표에서 55%가 넘는 독립 찬성표가 나와 세르비아인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과 상관없이 몬테네그로의 독립이 결정됐다.

정체성 문제 뒤에는 사회적 문제가 숨어있다. 무엇보다 몬테네그로는 불균등한 경제 성장으로 사회 갈등을 겪고 있다. 일드프랑스 지방에 버금가는 국토 면적에 국민이 62만 명, 백만장자가 66명인 이 국가는 인구의 1/4이 빈곤선 이하(2019년 기준 연간 소득 2,261유로 미만)에서 살아간다.(5) 이보다 훨씬 더 결정적인 지표로는 실업률(보건위기 이전인 2018년 기준)에서 드러나는 지역 간 격차를 들 수 있다. 변화에 찬성한 인구 비율이 북부 지역은 36.6%에 달했지만, 해안 지역은 3.9%에 그쳤다.(6)

남쪽으로 80㎞ 떨어진 아드리아 해안에 새로운 들어선 포르토몬테네그로(Porto Montenegro) 해변의 종합 관광단지는 딴 세상이나 다름없다. 한때 유고슬라비아 해군의 자랑거리였던 조선소가 있던 티바트(Tivat)는 주당 이용료가 16만 5,000유로에 달하는 요트와 프랑스 해안 도시 스타일을 따온 최고급 호텔, 호화로운 럭셔리 부티크가 즐비한 외국 부자들만을 위한 관광지구로 탈바꿈했다. 코토르(Kotor)만은 천연 요새와 어촌,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된 중세 마을들이 있는 곳이지만 20년 만에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세제 혜택을 누리려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코토르만의 자연유산이나 문화재, 도시개발법을 무시한 채 해안선을 콘크리트로 뒤덮었다.

몬테네그로 독립을 앞둔 시점에 세계 최대 금광회사 배릭골드를 창업한 캐나다 부호 피터 멍크는 전세 낸 군용 헬리콥터를 타고 코토르만 상공을 날면서 500명에 가까운 근로자가 일하던 조선소 부지를 선택했다. 몬테네그로 정부는 배릭골드와 민영화 협약을 체결해, 핵심 토지 약 30헥타르를 2,300만 유로에 넘겼다.(7) 2005년부터 몬테네그로의 수도 포드고리차(Podgorica)에서 알루미늄 제련소(이 나라의 유일한 중공업 산업)를 운영해온 러시아 재벌 올레그 데리파스카, 영국인 은행가 제이컵 로스차일드, 프랑스 재벌 베르나르 아르노는 몬테네그로를 제2의 모나코로 탈바꿈시킬 사업에 투자했다.

몬테네그로 정부는 유고슬라비아 군대가 버려둔 부지에 호화 관광단지를 조성하고 외국인 투자에 특전을 부여한다. 코토르만의 반대편에 있는 또 다른 도시 쿰보르(Kumbor)에서는 아제르바이잔 대통령 일함 알리예프의 두 딸과 알리예프 대통령의 장인 아리프 파샤예프가 호화 리조트를 건설 중이다. 

그밖에도 루스티카 만에는 이집트 억만장자 사미 사위리스 회장 소유 기업 오라스콤 개발(Orascom Development)이 진행하는 주거지 건설이 한창이다. “고속도로 개발과 마찬가지로 이런 사업의 뒤에는 어김없이 베막스(Bemax)라는 몬테네그로의 하청업체가 있는데, 이 기업은 DPS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이들 세력은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손을 뻗쳐 다른 건설회사들을 모두 집어삼켰죠.” 

부정부패 근절을 위한 비정부기구 네트워크(MANS)를 이끄는 바냐 찰로비치는 법적 처벌도 없이 유야무야로 넘어간 수많은 비리를 지적했다. 호텔과 카지노, 휴양 공원 건설 사업들에는 범죄 조직이 연루됐다. 그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시설은 부드바 남쪽 도시 베치치에 있는 화려한 호텔이다. 이 호텔에서는 몬테네그로 범죄 조직의 ‘대부’로 알려진 브라니슬라브 미추노비치의 아들과 딸이 상류층 하객들 앞에서 호화결혼식을 올렸다. MANS의 바냐 찰로비치는 이 호텔도 무허가건물일 것이라고 말했다.

