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봄’의 여진, 알제리에서 수단까지

‘데가지즘’의 한계, 권위주의의 변화

2021-02-26     히샴 벤 압달라 엘 알라위 l 하버드대 객원 연구원

2019년, 아랍 세계에서 발생한 저항들은 2011~2012년의 저항과 동일 선상에 있다. 약 10년이 흘렀음에도 시위대는 여전히 집권세력의 해체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시위대 내부 정치적 조직의 부재로 이들의 목표 달성은 요원하다. 마그레브 지역과 중동에서 그랬듯, 페르시아만 지역에서 종교 분파에 따른 정치는 더 이상 지정학적 경쟁관계를 결정짓지 못한다.

 

지진학자들은 이 현상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때로는 지진보다 여진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말이다. 2011~2012년의 ‘아랍의 봄’은 민중이 두려움의 벽을 깰 때 얼마나 큰 힘을 낼 수 있는지 보여줬다. 동시에, 해당 지역을 지배했던 권위주의 체제에 깊은 균열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2019년, 또 다른 저항의 물결과 함께 탄생한 ‘아랍의 봄’이 남긴 여진은 여러 정권을 뒤흔들었다. 최근 알제리, 이집트, 이라크, 요르단, 레바논 그리고 수단에서 발생한 소요 사태는 ‘아랍의 봄’이 필연적으로 확장된 결과다. 이 소요 사태는 여전히 경제적, 정치적 부당함 속에 살고 있는 국민들이 타협을 거부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증명한다. 물론 이들의 적인 독재정권은 권력을 지키려 하지만, 국민들은 생존을 위해 도전하고 있다.

 

젊은 국민들의 절망과 분노

2011~2012년의 항거 이후 여진이 계속된 것은 사회 구조적인 지표들, 즉 국민들이 처한 여건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지표들 중 첫 번째는 청소년이다. 이들 국가의 전체 인구 중 2/3가 29세 이하다(15세 미만이 1/3, 15~29세가 1/3). 지난 10년 동안 아랍계의 인구는 가장 젊었으며, 교육수준도 높았다. 이 청소년들은 소셜 미디어 등 온라인 매체에 숙달됐다는 특징이 있다.

두 번째 지표는 빈곤이다. 이 지역에서 발전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페르시아만의 부유한 군주국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국가에서 실업률과 빈곤율이 악화했다. 세계은행에 의하면 아랍국가 청년 27%는 실업 상태로, 아랍을 제외한 모든 지역보다 그 비율이 높다.(1)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해외로 이주하려는 열망도 사상 최고 수준이다. 아랍바로미터의 최근 보고서를 보면,(2) 알제리, 이라크, 요르단, 모로코, 수단 그리고 튀니지에서 응답자의 1/3 이상이 본국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모로코에서는 18~29세 인구의 70%가 출국을 꿈꾼다. 이들 국가의 정부는 이런 출혈을 억제하고자 노력하기는커녕, 정부에 저항할 가능성이 있는 청년들을 제거한다. 

국민들의 원성을 부추기는 세 번째 구조적 원인은, 발전이 결여된 국가 통치방식이다. 튀니지를 제외한 이들 국가에서 민주주의 정책 및 실행의 부재는 점점 더 많은 국민들이 소외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많은 시민들이 부정부패는 만성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취업을 위해서든, 대접을 받기 위해서든 필요한 것은 능력보다 연줄, 후견주의(정치인과 유권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표를 교환하는 것-역주)라고 여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현재의 시위는 새로운 경향을 보이고 있다. 우선, 민중운동가들은 깨달았다. 안보기관과 보안기관이 국가방위 분야를 장악하고 정치 관행이 바뀌지 않는다면, 집권층을 전복시켜도 체제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시위대는 성급히 선거를 요구하지 않는다. 알제리와 수단의 적극적 행동주의자들은 2011년 이집트 혁명의 실수를 되풀이할까 조심하며,(3) 독재체제 구성원들의 해체를 요구한다.

