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파크가 된 도시, 파리의 여름 풍경

2011-08-08     브누아 뒤퇴르트르

우리 동네 빵집에 오는 대부분의 관광객은 ‘글로비시’(‘글로벌 잉글리시’의 약어)로 말한다. 그들은 대개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재빠른 몇 마디 영어로 샌드위치를 주문한다. 어떤 미국인은 지배적인 문화권 나라에서 왔다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수다스럽게 긴 문장을 늘어놓는다. 빵을 사려고 줄 서 있던 나는 가끔 그들에게 프랑스에서는 프랑스어를 사용한다고 감히 참견도 한다. “영어할 줄 아세요?”를 먼저 물어보는 것이 기본 예의가 아니겠는가? 그러면 어떤 관광객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들이 놀라는 걸 이해 못하는 게 아니다. 왜냐하면 주위의 모든 것이 그들이 언어 문제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게끔 조성돼 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비스트로(1)로 분장한 카페들은 가게 앞에 설치한 메뉴 게시판에 그들의 ‘애피타이저’와 ‘프렌치 와인’의 가격을 적어놓는다. 관광객들의 관광 코스 이동을 위해 5분마다 배차되는 관광버스 또한 영어 안내판을 붙여놓았다. 요컨대 ‘파리∼유로 디즈니랜드’라는 이중의 행선지를 관광하러 온 여행객들은 노트르담이 세계화된 놀이공원의 부속 건물인 듯 느낄 수도 있다.

빵집 공용어가 된 ‘글로비시’

하지만 너무 투덜거리면 안 된다. 내 이야기를 듣는 이들은 나한테 시테섬에서 사는 특권을 누리고 있으면서 그에 따른 불편은 좀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탈리아·독일·스페인 등 여러 나라 관광객의 행동을 보며 각국의 고유한 문화적 특성을 고려해 그들이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구분하는 것을 재미로 삼기로 했다. 특히 내가 관찰한 것은 파리 시내의 빠른 변모다. 이제 우리는 프라하·베니스·로마 등 유럽의 모든 역사적 도시에서 관광객 중심으로 조성된 똑같은 경제활동 구역을 볼 수 있다. 한편 이 도시들의 주거지는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점차 특정 소수의 소유가 되어간다.

1988년 내가 이 동네로 이사왔을 때만 해도 우리 집은 비교적 가격이 쌌다. 그러나 같은 건물에 살던 퇴직자, 학생, 젊은 부부는 1~2년 뒤면 좀더 가족적인 지역을 찾아 떠나갔다. 동네 거리에는 기념품 상점들 사이로 푸줏간·안경점·약국·빵집·신문판매점, 그리고 가수 기 베아르가 1950년대에 데뷔한 한물간 카바레 ‘라콜롱브’도 있었다. 내가 이사왔을 때, 우리 동네는 1960년대의 과격한 재개발 이후 또 다른 변화가 조심스럽게 진행되고 있었다. 서서히 바뀌는 장식들은 이 동네를 계획된 경관으로 재가공했다.

그때만 해도 동네의 여러 비스트로들은 점심을 먹거나 커피 한잔 마시러 오는 오텔디유병원 직원들로 붐볐다. 그 뒤 하나둘 건물 외벽 청소를 하고, 카운터들이 사라지고, 내부는 안락한 라운지 스타일로 탈바꿈하더니 이제는 안내를 받아야 자리에 앉을 수 있고,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음식이 비싸게 제공된다. 새 주인들은 이제 더는 카운터에 서서 술 냄새를 풍기면서 수다를 늘어놓는 손님은 받지 않는다. 그들이 선호하는 대상은 파리의 환상을 사기 위해 휴가 경비 지출을 마다하지 않는 국제적 손님들이다. 이로 인해 사이비 인상주의 벽화와 바둑판 무늬의 식탁보 등 이른바 ‘네오 프랑스’적 장식이 대유행을 하고, 종업원은 19세기 주막집 주인으로 분장해 길거리에서 호객 행위까지 한다. 동시에 가격은 두 배 이상 뛰었다. 푸줏간은 간단히 끼니를 때우는 음식점으로 바뀌었고, 하겐다즈(아이스크림), 솔라리스(선글라스) 등 브랜드 상점들이 들어왔다. 약국 또한 프로방스 지방산 비누를 파는 록시탕에 자리를 내주었다(록시탕 비누는 도쿄나 시카고에서도 살 수 있지만, 역시 프랑스에서 사가면 더 좋은 것이다).

동네 식당, 관광객 겨냥한 신장개업

시테섬의 또 다른 변모 양상은 장티베리 전 파리 시장이 재임 당시 착수한 공사에서 비롯된다. 전 파리 시장을 전적으로 비판만 할 수 없는 이 정책은 보도를 넓혀 분홍꽃의 밤나무를 심고, 관광버스 주차를 금지하는 것이었다. 의무적으로 실시한 외벽 청소로 건물들은 하얘지고, 말끔히 정리된 거리는 매력적으로 변했다. 현지인이 페달을 밟는 자전거에 연결된 2인용 수레는 연인을 싣고 도시를 가로지르고, 관광버스 대신 개인 미니버스와 상류층을 위한 리무진들이 거리를 활주한다. 런던의 시내버스를 모방한 듯한 이층버스도 새로 생겼다. 이것들로 인해 길이 막히는 건 예전이나 거의 같다. 교통 체증을 피하려면 에펠탑에서 ‘자르댕 데 플랑트’(식물원) 사이를 운행하는 수상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바포레토’(베니치아 수상버스)와 달리 ‘파리지앵’은 지하철 티켓으로 탈 수 없다. 잠시 체류하는 승객만을 위해 고안된 패스를 사야 한다.

