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을 도둑맞은 우크라이나 서민들의 고통

2021-02-26     로라 디아브 외

2014년부터 우크라이나는 금융시스템을 개혁했고, 100여 개의 은행이 정리됐다. 돈바스 전쟁 때문에 은근슬쩍 넘어간 이 경제개혁은 부패척결이라는 명분으로 일어났다. 그러나 이 개혁으로 인해 수천 명의 예금자가 몰락했고, 정작 재벌들은 일말의 타격도 받지 않았다.

 

“대체 우리 돈은 어디로 간 겁니까? 어디로 간 거냐고요!” 

마리아 크리멘코바(65세)의 목소리는 비탄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은퇴한 회계사다. 우크라이나의 중앙은행인 우크라이나 국립은행(NBU)이 2014~2017년 시행한 은행 구조조정으로 우크라이나 시민 16만 명의 예금액이 증발했다. 피해자의 대다수는 마리아처럼 중산층이었다. 2015년 파이낸스 앤 크레디트(Finance and credit) 은행이 정리된 후, 마리아는 6만 4,000달러(당시 환율로 5만 8,000유로)를 잃었다. 평균 임금 기준으로, 12년을 꼬박 모아야 하는 돈이다.

채무상환 불능, 불투명한 자산,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융자금, 재무 보고 조작, 금융기관과 사법당국의 태만…. 소비에트 연방 붕괴 후 예전의 금융시스템을 그대로 계승한 우크라이나 은행은 수십 년간 잘못된 방식으로 운영됐다. 2014년, 크림반도를 잃고 돈바스 전쟁까지 발발하면서 우크라이나는 산업 역량의 1/4을 잃었고, 핵심 무역 국가였던 러시아와의 관계도 끊었다. 우크라이나 화폐 ‘흐리브냐’의 가치는 3회 연속 추락했고, 노후화된 은행 시스템은 붕괴될 위기에 놓였다.

우크라이나 경제 생존권을 쥔 서방국가들의 지시에 따라, 2014년 출범한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 정부는 극단적인 금융개혁을 펼쳤다. 100여 개의 시중은행이 청산되고, 우크라이나 금융기관의 절반 이상이 사라졌다. 사라진 은행들은 외국에서 얻은 부당이익의 은폐수단에 불과하거나, 자산은 없이 부채만 쌓여있는 등 대부분 빈 껍데기였다. 가장 심각한 경우는 거물사업가들 소유의 은행들인데, 채무변제능력이 없었음에도 최상위 그룹에 속했던 곳들도 있다. 광산·제철 업계 거물, 콘스탄틴 제바고 소유의 파이낸스 앤 크레디트(Finance and credit)(10위)를 비롯해 미콜라 라군 소유의 델타 방크(Delta Bank)(4위), 그리고 드미트로 피르타슈가 소유한 나드라(Nadra) 은행이 그런 경우다. 

 

은행을 너무 믿은 국민의 잘못?

러시아와의 가스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드미트로 피르타슈는 2014년 이후 예전의 영광을 잃었다. 한편, 서민들은 아예 몰락했다. 국가가 보장하는 법정 최대보상액은 20만 흐리브냐(약 6,000유로)였다. 예금자보호기금(DGF)이 개인예금을 보상하고, 청산된 은행 자산을 경매에서 매각하는 일을 담당했다. 약 200만 명의 예금자의 보상금 일부와 (채무 변제가 불가능하다고 선언한) 몇몇 은행의 총자산을 합친 액수는 우크라이나 국내총생산(GDP)의 약 14%에 이른다. 여기에 개인 및 기업 예금자들이 빼앗긴 금액(GDP의 16%)까지 합산하면, 국내총생산의 30%에 달한다.

우크라이나 은행 시스템 청산에 대해 말할 때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2014년 6월부터 2017년 5월까지 우크라이나 중앙은행 총재를 역임한 발레리아 곤타레바다. 2017년 3월,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물리적 위협을 비롯한 엄청난 압박을 받았다”라고 밝혔으나, 문제의 인물에 대해서는 함구했다.(1) 총재에 의하면, 이 은행들은 주로 개인예금 등 모든 돈을 끌어다가 자기 기업에 투자했다. 외국 출자자의 조언에 순종할 뿐인 발레리아 총재에게, 은행 구조조정은 그저 수행과제였을 뿐이다.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에서 우크라이나 투자 계획을 담당하던 알렉산더 파블로프도 “국민이 이 위기를 함께 책임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리스 국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은행을 믿고 예금한 것이 잘못이었을까? “25%나 이자를 쳐준다고 하면, 그 은행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야지요. 집에 불이 났는데 불 끄는 소방관을 욕할 수는 없잖아요.” 르비브 도시의 이반 프란코 대학 경제학 교수인 소피아 로보진스카도 이렇게 말했다. “환자를 살릴 유일한 방법이라면, 지체 없이 행해야죠.” 

