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포드의 엇나간 꿈

2011-08-08     그레그 그랜딘

질서와 건강식을 중시한 그는 노조와 고기를 싫어했다. 20세기 초, 미국의 사업가 헨리 포드는 그런 자신의 세계관을 자동차 제조업에 적용한다. 그리고 합리화와 표준화를 토대로 한 생산 방식을 모든 인간활동 영역으로 확대하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다. 헨리 포드는 아마존의 한복판에 포드사의 타이어 제조를 위한 고무 생산 거점인 ‘포들랜디아’라는 미국식 유토피아를 건설함으로써 자신의 꿈을 실천한다.

1927년, 포드사의 오너 헨리 포드는 “아마존에 고무를 재배하고 정글 한가운데에 도시를 세우기 위해 미국 코네티컷주 크기의 땅을 양수했다”고 공표했다. 이에 미국 언론들은 거부할 수 없는 위력의 두 골리앗이 손잡은 것이라며 환영했다. 한쪽은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기업체로서, 대량생산 방식을 최초로 도입하며 세분화된 부품을 동일한 품질로 무한 복제해내는 새로운 생산모델로 승승장구한 산업계의 거물이다. 다른 한쪽은 지구에서 가장 큰 하천 유역으로, 9개국을 가로지르며 남미 대륙 3분의 1을 뒤덮는다.

코네티컷 크기의 밀림을 불하받다

따라서 이 일은 헨리 포드로 대표되는 20세기 미국식 자본주의의 거센 기운과 아마존강의 절대적 위엄으로 상징되며,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손에 넣지 못한 유구한 원시세계 사이의 대결로 소개됐다. <타임>(1927년 10월 24일치)의 시각에서 보면, 포드는 아마존 밀림 전체의 산업화가 달성될 때까지 해마다 고무 생산 최적화에 공을 들일 게 분명했다. 아마존 부족들에게 최고의 행복을 선사하기 위해서다. “육중한 칼날로 무장한 아마존 인디언들이 곧 기존의 낡은 움막을 쓸어버리고 와이퍼와 매트, 타이어 제조에 용이한 환경을 만들 것이다.” <워싱턴포스트>(1931년 8월 12일치)는 “포드사가 아마존 밀림에 ‘백인의 기적’을 일으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무만 재배하는 게 아니라 고무를 채취하는 사람  자체를 양성하는 것이다.

포드의 브라질 북부 상륙은 탐험가들의 시대가 상업의 시대로 바뀌는 역사적 전환점과 맥락을 같이한다. 포드도 아마존 탐험가들이 내세운 화려한 수식어 따위와는 거리를 두었다. 포드가 아마존 밀림을 자신의 도전 목표로 인식했다면, 이는 자연을 지배하겠다는 의지보다는 미국적 시각을 이곳에 적용하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의 계획에는 낭만적 측면도 없지 않다. 더구나 고전적인 사교댄스를 장려한 그가 아닌가. 그렇다고 이 자동차 업계의 제왕이 모험심에 사로잡힌 건 아니었다. “힘들게 일한 사람은 따닥따닥 소리가 나는 난롯가의 편안한 의자에 앉아 안락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따라서 그가 아마존 밀림 한가운데에 교외 고급 주택가 못지않은 오두막집을 만들어 브라질 노동자들이 지내도록 하고, 자그마한 정원에서는 꽃과 채소를 키우도록 한 것은 당연했다.