한편, 시위대는 정보기술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있다. 과거 시위에서 소셜 미디어는 정부의 검열과 탄압을 피할 도구였다. 지금도 소셜 미디어는 시위대에게 중요한 도구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민중운동 참여 의사를 표명할 수 있고, 예술이나 유머, 비판 등을 무기로 지도자들과 체제의 정당성을 공격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의 저항은 알제리와 레바논에서 특히 발전했지만 모로코나 요르단에서도 활발하다. 이제 아랍 세계에서 소셜 미디어는 억압으로부터의 도피수단에서 대립의 장으로 변화했다. 시위대에게 불리한 점이 있다면, 당국 또한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을 이용해 선전하고, 가장 적극적인 반대파를 찾아내 탄압한다.

마지막으로, 지금의 운동가들은 주요 이념들과 동떨어져 있다. ‘아랍의 봄’은 이미 범아랍주의, 이슬람주의, 사회주의, 민족주의 등 각종 ‘주의’에 대한 환멸로 특징지어졌다. 이제 민중운동은 더 이상 허황된 약속에 현혹되지 않는다. 이들은 국가의 통치방식을 개선시키고자 하는 ‘일상의 전투’를 택했다. 2011~2012년 지진의 여진은, 민주주의에 대한 철학적 서사시에 종지부를 찍으며 이런 변화를 공고히 했다. 반대세력들이 우선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불평등과 불공정을 야기한 모든 옛 정치적 경제구조를 해체하는 것이다. 여성들 또한 이런 새로운 민중운동에서 보다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고, 이를 통해 가부장제를 겨냥한, 옛 질서에 대한 급진적 비판이 나오고 있다. 

독재정권들도 지난 10년의 사태들을 통해 교훈을 얻었다. 튀니지의 진 엘아비딘 벤 알리 전 대통령과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전 대통령의 운명은, 민주주의 작전에 손대는 것은 위험하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두 전 대통령 모두 아랍의 봄 당시 민주주의적 방식으로 민심을 달래려 시도했으나, 결국 퇴진·망명했다.) 민중운동이 정권을 공격할 때, 집권 정부의 승리 전략은 더 이상 선의가 시간을 벌게 해 줄 것이라는 희망 속에서 분열을 눈감아주는 것이 아니다. 이제부터 정부의 합리적인 대응은 진압을 계속하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추방된 반체제 인사들의 상황은, 독재정권이 자신에게 위협적인 세력에 극단적인 방식을 가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독재정권은 처벌받지 않기에 폭력은 더욱 강해졌다. ‘국제사회’는 이들이 저지르는 인권침해를 분명 규탄할 수 있다. 아랍 국가들이 민주주의 반대파를 다루는 방식을 해외 권력들이 수용하기 때문이다. 

서구의 소중한 동맹인 이집트의 압둘팟타흐 시시 총사령관 및 대통령 정권은, 선출 정권의 전복과 2013년 카이로 라바 알아다위아 광장 시위 중 벌어진 수백 명의 학살에 대해,(4) 그리고 2019년 6월 재판 중 돌연 사망한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서도 책임지지 않았다. 2018년 10월 2일, 주이스탄불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 내에서 발생한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살해 사건(5)도,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제관계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시리아에서는 내전기간 대량학살이 발생했음에도, 바샤르 알아사드가 여전히 집권하고 있다. 2011년 1월, 미셸 알리오마리 프랑스 외무부 장관이 튀니지 벤 알리 정권을 돕겠다고 제안했던 일은 큰 논란을 일으킨 반면, 프랑스가 리비아에서 칼리파 하프타르 군 최고 사령관의 부대들을 무장시키며 UN의 중재를 지원한 것은 주목을 끌지 않았다.

