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개혁이 필요한 벨기에의 ‘윤리적’ 은행

구속성이 미미한 ‘사회책임투자’의 모순

2021-02-26     실뱅 앙시오 외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터지기 직전, 금융기관들의 관행에 분개한 벨기에 조합들이 합세해 금융 분야에 ‘윤리’라는 처방을 도입하고 비영리 은행을 설립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이 처방(윤리)이 기대한 결과를 보장하지 못하며, 윤리만으로는 금융개혁이 어렵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벨기에 협동조합은행 뉴비(NewB)의 온라인 연례총회가 열렸던 지난해 11월 21일, 이 회의에 접속한 조합원들이 띄워둔 모니터 스크린에는 굵은 글씨로 ‘은행을 지속 가능하게 바꿉시다’라는 메시지가 떴다. ‘뉴비’는 윤리경영과 지속 가능 경영을 실천하는 새로운 형태의 은행이다. 회의장에 마련된 무대에서 이날 사회를 맡은 베르나르 바요 현 뉴비 회장은 이 은행의 최고경영자로 지명된 티에리 스메를 소개했다. 상업은행 파윌라트코 데바이(Puilaetco Dewaay)의 총재를 역임한 티에리 스메는 “경력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지난 30년간 쌓은 경험을 뜻깊은 일에 쏟을 수 있어 기쁘다”라며 감격스러운 심정을 표했다.

이어 두 사람은 30분 동안 전통적인 은행에서 일해 온 티에리 스메의 경력에 대해 묻는 조합원들의 질문에 답변했다. “은행을 운영하려면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협동조합 경영은 좋은 일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온라인 회의가 끝날 때, 총회에 참석한 조합원 1,500명의 96%가 두 사람의 연임과 취임에 동의했다. 만장일치에 가까운 표결은 뉴비 총회 참여율이 확연히 줄어든 만큼 더 반가운 일이다. 지난 2020년 6월에는 조합원 9,000여 명이 이메일을 통해 직전 회의에서 제기된 문제에 의견을 냈다.

뉴비는 2008년 금융위기를 반성하는 차원에서 레조피낭시테(Réseau Financité, 금융네트워크)가  2011년에 출범시킨 프로젝트로, 벨기에의 주요 노조인 벨기에 노동총동맹(FGTB), 기독교 노동자 연맹(CSC)의 지원과 더불어 옥스팜(Oxfam International), 그린피스(Greenpeace), 국제금융관세연대(Attac, 아탁)를 비롯한 여러 NGO의 후원을 받았다. 9년에 걸친 다각적인 고찰과 소통, 성공적인 기금 모금 캠페인(모금액 3,500만 유로, 조합회원 116,000명)을 거쳐, 2020년 1월 30일에는 유럽중앙은행(ECB)의 승인을 받았다. 

 

실질적 구속력이 없는 사회적 책임투자

뉴비는 조세 회피처로 여겨지는 나라, 4개 주요 은행이 상당 부분을 점유하는 시장에서 살아남고자 조합회원을 고객으로 전환하려 한다.(1) 2024년까지 조합원을 18만 명까지 늘리고, 그 중 9만 2,000명을 자사 이용자로 유치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런 목표 달성을 위해, 현재 자동차보험과 선불카드에 주력하는 뉴비는 조만간 당좌예금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그러나 여러 모순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11월 회의에서 모인 협동조합원들은 사회책임투자(SRI) 규약에 따라 은행의 윤리적 시카브(SICAV) 투자를 규정하는 ‘사회환경 헌장’을 채택했다.(2) 그러나 이런 투자는 이름도 알 수 없는 외부 관리자(민주적 경영 서약에 어긋나는 위촉 방식)가 감독하며, 겉보기에는 매력적인 사회책임투자마저 실질적인 구속력은 별로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회책임투자는 ‘계열 내 우위’라는 원칙을 벗어나지 못한다. 특정 조건을 엄격히 충족하는 기업뿐 아니라 모범적으로 처신하는 기업도 자금 투자 대상이 된다. 내놓을 수 있는 성과가 오직 ‘윤리’뿐이어도 상관없다. 2020년 1월, 국제금융관세연대 브뤼셀 지부가 주최한 회의에서 신규 기관 모집을 총괄한 마티아스 마이를렌은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순수한 취지로 비영리 은행을 만든다는 것은 물론 불가능이다”라고 수긍했다.

그래서, 뉴비는 2016년에 마스터카드와 제휴해 선불카드를 출시했다. 카드거래 처리는 라보뱅크 네덜란드(Rabobank Nederland)가 맡았다. 2020년 6월 총회에서 협동조합 회원들은 KPMG 인터내셔널 협동조합(KPMG International Cooperative, 매출 290억 유로의 세계 4대 회계법인) 소속 임원을 자사 회계감사로 임명하는 데 합의했다. 그는 평소 카르푸(Carrefour), 르노(Renault), 토탈(Total), 프랑스 식품 서비스 기업 소덱소(Sodexo), 프랑스 종합건설회사 뱅시(Vinci) 같은 대기업에 자문을 제공한다. 그가 속한 벨기에 KPMG 인터내셔널 협동조합은 조세 제도의 구멍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유명한 양조 그룹 앤하이저-부시 인베브(Anheuser-Busch InBev)에 서비스를 제공한다.(3)

 

확실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이렇듯 모호한 부분이 많지만, 조합원이 63만 명에 달하는 왈롱 지역의 대표 노동조합, ‘벨기에 노동 총동맹’의 프랑수아 타멜리니 지부장은 뉴비의 현 상황을 “바른 길로 나아가는 작은 발걸음”이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10년간 금융업에 종사한 알리너 파러스도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전통적인 은행 환경에서 ‘윤리적’ 은행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제3세계 채무탕감위원회(CADTM)에서 활동하면서, 단체 ‘벨피우스는 우리의 것(Belfius est à nous)’의 대변인을 맡은 파러스씨는 “의지할 만한 사회적 공공은행이 있다면 뉴비가 시장과 타협하지 않고 훨씬 강력하게 의지를 관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벨기에는 이미 ‘공공은행’ 벨피우스(Belfius)가 있다. 100% 정부 소유이나, 최근 민영화 위협을 받고 있는 벨피우스는 2011년 프랑스-벨기에 합작은행 덱시아가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탄생했다. 이 은행은 벨기에 국내총생산(GDP)의 1/4에 해당하는 규모의 자산 900억 유로를 운용한다. 생태적 전환이나 사회, 환경 기준을 충족하는 사업에 자금을 투입할 만한 규모를 갖춘 것이다. 

그렇다면 이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협동조합은행은 과연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뉴비는 금융체계를 바꾸고자 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선사한다. 하지만 사회적 공공기관이 확실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결국 이 프로젝트는 거대 시장에 기댈 수밖에 없지 않을까?   

 

 

글‧실뱅 앙시오 Sylvain Anciaux
기자
세바스티앙 지야르 Sébatien Gillard
기자

번역‧이푸로라
번역위원


(1) Frédéric Panier, ‘Paradis fiscaux, le modèle belge 조세 회피처, 벨기에식 모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2년 7월호.
(2) 예금자가 집합적으로 보유하고 전문기관이 관리하는 유가증권 포트폴리오.
(3) ‘Les sept principaux protagonistes du Luxembourg Leaks 룩셈부르크 리크스(Luxembourg Leaks)를 주도한 7인방’, <Le Soir>, Bruxelles, 2014년 11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