1927년에 시작해 브라질 정부에 토지를 넘긴 1945년까지, 그는 아마존 밀림 한가운데에 두 개의 미국식 대도시를 구축하기 위해 수천만 달러를 지출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식물 기생충 하나 때문에 플랜테이션 농장 전체가 파괴된 이후 버려졌다. 포드가 세운 밀림 속 도시의 주민들은 공원·보도·배관·병원·잔디·영화·수영장·골프장 등 모든 문명의 이기를 누렸고, 깔끔하게 포장된 도로 위에서 포드 자동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즐겼다. 아마존 유역을 관통해 기나긴 여정 끝에 ‘포들랜디아’에 도착한 주브라질 미대사관 무관 레스터 베이커 소령은 미국 중서부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의 이 ‘천국’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전기 램프, 전화, 세탁기, LP, 냉장고까지 모든 걸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 몇 해 동안 폭력 사태가 빚어졌고, 디즈니랜드 같은 꿈의 도시보다는 국경 도시에 더 걸맞은 상황이 연출됐다. 말라리아와 황열 때문에 사망률도 급격히 높아졌다. 아마존 역사에서 유례없는 대규모 화재로 하늘이 시커먼 연기로 뒤덮였고, 브라질 노르데스트의 척박한 땅에서 굶주림에 지친 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몰려와 작업장을 가득 메웠다. 이들은 포드가 일당 5달러로 수만 명을 고용했다는 풍문을 듣고 내달려온 참이었다. 사람들은 아내와 자식, 삼촌, 사촌 등을 다 데리고 몰려왔다. 이들은 나무토막과 천막으로 대충 만든 막사에서 비좁게 끼어 지냈다.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도망친 노동자들은 칼부림이나 소요 사태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미국인 지도부가 아마존 원시림을 죄다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렸다고 했다. 아마존 밀림을 상당 부분 불태워 없앤 그들은 과거 이 지역 사람들이 어떻게 파라고무나무를 키웠는지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남아 있던 사람들도 포드식 인력 편성 방식에 불만이 많았다. 현지의 기온이나 강수량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작업 일정을 짜고, 유치원까지 식단을 통제했으며, (헨리 포드가 젖소를 싫어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두유만 제공했다. 노동자들에게는 도박장 출입을 금지했고, 음주도 불가능했다. 제툴리우 바르가스(1930년 혁명에 성공한 혁신 장교들의 추대로 임시 대통령에 오른 뒤 강권통치로 두 차례 브라질 대통령을 지냄)에게 권력을 안겨준 ‘혁명’ 이후 두 달이 지난 1930년 12월, 포들랜디아에서 폭동이 터졌다. “미국인들에게 죽음을!”, “브라질인들에게 브라질을 돌려달라!”고 외치던 노동자들은 부지 일부를 훼손하며 자신의 정당한 주장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했다. 미국인 간부들은 헨리 포드가 노동자 조직을 ‘지구상에 전례 없는 화근’으로 간주한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이들은 브라질 군대를 설득해 지원을 얻어냈고, 그 결과 폭동에 가담한 사람들은 해고되고 소매상들은 가게 문을 닫았다.

타이어 생산 전진기지 건설 착수

그런데 이번에는 자연이 들고일어났다. 포드는 파라고무나무가 빽빽하게 줄지어 자라길 바랐다. 기계들을 가지런히 배치해 이동을 최소화하는 미국 디트로이트 공장처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로써 그는 바퀴벌레와 병원 균류가 들끓을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 셈이 됐고, 플랜테이션은 쑥대밭이 됐다.

포들랜디아는 저주받은 땅처럼 보였다. 초기의 저항 때문에 그렇게 보인 탓도 있었지만, 어느 정도 질서가 잡힌 뒤에도 아마존 밀림의 식물들이 포드식 경영 방식을 끈질기게 거부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곳의 잔해를 둘러보면 왠지 울적함에 빠져든다. 1세대 농장 경영인들이 남미 최대의 제재소로서 높은 생산량을 기록했음에도, 이곳은 산림 파괴의 현장이라기보다는 공장 파괴의 현장이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물탱크는 녹슬었고, 제재소의 잔해는 한때 또 하나의 ‘포드 도시’이던 미시간주 아이언마운틴(1920년대 헨리 포드가 이곳에 자동차에 들어갈 나무를 공급하기 위해 제재소를 세웠다)의 공장 폐허와 당황스러울 만큼 닮아 있다.

포들랜디아 하항에서 약 2km 떨어진 곳에는 강으로 둘러싸인 언덕 위 ‘미국인 구역’의 잔해를 찾아볼 수 있다. 개신교의 엄격함이 밴 목재 가옥들에는 널지붕과 마루, 석고벽, 문양을 넣은 쇠시리 장식, 타일을 깐 욕실, 아플리케, 냉장고 등이 남아 있다. 수풀에 잠식된 낡은 집들은 현재 박쥐들이 장악한 상태이며, 벽과 바닥은 두꺼운 조분석 층으로 뒤덮였다.

아마존강 가까이에는 허름한 방갈로에서 브라질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 일부는 전직 포드사 직원들이었다. 방갈로는 부지 둘레에 조성된 3개의 대로를 따라 줄지어 서 있었다. 발전소와 제재소는 과거 백인 거주 구역과 이 노동자 단지를 분리해준다. 기계실에서는 터빈과 발전기가 사라지고 없지만, 산업 잔해들은 아직 주위에 잔뜩 널려 있다. 과거, 발전소까지 장작을 실어 날라주던 5km 철로 구간은 이제 수풀로 뒤덮여 있다.

청교도식 생활 강요, 자연도 저항

아마존 밀림 도시는 헨리 포드가 개선하려 했던 미국식 삶의 모든 요소를 결합했다. 헨리 포드는 미국에서의 정치와 문화를 늘 탐탁지 않게 여겼다. 전쟁, 노조, 월가, 에너지 독점, 유대인, 모던 댄스, 우유, 루스벨트, 담배, 술, 연방정부의 개입 등 미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이 그에게는 늘 불만의 대상이었다. 게다가 가장 심각한 문제는 헨리 포드 자신의 손으로 일군 산업자본주의의 위력이 오히려 그가 원한 세계를 강탈해갔다.