 

액면가의 1~5%에 넘어간 은행 자산

그러나, 오늘날 중앙은행 내 관계자들을 포함한 몇몇 책임자들은 이 최초의 선택이 문제였다고 지적한다. 2016년 10월, 포로셴코 대통령은 보단 다니리친을 우크라이나 국립은행(NBU) 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내부 통제 기관인 이 위원회는 개혁에서 매우 중요했던, 초반 2년 동안 위원장 자리가 공석인 상태였다. “많은 은행이 어려웠던 이유는 소유주의 잘못이라기보다 전쟁과 흐리브냐 가치 추락으로 인한 전례 없는 경제위기 때문이었습니다.” 

전 우크라이나 경제부 장관(2007~2010)은 단언한다. 더 좋아질 날을 기다리면서 은행들이 자기 자본을 회복하도록 놔뒀어야 했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은행 구조조정 소식 때문에 자금유출이 일어날 것이 뻔한 상황이었음에도 당국이 자금유출을 막지 못했다는 점이다. 예금자보호기금(DGF) 현 부국장인 빅토르 노비코브도 그 사실을 인정했다. “부실 은행 정리가 시작되기 며칠 전부터, 은행 소유주들이 자금을 인출했다.”

또한 많은 이들이 청산할 은행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공정성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했다. “정치적 이유로 문을 닫은 은행도 있습니다. 중앙은행은 노골적으로 이전 정권과 친하다는 이유로 이 은행들을 퇴출시켰습니다.” 우크라이나 국립은행(NBU)에서 전문 경제학자 대표인 안드레이 블린코브가 온라인 경제 신문에서 한 말이다.(2) 우크라이나 최대 은행인 프리바트방크(PrivatBank)가 국유화된 것에도, 정치적 동기가 없다고 하기 어렵다. 그렇게 쉽게 사라지기에는 너무 거대한 은행이었다. 

국가의 주도하에 이뤄진, 청산된 은행의 자산매각 과정은 공정했을까? 이 점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다니리친 전 장관은 “청산된 은행의 자산은 예금자보호기금(DGF)에 의해 일부 금융기업에 매각됐다. 그런데, 매각된 금액이 (경제위기 이전) 액면가의 1~5%에 불과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은행 자산을 매수한 금융 기업들은 이를 50~80% 더 비싼 값에 되팔았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은행 자산이 당국에 의해 헐값에 팔린 셈이다. 예금자보호기금(DGF) 부국장인 노비코브는 “안타깝게도 우리가 인수한 은행은 이미 재무상태가 나쁜 상황이었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경제위기, 러시아의 불법적인 크림반도 병합, 자국 화폐의 가치하락 등을 겪으면서, 2014년부터 은행 자산이 심각하게 평가절하된 상태였다”라고 강조했다. 

 

38명의 자살, “우리 돈은 누가 돌려줄까요?”

키예프 교외에 있는 시끄러운 무역센터에서 47세의 오레그 도로셴코는 기력 없는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파이낸스 앤 크레디트(Finance and credit) 은행 고객이었던 도로셴코와 그의 가족은 은행이 청산될 때 40만 달러(36만 3,000유로)를 잃었다. 2015년 9월, 군대 엔지니어였던 오레그는 ‘우크라이나 은행 예금자 단체’를 결성했다. 사기당한 예금주들을 연합하고 보상받기 위해서였다. 이 단체 가입자들은 이제 14만 명에 달한다. 크리멘코바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단체 가입 후, 재판과 상담, 탄원서 제출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이런 노력 끝에, 2018년 행정 법원은 파이낸스 앤 크레디트(Finance and credit) 은행이 파산에 이른 책임이 우크라이나 중앙은행에 있다고 유죄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이들의 예금은 상환되지 않았다. 결국 모든 것을 잃고 자살한 이들은, 도로셴코가 아는 사람들만 38명이다. 