 

폭로 기사, 그리고 폭탄

독립 주간지 <모니토르(Monitor)>의 공동 설립자이자 언론조사센터 소장을 맡은 밀카 타디치 미요비치 기자는 “부패를 일삼는 대다수가 최상위 계층이다”라고 했다. “30년에 걸쳐 암암리에 공기업 상당수가 민영화됐습니다. 주카노비치 대통령과 그의 일가는 몬테네그로의 최고 부자가 됐지요. 대통령의 형제 알렉산다르는 직업도 없던 사람이 지금은 몬테네그로 최대금융 기관 프르바 반카(Prva Banka) 자산을 관리하고 있고요, 민영화 당시 판사였던 누이 아나는 국가 최대 로펌을 소유하게 됐어요. 문제를 회피하고 싶은 외국인 투자자라면 이 로펌을 거쳐야 하죠.”

<모니토르>를 비롯해, 야권 진영 일간지 <단(Dan)>과 <비예스티(Vijesti)>에서 폭로 기사를 쓴 기자들은, 권력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갖은 고초를 겪었다. 편집국 앞에 폭탄이 설치된 일도 있었고, 총상을 입기도 했으며, DPS와 밀접한 신문에서 비방전을 펴기도 했다. 미요비치는 “몬테네그로의 분리 독립 이후 언론인들에게 가해진 물리적 공격만 30건이 넘는다”라고 전했다. “일간지 <포브제다>에서는 우리에 관한 기사를 200건 넘게 써댔어요. 기사에서 나를 ‘매춘부’, ‘매국노’로 묘사하기도 했고요. 승소하기까지 무려 7년이 걸렸고, 가해자들은 대부분 처벌을 피해갔습니다. 권력의 공조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죠.”

의회에서 다수당이 바뀐다고 해서 2018년 5월에 5년 임기로 대통령으로 선출된 주카노비치가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은 아니다. 연정 구성 합의를 거쳐 신정부가 들어서면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운신의 폭이 좁아지지만, 모든 권력을 잃는 건 아니다. 주카노비치 대통령은 나라에 만연한 부패 문제를 언급하자, 준비한 듯한 답변을 내놓았다. “작은 공동체인 우리나라는 매사를 과장하는 경향이 강해요. 30년 동안 집권하다보니, 정권교체를 원하는 사람들이 부정부패 문제를 부풀리면서 정부를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입니다. 부정부패가 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정부가 이 문제를 고민한다는 점에도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아무런 조처가 이뤄지지 않은 몇 가지 사례를 언급하며 처벌을 피한 게 아니냐고 질문하자, 그는 더 강한 어조로 반박했다. “그건 완전히 왜곡된 인식입니다. 내 측근들도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으니까요.” 그가 말하는 ‘측근’은, 2003~2006년 세르비아-몬테네그로 국가 연합의 대통령이자  DPS의 2인자였던 그의 오른팔 스베토자르 마로비치다. ‘부드바의 고관’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마로비치는 2015년 부패와 조직범죄 혐의로 체포돼 징역 44개월을 선고받자 세르비아로 도주했다. 정부는 이 ‘마로비치 일당의 몰락’을 조직범죄와의 전쟁처럼 강조하지만, 반대진영에서는 권력 내부의 보복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미요비치 기자는 “현재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사법부의 독립성 확보”라고 강조하면서,. “그게 가능하다면, 주카노비치와 그 일가는 법의 심판대에 오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는 선거운동을 얼룩지게 했던 ‘면책’에 대한 일반 정서를 이해하고자 슈코더르 호수에서 국립공원의 관리청의 총 책임자로 일했던 드라젠 이바노비치를 만나 작은 배에 몸을 실었다. 이바노비치가 있던 관리청은 몬테네그로의 모든 호수를 아우르는 16개 국립공원을 관할한다. 알바니아와 맞닿아있는 이 호수는 희귀한 유럽 펠리컨과 수백 종의 조류가 서식하는 이 지역 생물 다양성의 보고다. 한때는 잉어와 뱀장어를 비롯해 각종 희귀종 물고기도 많았다. 