시테섬 중앙에 위치한 아르콜 거리를 정비해 노트르담에서 시청사 앞까지 통행을 원활하게 함으로써 관광객의 순환을 증대시켰다. 시청사 앞 광장은 겨울 스케이트장, 봄맞이 야생 정원, 공기의 축제, 물의 축제, 피의 축제, 연대의 축제, 지속적인 개발의 축제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행사를 유치하는 무대가 되었다. 노트르담에서 시청사까지 가는 도중에는 생자크탑 또는 오르세미술관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설치돼 있어 관광객이 길 잃을 위험이 없다. 영어를 재잘대며 거니는 이 ‘이상적인’ 산책길에 어울리지 않는 단 한 가지는 바로 오텔디유병원의 시커먼 윤곽이다. 세월이 지났어도 여전히 멋없는 이 건물이 파리 시내 한복판을 차지하고 서서 응급의료와 호텔 가격대의 입원실 환자 간호 등 병원 기능으로만 사용된다는 게 놀랍다. 그런 이유로 파리 시립병원도 이 ‘우울한 병원’을 사무실이나 고급 주거 건물로 바꾸고 싶어할 것이다.

노동자와 서민은 파리를 뜬다

내가 사는 건물은 이젠 주위와 어울리지 않게 돼버렸다. 많은 아파트들의 창문은 1년 중 11개월은 닫혀 있다. 투자가나 집주인들이 사놓고 임시 거처로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1960년부터 지금까지 파리 거주자는 60만 명이 줄었다. 파리를 떠난 사람들은 주로 노동자계급이나 서민이다. 모든 가게는 새로운 현실에 적응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밤늦게까지 저녁을 먹을 수 있던 음식점들이 이제는 관광객이 떠나면 문을 닫는다. 생루이섬의 생루이앙릴 거리도 같은 변화를 겪으면서 모든 가게가 미술 갤러리나 실내장식 가게로 탈바꿈했다. ‘프랑스의 가장 아름다운 시골 마을’로 입소문 난 마을들에는 정교한 공예품 가게만 가득 들어서고, 정작 사람 사는 데 필요한 원초적인 것들은 내쫓긴 것처럼 말이다.

매일 아침 손님들이 오기 전에 형광색 작업복의 청소부 부대가 녹색 청소차와 함께 갈리아 마을을 샅샅이 훑으며 지나간다. 경찰들도 감시한다. 관광철이면 아예 프티퐁 다리 한가운데에 경찰 차량을 배치하고 롤러스케이터들을 막는다. 롤러스케이터들이 이 중세 광장에서 관례적으로 하는 즉흥 시범 연기를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반대로, 콩시에르제리 건물(2)를 뒤덮는 대형 광고판은 문제가 되질 않는다. 역사적 건물의 보수 공사는 디오르나 매킨토시가 구시가지 한복판에서 자신을 과시하는 기회를 준 것이다. 마치 그들의 현대적 로고를 오텔디유의 구식 건물 위에 걸린 프랑스노동총동맹의 현수막 ‘공공기업을 구하자’와 겨루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이 가짜 파리에서, 진짜 가난뱅이들은 옛날 파리의 거지와 부랑자가 모여 살던 장소를 재현하고 있다. 노트르담 성당 출입구에는 소수의 집시들이 장애인 행세를 하며 돈벌이 경쟁에 나선다. 땅바닥에 누워 관광객에게 죽어가는 소리로 간청하며 돈주머니를 내미는 것이다. 에스메랄다 같은 모양새의 소녀들은 자신이 보스니아 피란민이라는 짧은 몇 마디를 반복하며(이들도 영어로 말한다) 관광객에게 매달린다. 얼마 전부터 아코디언 연주자가 현저히 늘어났다. 그중 어떤 이들은, 우리 집 앞에 자리잡은 휠체어 신세 같은 루마니아 노인네처럼, 잘하지도 못하는 실력으로 <장밋빛 인생>과 <파리의 다리 아래>만 계속 연주해댄다. 하루는 신경에 너무 거슬려 레퍼토리 좀 바꿀 수 없겠느냐고 물어봤다.  고달픈 표정의 루마니아 노인은 일본 관광객을 가리키며 에디트 피아프의 히트곡을 연주하니까 저 사람들이 돈을 주는 거란다. 관광객은 피아프의 히트곡을 연주하는 아코디언 소리에서 ‘낭만적인’ 파리를 느끼는 것이다.

가짜 파리에 넘치는 진짜 가난뱅이들

‘달콤한 꿈의 도시’ 파리는 영화와 광고가 만들어낸 많은 모순 중 하나다. 한여름 센 강변의 파리 플라주(3)를 봐도 잘 알 수 있다. 무더기로 몰려든 관광객들로 재구성된 파리 인구는 바캉스 기분을 느끼려고 파리 플라주를 찾는다. 강변 도로가 차단돼 강변 바로 위쪽 도로는 교통 혼잡으로 끝없이 몸살을 앓는다. 이것이 꿈의 가장자리에 있는 어두운 현실이다. 막힌 도로에서 뿜어내는 자동차의 매연은 맑은 공기와 고요하게 흐르는 강을 감미하러 온 사람들 위로 넌지시 내려앉고 있다.

글•브누아 뒤퇴르트르 Benoît Duteurtre

번역•김현정 hjdeblauwe@hanmail.net
파리3대학 번역대학원, 파리3대학 연극학과 DEA 수료.

<각주>
(1) 유럽, 특히 파리의 술을 파는 작은 레스토랑.
(2) 14세기 왕궁의 일부로, 프랑스혁명 때는 감옥으로 사용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처형당하기 전에 수감된 곳이다.
(3) 파리시는 2002년부터 해마다 여름 한 달간 센 강변에 인위적으로 모래를 깔아 해변 분위기를 조성한다.