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공장 이주노동자들의 눈물

세계적 제조업체의 현대판 노예제도

2021-02-26     페테르 벵상 l 기자

코로나19 사태로 라텍스·니트릴 장갑 소비가 폭증함에 따라, 세계 최대 생산국인 말레이시아는 저렴한 이주민 노동력을 활용해 고수익을 올리고 있다. 반면, 이주노동자는 취업을 위해 빚을 지는 끔찍한 덫에 걸린 상태다.

 

2019년 말, 쿠알라룸푸르.  셀리프 S.는 오늘밤 말레이시아 수도의 산업지구 내 작은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1) 그는 “말레이시아에서는 강제노동이 흔한 일”이라며 덧붙였다. “내 지인들은 몇 년 동안 직업소개소에 소개비를 갚느라 파산했다.” 직업소개소는 소개비를 떼일까봐 이민자의 여권을 담보로 압수한다. 셀리프 S.는 말레이시아 최대 고무장갑 제조업체에서 10년째 일하고 있다. 주로 유럽과 미국 의료업계에 납품하는 회사다. 소개비 문제는 해외시장에 진출한 말레이시아 산업 전반에 만연해있다. 전자, 의류 등 고무가 포함되는 모든 제품군이 이에 해당된다. 2018년 마이크로전자 부품 수출액은 448억 달러, 의류 및 액세서리 수출액은 42억 달러에 달했다. 2019년 말레이시아는 세계 1위 고무장갑 생산국답게 전 세계 생산량의 63%를 차지했고, 생산량은 무려 약 3,000억 켤레였다.(2) 

국제노동기구(ILO)에 의하면, 말레이시아의 이주노동자 비율은 전체 노동자의 20~30%다. 네팔, 방글라데시, 미얀마 등 주변국에 비해 말레이시아의 임금은 높다. 이는 몇 년 동안 이주노동자로서 유배생활을 감수하고라도, 고국의 가족을 가난에서 탈출시키는 꿈을 꾸게 만든다. 2018년 이주노동자 본국 송금액은 90억 유로에 달했다.(3) 그러나 이주노동자가 치러야 하는 대가는 가족과의 이별이 전부가 아니다. 출국 전부터 말레이시아 회사가 파견한 직업소개소에 터무니없이 높은 이율로 큰 빚을 지게 된다. 

 

허겁지겁 식사… 지각하면 월급 절반이 날아가

셀리프 S.를 비롯한 이주노동자들은 숙소에서 생활한다. 통금시간 전에 숙소로 돌아가야 하므로 저녁을 허겁지겁 먹어치운다. 조금이라도 늦거나 허락 없이 다른 곳에서 밤을 보낼 경우, 기본 월급의 절반 이상을 벌금으로 내야 한다. 셀리프 S.는 “벌금을 물거나 정직처분을 받는 일이 빈번하다”며, 최근에는 한 청년이 졸다가 정직처분을 받았다고 말했다. 하루에 12시간 동안 일하고 때론 한 달 내내 휴일도 없으니, 참으로 잔혹한 삶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만난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은 본국을 떠나기 전 직업소개소에 1인당 3,700~4,300유로의 소개비를 지불했으며 네팔 노동자들은 1,100~1,250유로를 지불했다. 말레이시아의 최저임금은 월 240유로로, 추가 근무수당까지 포함해도 400유로를 넘지 않으니, 몇 년을 꼬박 일해야 자유를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빚의 족쇄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법이라도 상관하지 않고 초과근무를 하는 사람이 많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용기가 없다. 아사드 I.는 다음과 같이 하소연했다. “나는 한계에 도달했다. 가능하면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설령 빚이 늘어난다 해도 말이다. 하지만 여권을 빼앗겨서 그럴 수도 없다. 혹시라도 도망치다가 붙잡히면 호되게 맞을까봐 두렵다.”

2014~2020년 유엔의 현대판 노예제도 특별조사관이었던 우르밀라 브훌라는 설명했다. “직업소개소는 이민자에게 겉으로만 그럴싸해 보이는 해외 일자리를 주선하고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등쳐먹는다. 노동자가 고용주에게 전적으로 순종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고용주도 이 시스템을 익히 알고 있다.” 서구 기업은 해외로 이전한 공장이 늘어나면서 저임금 노동자를 마음껏 부리고 있다. 대다수의 글로벌 대기업이 공급업체에 강제노동을 금지하고 노동윤리강령을 준수하라고 요구하지만, 전 세계 공급망 사이에서 강제노동은 만연해있다.