 

데가지즘의 한계

‘아랍의 봄’의 여진 중에서도, 수단은 특별한 경우다. 혼돈에 빠진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수단에는 평화 협상이 민주주의로 가는 길을 열어줄 가능성이 존재한다. 통치자들에게 국제적 지지자가 없었을 때, 반대파 지도자들은 대규모 결집을 통해 대중의 의견을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경우다. 수단은 시민 사회의 활기, 매우 적극적인 전문가 협회들, 군사 지도자들을 협상 테이블로 데려오려는 운동가들의 의지 등으로 다른 아랍 국가들과 구별된다. 수십 년 전부터 수단의 노조, 비정부기구 등은 정치권 진입을 꺼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이라크와 레바논 그리고 알제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랍의 봄’의 여진은, 옛 정치 엘리트들을 퇴진시키려는 ‘데가지즘’(낡은 체제나 인물의 청산을 뜻하는 정치 신조어로, 2011년 아랍의 봄 퇴진 시위 구호에서 유래-역주)이 특징이다. 그러나 이들의 이런 급진적인 요구에는 정권과 교섭할 수 있는 어떤 정치적 조직도 동반되지 않았다. 이들 반정부 시위자들은 지도층과 접촉하면 신뢰를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치 무대와 거리를 둔다. 사람들의 결집 또한, 지도자나 대변인의 출현을 막는 수평적인 구조로 이뤄진다. 이런 방식은 평등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지도자 없이 위기 상황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그래서 ‘데가지즘’은 막다른 길에 봉착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은 여러 국가에서 나타나는데, 특히 시위대가 정권을 압박할 수 있는 그 어떤 경제적 수단도 보유하지 않은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예를 들어, 알제리와 이라크 정권은 탄화수소 수출에 의존한다. 이들 국가에서 탄화수소 채굴은 사회적, 지리적으로 사회와 멀리 떨어진, 고립된 기업들에서 이뤄진다. 그러므로 알제리와 이라크에서 발생하는 민중운동은 정권의 경제적 중심에는 타격을 입힐 수가 없다.

정부와 시위대가 ‘아랍의 봄’에서 얻은 교훈 외에, 종교 및 지정학적 상황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정권과 국민들의 대립은, 더 이상 페르시아만의 몇몇 군주국에 의해 구현된 반혁명주의 수니파와 이란 시아파 진영의 경쟁이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가 이끄는 반혁명 연합은 2011~2012년 반체제 인사들의 기세를 저지하기 위해 종교 대립을 고의로 격화시켰다. 사회를 분열시키고 모든 민주주의 반대파를 이란 진영과 혼동되게 만들고자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이란과 이란의 지지자인 레바논의 헤즈볼라, 알아사드 대통령 정권, (예멘의) 후티 반군과 이라크 민병대는 이런 분열에 큰 기여를 했다. 다양한 국가 갈등에 영향을 미치고, 시아파 진영 동조자들에 대한 지원을 정당화하는 데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가 부추긴 맹목적인 수니파 애국주의가 적절한 들러리 역할을 했다. 

 

사우디 영향력의 한계

그러나 이런 지역별 전략들은 이제 중단됐다. 이란 진영 내부에서 종교 이야기는 청년 운동가들에게 더는 호소력이 없다. 레바논과 이라크에서 ‘데가지즘’은 그 어떤 종파에도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이라크에서는 시아파 반정부주의자들이 이란 외교 사절단을 공격했다.(6) 신정 정치에 반대하는 시위가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국내 상황, 그리고 자국의 영향력 범위와 관련한 두 가지 분쟁에 휩싸인 이란의 입장에서는 이제 판도가 달라졌다.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 진영의 반혁명주의 군사작전도 실패했다. 이들이 몇몇 아랍 지도자들에게 베풀었던 도움은 체제의 안정성을 보장해주지 못했다. 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페르시아만 국가들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권위주의와 신속한 경제발전 그리고 정치적 안정을 겸비한 강력한 신체제를 수립하지 못했다. 군대가 모든 경제 부문을 좌우하게 된 이집트는 모든 아랍 국가들에게 반면교사 대상이 돼 버렸다.