게다가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분노를 이용하려는 이들을 만나야 했다. 이 주제에 대해 질문하자, 도로셴코는 재정, 물류 부문에서 율리야 티모셴코 전 총리의 지원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2019년 대통령 선거에서 3위를 차지한 율리야 티모셴코 전 총리는 선거에 실패한 후 예금자들의 입장을 한눈에 파악했다. 그녀는 우크라이나 중앙은행의 부정을 조사하기 위한 국회위원회를 설립할 것을 요청했다. 도로셴코의 예금자 단체가 믿었던 또 다른 사람은 알렉산더 두빈스키였다. 부정부패에 반대하는 블로거이자 기자인 그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소속 정당인 ‘국민의 종’ 소속 국회의원이 됐다. 그는 미디어에서 우크라이나 중앙은행 행태를 거침없이 비판했지만 그런 언행에는 계산이 깔려있었다. 그와 각별한, 그의 전 고용주는 다름 아닌 프리바트 그룹 공동설립자인 콜로모이스키다. 2016년 12월부터 프리바트방크(PrivatBank) 경영권을 되찾고자 투쟁 중이다. 

2020년 5월부터 ‘반(反) 콜로모이스키’ 법이 통과되면서, 국영화된 은행을 이전 소유주에게 반환하는 일이 금지됐다. 그러나, 이 법은 예금을 잃은 피해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이 법으로 인해 중앙은행 결정에 반대하는 소송을 할 가능성이 엄격하게 제한된 것이다. 결국, 뇌물로 침식당한 사법기관의 보호막이 된 이 법 때문에 중앙은행은 ‘불가침’의 존재가 된 것이다. 결국, 이 법은 법적 절차를 통해 보상을 받으려던 피해자들의 마지막 희망을 짓밟아버렸다.

첫 구제금융 절차로 우크라이나가 2020년 6월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새롭게 50억 달러(4,450억 유로) 차관을 승인받기 위한 필수 조건이 바로 이 법안 채택이었다. 예금자들의 상황이 심각해지자, 우크라이나 국립은행(NBU) 재정안정위원회는 2020년 9월 보장금의 상한을 3배로(20만 흐리브냐에서 60만 흐리브냐로) 늘리는 방안을 요청했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를 30만 흐리브냐(약 8,800유로)로 타협했다.(3) 금융 매개자들은 많고 그 관계는 복잡해, 청산된 은행 자산이 결국 누구 지갑으로 들어갔는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있다. 다니리친의 표현을 빌리면, 은행 시스템 개혁 후 금융계가 ‘소수 독점’ 상황이 됐다는 점이다. 특히 대출이율과 예금이율 사이의 은행 마진율이 눈에 띄게 상승했다. 2012~2014년에는 연 4.5%였던 마진율이, 2015~2019년 6%로 올랐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 위기가 시작되면서, 8%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웃 국가 폴란드의 경우 2020년 마진율은 1년에 3.5%였다.(4) 이런 상황에서 이익을 본 것은 공공은행(현재 1~4위를 차지하고 있다)과 외국은행이었다. 2014년, 우크라이나 자국 은행 수가 180개에서 74개로 줄어든 반면, 19개였던 외국은행은 2020년 11월 1일에 22개로 늘었다. 

키예프 중심가의 유스호스텔에 있는 어두컴컴한 부엌에서 크리멘코바는 연신 손을 비틀었다. 그녀는 예금을 빼앗긴 후 매월 보조금 2,600흐리브냐(약 80유로)와 자녀들의 도움으로 살고 있다. 그녀는 감격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이들이 따로 돈을 마련해서 줘요. 이토록 좋은 자녀를 둔 것이 행운이죠.” 그리고는 인터뷰 끝에 말했다.

“누가 우리 돈을 돌려줄까요? 누가 우리 돈을 훔친 책임을 질까요?” 

현재 이 질문에 답할 이는 아무도 없다.   

 

 

글‧로라 디아브 Laura Diab
기자
기욤 프타크 Guillaume Ptak
기자
 
번역‧이정민 minuit15@naver.com
번역위원

(1) Neil Buckley, Roman Olearchyk, ‘Valeria Gontareva : Ukraine’s central bank reformer’, <Financial Times>, London, 2017년 3월 26일.
(2) ‘La moitié d’un trilliard pour la terre. Combien l’équipe de Gontareva a-t-elle gagné dans la crise bancaire ? 세계를 위한 10만 경의 절반. 곤타레바 팀은 은행을 청산하면서 얼마를 벌었을까?’, <UBR>, 2020년 8월 3일, www.ubr.ua
(3) 2020년 10월 27일, 일간지 <Financial Club> 주최로 열린 온라인 원탁회의에서 예금자보호기금 부국장 Audrey Olenchik가 언급한 내용, Kiev, 2020년 10월 27일, www.finclub.net
(4) ‘Bodgan Danylychyn, ‘Quinze faits sur la réforme bancaire 은행 개혁에 관한 15가지 사실’, <DS News>, 2020년 10월 16일, www.dsnews.u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