이런 기업들 중에는 <포춘>이 선정한 올해의 5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린 미국회사도 있다. 예를 들면 매케슨(세계 총매출 16위), 오웬스앤드마이너(25위), 헨리샤인(66위), 메드라인 등이다. 이중 매케슨, 헨리샤인, 메드라인은 공급업체에 ‘현행 규정을 준수하라’고 요구했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공급업체의 노동환경 실태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블랙록, 스테이트 스트리트 글로벌 어드바이저(SSGA), 뱅가드 그룹 등 말레이시아 고무장갑회사들의 지분을 보유한 초대형 자산운용사들도 말을 아꼈다. 뱅가드 그룹은 “투자회사들이 인권 보호를 준수하는지 주시하고 있다”며, 공급체인은 밀접한 협력관계를 통해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블랙록은 “지속가능한 투자를 우선시하고 싶다”며, 취재진의 질문을 회피했다. SSGA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책임의식과 투명성이 부족하다 해도 전혀 놀랍지 않은 것이, 해외 공급업체 관리는 주로 외부 감사업체에 일임하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내부 제보자는 말했다. “미국 인터텍, UL, 스위스 SGS 등 대형 인증기관에서 말레이시아 고무장갑 제조사의 노동환경을 조사했지만, 우리가 밝혀낸 강제노동의 증거에 대해서는 모두 답변을 거부했다.” 해당 사회감사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직원은 “노동자가 소개비 때문에 엄청난 빚을 진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지만, 그것이 노예제도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감사비용을 지불하는 주체는 바로 글로벌 기업들이다. 2019년, 클린 클로스 캠페인 NGO단체는 200건의 부실감사를 밝혀냈다. 이 조사에 참여한 벤 밴페퍼스트레이트(Ben Vanpeperstraete)는 한탄했다. “사회감사가 노동자 보호에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이 입증됐다. 이는 기업의 명성과 이익만 보호할 뿐, 올바른 경제모델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4)

 

변혁의 바람, 그러나 아직은 알 수 없다

2019년, 미국 NGO단체인 트랜스패렌템(Transparentem)은 수개월 간의 조사와 압박 끝에, 말레이시아 의류회사로부터 소개비를 빼앗긴 이주노동자 2,500명을 위한 배상금 160만 유로를 받아냈다.(5) 또한 네덜란드 NGO단체인 일렉트로닉스 워치는 태국 전자업계에서 일하는 1만 명의 이주노동자를 위해 배상금 900만 유로를 받아냈다.(6) 워싱턴에 본사를 둔 WRC(노동자권리컨소시엄)은 인도네시아 섬유업계 이주노동자 2,000명에게 400만 유로의 배상금을 안겨줬다.(7)

2019년 10월 1일, 변혁의 바람이 불었다. 적어도 말레이시아는 그랬다. 미국 관세청에서 강제노동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말레이시아 WRP아시아퍼시픽이 제조한 일회용 장갑 수입을 금지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 예외적인 조치는 업계 전반을 뒤흔들었다. 말레이시아 인적자원부는 노동법에 새로운 보호조치를 추가하겠다고 약속했고, 관련 기업에 강제노동을 당장 중단하지 않으면 미국의 경제제재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8) 2020년 7월, 미국은 실제로 세계 1위 고무장갑 제조업체인 탑 글러브의 말레이시아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의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두 번째 공격에 대한 반응은 전례 없는 규모로 즉각 나타났다. 탑 글로브는 그로부터 3주 후에 이주노동자에게 1,000만 유로를 지불하고, 부당하게 빼앗긴 소개비도 돌려주겠다고 발표했다. 동종업계의 또 다른 강자인 하르탈레가도 뒤따라 800만 유로의 보상금을 약속했다. 한편 슈퍼맥스는 보상금을 책정하는 중이라고만 밝혔다. 2020년 10월, 탑 글러브는 보상액을 2,800만 유로, 약 3배로 늘렸다. 코산러버도 이주노동자에게 1,000만 유로를 지불하기로 약속했다. 미국시장이 문을 걸어 잠글 것을 걱정한 다른 동종업계 기업들도 같은 행보를 따르기 시작했다. 