이바노비치는 9년 동안 전기충격낚시와 여타 금지된 유해 어법을 쓰는 불법 낚시꾼을 수색하는 일에 매진했다. 그는 우리에게 자신이 중단시킨 무허가 공사 현장의 자취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바노비치는 생물 종을 위협하는 각종 불법행위를 처벌할 만한 수단이 부족할 뿐 아니라 매번 솜방망이 처벌로 그치고 마는 현실에 낙담해 결국 지난해 여름이 끝자락에 직장을 그만뒀다고 했다. “법을 어기는 낚시꾼들에게 벌금 조치는 별 효과가 없습니다. 적발될 때만 돈을 내면 그만이니까요. 수색용 배는 5척뿐인데 그나마도 너무 느리고,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가는 경우가 흔합니다.”

 

“생태계 파괴와 부정부패는 한 쌍”

또 다른 자연의 경이인 타라 강은 몬테네그로 국립공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의회 선언문이라는 삼중의 보호를 받는다. 그런데도 몬테네그로 대표 항구 도시인 바르(Bar)와 세르비아 접경 지역인 볼랴레를 잇는 고속도로 건설 사업으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환경이 훼손됐다. 아드리아해(海)에서 세르비아 국경에 이르는 구간에는 170km에 달하는 고속도로를 비롯해 40여 개의 터널과 이층교량 등 수많은 구조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모라냐 협곡에는 험준한 지대를 건너게 해줄 고가의 기둥이 200m 높이로 우뚝우뚝 솟아 있고 그중 하나에는 시공의 한 단계를 무사히 마친 것을 축하하는 의미로 거대한 몬테네그로 국기를 덮어뒀다.

국가의 자긍심에 해당하는 이 개발사업은 외국 투자자가 없었다면 제대로 빛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중국수출입은행은 중국도로교량공사에서 처음으로 수행하는 41km 구간 공사에 8억 900만 유로의 차관을 제공했다. 전체 사업에는 몬테네그로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에 달하는 25억 유로가 들 것으로 보인다. 환경보호단체 오존(Ozon)의 알렉산다르 페로비치 대표는 “생태계 파괴와 부정부패는 한 쌍”이라고 지적했다. 페로비치는 신정부가 생태 계획을 도입하도록 캠페인을 추진하고 있다. “사회 전체가 보복주의에 빠질 게 우려됩니다. 애국심을 가장한 미사여구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국가수호는, 환경과 취약한 천연자원 보호에서부터 시작돼야 합니다.”

이제 지난 수 세기 동안 오스만 제국의 침략을 막아준 보루이자 몬테네그로 역사의 심장부인 체티네 수도원으로 가보자. 10월 31일, 세르비아 정교회 암필로히예 라도비치 대주교를 추모하려는 조문객으로 수도원이 북적거렸다. 라도비치 대주교는 생전에 집권 여당에 맞서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수도원 안쪽에는 즈드라브코 크리보카피치 민주 전선 대표 (현 신임 총리)를 포함한 새로 선출된 다수당 지도자 몇 명이 열려있는 관 주변으로 모였다.

발칸반도를 잔혹하게 강타한 코로나19의 2차 유행 당시 암필로히예 대주교는 코로나19에 감염돼 숨졌다. 긴 턱수염에 눈빛이 그윽했던 대주교는 1990년에 주교로 임명된 이래 교회 재건을 위해 힘쓰며 전국을 종횡무진 누볐다. 성직자이면서도 탁월한 정략가(政略家)여서 1997년에 주카노비치가 자신의 정치 멘토 밀로셰비치에게 등을 돌렸을 때 주카노비치를 지지하기도 했다. 2006년 분리 독립 시기에는 침묵을 지켰지만, 권력 독점과 성직록 분배문제, 몬테네그로 언어나 종교를 앞세운 거짓 민족주의에 대해 점점 비판적이 됐다. 암필로히예 대주교는 평소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을 비난했고 코소보와 영토 교환 논의도 질책했다.(8)