 반혁명 수니파 연합의 실패는 사우디아라비아 영향력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끝내기 위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구상한 ‘세기의 거래’에 대해 수많은 아랍 자본이 내보인 적대감이다.(p.6 기사 참조)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우파의 꿈을 실현시키려는 계획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또 다른 실패 사례는 바로 예멘 내전이다. 비극적 인명 피해로 수렁에 빠진 예멘 내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는 그 어떤 전략적 승리도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사우디아라비아 왕국 내부의 군사적 취약점과 국외 파병 능력 부재만 드러났다. 

내부적으로는, 탄화수소 의존성을 낮추고 경제를 다각화하려는 국내 목표의 실현도 요원하다. 지난해 말 이뤄진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의 주식시장 상장도 기대만큼 외국인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이들의 계획은 일명 ‘리츠 칼튼’ 사건으로 이어진 듯하다. 2017년 11월, 사우디의 고위급 인사 수백 명이 리야드의 이 고급 호텔에 감금돼 있다가, 사우디 국고에 거액의 세금을 내는 조건으로 풀려났다.(7) 12월에는 아람코 주식 상장가격 때문에 수없이 망설이던 많은 사우디 투자자들이, 자기 자산으로 자금을 조달한 뒤 아람코의 주식을 사야했던 일도 있었다. 대대적으로 홍보된 아람코의 자본 개방은 경제 민영화나 다각화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왕국의 강화된 경제 통제방식을 드러냈다.

반혁명 수니파 진영은 우방인 미국의 지정학적 전략의 근본적인 변화까지 고려해야 한다. 초강대국인 미국은 아랍 세계를 더는 핵심적이라 여기지 않는다. 새로운 공급원들 덕분에 미국 경제와 세계 주요 시장들은 중동의 석유생산 중단에도 버틸 수 있다. 또한, IS나 이란 같은 적수들은 과거 알카에다와는 다르게 실존적인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 반복되는 중동 분쟁에 지친 여론 역시 이란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미국이 해당 지역에 개입하는 것을 거부한다. 

 

미국 패권주의의 약화

누가 보더라도 트럼프 행정부는 페르시아만 국가를 이란으로부터 보호하는 보호자 역할을 실질적으로 포기했다. 1월,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 장관을 암살한 것도, 주바그다드 미 대사관을 위협했던 이라크 분쟁에 대한 미국의 확고함을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더 컸다. 지금까지 미국은, 이란 혁명수비대가 페르시아만에서 유조선들을 나포하거나 미국 드론을 격추하고 사우디 정유공장을 공격하고 난 후에도, 반이란 군사작전 참여를 거부해왔다. 시리아 북서부의 쿠르드족 동맹을 미국이 저버린 것, 그리고 해당 지역에서 터키군의 개입에도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것 역시 미국이 전략을 조정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미국은 대외정책에 있어 ‘외교적 개입은 국내 안전을 위해서만 단기적으로 행한다’는 잭슨 단계(8)(미국의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 참정권의 확대, 자유방임주의 경제 등을 표방하는 잭슨 민주주의를 정립-역주)로 접어들었다. 이런 미국 패권주의의 약화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은 각각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더 이상 미국으로부터 조건 없는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이란은 자국 영향력의 한계를 깨달았다. 이스라엘의 안전 문제와 관련한 혼란 가능성은 여전히 이 지역에 존재한다. 또한, 국지적인 충돌 때문에 미국과 이란이 계속 맞설 수도 있다. 우발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미군과 이란군 사이에 전투가 시작돼 심각한 충돌까지는 아니더라도, 해당 지역의 불안정성은 가중될 것이다. 