WRP아시아퍼시픽도 마찬가지로 이주노동자 1,600명에게 440만 유로 상당의 보상조치를 취했고, 그 대가로 2020년 3월에 미국의 제재가 해제됐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발표만 한 상태다. 실제 절차가 완료되려면 적어도 몇 달, 길게는 몇 년까지 걸릴 수 있으니 계속 예의주시해야 한다.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이 보상금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열악한 노동조건을 용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글로벌 기업들은 몇 년 동안 외국인의 노동력을 착취하며 고수익을 올렸음에도, 단 한 푼도 내놓지 않았다.

유럽연합(EU)은 대형 글로벌 기업들에 불이익을 주진 않는다. 그러나 수출국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한 경우 유럽시장 진입혜택을 박탈하는 무역장치가 있다. 하이디 하우탈라 유럽의회 부의장은 “EU는 노예제도 관행이 의심되는 상품과 서비스의 수입을 막고, 이민자 등 사회 취약층이 착취당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EU집행위원회가 미국의 선례를 따르기를 주저하는 것처럼 보여도, 기업이 책임지고 협력업체가 인권보호지침을 준수하도록 강제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2020년 4월, 디디에 레인더스 EU 사범담당 집행위원은 이 법안이 2021년에 발효될 예정이며, 프랑스에서 2017년 채택된 ‘기업의 공급망 실사 의무화법’을 기준으로 삼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통제수단이 부재한 탓에 온전히 집행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EU 국가 차원에서 보면, 해외 공급망의 인권침해를 근절하려는 강제력 있는 법률을 더디게나마 적용하고 있다. 독일과 네덜란드에서는 ‘실사 의무화법’을 본뜬 법안을 준비 중이다. 기타 13개 회원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법안을 검토 중이거나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강제노동으로 생산한 말레이시아산 제품을 수입하는 EU 회원국을 제재할 수 있는 강력한 통제수단과 법률 적용 메커니즘도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이제 채찍은 마련됐다. 게다가, 가공할 위력을 지닌 당근도 정부가 쥐고 있다. 그 당근은, 정부가 주문하는 공적 물량이다. 

OECD 회원국의 경우, 평균 공적 주문량이 GDP의 12%를 차지한다. 이 정도의 구매력은, 공급망에 올바른 노동환경을 구축할 책임을 글로벌 기업에 요구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력한 압박책이다. 그러나 미국, 영국, 스웨덴, 덴마크 의료계에 장갑을 공급하는 업체 리스트를 검토해 본 결과, 이 압박책이 사용되는 곳은 없었다. 스웨덴 지자체들은 윤리적 구매를 권장하는 윤리강령과 계약조항을 도입했다. 2019년, 스웨덴은 말레이시아 일회용 장갑 생산업체 세 곳에 대한 감사를 실시해서 강제노동이 의심되는 경로를 밝혀냈고, 그 결과를 공개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해에도 말레이시아에서 추가적인 감사를 추진했다. 스웨덴 남동부 외스테르예틀란드의 엠마 레바우(Emma Lewau) 주의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주노동자의 빚과 노동착취를 근절하려면, 긴 호흡이 필요하다.”(9)   

 

 

글‧페테르 벵상 Peter Bengtsen 
기자

번역‧이보미 lee_bomi@hotmail.com
번역위원


(1) 인터뷰이(이민자)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임.
(2) ‘Global rubber glove demand to hit 300 billion in 2019, 63 pct supplied by Malaysia’, <Bernama>, 2019년 4월 12일, www.bernama.com
(3) Isaku Endo, José de Luna-Martinez, Dieter de Smet, ‘Three things to know about migrant workers and remittances in Malaysia’, World Bank Blogs, 2017년 6월 1일, https://blogs.worldbank.org
(4) ‘Fig leaf for fashion. How social auditing protects brands and fails workers’, 2019년 보고서, Clean Clothes Campaign, Amsterdam.
(5) Steven Greenhouse, ‘NGO’s softly-softly tactics tackle labor abuses at Malaysia factories’, <The Guardian>, London, 2019년 6월 22일.
(6) Nanchanok Wongsamuth, ‘Thai electronics firm compensates exploited workers in rare award’, <Reuters>, 2019년 12월 11일.
(7) ‘Largest sum ever : WRC recovers 4.5 million dollars in unpaid severance’, Worker Rights Consortium, Washington, D.C., 2019년 12월 4일.
(8) Jason Thomas, ‘Stop forced labor or Malaysia may face sanctions, warns Kula’, <Free Malaysia Today>, Petaling Jaya, 2020년 1월 7일.
(9) ‘Sustainable supply chain - Guidelines contractual terms’, 2019년 보고서, Hållbar Upphandling, Stockholm, http://www.hållbarupphandling.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