이튿날인 11월 1일, 포드고리차 성당의 광장에 또 한 번 대규모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수천 명이 마스크도 제대로 쓰지 않고 장례식에 참석했고, 장례 행렬 앞에 무릎을 꿇었다. 걸어서 장례식장을 찾았다는 95세의 스베토자르 파비체비치는 “민중의 중재자였던 대주교를 잃었다”라며 탄식했다. 몬테네그로의 대통령이 불참한 이곳에, 또 다른 대통령이 나타나 각지에서 찾아온 정교회 고위 성직자들과 함께 맨 앞줄을 차지했다. 부치치의 몬테네그로를 방문은 2014년 세르비아 지도자(총리를 거쳐 2017년부터 대통령으로 재임 중)으로 취임한 이후 처음이다. 두 대통령의 이토록 냉랭한 관계는 두 사람의 공통점들을 가리고 있다. 장기집권, 외국 자본을 등에 업고 추진하는 대규모 개발사업, 권력을 사사로이 남용하는 국정 운영 방식, 언론과 기관 장악이 그것이다.(9)

 

친 러시아, 친 세르비아라는 꼬리표

텔레비전 방송 채널 <비예스티>에서 취재한 인터뷰에서 부치치 대통령은 몬테네그로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뿐 아니라 주카노비치 대통령과 내통했다는 추측을 전면 부정했다. 부치치 대통령은 세르비아가 몬테네그로에 외압을 가했다는 의혹을 불식시키고자 “나는 누가 정부를 이끌고 누가 이끌어서는 안 될지 말하는 미국 대사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실제로 그로부터 불과 며칠 전, 주디 라이징 레잉케 미국 대사는 야권 연합을 주도한 크리보카피치 민주 전선 대표(현 총리) 앞으로 “신정부에 각료로 임명될 인물, 그중에서도 안보와 같은 민감한 직무를 수행할 인물은 몬테네그로의 주권과 NATO에 회원국의 임무를 비롯해 유럽주의와 대서양주의 노선 등의 서방 가치에 친화적이어야 할 것”이라는 주문을 공개적으로 전달했다.(10)

몬테네그로 기계공학 교수로 재직해온 크리보카피치에게 신정부를 위한 인선(人選)은 어려운 일이었다. 교회의 지지를 얻은 그는 NATO 가입을 지지하는 자유주의자, 친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뿐 아니라 환경주의자나 한때 사회주의자였던 인물이 모두 포진된 이례적인 정부를 꾸렸다. 신정부는 단일 정당에 기댈 수 없을 뿐 아니라 서방 국가 대사관에서 제기될 회의론에도 맞서야 한다. 그는 “선거 직후에는 아무도 우리와 대화하려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토로했다. “8월 30일 저녁부터 외교단 앞으로 총 7통의 편지를 보냈으나 아무도 우리를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친 러시아, 친 세르비아라는 꼬리표가 우리 진영을 따라다녔던 것이죠. 우리가 지역의 안정을 해치기 때문에, 몬테네그로가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곧 안도했을 것이다. 9월 8일에 과반을 확보한 야권 연합 지도부는 또 한 번 교회의 안마당인 오스트로그 수도원에 모여서 서방을 겨냥한 몇 가지 약속을 채택했다. NATO와의 협력 강화, EU 가입에 필요한 모든 개혁 이행, 헌법과 국가 상징(국기, 국가) 수호, 코소보 독립 승인을 철회하지 않을 것이 주요 골자다. 오스트로그 합의 이후 독일 대사가 크리보카피치 당시 민주 전선 대표를 접견했다. “성명을 발표하는 공식적인 회담은 아니었습니다. 독일에서의 제 경험을 회고하면서 헬무트 콜 총리야말로 참된 민주주의를 구현한 인물이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몬테네그로에 바라고, 또 우리가 모두 열망하는 민주주의의 모습이라고요.”

서방의 구상을 훤히 잘 아는 주카노비치 대통령은 10월 7일 베를린을 방문했다. 그리고 반대진영에 경고의 뜻에서 보냈던 메시지를 되풀이했다. 새로운 다수당 정권이 국가를 위험에 빠뜨린다면, 몬테네그로 독립의 가치를 높이 여기는, 모든 이들의 뜻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런 사태를 막을 것입니다. 2016년 이후로 몬테네그로의 나토 가입을 방해하려고 러시아가 어떤 식으로 내정간섭을 해왔는지 우리는 똑똑히 봤습니다. 그런 상황을 좌시하지 않겠습니다. 러시아의 내정간섭은 불법 자금과 세르비아 언론을 통해 러시아가 행사하는 위력, 정보기관의 개입으로 뚜렷이 나타납니다.”