2010년대에 중동지역을 정의했던 지역 질서는 이제 새로운 논리에 따라 조직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한 세대 동안 가장 큰 대외정책 실수로 남았던, 2017년 봄에 결정한 카타르 단교 조치를 조금씩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아랍에미리트는 예멘에서 군대를 철수시키고 있다. 아랍에미리트도 사우디아라비아처럼 주변 지역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이란과 직접 대화를 나눌 준비가 돼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가 친이스라엘 기조를 단념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는 무엇보다 자국의 안보와 관련된 이유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가진 방위 및 감시 기술, 정보 기술이 이런 결정에 큰 비중을 차지했다. 어느 장소라도 군사적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이스라엘의 능력, 이란과 이란 동맹국들의 이익 또한 고려 대상이다. 

미 패권주의 약화는 지난 1월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세기의 거래’에서도 나타난다. 미국은 언제나 이스라엘 정부를 지지해 왔다. 그러나 이번 미국의 제안은, 이스라엘 우파가 해묵은 문제를 청산할 수 있게 하는 중재자 역할을 미국이 완전히 포기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사우디의 지역 파트너들, 그리고 이란은 페르시아만에서의 줄타기 전략이 가진 한계와 이 지역에서 자신들 사이에 존재하는 잠재적 갈등의 불합리한 특성을 깨달았다. 이들은 이제 다른 곳에서 맞서게 됐으며, 이들의 지정학적 경쟁은 지중해 동쪽에서 표출된다. 여기에서 새로운 두 개의 동맹이 탄생했다. 우선 이집트, 이스라엘, 키프로스와 그리스의 동맹이다. 이들은 모두 해안 보유국으로, 상호 군사협력이 증가했다. 이는 해양에 매장된 천연가스 채굴과 관련한 공통의 이익 때문이다. 이들 진영의 반대쪽에는 카타르, 터키 그리고 트리폴리에 정착한 리비아 정부가 있다. 

이 조합에서, 리비아는 마그레브(리비아, 튀니지, 알제리를 포함하는 아프리카 서북부 지역 - 역주)에서 벗어나 레반트(그리스와 이집트 사이에 있는 동지중해 연안 지역을 통틀어 이르는 말 - 역주)의 싸움터에 합류했다. 리비아에서 두 진영 사이의 폭력은 대리전으로 나타난다. 여러 당사자가 얽힌 내전에 휩싸여 분열된 이 국가는, 최전선에서는 외국인 용병들과 드론이 활동하고, 외부 군대들은 특정 진영을 공개적으로 지원하는 무정부 상태가 됐다. 여러 면에서 리비아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현재 진행형인 지정학 경쟁관계 재편의 주된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재편 구도 속에서 러시아는 특별한 입장을 보인다. 시리아에 군대를 파병하고, 리비아 사태에 깊숙이 개입하는 러시아는 반혁명주의 충동으로 행동하지만, 이것이 그들의 전반적인 전략은 아니다. 러시아에게 일부 독재정권들은 특수한 상황에서 자국에 이익을 줄 수 있는 파트너다. 러시아의 활동 내용에는 저비용 고효율의 군사개입도 포함되는데, 이 군사개입에는 소규모 군사 기지들과 (때로는) 민간 협력자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러시아의 민간군사기업 와그너는 미국의 민간군사기업 블랙워터가 실패했던 곳에서 성공을 이뤘고, 작전 범위도 시리아에서 중앙아프리카공화국까지 확대했다. 러시아에 지역 질서에 대한 장기적 전망은 없다. 다만, 최소한의 비용으로 지정학적 이익을 손에 쥐어 줄, ‘분쟁들’이라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그러므로 러시아의 전망은 전략이라기보다는 전술에 가깝다. 