포드식 경영에는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씨앗이 내재돼 있었다. 생산과정이 각각의 업무를 점점 더 고립시키며 극도로 세분화되고, 여기에 교통·통신의 급격한 발달이 결합되면서 고용주들은 고임금·고소비의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게 됐다. 생산활동에 참여한 노동자가 다시 소비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노동력에 대한 정당한 보수 지급이 포드식 경영의 원칙이었으나, 이제 상품은 한 곳에서 만들어져 다른 곳에서 판매되는 세상이므로, 노동자에게 고임금을 지급하는 사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포들랜디아 서쪽으로 약 500km 떨어진 마나우스에서 특히 눈에 띄게 나타났다. 고무 붐이 일어나며 19세기에 크게 번영했던 마나우스는 1960년대 말, 브라질 군사정부가 이곳을 비관세 지역으로 지정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관세가 폐지되자 마나우스는 브라질 전체의 슈퍼마켓 같은 존재가 되었다. 마나우스 항구에서는 미국과 유럽, 아시아에서 온 화물선들이 매일 엄청난 양의 상품을 하역했다. 1969년 <뉴욕타임스>는 장난감, 라디오, 에어컨, 텔레비전 등 비관세 물품을 가득 싣고 리우나 상파울루에서 전세기를 타고 온 브라질 사람들의 행렬에 대해 언급하며 이 ‘뜨거운 열기의 호황’을 환영했다. 같은 시기, 브라질 군사정부는 수출 세금 완화나 보조금 지원 등 산업에 막대한 지원을 하며 마나우스를 유수의 다국적기업을 위한 산업지대로 탈바꿈시켰다. 당시 미국과의 국경을 따라 빠른 속도로 늘어나던 외국계 공장 ‘마킬라도라’와도 비슷했다. 오늘날 마나우스에는 혼다, 야마하, 소니, 노키아, 필립스, 코닥, 삼성, 산요 등 수백 개 공장이 상주해 있다. 1999년, 할리데이비슨은 이곳에 처음으로 해외 공장의 문을 열었다. 질레트는 자사의 남미 최대 생산라인을 이곳에 두고 있다.

제2, 제3의 포드 발길 이어져

브라질에서 가장 높은 인구성장률을 보이는 마나우스는 1960년대 중반 20만 명이던 주민 수가 오늘날 300만 명으로 늘어났다. 아마존을 위협하며 성장하는 도시는 주변 밀림의 초록색 이파리들을 나날이 먹어치워 없앤다. 제3세계의 여러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마나우스 역시 범죄와 빈곤이 끊임없이 증가한다. 미성년자 성매매 행위와 밀거래가 성행하고, 환경이 오염되며, 의료 체계도 엉망이다. 정화시설이 구비되지 않아 폐수는 곧장 히우네그루로 방출된다. 마나우스는 브라질 산업생산량의 6%를 차지하며, 약 10만 개 일자리를 책임진다. 수출업자들이 얻는 이득이야 엄청나지만, 마나우스는 입에 풀칠하기 위해 찾아오는 모든 이농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한다. 비행기를 타고 이곳에 도착한 방문객의 눈에는 모래밭 위로 멋지게 솟아오른 초호화 마천루와 함께 그 아래 펼쳐진 빈민가가 동시에 들어온다. 변덕스러운 강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불안한 말뚝 위에 빈민가를 얹어놓은 형상이다. 이는 세계에서 불평등한 나라 가운데 하나의 불평등한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에 비하면 포들랜디아 미국인 거주 구역과 노동자 단지 사이의 사회적 격차는 사소해 보인다.

약 500km에 이르는 아마존 중부 지역에는 현대 자본주의의 역사가 펼쳐지고 있다. 한쪽에 있는 영광의 기념물 포들랜디아는 20세기 초기의 지켜지지 않은 약속을 상징하고, 다른 한쪽의 마나우스는 도심의 참상이 자리잡고 있다. 포드의 경영 방식이 만들어낸 참상이지만, 이는 포드 자신도 멀리하려던 것이었다. 아마조니아에 제2의 아메리카를 건설하겠다던 야심찬 계획의 결말은 하나밖에 없다. 아마조니아가 아메리카의 하청 지역이 되는 것이다.

글•그레그 그랜딘 Greg Grandin
저서로 <헨리 포드의 잊혀진 정글도시, 그 흥망성쇠>(The Rise and Fall of Henry Ford’s Forgotten Jungle City, Metropolitan·뉴욕·2009) 등이 있다.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