신정부의 최종 구성안은 12월 4일이 돼서야 공개됐다. 주된 걸림돌은 장관에 임명될 가능성이 있는 민주전선당 지도부가, 러시아나 세르비아 정부와 연관됐다는 의심을 받았던 ‘몬테네그로의 미래를 위한 연합’의 핵심 인물이라는 점이었다(과반수를 이루는 야권 연합 의원 41명 중 27명). 안드리자 만디치와 밀란 크네제비치 의원은 2016년에 권력 전복을 시도한 모종의 ‘쿠데타’ 사건으로 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들은 음모라고 반박하며 항소했으나, 신정부는 NATO 탈퇴라는 공약 일부를 포기해야 했다. 만디치는 “당초 NATO 가입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려 했으나, 정치적 다수로 나눌 수 없는 사안이다”라고 시인했다.

서방 국가들의 총애를 받고, NATO 가입을 지지하는 자유주의자 드리탄 아바조비치 의원은 묘안을 제시했다. “전문기술 관료를 갖춘 정부라면, 미국이 싫어할 리 없을 겁니다.” 의회는 아바조비치 의원을 부총리로 내세운 ‘기술 관료’식 정부안을 통과시켰고, 난국을 돌파한 민주전선 의원들은 자신들이 우선시하는 각종 사안의 해결을 원한다. 만디치 의원은 “심도 있는 행정부 개혁을 추진하고 공산주의 정권의 유물인 세습 권력을 종식하고자 한다”라며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공직 채용에서 제외된 세르비아인들에 대한 차별을 근절하겠습니다. ‘봐주기식’ 면책 관행을 타파하고, 부패한 세력을 뿌리 뽑는 법안을 통과시키겠습니다.”(11)

하지만 심각한 보건위기가 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연정을 구성한 신정부의 내부 모순에 서방의 견제까지 더해진다면 당장 급진적인 변화를 이루기는 어려울 것 같다. 게다가 최근 들어 주카노비치 대통령과 신정부와의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면서 대통령은 손에 쥔 모든 특권을 사용할 기세다. 종교의 자유에 관해 논란을 빚었던 조항의 폐지를 비롯해 여러 주요 사안이 담긴 법률안이 의회를 통과했지만, 연초부터 대통령이 재가를 거부했다. 의회의 2차 투표 종용하는 상징적인 제스처를 통해, 무려 30년을 DPS와 국가의 수장으로 보낸 현 대통령이 자신의 입지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분란도 서슴없이 조장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글‧필리프 데캉 Philippe Descamp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아나 오타셰비치 Ana Otasevic
연출가, 세르비아 출신

번역‧이푸로라 
번역위원


(1) ‘Online pre-ministerial press conference by NATO Secretary General Jens Stoltenberg ahead of the meetings of NATO Defence Ministers’, NATO, 2020년 10월 21일, www.nato.int
(2) Philippe Descamps, ‘Vingt ans après, les plaies ouvertes du Kosovo’,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블로그, 2019년 3월 23일, www.monde-diplomatique.fr
(3)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온라인 칼럼 ‘Des premiers Slaves à la première alternance démocratique 첫 슬라브족부터 첫 민주적 정권교체까지’.
(4) Amaël Cattaruzza, 『Territoire et nationalisme au Monténégro 몬테네그로의 영토 및 민족주의』, L’Harmattan, <Géographie et cultures 지리와 문화> 총서, Paris, 2011년.
(5) ‘Enquête revenus et conditions de vie 소득 및 생활 조건 조사’, Monstat, 2020년 12월 7일, www.monstat.org
(6) Annuaire statistique 통계연감, Monstat, 2019년.
(7) Vijesti, Podgorica, 2013년 8월 12일.
(8) Jean-Arnault Dérens, Laurent Geslin, ‘Dans les Balkans, les frontières bougent, les logiques ethniques demeurent 발칸의 국경은 움직이지만, 민족주의 논리는 제 자리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9년 8월호.
(9) Jean-Arnault Dérens, Laurent Geslin, ‘L’autocrate serbe que Bruxelles dorlote 유럽연합이 총애하는 세르비아의 독재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0년 3월호.
(10) <Dan>, Podgorica, 2020년 10월 30일.
(11) 공공 기능을 통폐합할 경우 특정 조건을 규정하는 법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