 

군주제 모델의 환상

수단의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저항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여기에서 합리적인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군주제가 정치적 안정에 이상적인 해결책인가? 2010년대 초반, 벤 알리 튀니지 전 대통령과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전 대통령의 몰락 후에도 이미 이 의문이 제기됐었다. 군주제는 문화적, 사회적으로 사회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어 더욱 큰 정당성을 가진다. 또한, 군주제는 적극적인 운동가들 사이의 싸움을 넘어설 수 있는 정치 기관으로서의 유연함과 융통성을 가진 덕분에 분쟁을 중재하고, 위기 상황에서 국가의 지도력을 보여주기에 더욱 적합하다.

쿠웨이트를 제외한, 정치 활동이 존재하지 않는 페르시아만의 왕국 그리고 토후국(아시아, 특히 아랍 지역에서 중앙집권국가 행정에서 독립해 부족장이 통치하던 국가-역주)들과는 반대로,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지는 두 국가, 모로코와 요르단은 아랍 세계에서 오랫동안 군주제에 대한 옹호를 부추겨왔다. 이들 국가에서는 강력한 왕실 권력이 군주제를 문제 삼지 않는 일부 정당을 포함한 여러 정당들과 결합돼 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 군주제의 통치방식에 대한 반대가 내부적으로 점점 더 늘었다. 그리고 모로코와 요르단 모두 과거에 야당의 일부를 포섭하며 위기를 예방했던 유연함이나 순발력이 더는 남아있지 않다. 

반면, 시위대들은 군주제를 문제 삼는 것은 넘지 말아야 할 한계선이었다는 사실을 힘겹게 깨달았다. 그러므로 이들이 포기하고 군주제를 문제 삼지 않는다면, 군주제 정권은 자신들의 오랜 보수적 관습들을 적응시키고 영속시킬 것이다. 경제학적으로 말하면, 시장에서 독점적인 상품은 변화하지 않아도 살아남겠지만, 경쟁 상품이 나타날 경우 생존을 위해 진화해야 할 것이다. 이제 이런 사고방식 속에서, 모로코의 저항은 군주제의 권위를 실추시키며 고정된 한계를 넘어설 것이다. 

군주제에 대한 반감도 이미 표출되고 있다. 현재의 상태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시기가 오면, 왕권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공화주의라는 흐름을 막기 위해 그들에게 남은 정당성과 정치 자원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알아내는 것이다.   

 

 

글‧히샴 벤 압달라 엘 알라위 Hicham Ben Abdallah El Alaoui
하버드 대학교 객원 연구원. 저서로 『Journal d'un prince banni. Demain, le Maroc 추방당한 왕자의 일기. 내일, 모로코』(Grasset, Paris, 2014)가 있다.

번역‧김자연 jayoni.k@gmail.com
번역위원


(1) 세계은행, https://data.worldbank.org
(2) ‘Arabs are losing faith in religious parties and leaders’, Arab Barometer, 2019년 12월 5일, www.arabbarometer.org
(3) Alain Gresh, ‘En Égypte, la révolution à l’ombre des militaires 군부 그늘로 들어간 이집트 혁명’,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한국어판 2013년 8월호.
(4) ‘Égypte : les forces de sécurité ont recouru à une force meurtrière excessive 이집트: 과도하게 치명적인 힘을 사용한 치안부대’, Human Rights Watch, New York, 2013년 8월 19일.
(5) Akram Belkaïd, ‘L’affaire Kashoggi met Riyad sous pression 사우디아라비아를 압박하는 카슈끄지 사건’, Horizons arabes, <르디플로 블로그(Les Blogs du Diplo)>, 2018년 10월 15일, https://blog.mondediplo.net
(6) Feurat Alani, ‘Les Irakiens contre la mainmise de l’Iran 이란의 지배에 맞서는 이라크인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한국어판 2020년 1월호. 
(7) Ibrahim Warde, ‘Singulière amitié entre Riyad et Washington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의 기이한 우정’,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한국어판 2017년 12월호.
(8) Olivier Zajec, ‘Les cabotages diplomatiques de Donald Trump ‘군국주의자’ 잭슨을 섬기는 트럼프의 외교 여정’,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8년 1월호, 한국어판 2018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